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 칼럼, 단편

[시] 사기꾼과 호구

by 김곧글 Kim Godgul 2020. 3. 11. 19:09

인터넷 검색으로 올린 사진 (아래 시와 무관함)

 

 

 

텍스트 동영상으로 읽기

 

 

 

사기꾼과 호구

 

 

사람은 본능적으로 친절한 목소리에 마음을 내려놓는다
추가로 환상적인 거래가 제안된다면 효과는 곱절로 뛴다
마치 사실인 양 막힘없이 술술 풀어내는 사기꾼의 언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산타클로스를 만나 선물을 받고 행복감에 젓는 호구
누구라도 언제 어디서 어떻게 놈의 미끼에 걸려들 수 있다

 


호구는 ‘설마 이렇게 괜찮은 사람이...?’라며 사리분별의 시력이 멀게 된다
오로지 이 만족스런 거래를 잘 성사시켜야겠다는 생각이 지상목표일뿐이다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더 잘 개미지옥으로 빠져버리는 개미의 참상처럼
일시적으로 마비된 눈먼 호구의 정신은 사기꾼의 수렁의 심연으로 익사한다

 


얼마 후 우여곡절 끝에 호구는 제 정신을 차리고 전후 상황을 파악하지만
이미 사기꾼은 지 볼 일을 잘 끝내고 미궁으로 사라진 후이다.
에잇, 바보, 멍텅구리, 쪼다, 등신!
자책하고, 분통해하고, 허탈해봐야 무슨 소용이람.
그래도 많이 갈취당하지 않아서 천만 다행이네.
재수 없게 똥 밟았다고 생각하자.
녀석은 언젠가 천벌을 받게 될거야.
호구는 스스로를 위로하며 평상시로 복귀하려고 노력한다.

 


어느 순간 불쑥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하지만
신이 인간에게 준 천국의 묘약인 망각의 효력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평상시로 회복되어 행복하게 잘 살아간다.
어느 날 다른 사기꾼에게 또 당하기 전까지...

 


사기꾼과 호구의 루틴은 세상곳곳에서 부지불식간에 산발적으로 발발한다.

 

 

 

2019 3월 5일 (초고)

김곧글(Kim Godgul)

 

 

 

주: 이 시는 2018년 겨울 쯤에 그리고 그 전 어느 날에 합쳐서 두 번씩이나 온라인으로 중고품을 구입하다가 사기를 당한 적이 있는데 그때의 감정을 되새김하며 2019년 3월에 적은 시이다. 또한 시의 소재를 다양하게 사용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요즘에는 코로나바이러스(Covid-19) 때문에 마스크를 구입하기가 하늘에 별따기라는데 이것을 이용해서 사기치는 사기꾼들도 있다고 하던데 두 눈을 부릅뜨고 몸조심해야 할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