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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워(D-War) LA 촬영 탐방기

'디워(D-War)' LA 촬영 탐방기 01

by 김곧글 Kim Godgul 2021. 8. 13. 14:49

 

 

(2007년 7월 12일에 적었던 글을 약간 수정해서 재업)

 

 


그러고 보니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영화 ‘디워(D-War, Dragon Wars, 2007)’가 미국 LA에서 해외 로케이션 촬영을 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횟수로 3년이 다 되간다.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촬영장을 쫓아다니며 메이킹(making)을 찍었던 날들이 산타모니카 해변에서 싸구려 핫도그를 사먹으면서 바라봤던 태평양의 수평선과 오렌지 빛깔 석양 사이로 압축되어 사라진다.

 


어떻게 보면 참 별것도 아닌데, 달리 보면 매우 유익한 경험이었고 특별하고 생생한 삶의 체험이었고 아련한 추억이었다. 촬영장을 따라다니며, 할리우드 스탭들은 영화촬영을 이렇게 하는구나, 장비 빵빵하고, 식사, 간식 푸짐하고, 스탭들의 유연하고 투철한 직업 정신, 화창하고 쨍쨍한 날씨,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추억이었다.

 

 

 

'친근 카리스마'

 


첫째 날은 남주인공(제이슨 베어 분)이 어렸을 때 신비로운 능력을 지닌 노인을 만나는 장면을 촬영했다. 혹시 지금까지 공개된 디워 티저에 나왔는지 모르겠다. 어둡고 칙칙하고 커다란 창고건물 내부에 각종 골동품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인도 불상, 아프리카 목상, 도자기, 갑옷, ...... 동서양 골동품이 널려져 있는 곳이다. 한국으로 치자면 일종의 옛날 물건 만물상 같은 창고일 것이다. 햇볕이 내리쬐는 밖과 달리 건물 내부는 시원하고 쾌적했다.

 


촬영 스탭은 모두 현지 미국인이다. 촬영 관련해서 한국 국적 스탭은 없다. 아애 영화 촬영과 관련된 한국 스탭은 미국에 데려가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다고 들었다. 할리우드 애들의 유니온(노동조합)이 막강해서 외국인이 할리우드에 들어와서 일시적으로 일을 하려면 엄청나게 복잡한 절차를 거치도록 제도를 만들어놨다고 한다. 한국 스탭 몇 명을 쓰자고 이것저것 통과해야하는 서류가 많았을 테고 촬영일정을 거기에 맞출 수도 없었을 거다. 그냥 몽땅 할리우드 현지인 스탭을 쓰는 것이 이것저것 따져 봐도 합리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인이 달랑 심형래 감독 혼자는 아니었다. 심형래 감독과 현지 스탭의 커뮤니케이션을 돕는 남녀 통역이 2명 있었다. 그리고 후반 CG 작업과 관련된 컴퓨터 그래픽 디자이너 몇 명과 의상, 소품 관련 책임 디자이너 (각종 의상, 판타지 전사들이 입는 옷을 국내에서 제작해서 가져갔다), 영구아트센터 직원도 몇몇 더 있었지만, 공통적으로 현장의 영화촬영 스탭은 아니었다. LA에서는 크루(crew)라고 하고 충무로에서는 스탭(staff)라고 부르는 영화촬영에 직접 참여하는 전문인력은 모두 현지인이었다. 심지어 executive producer도 두 명인가 있었는데,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듯한 외양이었지만 한국말이 다소 서툰 재미교포 또는 1.5세대였다. 이름이 아마도 제임스와 데니스.

 

 

첫날 촬영은 그리 매끄럽지는 못했다. 당연하다. 충무로처럼 형님, 아우하는 스탭들이 모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서먹서먹했다. 미묘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겉으로는 다들 웃는 얼굴이었지만 말이다.

 


필자는 첫 번째 촬영일 현장에서 심형래 감독(이하 심감독)을 처음으로 만나봤다. 어려서부터 ‘영구’, ‘변방의 북소리’, ...... 좋아했던 바로 그 코미디언이어서 너무나도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TV로 매주 봤던 얼굴 그대로였다. 생각해보니 심감독은 필자와는 달리 전혀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일반인이 연예인을 일상생활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반가워하며 마치 예전에 알았던 사람 대하듯 친근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단지 TV로 자주 본 것을 실제로 자주 만났던 사람으로 무의식적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당연히 연예인 당사자는 일반인을 처음 본다. 그래서 살짝 당혹스러워 하거나 또는 표정 관리를 잘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심감독은 너무도 친절하게 필자에게 악수를 청했다. 반갑다고. 필자가 특별해서가 아니다. 단지 메이킹 찍는 찍새에 불과한데 말이다. 어쩌면 심감독은 필자를 미국의 독립영화 현장에서 촬영 관련 일에 종사하는 카메라맨으로 추측했는지도 모른다. 좀더 지내보고 나서 알게 됐지만 심감독은 누구에게나 격이 없다. 상대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친근하고 자연스럽고 친절하게 대했다. 한국인이나 미국인이나 일단 그 사람 앞에서는 편하게 대해주고 웃고 친절하고 다정했다. 처음 심감독을 만나는 사람은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친구, 선배, 아저씨로 착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렇다고 해서 심감독이 대충 일처리하고, 영구 시리즈의 후속편을 만들기라도 하듯이 현장에서도 대충 대충 넘어갈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솔직히 필자도 처음에는 심감독이 촬영 현장에서 어떻게 영화감독으로서 지휘를 할까 궁금했었다. ‘아마도 대충 그렇지 않을까? 설령 영구만큼은 아니겠지만 이리 이끌리고... 저리 휘둘리고... 절충하기 바쁘고... 그렇지 않을까?’

 


그러나 필자의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누구에게나 격이 없이 친근하게 대하지만 일처리에 있어서는 꼼꼼히 체크해서 잘 마쳤다. 학교에서 공부 잘 하는 우등생을 보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지만 대개는 별로 공부를 안 하는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남들 앞에서는 공부에 집중하며 인상 쓰고 다니지는 않는 경우가 많다. 적당히 공부하고 적당히 농담 따먹기 하며 친구들과 놀고, 가끔 땡땡이친다. 그런 경우와 비슷할 것이다. 심감독을 얼핏 보면 (영구의 잔상 때문인지 몰라도) 영화를 잘 만들지 못할 것처럼 보인다. 건성건성 구름에 달 떠내려가듯이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할 건 다 하는 스타일이었다. 그것도 나름 꼼꼼히 말이다. 한 달 반 동안 촬영장을 따라다니면서 심감독에게 느낀 것은 능글맞은 너구리의 탈을 쓴 여우같다는 비유이다. 선입견과 달리 일 잘하는 사업가적 재능도 유머감각 못지않게 특출나 보였기 때문이다.

 


관련해서, 한국에서 따라온 스탭(영구 아트 센터 직원)들은 심감독을 거의 교주 대하듯이 철저하게 신임하고 잘 따랐다. 과장도 첨가되긴 했지만, 그 정도로 직원들의 신임을 절대적으로 받는 대표로 보였다. 이것을 첫날부터 느낄 수 있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필자는 영구 아트 회사의 직원은 아니다. ‘디워’와는 단지 메이킹 촬영으로 만났을 뿐이다. 그러니까 좀더 객관적으로 심감독과 디워 촬영 현장을 평가할 수 있는 처지일 것이다. 이 글들은 그저 필자 개인적인 소감, 수필, 감상글, 기행문 정도로 생각하면 좋을 듯싶다.

 


심감독은 현지 미국 스탭들이 지들끼리 익숙하지 않아서 촬영장 곳곳에 서먹서먹하고 딱딱한 분위기가 맴돌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한 것 같았다. 특히 현장에서 최고 권위자 조감독 조나단과 촬영감독 휴버트는 나름대로 할리우드에서의 ‘곤조’가 굵은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처음 만나서 진행하는 촬영 현장이기 때문에 다소 긴장감은 불가피했을 것이다. 일종의 베테랑끼리 기싸움이다. 그렇지만 겉으로 확연하게 드러내놓지는 않았다. 다들 50살이 넘어 보이는 어른들이었으니 인내심과 신중함을 기본으로 장착하고 있을 것이다. 이쯤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심감독이 할리우드까지 가서 B급 이하 등급의 스탭을 고용해서 촬영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슈퍼 울트라 A급 스탭은 아닐지 몰라도 확실히 A급 스탭들이었다고 한참 나중에 어떤 한인 종사자에게 들었다. 이는 중요한 직책의 스탭일수록 더욱 그랬다. 즉, 조감독 조나단과 촬영감독 휴버트는 A급 스탭이었다.

 


또한, 퍼스트 카메라맨(이 자가 실질적으로 메인 카메라를 가장 많이 조작한 일종의 엔지니어)도 촬영감독과 별로 안 맞는 분위기였다. 묘하게 삐걱거리는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이것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몇 번 더 분출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두 사람 모두 별난 사람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단지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좀더 발현하고 싶은 욕심이 강했다고 볼 수 있다.

 


딱딱한 기운이 감도는 촬영장에 가뭄에 단비를 내리듯이 갈라진 땅을 촉촉이 적신 사람은 바로 심감독이었다. 그럼 누구겠는가? 80년대 수년 동안 국내 최고 개그맨이었는데, 그 끼와 직업정신이 어디로 가겠는가?

 


엑스트라 연기자 미국 할머니가 철망을 통과하려고 시도하다가 실패한 장면을 찍을 때, 심감독은 손수 연기를 보여줬다. 특유의 코믹적인 표정을 가미했다. 한국인에겐 너무도 익숙한 코믹 연기였다. 그런데 심감독의 코믹 연기가 할리우드 미국 스탭들에게 일장 폭소를 자아냈다. 너무 재밌었다는 반응이었다. 그들에게도 통하는 뭔가가 심감독의 특출난 끼에 내재되어 있었다. 그 장면 이후에 그날 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촬영이 진행되었다. 심감독이 좋은 영향력을 발휘한 것이다.

 


심감독의 실제 영어회화 실력은 중학교 수준인 것 같다. 그의 레벨 높은 가방끈 이력으로 미뤄볼 때 영어로된 원서를 읽을 수 있을지 몰라도, 회화실력은 거의 영구 수준인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달 반 후 디워 영화 촬영이 끝날 때까지 심감독과 서먹서먹한 미국 스탭은 아무도 없었다. 주연, 조연, 단역, 연출팀, 촬영팀, 음향팀, 미술팀, 의상팀, 메이크업,... 모두 심감독과 마음 편하게 대하는 친한 친구사이가 되었다. 그만큼 심감독에게는 특유의 능수능란한 커뮤니케이션 수완이 있었다. 그것은 ‘친근 카리스마’라고 불려질만한 것이었다.

 


계속...

 

 

2007년 7월 12일 (초안)
2021년 8월 13일 (약간 수정) 김곧글(Kim Godg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