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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칼럼, 단편

(시) 이른 나비

by 김곧글 Kim Godgul 2010. 2. 24.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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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나비


아직 겨울이 버티고 있어 깊은 그늘에선 눈이 숨쉬고 있건만
2월 하순 어느 날, 봄처럼 포근했다.
길을 걸었다. 동네 한 바퀴. 멀리 돌았다.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펄럭펄럭 하는 것이 내 앞을 가로질렀다.
나비였다.
아직 무엇하나 파릇한 이파리조차 못 본 것 같은데 꽤 일찍 태어났구나
녀석은 바람을 가로질러 날아갔다.
길을 걸었다. 동네 한 바퀴. 반시간 이상 걸었다.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펄럭펄럭 하는 것이 또 내 앞을 지나갔다.
나비였다. 같은 무늬였다. 밤색 계통.
반시간 전에 봤던 녀석이었을까?
걸어서는 먼 거리지만 대각선 방향으로 하늘을 가로질렀다면
전혀 가능성이 없는 얘기도 아니다.
그러나 나비의 날갯짓은 내 감수성을 후려쳤다.
서로 다른 나비다.
하루라도 빨리 만나고 싶어 한 연인이다.
전생의 애틋한 연인이 이승에 나비로 환생했다.
일찍 깨어나 본능적으로 서로를 향해 날아갔다.
아까 것은 북서쪽으로, 이번 것은 남동쪽으로 날아갔으니
전혀 가능성이 없는 추측도 아니다.
똑같은 색깔과 무늬, 밤색 계통, 커플 무늬였구나.
둘은 전생에 하나였다.
길을 걸었다. 동네 한 바퀴. 나비가 나를 이끌었다.



2010년 2월 24일 김곧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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