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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우주 알파벳/라톰입자 - 문자의 최소 단위

문자와 발음기호에 관해

by 김곧글 Kim Godgul 2009. 4. 21.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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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자'와 '발음기호'의 차이점을 구분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한글의 자음 문자 'ㄹ' 의 발음기호는 [r],[l] 둘 다 해당된다. 한국어의 발음세계에서는 [r],[l] 발음을 구분하지 않고 같은 것으로 인지한다. 때문에 문자 'ㄹ' 하나로 쓰는 것은 합리적이다. (한국어 내에서는 충분하다) 이런 관점에서 'ㄹ'은 발음기호가 아니라 문자다. 그러나 'ㄹ'이 한국어 내에서만 따진다면 더이상 쪼갤 수 없는 발음기호이며 동시에 문자라고 볼 수도 있다. 발음기호와 문자는 경우에 따라 같을 수도 있고 같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전세계 인간이 낼 수 있는 소리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인간이 사회에서 의사소통에 사용하는 언어에 사용되는 음성은 그렇게 많지는 않다. 호모 사이엔스 인간의 구강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국제발음기호(IPA)로 구분된 발음기호보다는 다양하고 많을 것이다. 또한 한 언어권 내에서도 지방에 따라, 교육 정도에 따라, 개인에 따라 발음 자체가 명확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성조(음성의 높낮이) 또한 그렇다.

발음기호는 서로 다른 발음으로 구분될 수 있는 최소 기호이고, 문자는 서로 다른 의미로 구분될 수 있는 최소 기호라 말할 수 있다. 발음기호 [v], [b]은 영어에서 각각 V, B 라는 문자로 표기한다. 그러나 한글에서는 'ㅂ' 한 개만으로 표기한다. 한국어의 발음세계에서는 [v],[b] 의 발음을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대부분의 한국인은 [v] 발음을 하지 않는다. 행여나 산골자기 거주민, 입술을 다친 누군가 [vu:in]이라고 발음하더라도 보통 한국인은 누구나 그 발음을 [bu:in](부인, BOOIN)으로 알아듣지(인지하지) 결코 [vu:in](VOOIN)으로 알아듣지(인지하지)는 않는다)

쉽게 말해서 발음기호 체계는 더 큰 집합 개념이고, 문자체계는 그 속에 부분집합 개념이다. 음소문자가 최초에 창제될 때는 발음기호와 거의 동일하게 1대1 대응하도록 만들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때문에 문자의 갯수가 많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흘러 문자의 갯수가 줄어든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음소문자는 구분된 발음을 그대로 옮기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스 문자, 키릴 문자, 한글의 역사를 되집어 보면 세월이 흐르면서 문자가 줄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훈민정음이 최초에 창제되었을 당시에는 발음기호와 문자가 거의 1대1 대응 되었었다. 성조까지 표기했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서 발음기호를 떠나 한국어에 최적화된 문자체계로 정리정돈되었다.

문자체계를 어떻게 만드냐? 어떤 문자체계가 가장 좋으냐? 의 판단이 발음을 어떻게 표기하느냐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 외에 다양한 요소가 관여하고 있다. 글자의 조형성, 활용성, 최적화, 실용성, 확장성, 융통성 ... 등등이다. 단지 문명 강대국이 사용하는 문자가 좋은 문자체계라고 단정지을 수 없듯이, 단지 발음을 정확히 옮길 수 있는 문자체계가 좋은 문자체계라고 단정지을 수도 없다. 문자는 보다 거대하고 넓고 깊고 다양하고 응집된 무엇이다.

그러나 음소문자는 결코 발음체계와 무관하지 않다. 아직 명확히 구체적으로 어떤 음소문자가 좋은지 단정짓기는 어렵다. 다만, 좋은 음소문자란 발음을 정확히 표기하는 것을 훨씬 뛰어넘어 인간과 관련된 복잡다양한 무엇이 얼기설기 응집되어 있다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  

2009년 4월 21일 김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