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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워낭소리(2008, 국내) -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by 김곧글 Kim Godgul 2009. 2. 28.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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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흥행이지만 작품 자체의 훌륭함보다는 시대상의 영향이 적잖아 보인다. 전 세계적으로 불황이다. 한국은 언제나 등수놀이판에 초롱초롱해진 눈빛으로 상위에 끼여든다. 실업자는 알려진 수치보다 훨씬 더 많다.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세상이 어둡게 보인다. 현업에 종사 중이라해도 고해성사를 하는 듯 하루하루가 힘겹다. 국내에서 그들을 위로하는 저렴한 오락거리로 영화는 열손가락 안에 든다. 이들이 선택하는 영화는 몇 년 전과는 전혀 다른 영화일 것이다. '워낭소리'가 초유의 흥행을 달리는 이유 중에 다섯손가락안에 드는 항목이다.

한편, SBS '아내의 유혹'을 필두로 소위 막장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이유도 비슷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영상물 자체의 완성도는 떨어진다. 좋게 보면 고전적인 미니멀리즘이다. 대량 실업자 중에는 남자 못지 않게 여자들도 많다. (또는 남편의 불안한 직업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엄청 받지만 내면에 잠재운다) 여자들은 PC방에 잘 가지 않는다. TV 드라마만큼 가계에 부담주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오락거리도 없다. 쌓이는 스트레스를 확 날려주는 감정이입 대상으로 한맺힌 여자의 복수를 선택했다. 여자들에게 국가, 사회, 역사, 문명 보다 가정의 행복이 훨씬 더 중요하다. 콜로세움은 가정이어야 한다. 검투사는 주부와 여시같은 유혹녀여야 한다. 동료 병사들은 족보내에 존재하는 친족이어야 한다. 전형적이거나 억지스러운 설정이지만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잠시나마 떨쳐버릴 수 있을 정도로 전율이 느껴진다. 피끓는 주조연 여배우들에게 감정이입한다.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마치 남자들이 핏빛 진동하는 처절한 조폭 영화에 감동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그러나 어떤 여자는 다른 방식으로 불안감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행복한 동화같은 꿈이다.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책의 왕자님을 소환한다. TV드라마를 통해서 만난다. 전파로 전송되는 화면을 보며 샤머니즘 제사를 지낸다. 인간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왕자님을 찬양한다. 영상물 자체의 완성도는 떨어지는 '꽃보다 남자'가 초유의 흥행을 하는 이유 중에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항목이다. 젊은 부인이 열심히 시청하는 드라마는 특별히 혼자 있기 좋아하는 아이가 아니라면 엄마와 함께 애청한다. 초중고 학생들의 부모들이 요즘들어 경제적인 문제로 자주 싸우는 것을 목격한다. 자신들의 이상형이 달라진다. 또는 타인의 눈치를 보느라 잠재되었던 원초적인 이상형이 가슴을 뚫고 나온다. 평범했던 주부, 자녀들이 F4에 열광하는 이유다. 무능력한 숫컷들에게 간접적으로 불만을 토로하는 샤머니즘 제사다.

불황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남자들은 '화성남자 금성여자'의 표현대로 동굴에 들어가는 습성이 있다. 여자들은 차분한 대화로 문제를 해소하고 위로하는 경향이 짙지만 남자들은 입을 다물고 동굴에 들어간다. 요즘 세상은 친한 친구들끼리도 사적으로 깊은 속내 얘기를 하지 않는 것 같다. 오직 세속적인 성공만이 관심의 대상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또한 성공과 약점은 숫컷끼리 경쟁의식이고 원초적인 자존심 싸움의 무기다. 나이 좀 먹었지만 주머니가 두둑하지 않은 한국 남자가 갈 수 있는 곳은 PC방, 극장, 야구장 정도다. 현대 한국 남자들의 동굴이다. '영웅본색' 같은 복고 영화가 다시 상영되어서 유지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워낭소리'는 남자들의 샤머니즘 제사다.

물론, 아직도 과반수 이상의 국내 영화 관객이 여자들 또는 여자들이 남자를 이끌고 선택하는 영화이기 때문에 그런 취향의 영화는 여전히 흥행한다. 예를들면 '과속스캔들'같은 경우다.

불황 때는 감상적이고 자극적이거나 때론 인생을 성찰하는 영화가 남자들에게 인기를 끄는 것 같다. 현실에서 흔들리는 남자가 사뭇 감상적으로 되기 때문이다. 가볍고 뻔한 코믹, 유치한 코믹, 화장실 코믹, 조폭 코믹은 파리 날린다는 게 이미 증명됐다. (전혀 안 되는 장르는 아니고 단지 시대상에 의해 대중이 멀리하는 것 같다. 좀더 심사숙고해서 이전과는 다르게 만들면 흥행될지도 모른다)

워낭소리 감독의 본래 의도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반대를 지지하는 주제였던 것 같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인간의 삶, 사회, 문명 자체를 좀더 깊게 성찰한다. 현대적 의미의 소설의 역사에서 '돈키호테'가 다섯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 세르반테스는 당시에 수없이 유행한 뻔한 기사 이야기에 대해 일종의 비아냥 거리는 이야기를 썼을 뿐이라고 말했다. 출판 당시에는 세속적인 베스트셀러 정도였다. 그런데 세월이 다소 흘러 유럽에 감상적인 낭만주의가 휠쓸 때 재평가 된다. 그래서 돈키호테는 반짝 베스트셀러가 아니고 세기를 넘나드는 고전 명작에 올려졌다.

워낭소리는 KBS '인간극장'을 영화적으로 만든 정도로 볼 수도 있다. 노부부와 늙은소를 보며 인간의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미국산 수입 쇠고기에 대해, 농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훨씬 깊고 풍부하게 은유적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의도했는지 모르겠지만 꽤 철학적으로 훌륭하게 뽑아졌다는 의미다. 다만, 아무리 다큐 영화라고 하더라도 영상미 수준이 쾌적하지도 좋지도 않은 편이다. (그러나 영화에서 영상미 자체보다는 담겨진 무엇이 더 중요한 편이다. 마치 소설에서 문체와 구성보다 담겨진 무엇이 더 중요한 이치와 같다.)

할아버지는 한국 산업화를 이끌었던 재벌의 창설자로 볼 수도 있다. 실재로 소를 몰고 북한에 갔다온 고 누구의 얼굴을 닮았다. 늙은소는 고생을 이겨내며 묵묵히 일한 근로자들이다. 어떤 의미에선 양쪽 다 나름 행복했고 불행했다. 할머니의 현실적인 팔자타령도 위트있고 정겹지만 그런 세속적인 행복과 불행을 넘어 스스로 주워진 삶에서 자신만의 궁극적인 행복을 느끼며 사는 것만큼 훌륭한 삶은 없을 것이다.

할아버지가 문명을 이끄는 소수의 권력자로 본다면, 늙은소는 평범한 시민이다. 할아버지가 군대의 장교라면, 늙은소는 사병이다. 할아버지가 작전세력이라면, 늙은소는 개미투자자다. 할아버지가 영화의 투자자, 유통사라면, 늙은소는 스텝이다. 할아버지가 권력층 종교지도자라면, 늙은소는 평신도들이다. 할아버지가 사장님이라면, 늙은소는 종업원이다. 할아버지가 노숙자라면, 늙은소는 비둘기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적용될 수 있는 한편의 훌륭하고 소박한 전원시다.

어떤 존재가 할아버지이고 어떤 존재가 늙은소이건 중요한 점은 행복과 불행의 정도는 대동소이하다는 점이다. 할아버지가 더 행복한가? 늙은소가 더 불행한가? 편견과 선입관과 관점의 차이일 뿐이다. 그저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았을 뿐이다. 대다수의 인간의 삶처럼 말이다. 이 영화는 사회, 문명, 인간의 삶을 넓게 은유한다. 그래서 좋았다. 

먼 옛날 TV에서 봤던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생각난다. 할아버지가 '제리'라면, 늙은소는 '톰'이다. 할아버지가 '로드러너'라면, 늙은소는 '코요테'다. 전지적으로 바라보면 양쪽의 행복과 불행은 대동소이하다. 늙은소처럼 살아오신 대다수의 노인들의 우직함이 현재의 풍요로운 문명을 낳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우직함'의 '우'는 '소'일 것이다.

2009년 2월 28일 김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