신체는 건강하지만 스포츠 신경은 없는 편이다. 심지어는 당구조차 노력한 만큼 향상되지 않아 포기한지 오래다. 그렇다고 전혀 아닌 것도 아니다. 다만 성격적으로 남들과 공개적으로 경쟁하는 시합을 싫어하는 것 같다. 스타크래프트도 그래서 못 한다. 한국에 스타크래프트가 전국 방방곡곡을 휩쓸기 전 블리자드사에서 처음 출시했을 때 인터넷 아마존에서 국제우편으로 구입해서 플레이했을 정도로 게임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나 누군가와 경쟁하는 건 싫어하는 것 같다.
먼 옛날 초등학교때 반친구들과 놀았던 스포츠가 야구였다. 야구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함께 어울려 즐길 정도는 한다. 특히 남들이 잘 안 하는 포수를 왠만큼 본다. 군대에선 거의 축구를 한다. 야구를 TV로 애청한다고 치더라도 장비 챙기고 뭐하고 하면서 시간 낭비하는 게 아까운지 주로 축구를 한다. 먼 옛날 축에 끼지만 군대에 있을 때 야구를 한두 번 했던 기억이 난다.
꼭 그래서는 아니다. 내가 TV로 프로 야구를 보는 이유말이다. 가장 큰 이유는 많은 스포츠 중에 딴 일을 하면서도 볼 수 있다. 축구는 전후반 90분 집중해서 봐야 그 열기를 느낄 수 있다. 농구도 비교적 그런 편이다. 그러나 야구는 인터넷 하면서 힐끔 힐끔 봐도 재밌다. 야구 자체가 쉬엄 쉬엄 교대로 공격 수비 하기 때문이다. 야구는 항상 집중해야 하지 않고 투수가 공을 던지는 순간부터 타자가 치는 순간까지 집중하면 된다. 설싸 그 장면을 놓쳤더라도 TV에선 리플레이를 해준다. 게다가 축구처럼 멈추지 않고 계속 진행하기 때문에 리플레이를 조마조마 슬쩍 보여주는 일은 거의 없다. 짬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마치 라디오를 켜놓은 느낌이다. 그래서 프로야구를 종종 본다.
야구를 보고 있으면 뇌의 다른 부위를 쓴다. 마치 등산길을 걷는 것도 같다. 주로 감성과 관련된 일에 집중했을 때, 글을 읽는다거나, 영화를 본다거나, 드라마를 본다거나, 만화를 읽는다거나, 게임을 한다거나, 그런 일에 머리 속이 엉킨 느낌이 들었을 때 물끄러니 야구를 보고 있으면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다. 고민거리, 골치거리, 괴로운 심정일 때도 같은 치유의 효능을 느낀다. 한때는 좋아하는 컴퓨터 게임이 머리속에 맴도는 고민 퇴치용으로 많은 도움이 됐었는데 컴퓨터 게임도 집중해서 빠져들어야하므로 또 다른 뇌부위를 긴장시킨다. 컴퓨터 게임이 언제나 유효적절하지는 않았다.
꼭 그런 건 아니지만 TV를 켜면 드라마, 뉴스, 쇼프로, 교양프로 다 재미없고 쓸데없는 정보들만 머리속에 우겨넣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보고나면 허무할 때가 많다. 괜히 무료해질때도 많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에 신경쓰고 그건 결과적으로 나 자신의 일에 집중하지 못 하게 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주변이 조용한 것이 싫어져서 TV를 켜야겠고 그때 무난하게 선택할 수 있는 게 프로야구다.
그래서 내가 특별히 응원하는 야구팀은 없다. 누가 이기던 그다지 상관하지 않는다. 대개는 9회 시작할 때쯤 다른 채널로 돌린다. 어쩌면 앞에서 말했듯이 승부가 판가름나는 순간이 싫은지도 모르겠다. 특정 팀을 응원하지 않지만 어떤 선수가 나오면 좀더 집중해서 보고 어떤 선수가 나오면 신경 끄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잘 치는 타자보다는 잘 던지는 투수를 더 좋아한다. 긴장감이 있어서 좋다. 종종 누가 투수하느냐에 따라 프로야구 중계를 선택한다. 팀은 상관없다. 때로는 감독의 분위기와 지도 스타일이 맘에 들어서 그 팀 경기를 보곤 한다.
태어나서 야구장에는 딱 두번 가봤다. 잠실 야구장이다. 개인적으론 막 응원하면서 보는 건 좀 별로다. 그냥 앉아서 땅콩, 오징어 씹어먹으며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 LG와 두산 경기였는데 누가 이기던지 별로 상관없었지만 동행한 친구들이 응원하는 쪽으로 응원하는 척했다.
일본 야구, 미국 메이저리그 야구 경우에도 비슷하다. 비슷한 맥락으로 가끔 관람한다. 때로는 보다가 중간에 안 본다. 재미 없는 야구 경기일 때도 있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선 메이저리그, 일본 야구는 잘 안본다. 잘하는 한국인도 없고 특별히 그 시간을 기억해서 채널 돌릴 정도로 야구에 열광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아주 어렸을 때 허영만 화백의 '태양을 향해 던져라'라는 6권짜리 만화책을 무지 감명깊게 읽는 기억이 난다. 현대적인 만화 스타일에 비하면 좀 밋밋한 편이다. 허영만 화백이 지금처럼 스토리 작가와 협업하거나 발푼을 팔아 현장조사해서 그렸던 시대가 아닌 초보만화가때 그린 작품이었기때문이다. 새소년 클로버문고에서 나왔는데 인터넷에 스캔된 만화책을 아무리 뒤져도 이 작품은 없다. 얼마 전 허영만 화백의 초기작 '각시탈'을 영화화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어떻게 되는지 마는지 모르겠다. 각시탈이 그려졌던 시기보다 조금 앞선 시기에 인기 끌었던 풋풋한 야구 이야기였던 기억이 난다.
언젠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야구장에 갔다가 아무개가 홈런을 치는 장면을 보고 문뜩 소설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는 글이 기억 난다. 그런 특별한 경험은 없지만 어렸을 때 봤던 야구 만화책, 가끔 보는 프로야구 경기는 일상의 고민거리, 뒤엉켜버린 머리속, 희로애락 감수성을 의지만으로 쉽게 떨쳐벌릴 수 없을 때 야구 경기를 보면 시원한 약수물을 마실 때처럼 흘러내려간다. 야구가 끝난다고 해서 고민거리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거리감이 형성되고 다소 객관화해서 관망할 수 있게 도와준다. 어쩌면 그런 습관을 들였는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하인스워드가 나오는 미식축구, 타이거우즈가 나오는 프로골프, 아무개가 나오는 프로농구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정서가 프로야구에 있다. 때로는 느긋하게, 그러다 느닷없이 빠르고 긴장되게, 그러다 한숨 돌리면서 충전하고 다시 긴장시켜서 출격하고... 마치 인생의 축소판같다. 다른 스포츠에 비해 야구가 가장 그래보인다.
2008년 04년 15일 김곧글 Kim Godg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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