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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데몰리션 (Demolition, 2015)

by 김곧글 Kim Godgul 2016. 7. 4. 06:13




오랜만에 보는 영상미가 신선한 작품이다. 주인공 ‘데이비스(제이크 질렌할 분)’의 의식의 흐름과 현실을 간헐적으로 교차시킨 영상 기교가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영화이다. 그것이 괜찮았다. 이야기만을 따져보면, 현대 대중들의 입맛에 미지근할 수 있는 이야기와 다소 평이하고 진부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 단점일 수 있지만, 개인이 사회를 위하여 제시받는 메시지의 압박감이 적은 것이 장점일 수도 있겠다. 개인과 사회를 놓고 봤을 때 사회보다는 개인의 관점에서 위로 받는 영화이다.


주인공 데이비스는 어느 날 갑자기 아내를 잃는다. 교통사고가 난 차에 동승했지만 그는 버젓이 살아있고 아내와는 임종조차 지켜보지 못하고 이별했다. 영화는 아내를 잃은 데이비스의 변해가는 삶을 무의식적인 것과 의식적인 것과 현실 사이를 불규칙적으로 때로는 비논리적으로 교차시킨다. 이것이 화려하다거나 강렬하다는 뜻이 아니라 비슷한 기교를 사용했던 영화들이 예전에도 있었지만 이야기 속에 녹아있는 구성이 차별화되고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소위 금융업계에서 성공한 데이비스는 아내를 갑작스럽게 잃었지만 평소와 다름없이 집과 회사를 오가고 심지어 아내의 장례식 날에 병원에서 겪었던 자판기 고장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손편지를 작성하는 차분함까지 보여준다. 냉혈인간 같이 보였던 그에게 정신적 이상이 서서히 올라오는 것(무의식의 무엇이 의식의 수면으로 떠오르는 것)은 일반인과 비교해서 다소 지연되었거나 유별날 뿐이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표현한 영상미가 매우 감상할 만했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영상미였다. 아마도 그런 독특한 영상미 때문에 영화화되었을 것이다.  


데이비스라는 인물은 웬만한 현대인이 2차 선상에 놓고 꿈꾸는 사회적 성공을 행운으로 이룬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대개 현대인이 생각하는 상투적인 1차 선상의 사회적 성공은 당연히 자신의 능력을 사회적으로 인정받아 명예와 부를 동시에 거머쥔 자수성가일 것이다. 이것은 하늘에 별따기에 비유될 수 있다. 2차 선상의 사회적 성공은 소위 기성세대의 금줄을 행운으로 잡아서 명백한 명예는 포기하더라도 여유로운 부를 갖게 되는 경우이다. 이것은 동네 주민들을 통틀어 평생에 한 번 볼까말까한 큼지막한 산삼을 캐게되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 3차 선상의 사회적 성공은 가능하다면 가정도 꾸리고 그럭저럭 쪼들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잘 먹고 건강히 살다가 가는 경우이다. 이것은 논농사, 밭농사로 살아가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


데이비스는 성공한 금융인 아버지를 둔 외동딸의 눈에 들어서 사위가 되고 장인 회사에서 성실하게 일하며 나름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고 있었다. 비록 데이비스 자신은 아내에 대한 사랑의 정도가 깊지 않았을지라도 현실을 수용하며 살아갈 수 있는 현대인이었다. 영화는 남들이 보기에 마냥 부러움의 대상이었을 행운아 데이비스가 불의의 사고로 아내를 잃고서 그의 삶이 어떻게 변하는지 소소한 드라마적으로 보여준다.


어쩌면 아내를 잃기 전까지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장인이 좋아하는 사위라는 이미지 가면을 철저하게 쓰고 살아왔는지 모른다. 서서히 무의식에서 의식의 수면으로 떠오르는 그의 모습은 비록 본래 그의 모습인지 아니면 변화된 새로운 모습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더 이상 장인의 보수적이고 부유한 상류층에서 칭찬받으며 살아갈 수 없는 기존과 다른 캐릭터였다. 지금까지 현실적인 상황에 안주하며 살았던 (우연히 설비 좋은 인공정원에 들어와 살게 된 나비 같은 존재) 것을 이탈하여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캐릭터로 변신한다. 데이비스는 그런 자신에게 굳이 저항하지 않는다. 부유층 아내와 우연히 결혼하게 된 행로처럼 소시민적인 인생살이로 굴러가는 것을 수용한다. 오히려 냉정한 이성이 따뜻한 인간적 온기로 변해가는 것이 본래 자신의 캐릭터였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변화의 행로를 과하지도 않고 지루하지도 않게 드라마 장르 속에서 잘 표현했다.



데이비스가 변화의 레일에 올라타게 영향을 끼치고 추진력을 제공한 것은 그냥 아내의 죽음의 충격으로 어떤 대상에게 하소연 하듯이 보낸 자판기 클레임 관련 손글씨 편지를 읽게 된 카렌(나오미 와츠 분)이라는 여자였다. 두 남녀가 초반에 떠오른 상투적인 예상대로 로맨틱한 사랑으로 발전했다면 국내에서 꽤 흥행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는 아니다. 카렌은 이혼녀에 불량 아들을 키우고 있고 대마초 중독자이고 현재 같은 회사 사장과 재혼을 생각하는 만남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였다. 그러나 데이비스가 만나보지 못 한 (전에 비슷한 성격의 사람을 만나봤을 수도 있겠지만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을 법한) 인간적인 감정을 지닌 괜찮은 여자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지속적인 만남과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이야기의 줄기임에는 틀림없지만 핵심 이야기는 아니었다. 주인공 데이비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난 후에 어떻게 어떤 모습의 캐릭터로, 즉, 어떤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바뀌는지에 관한 이야기이다.

다만, 데이비스의 일탈적인 행동들은 장인이나 평범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사회적 관점에서 매우 바람직하지 않는 것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특히, 카렌의 아들과 시간을 보낼 때 더욱 그렇다. 실탄을 함께 쏴보고 심지어는 방탄복을 입고 맞아주는 장난도 친다. 나중에는 폭탄으로 큰 일탈을 저지르기도 한다. 이러한 것들이 앞에서 말했듯이 사회라는 입장에서가 아니라 개인이라는 입장에서 위로받게 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살아가는 동안 쉽게 얻어져서 늘 곁에 있어서 그 진가가 자신에게 어떤 위상에 있는지 제대로 모른 채 살아가다가 갑작스럽게 그것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그 진가를 깨닫게 되는 경우가 있다. 데이비스에게 죽은 아내가 그런 경우이다. 그는 감정의 심장이 제대로 작동하는 온전한 정신으로 돌아오는 동시에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기존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하루건너 두 번 감상했는데 영상미도 좋고 이야기도 색다른 드라마이고 의외로 잔상의 메아리가 울리는 영화였다.


2016년 7월 4일 김곧글(Kim Godg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