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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칼럼, 단편

[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New Coronavirus)

by 김곧글 Kim Godgul 2020. 3. 12. 18:27

인터넷 검색으로 올린 사진 (아래 글과 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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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그 녀석 덕분에, 우리 인간은 서로 떨어져야 살 수 있잖아
그러고 싶어 하잖았어? 아니었던가?
서로를 더 멀리 멀어지게 하면서 동시에 더 밀접하게 연결시켜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녀석, 참 징글징글해
너에게 우리 인간은 한낮 속수무책이구나
누가 진짜 미물인지 모르겠다
그저 너의 무자비한 잔악에 피폐되지 않기만을...
다소 뽑기에 의존해야하는 인간의 삶이라니
안 그래도 요즘 세상이 그런데 더욱더
약하고 보잘 것 없는 인생이 따로 없구나

 


무자비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신과 악마가 어느 날 마주앉아
차를 홀짝이며 장기와 체스로 소일하던 와중에
느닷없이 동시에 상대방의 속임수와 교활함에 빡친다며
천둥 같은 고성을 내뱉을 때 튀겨 나온 이종의 침들이 뒤얽히며
인간세상으로 떨어진 것이 신종 바이러스의 탄생설화라나 뭐라나

 


만약 인간의 자비와 사랑과 이성과 상식이
녀석의 습성을 닮아서 순식간에 전 세계로 확산되었더라면
그야말로 만인이 행복한 지구촌 천국이 되었을까?

그걸 확신할 수 있다면 내가 신이게?

 


녀석은 아무 말 없이 팽창하고 소멸하는 생과사지만
인간은 종족의 잔해 속을 독해하며 의미를 끄집어내어 곱씹고 반성한다
그래서 세상은 좀더 맑고 밝아질 거라는 기대감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데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잠깐 뿐
인간의 어두운 본능, 예를 들어 일곱 색깔 죄악 같은 것이 다시 활개를 치며
녀석의 도약 속도를 앞질러 멀리 전파되어 살아 숨쉰다
인간의 칠흑같은 심연이 또 다른 신종 바이러스나 매한가지

 


다행히도 사랑과 자비와 박애가 예전에도 그랬듯이
늦장부리며 느긋한 걸음으로 뒤쫓아가기는 하기에
아직 지구는 인간의 삶의 터전으로 유효하다
아직 새로운 종에게 예전에 공룡에게서 이어받았던 지구지배권의 바톤을
전달해줄 시기는 아니거든
그 뭐더라, 뱀파이어처럼, 좀비처럼,
코로나바이러스여, 이제 푹 잠자거라
아직 지구는 우리 인간이 맡을 게
좀더 심기일전해서 더 잘

 

 

 

2020년 3월 12일 (초고)
김곧글(Kim Godg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