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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워(D-War) LA 촬영 탐방기

'디워(D-War)' LA 촬영 탐방기 03 (연출팀)

by 김곧글 Kim Godgul 2021. 8. 15. 14:00

 

 

(2007년 7월 19일에 적었던 글을 약간 수정해서 재업)

 

 

나이는 50대로 보였다. 키 185에 건장한 체구, 매사에 에너지와 열정과 투철함이 넘쳤다. 동양의학에서 ‘태양인’ 체질이라 부를만하다. 그는 조감독이다. 모든 스탭들이 그를 ‘조나단(Jonathan)’이라고 불렀다.

 


가끔 심감독은 만나는(촬영 현장을 방문하는) 한국인에게 조나단 조감독을 자랑하곤 했다. 조나단은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엄청난 흥행작 ‘타이타닉’ 촬영 때 조감독을 했었다고 한다. 필자는 처음에 반신반의했다. ‘조감독 팀에서 어떤 직책을 맡아서 일했던 사람이 아닐까?’ 그러나 그런 내 추측은 헛수고라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필자가 확실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어서가 아니다. 조나단이 이전에 어떤 작품에 참여했건 안 했건 디워 촬영 현장에서 일하는 것을 보고나서 혀를 내두를 정도로 감탄하게 되었고 그의 이력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완전히 철의 인간처럼 보였다. 한국에선 대개 그 정도 나이면 뒷자리에 물러나거나 중요한 서류에 싸인을 하는 직책에 앉아있을 가능성이 높았다(물론 요즘처럼 어려운 시대에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2005년 당시까지 일반적인 사회 통념을 얘기한 것임). 그런데 조나단은 디워 현장의 엔진이나 다름없었다. 그 엔진에서 만들어진 에너지로 디워 촬영 현장이 전반적으로 돌아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감독은 적어도 촬영 현장에서 만큼은 신경을 곤두세우며 지시할 게 따로 없었다. 모든 준비는 조나단의 손에서 다 해결되었다. 물론 미리 콘티와 그날 촬영 스케줄이 계획되어 있고 그것에 따르겠지만 그렇더라도 심감독이 그렇게 편하게 촬영장에서 여유를 부리며 오로지 자신이 원하는 최종 컷을 뽑는 데만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조나단 덕이다. 심감독은 최후 결정만 내리면 됐다. 모니터 앞에 앉아 필름에 담겨지는 영상을 체크하면 됐다. 조나단이 심감독에게 “OK? One More Time?” 라고 물으면 심감독이 응답을 했고, 조나단이 스탭들에게 지시를 내리자마자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조나단 직속 연출팀 스탭들도 많이 있었다. 주로 젊은이들이었다. 20대 전반에서 후반까지 다양했다. 그 중에 ‘아더(Arthur)’라는 이름의 스탭이 있었다. 그가 맡아서 하는 일은 비록 연출팀의 가장 밑바닥이라 마당발처럼 일했지만, 그의 외모는 영화배우처럼 잘 생겼다. 어쩌면 한국 또는 일본 여자들이 좋아할 법한 미소년 또는 아이돌 스타에 어울리는 외모였다. 아더는 비록 외모는 아이돌 스타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행동은 정반대였다. 똘똘하고 에너지가 넘치고 열정적이었다. 대개 사람들은 자신의 역량, 성격, 일하는 스타일과 닮은 직원을 채용하고 싶고 함께 일하고 싶기 마련이다. 아더는 조나단 조감독의 풋풋했던 젊은 시절 버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비록 두 사람의 외모는 전혀 다른 체형이지만 열정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볼 때 그렇다는 얘기다.

 


한편, 이름은 까먹었지만 조나단 조감독의 바로 밑에 다소 뚱뚱한 체구의 스탭이 있었다. 그는 그렇게 빠릿빠릿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완전 선한 사람, 친절한 사람, 순한 사람, 차분한 사람에 속하는 것 같았다. 좀 낡은 푸인형(곰인형)을 떠올리게 했다. 그 또한 (필자가 느끼기에) 조나단이 제자로 키우는 인물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조나단이나 아더와는 매우 상반되는 타입의 인간형인데 이들과 잘 어울려서 일한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조나단 입장에서는 자신의 강인한 카리스마를 보완해줄 스탭이 필요했을 것이고 그가 적임이었던 것 같다. 일을 해내는 능력을 떠나서 필자가 디워 촬영장에서 봤던 수많은 미국 스탭들 중에 성격이 좋아 보였던 사람이 몇 명 있었는데 그도 그 중에 한 명이었다.

 


또 다른 젊은 스탭도 생각난다. 연출팀에 속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얼핏 느끼기에 촬영장 소품 담당 같기도 했다. 영화 소품이 아니라 촬영장의 소품만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스탭 말이다. 가장 중요한 일은 카메라의 슈팅 지점의 변경이 있을 때마다 심감독 전용 모니터와 간이 의자를 빠르게 이동해서 재설치해 놓는 일이었다. 물론 때에 따라 다른 일을 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도 영화 쪽에서 오랫동안 스탭으로 일했었다고 소개했다. 자신은 가업을 잇는 중이라며 그것을 행복한 표정으로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순간 얼핏 한국 영화 현장과 비교되며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리우드의 영화 현장이 진입하기 어려워서 그렇지 일단 성공적으로 진입해서 성실하게 일한다면 비록 눈에 띄지 않는 스탭이라고 하더라도 경제적으로 꽤 괜찮은 직업이었다. 이런 얘기는 한창 촬영 준비로 인하여 심감독이 모니터 앞에서 대기해야하는 지루한 짬시간에 주변의 스탭들과 친해지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에 곁에 있던 필자도 덩달아 들었던 얘기이다. 이처럼 심감독은 촬영일이 경과할수록 현지인 여러 스탭들과 격이 없이 친해졌었다.

 


조나단 조감독에 관해서 좀더 얘기를 하자면, 그는 점심식사를 할 때도 남달랐다. 어디서나 카리스마를 발산했다. 자존심이 강했고, 누구에게나 조금이라도 지는 것을 싫어했고, 누구에게도 약점 잡히는 것을 싫어했고, 누가 감히 자신의 일에 대해서 뭐라고 지적하는 듯한 말을 하는 것도 싫어하는 성격 자체였다. 어떻게 보면 거만해 보이고 잘난 척 한다고 보일 수도 있다. 점심식사를 하는 사석에서도 상당수 그런 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촬영 현장을 이끄는 그의 능력을 본다면 그런 거친 단점을 까맣게 잊어버리게 된다. 그만큼 완벽하게 조감독 일을 잘 했다고 볼 수 있다. 전반적으로 디워 LA 촬영이 잘 됐다고 평가된다면, 군더더기 없이 잘 됐다면, 물론 심감독의 판단, 선택, 능력과 휴버트 촬영감독의 실력도 상당했겠지만, 무엇보다 조나단 조감독의 영향력이 거의 핵심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나단의 실력이 가장 확연하게 돋보였던 때는 어느 날 주말에 LA 시내(한국으로 치면 서대문로 정도)의 교통을 통제하고 탱크도 여러 대 진입하고 엑스트라 시민들도 수십 명 등장하고 판타지 전사와 군인이 수십 명 등장하는 장면을 찍을 때였다. 그가 자신의 연출팀원들을 활용해서 이런 대규모 현장을 이끄는 모습을 보고 감탄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아버지도 영화 스탭이었다는 그 스탭을 며칠 후에 디워 LA 촬영 쫑파티에서 다시 만났다. 그가 동행해서 데려온 여자친구는 정말 아름다웠다. 웬만한 여배우 뺨칠 정도였다. 그 스탭은 젊기는 했지만 배도 나오고 좀 통통한 체구에 얼굴은 보통이었지만 선한 인상이기는 했었다. 그냥 그 순간 무심결에 여러 관점에서 그가 부럽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었다.

 


아이돌 스타처럼 생긴 ‘아더’는 필자가 디워 촬영이 끝나고 며칠 후 사무실에 들렀을 때 우연히 만났었다. 그다지 많이 대화해보지 못한 스탭이었는데 아더는 필자를 먼저 알아보고 굉장히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이름이 멋있어서 인지, 잘생긴 외모 때문인지, 거의 마지막에 사무실에서 우연히 만났지만 매우 반가워했던 모습 때문인지, 촬영장에서 몰래 숨어서 고등학생처럼 장난을 치던 순수한 모습이 떠올라서인지, 기억에 남는 스탭 중에 한 명이었다.

 


계속...

 


2007년 7월 19일 (초안)
2021년 8월 15일 (약간 수정) 김곧글(Kim Godg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