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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바시(Habacy)

하바시 신화 (Habacy myth) - 태초

by 김곧글 Kim Godgul 2011. 11. 4.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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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바시 신화 - 태초


(주: 이전에 포스팅 했다가 비공개로 전환했었는데 다시 올림)

태초에 본신은 모래사막을 무한하게 만들었다. 각각의 모래 알갱이는 무한한 별과 행성을 포함하는 우주 자체다. 이 모래사막을 '모래 알갱이 우주' 또는 '샌듀니'라 부른다. 본신은 사막 곳곳에 오아시스를 만들고 동식물을 만들어 풍요롭게 번성하도록 했다. 몇몇 동식물은 거대해지고 막강한 힘을 지니기도 했다.

샌듀니 사막의 어느 깊고 드넓은 오아시스 한 곳에 인간의 상상 안팎의 수없이 다양한 생명체가 살고 있었다. 이들 중에는 거대한 괴물도 각자의 영역을 영유하며 살아갔다.

어느 날 영역 다툼으로 거대한 황소와 전갈이 생사를 걸고 싸웠다. 상대적으로 느린 황소의 허점을 간파한 전갈은 독침을 바싹 달아 올려 황소의 다리 사이를 민첩하게 파고들어 발을 공격했다. 그러나 황소는 딱딱한 발바닥으로 전갈의 독침을 막았다. 독침은 발바닥을 뚫지 못 했다. 오히려 전갈은 황소의 발에 짓밟혀 치명상을 입었다. 그러나 전갈도 안간힘을 쓰며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분노한 황소는 일찌감치 싸움을 끝낼 작정으로 전갈을 잡아먹었다. 우걱우걱 씹히고 삼켜진 후 소화액을 뒤집어 쓴 전갈은 남은 기력을 최대한 끌어 모아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그리고 곧바로 죽었다. 치명적인 전갈의 독소는 황소의 배속을 기점으로 온 몸에 퍼져 결국 황소도 죽었다.


며칠 후 샌듀니 사막을 여행하던 본신은 오아시스를 발견하고 기뻐했다. 본신은 목이 마르고 너무 배가 고파서 아사 직전이었다. 갈증을 풀자마자 허기를 달래려고 주변을 둘러봤더니 쇠고기가 널려 있었다. 본신은 쇠고기를 허겁지겁 배터지게 먹었다. 그러나 그 쇠고기는 이미 온 몸에 전갈의 독이 퍼져서 부패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비록 허기를 채울 수 있었지만 본신의 몸에는 이상이 왔다. 본신은 오아시스 주변의 큰 나무 그늘에 누워 며칠을 꼼짝없이 앓고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

기력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길을 떠날 수 없었던 본신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부패한 소의 살점과 뼈를 진흙과 섞어 본신이 평소 즐겨 상상했던 수많은 동식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각각에게 생명을 불어 넣어주었다.

그러나 본신이 자신의 피조물 동식물을 오아시스 사방에 풀어놓자마자 기존에 살고 있던 동식물과 거대한 괴물의 간식거리가 될 뿐이었다. 고심 끝에 본신은 피조물을 거둬들여 아주 작게 축소해서 모래 알갱이 우주 속에 골고루 넣었다. 이때 오아시스에 본래 살고 있던 동식물도 몇 종류 포함됐다. 용, 봉황, 불로초, 그리핀, 레비아탄, 케르베로스 ... 등은 그 중 하나였다.


본신은 모래를 한 줌 움켜쥐고는 각각의 샌듀니 속에 자신의 피조물을 골고루 넣었다. 수많은 샌듀니 중에는 지구가 속한 샌듀니도 있었다. 지구가 속한 우주에 존재하는 천차만별의 생명체는 이렇게 탄생되었다.

몇 주가 지내고, 건강이 호전된 본신은 특이한 것을 발견했다. 죽은 황소의 중심부에 완전히 소화되지 않아 형체를 알아볼 수 있는 전갈의 시체가 있었다. 원기를 회복한 본신은 오아시스를 떠나기 전에 마지막 작품을 근사하게 만들고 싶었다. 부패한 전갈의 몸, 쇠고기 살점을 진흙에 넣고 골고루 반죽했다. 그것으로 심열을 기울여 형상을 만들었다. 스스로 근사하고 아름답다고 느낄 때까지 다듬고 다듬었다. 두 개를 만들었는데 피할 수 없는 존재의 외로움을 서로 보듬어주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상대에게 관심을 끌도록 몸매를 차별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성과 감성을 불어넣어 완성했다. 이들이 태초 인간 '아문'과 '뉴온'이다. 본신은 아문과 뉴온을 여러 개 복사했다. 모두 조막만하게 축소해서 한 줌의 샌듀니 각각에 한 쌍씩 골고루 넣었다. 이들은 샌듀니 고유의 특징에 따라 서로 다르게 즉, 인간, 난장이, 거인, 호빗, 요정, 새인간, 거미인간, 물고기인간, 정령, 도깨비... 등등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했다.

본래 아문과 뉴온의 복재 후손들은 서로 다른 샌듀니에 존재하기 때문에 서로 만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드물지만 서로 다른 샌듀니가 충돌하고 합쳐지는 와중에 서로 다른 아문과 뉴온의 후손이 동일한 샌듀니에 존재하게 되는 일도 생겼다.

심지어는 아문과 뉴온의 여러 후손이 단 하나의 샌듀니에 공존하는 일도 생겼다. 그곳은 '라누티'라 불리는 샌듀니였다. 라누티 우주에는 본신이 오아시스에 며칠 쉬면서 만들었던 온갓 피조물과 본래 오아시스에 있었던 생명체와 샌듀니의 특징에 의해 서로 다른 특징으로 진화한 다양한 인간들이 흩어져 살았다.

건강을 완전히 회복한 본신은 뿌듯한 마음으로 오아시스를 떠나 샌듀니 사막으로의 여행을 계속했다.

세월이 흐른 후, 이 오아시스를 지나가는 무리가 있었다. 이들은 본신의 흔적을 발견하고 감탄하며 기뻐했다. 본신이 손수 제작한 피조물을 여러 날 동안 관찰하며 본신의 업적을 두루 살폈다. 이들은 본신이 자신의 경지에까지 오르도록 허락한 질서에 의해 탄생한 신들이었다. 단순히 본신의 피조물이었던 이들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세월동안의 수련을 거쳐 본신과 유사한 능력을 지닌 신이 된 것이다. 이들은 본신을 '스승'으로 섬겼고 자신들을 ‘제자'라 불렀다. 신들은 본신이 공들여 제작한 피조물이 인간 형태라는 것을 파악했다.

그런데 어떤 신들은 서로 자신이 인간을 독점하겠다고 멱살을 잡고 싸웠다. 자신만이 스승의 진정한 후계자가 되겠다는 한 편의 의지이기도 했다. 치고 박고 싸우다 지칠 대로 지친 신들은 누군가 제안한 중재를 따르기로 만장일치했다. 신들이 인간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해서 언젠가 모든 인간이 섬기는 신이 모든 인간을 독점 지배한다는 시합이었다. 신들은 각자의 개성으로 다양한 인간들의 신앙심을 이끌었다. 어떤 신은 무자비하게, 어떤 신은 자비롭게, 어떤 신은 자신의 실재를 숨기고 인간의 내면을 어루만졌다. 이때부터 인간들은 수없이 다양한 신을 섬기면서 살게 되었다. 신들의 시합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인간들이 서로 다른 신을 믿는다는 이유로 타인의 목숨을 위협하는 짓을 계속하는 이유는 이러한 신들의 게임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2009년 12월 09일 김곧글 (최초 작성)
2011년 10월 31일 김곧글 (다시 올림)


참고)
본신(本神) - 무한한 샌듀니 사막을 창조한 신이며 태초의 다양한 인간 종족들이 숭배하는 수많은 신들이 존재하도록 질서를 만듬. 세상 밖의 세상을 포함 전체 우주를 창조했고 모든 신들을 만든 신 중의 신이다. 무릇 신들은 본신을 '스승'이라 부른다. 본신은 자신이 창조한 샌듀니 사막을 두루 여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샌듀니(sand + universe) - 모래 알갱이 우주. 지구가 속한 무한개의 별을 포함한 우주도 샌듀니 한 개일 뿐이다.

샌듀니 사막
- 무한개의 샌듀니로 구성된 사막 또는 광야, 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