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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워(D-War) LA 촬영 탐방기

'디워(D-War)' LA 촬영 탐방기 04 (촬영감독)

by 김곧글 Kim Godgul 2021. 8. 16. 13:38

 

 

(2007년 7월 19일에 적었던 글을 약간 수정해서 재업)

 

 

 

디워 촬영현장을 이끈 삼두마차는 심형래 감독, 조나단 조감독 그리고 휴버트 촬영감독이었다. 그들이 현장에 들어서야 꽉 들어찼고 비로소 움직였다. 동유럽에서 가난한 축에 낀다는 폴란드, 그러나 폴란드에서 재능 있는 예술가와 영화인들이 많이 배출되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휴버트는 폴란드 출신이다. 스킨헤드다. 체구도 작았다. 당연히 머리도 조막만했다. 나이는 50대로 보였다. 그런데 빛이 났다. 스킨헤드라서가 아니라 어떤 예술적 장인 정신 비슷한 발광을 발산했다.

 


영화촬영 현장에서 감독이 최상위 귄력자라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러나 미국 할리우드에서는 약간 다른 양상이었다. 촬영 컷에 대한 최후 승인은 감독의 손에 있더라도 거기까지 도달하기 이전까지 웬만한 일들의 크고 작은 결정은 조감독이 결제하는 듯하다. 무릇 촬영 현장에서 사람들에게 지시하고 리드하는 일에 흥미와 전율을 느낀다면 직업 목표가 감독이 아니라 조감독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만큼 할리우드 촬영 현장에서는 대빵이다. 최근 충무로 영화 현장은 어떤지 잘은 모르지만 얼핏 알기로 충무로의 조감독은 할리우드 조감독의 역할보다 많이 축소된 궂은일을 하는 정도일 것이다. 전문적으로 조감독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감독이라는 목표를 향해 올라가는 부득이하게 거쳐야하는 단계라는 의미가 더 클 것이다. 조감독에 관해서는 이 정도로 하고...

 


이번 글에서는 촬영감독 얘기다. 이름은 휴버트이다. 인상착의는 위에서 말했다. 나폴레옹, 찰리 채플린, 심형래 감독, 휴버트 촬영감독 이렇게 네 명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체구가 작은데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열정적으로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일을 지속적으로 해낸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그리고 심감독과 휴버트 촬영감독이 묘하게 닮은 점이 있다고 느껴졌다. 만약 심감독이 개그맨으로 산전수전 겪지 않고 예술 계통의 다른 직업을 선택했다면, 제법 심각한 척, 무게 있는 척 해야 더욱 인정받는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했다면, 아마도 휴버트의 성격과 많이 닮지 않았을까 라는 뜬금없는 생각도 들었다. 두 사람이 알게 모르게 닮은 인격으로 보였다. 필자가 무슨 점쟁이도 아니고.....

 


‘해리슨 포드’ 주연의 유명한 영화 '도망자'에서 ‘토미 리 존스’와 비슷한 성격은 조나단 조감독이다. 딱 그런 캐릭터다. 상대적으로 휴버트는 점잖다고 봐야 하겠다. 어찌 보면 그도 미국 태생이 아니라 미국 사람 특유의 쿨한 성격은 아니었다. 어쩌면 한국 정서에 더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느 면에서 휴버트는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에서 ‘존 말코비치’ 캐릭터 같은 예술혼에 푹 빠져있는, 자신의 예술 세계를 향해 몰입해서 뚜벅뚜벅 나아가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예술혼... 그러나 휴버트는 평범한 자들이 가지지 못한 특출난 예술혼을 추구한 대가로 혹을 지녀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뛰어난 예술가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것이니 특별할 것도 없다. 그것은 과도한 프라이드, 자신감, 자기만족 게다가 예민함, 신경질적인 기질이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에서 ‘존 말코비치’처럼 완전히 미워할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하다. 순수한 면도 많이 보였다. 나이에 비해 애들 같아 보였던 순간들도 있었다. 드물지만 어느 순간 지나치게 예민해진 나머지 일과 관련해서 스탭에게 쓴소리를 내뱉는 경우도 있었다. 필자와도 사소한 마찰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필자가 잘못한 부분이 컸다. 촬영 초반에 있었던 일이었다. 필자의 일이 그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메이킹일 뿐인데 너무 의욕을 앞세워 설쳐댔다고 볼 수 있다. 심감독과 촬영감독이 이곳저곳 움직이면서 촬영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관해 의견을 나누는 순간을 지나치게 가까이 근접해서 메이킹을 찍었는데 그런 것을 휴버트가 싫어한다는 것을 촬영 초반에는 전혀 몰랐던 것이다. 그래도 휴버트는 몇 분 지나서 필자에게 미안하다고 말해줄 정도로 인간적인 면도 있었다. 필자도 그 이후에는 휴버트가 일하는데 거슬리지 않도록 노력하며 메이킹을 찍었고 더 이상 마찰은 없었다. 한두 시간 후에 심감독도 필자에게 이와 관련해서 넌지시 부드러운 대화를 걸어줬는데 감사한 마음과 함께 필자의 무지와 욕심으로 인해 중요한 촬영에 누를 끼친 것 같아 쑥스럽고 무안하고 죄송스러웠다. 이 부분에서도 심감독의 남다른 무언가를 느낄 수 있지 않은가? 괜히 수많은 현지인 스탭들이 심감독에게 매료되었던 것이 아니다.

 


솔직히 이 일과는 무관하게 필자 개인적으로는 휴버트를 존경스럽게 우러러볼 수밖에 없었다. 사실 필자도 자칭 예술가라고 생각하니까 동병상련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지나친 예민함을 이해하는 일반인은 많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필자는 그를 이해할 수 있다. 그가 여러 스탭들 앞에서 필자에게 쓴소리를 했더라도 그의 재능, 예술성, 장인정신 그런 것을 촬영장에서 몸소 보여줬으므로 그것으로 샘샘이다. 그런 것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유익했다. 심감독, 조나단 조감독도 존경스럽지만, 어떻게 보면 그들의 인격은 사업가 기질, 태양인, 활달, 밝은 기운, 개방적, 능동적, 가벼움, 융통성, 여러 사람에 친화적, 계산적, 등등의 코드로 비유할 수 있다면, 휴버트는 소음인, 응큼, 나르시시즘, 연구, 과몰입, 순수예술, 비활동적, 비개방적, 무거운 기운, 침묵,... 이런 코드로 느껴졌다.

 


그러나 그저 추측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느꼈을 뿐이다. 촬영현장에서 메이킹을 찍기 위해 가까이서 접할 기회가 많았는데 휴버트가 행동하는 양식, 사람들에게 얘기하는 태도, 심감독과 대화하는 것들... 그런 것을 종합해서 그렇게 추측한 것이다. 장담컨대 70% 이상은 적중하지 않았을까 예상해본다. 그저 필자의 개인적인 추측, 상상이니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말기를 바란다.

 


휴버트와 심감독은 날이 갈수록 친해졌다. 그것은 순전히 심감독의 공이다. 본래 휴버트는 촬영감독을 안 했으면 영화계를 떠났을지도 모른다. 적응하지 못 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과 사교하는 것에 그리 유창하거나 흥미가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감독과는 예외였다. 전반적으로 촬영장 분위기는 거의 대부분 활기차고 유쾌했다. 그런 분위기는 심감독과 휴버트가 왠지 그날따라 죽이 딱딱 맞아서 매끄럽게 잘 진행되었을 때 더욱 그랬다. 가끔 조나단이 어수선한 스탭들에게 화를 낼 때도 있었지만 그것은 아주 잠깐이다. 조나단의 성격도 활기차고 열정적이었지만 아주 가끔 활화산처럼 분출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뒤끝이 없는 성격이라 금방 떨쳐내고 평정심을 유지했다. 결론적으로, 촬영장이 어둡거나 찜찜했던 분위기는 날이 지날수록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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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인 스탭들은 심형래 감독을 한국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라고 불렀다.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심형래 감독의 영화관(꿈, 희망, 어린이 사랑, 모험, SF)을 좋아했다. 미국에서는 그런 것을 한국과는 달리 높게 인정해주는 편이다.

 


촬영감독 휴버트의 독특한 점을 여기서도 알아볼 수 있다. 그는 한국에도 방문해서 촬영을 했다. 그러니까 LA 촬영 전에 말이다. 그때 한국에서 가져온 것 같다. LA 촬영장에서 비바람이 불고 장대비가 부스스 내렸던 날이 있었다. 사막 기후라 밤에는 엄청 추웠다. 그때 휴버트는 한국인에게 낯익은 묵직한 자켓을 입고 촬영장을 돌아다녔다. 검은 자켓 등뒤에는 'OOO소방소'라고 적혀 있었다. 한글로 말이다. 휴버트가 한국에서 촬영했을 때 소방수에게 몇 십 만원을 주고 구입했다고 했다. 그에게서 독특한 매력이 느껴지지 않는가?

 


디워 LA 촬영 삼두마차의 거물 세 사람은 굉장한 사람들이었다. 부럽기도 했다. 나이를 먹어서도 그렇게 열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자질이 부러웠다. 한국에서 명품 양복 빼입고 은밀히 화려한 요정에 가서 예쁜 기생을 데리고 술 마시는 성공한 중년신사들이 부러웠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절대로 아니다. 그런 것은 그냥 아무것도 아니다. 정말 부러운 것은 나이를 먹어서도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며 이 세상에서 어떤 가치 있는 일에 전념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이다.

 


쫑파티에서 휴버트는 여자 스탭들과도 흥겹게 춤을 추는 등 꽤 예술적인 끼가 다분한 사람이었다. 풀어질 때는 확실히 풀어진 것이다. 그는 정말 예술가다운 기질이 넘치고 넘쳤다. 그렇기 때문에 평범한 일반인들과는 다른 성격을 지녔는지도 모르겠다. 누차 말했지만 나이를 먹었어도 그렇게 자신의 열정적인 예술혼을 발휘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요즘에는 한국도 많이 다른 양상이고 미국이나 서구사회라고해서 모든 도시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계속...

 


2007년 7월 23일 (초안)
2021년 8월 16일 (약간 수정) 김곧글(Kim Godg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