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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티파니에서 아침을 (Breakfast At Tiffany's) 감상글 (A4: 9 pages)

by 김곧글 Kim Godgul 2016. 7. 26. 22:08






우연히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보게 되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당대 최고의 여배우를 전면에 내세워 최대 흥행성에 목표를 둔 상업영화겠거니 생각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감상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다. 마치 보석이 그냥 봐도 아름답지만 확대경으로 들여다보면 또 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듯이 오드리 헵번의 매력적인 명연기는 두 말하면 잔소리고 시나리오와 연출이 매우 정교하고 꼼꼼하게 잘 만들어졌기에 왜 로맨틱 장르 고전 명작인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숲속을 걷다 우연히 발견한 오래된 보석 같다.

 


오프닝 또는 인트로가 짧고 간결하지만 인상적이다. 이른 아침이라 뉴욕의 거리는 매우 한산하다. 어떤 건물 앞에 택시가 정차하고 고귀하게 차려입은 여주인공 ‘홀리 고라이틀리(오드리 헵번 분)’이 내려서 어떤 건물로 향한다. 테이크아웃 해온 간단한 아침식사를 아직 열지도 않은 상점의 쇼윈도 앞에서 먹는다. 유리창 너머로 화려하고 우아하게 진열된 보석이 그녀의 마음을 강렬하게 사로잡고 있다. 아직 십대 소녀처럼 순수함이 남아있는 어린 수녀가 십자가를 우러러보며 새벽기도를 하는 듯하다. 그곳은 ‘티파니(Tiffany & Co.)’라는 상호의 보석 상점이다. ‘since 1887’라고 하는 꽤 유명한 명소라는 것을, 또한, 이 영화의 제목에서 ‘티파니’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필자는 처음 알았다. 영어 원제 ‘Breakfast At Tiffany’s’를 좀 더 친절하게 국내제목으로 바꾼다면 ‘티파니 보석 상점에서 아침끼니’가 될 것이다. 확실히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라는 제목이 어딘가 여운이 있고 잘 지은 것 같다. 오랜만에 지인을 만나서 “예술영화관에서 오드리 헵번의 ‘티파니 보석 상점에서 아침끼니’ 하는데 보러갈까?”라고 말하게 되는 것보다 “예술영화관에서 오드리 헵번의 ‘티파니에서 아침을’ 하는데 보러갈까?”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 훨씬 느낌이 좋기는 하다.

이 영화를 한 번 이상 감상하면서 감탄하게 된 것은 미쳐 못 봤던 디테일을 알아보면서이다. 단순히 시간이나 사건 순서대로 나열된 감성적인 로맨스 영화와 차별화된다. 디테일이 정말 장난이 아니다. 시나리오 상에서 그냥 무시해도 될 만큼 사소한 장면에도 디테일이 숨 쉬고 있다. 기승전결 또는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이 탄탄하고 톱니바퀴처럼 전자기기 기판의 회로처럼 한 신(scene)의 무엇이 다른 신의 무엇으로 정교하게 맞물려 연결되어 있는 것을 여러 개 발견할 수 있다. 봐도 잘 모르겠는데, 라는 관객은 마치 숨은 그림 찾기 하듯이 연결된 무엇 또는 사소한 디테일(그냥 무시하고 대충 넘어가도 큰 무리가 없지만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 굳이 심열을 기울여 만듬)을 찾아본다면 색다른 재미와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자신의 관찰력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가 가늠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오프닝에서 필자가 생각하는 사소한 디테일이 있다. 아래 화면사진은 택시에서 내린 홀리가 걸어가는 곳이 ‘티파니’라는 이름의 보석 상점이라고 알려주는 것이고 이것은 영화의 제목과도 맞물려 있다. 화면사진의 상단을 보면 시계가 일부 보여지는데 현재 이른 아침시간임을 제대로 표시해주고 있다. 저 시계가 예를 들어 9시를 가리키고 있더라도 큰 오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감독이 이 화면을 통해서 가장 우선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티파니’라는 상호였고, 관객은 일반적으로 화면에 글자가 크게 보이면 읽어보려는 무의식이 있기 때문에 상호를 읽지 상단에 일부 보이는 시계가 몇 시를 가리키는지는 그 다음에 살펴볼 여러 거리 중에 하나이다. 이 컷은 아주 짧게 지나간다. 오드리 헵번의 아름다운 뒤태와 그녀가 바라보는 티파니 상호를 읽었다 싶으면 카메라와 그녀는 움직이고 시계는 화면에서 사라진다. 즉,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전혀 문제 되지 않을 시계까지 제대로 표현해준 디테일을 느낄 수 있다. 혹자는 ‘그냥 찍다보니까 그렇게 된 거다. 마침 촬영 시간이 그 시간이었고 시계는 그녀와 상호를 잡는 과정에서 우연히 카메라에 일부 잡혔을 뿐이다. 감독은 시계 따위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화면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화면 프레임의 하단에 상호가 위치해 있다. 카메라로 의도적으로 그렇게 잡은 것이다. 상단의 시계도 같이 보여주려고 의도했기 때문이다. 만약 상호에만 신경 썼다면 굳이 하단에 위치시킬 필요 없이 중앙에 위치시키는 것이 옳은 선택일 것이다. 그러나 감독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시계까지 보여주려는 의도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홀리는 뉴욕의 작은 아파트에 산다. 이사 온 지 1년이 됐지만 살림살이를 제대로 정리하지 않았다. 가능한 빨리 다른 곳으로 이주할 것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가에서 주운 갈색 고양이한테도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자신의 집을 살 때까지 아무것도 소유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녀가 말하는 자신의 집이란 대부호 재력가를 만나 결혼해서 살게 될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집을 의미한다. 부유한 집과 그녀가 아무것도 소유하고 싶지 않은 것과 무슨 상관인가? 라는 의문이 생긴다면, (이것이 설명되어 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대부호의 취향에 전적으로 맞출 것이기 때문에 지금 자신의 것을 만들 필요성을 못 느끼는 거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런 집이라면 어느 곳이든 그녀가 아침식사 하는 티파니 보석 상점의 느낌처럼 행복할 거라고 믿는다. 그러니까 티파니 보석 상점은 그녀가 꿈꾸는 부유하고 행복하고 이상적인 가정(자신이 왕비로 들어가 사는 동화 속의 궁궐 또는 대저택)을 상징하는 표상이다.

어떤 관객에게 홀리는 얼핏 허영심으로 가득 찬 속물로 보여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만이 그녀의 전부는 아니다. 사람은 겉으로 보여지는 것과 좀 더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 있듯이 영화를 감상해가면서 그녀의 다층적인 면을 살펴볼 수 있고 장점으로서의 매력도 충분히 많이 갖고 있다. 현실세계에서 만난다면 소위 위험한 여자인 것은 맞지만 결코 미워할 수만은 없고 자꾸 빨려 들어가게 되는 여자 인물상이다. 이야기 예술 작품에서 여자들을 위한 나쁜 남자 인물상의 성공적인 사례가 있듯이 홀리는 남자들의 심금을 자극하는 나쁜 여자 인물상의 성공적인 사례일 것이다. 홀리가 통상적인 팜므파탈과는 차이가 있다. 교미 후 수컷을 잡아먹는 암컷 사마귀의 전형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홀리의 바로 위층으로 한 남자가 이사 온다. 그녀는 그의 생김새가 남동생과 닮았다며 '프레드' 라고 불러도 되겠냐고 묻고 그는 좋을 대로 하라고 했는데, 이후에 그가 출간한 책의 표지를 보고 이름이 '폴 바잭'이란 것을 알게 되지만 '프레드'라고 부르는 것을 번복하지는 않는다. 한참 후에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의 갈등이 일어났을 때 폴이 자신은 프레드가 아니라 폴 바젝이라고 단오하게 지적해주기 전까지.


그녀는 종종 자신의 아파트에서 흥건하게 취하는 술파티를 열어 수많은 사람들을 초대해 사교를 나눈다. 인맥이 넓고 실력이 있는 에이전트 ‘오제이 버먼’의 도움도 있었지만 그녀는 이 바닥에서 매우 핫(hot)하다. 다양한 남자들을 만나는데 그것이 장점이기도 하지만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장점은 그녀가 원하는 대부호를 비교적 쉽고 다양하게 많이 만날 수 있다는 점이고, 단점은 순수한 그녀의 사교성을 어두운 쪽으로 이용해먹는 마피아 같은 부류도 있다는 점이다. 이런 장단점은 영화의 후반부에 가서 그녀의 삶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친다.

남주인공 폴은 젠틀하고 친절하고 다정하다. 직업은 ‘아홉 인생’이라는 단편소설집을 출간한 젊은 작가이다. 그러나 현재 그의 삶에도 홀리 못지않은 은밀한 비밀이 있다. 그에게 아파트를 구입해줄 정도로 재력 있는 연상의 기혼녀 ‘2-E(팔렌슨 부인)’과 연인사이라는 점이다. 홀리도 이것을 눈치껏 알게 되지만 더 이상 캐묻지도 상관하지도 않는다. (홀리와 폴이 말다툼을 할 때 홀리는 이것을 활용해서 공격하곤 한다). 소위, 두 남녀 주인공은 바람직한 사회적 가족윤리관의 관점에서는 비록 나이는 충분히 먹었지만 미성숙한 단계에 있다는 설정이다. 이런 인물상은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서나 실존했었고 수많은 예술작품에 등장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상쾌하고 매사에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가치관이 깔려있기 때문에 일찌감치 폴은 자신의 감정이 홀리에게 빠져들었다고 느끼자 ‘2-E’와의 연인관계를 끊었고 ‘2-E’도 그럭저럭 쿨하게 수용한다. 폴이 먼저 진실 된 사랑의 감정에 빠지고 솔직해진다. 공공성을 의식해서 말하면 폴이 먼저 윤리적으로 성숙한 인물로 변신하다. 영화의 후반부는 홀리가 어떻게 성숙한 사랑을 하게 되는 인물상으로 변하는가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관객은 가장 상층에 거주하는 일본인 사진사가 처음으로 “미스 고라이틀리”라고 불러서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된다. 그런데 이후에 홀리와 폴이 처음으로 만나고 대화하고 싱싱 교도소로 가려고 택시를 잡는데 택시에서 폴의 연인 ‘2-E’가 하차하자 그는 약간 당황하는 목소리로 양쪽에 서로를 소개한다. 이때 폴은 홀리를 ‘미스 고라이틀리’ 라고 소개한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폴은 어떻게 홀리의 이름을 알고 있을까? 두 사람이 대화중 통성명을 한 적은 없었다. 앞으로 가서 살펴본 결과 간접적으로 두 가지를 제공하고 있다 (홀리가 “내 이름은 고라이틀리” 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첫 번째는 폴이 아파트로 처음 이사 와서 공용 출입구 열쇠가 없어서 아래층에 사는 홀리에게 공용 출입구를 열어달라고 벨을 누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벨 위에 우체통이 있고 겉면의 명찰을 보고 홀리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카메라가 우체통의 명찰을 클로즈업하지는 않는다). 두 번째는 홀리가 싱싱 교도소로 가기 위해서 화장실에 들어가 메이크업을 하고 의상을 단장하면서 거실에 있는 폴에게 매주 목요일에 교도소로 면회를 가게 된 경위를 속사포처럼 줄줄이 풀어놓는데 그 중에 “......주당 100달러에 외로운 아저씨를 위로해주지 않겠냐고 하길래 제가 그랬죠. 홀리 고라이틀리를 잘못 알았네요......” 라는 말을 폴이 거실의 과일바구니 속에 불꽃이 살아서 뒤집혀서 꽂혀있는 촛불점화기를 안전하게 치워주면서 동시에 주의 깊게 경청해서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첫 번째가 좀 더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아무튼 이것은 정교한 디테일이라 생각된다.




홀리가 공용 출입구를 열어주고 폴이 그녀에게 전화 한 통화를 할 수 있겠냐고 부탁하면서 “오늘이 목요일 10시 맞죠? 제가 로마에서 방금 도착해서 확실히 모르겠어요. 누구를 만나기로 했거든요.”라고 말한다. 여기서 목요일 10시라는 것으로 인하여 홀리는 서둘러 싱싱 교도소로 면회 갈 준비를 하고, 잠시 후, 젠틀한 폴은 배웅하고 홀리는 택시를 잡는데 정차한 택시에서 폴의 연인 ‘2-E’가 하차하더니 “로마에 남겨두고 온 지 3주 밖에 안 됐는데 몇 년은 된 것 같아.”라고 반갑게 폴의 안부를 묻는데, 앞의 전화기를 빌리면서 했던 폴의 말과 종합하면, 두 사람은 3주 전까지 로마에 같이 있었다고 유추할 수 있고, 폴은 홀리에게 ‘2-E’를 인테리어 디자이너라고 소개하지만 ‘2-E’가 폴을 살갑게 대한다든가 ‘달링’이라고 부른다든가 하는 것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면 둘은 깊은 연인관계라는 것을 관객은 아주 짧은 시간에 경제적으로 알아보게 되는 것이고 이것은 동시에 홀리도 관객처럼 눈치 까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폴이 10시에 만나기로 했다고 말한 사람이 ‘2-E’였고 우연히 홀리가 잡은 택시에서 ‘2-E’가 하차하게 된 것은 단순 우연이 아니라 충분히 그럴듯한 개연성을 부여한 시나리오의 디테일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폴은 처음으로 아파트에 들어올 때 여행용 트렁크(로마에서 방금 귀국했다고 하니까 말이 된다), 타자기 가방, 중간 크기의 종이박스, 이렇게 세 개의 짐을 소지하고 있는데 그냥 대충 장식한 것은 아니고 이후에 각각 활용된다. 홀리가 술주정 부리는 남자를 피해 창문으로 폴의 방에 처음으로 들어선 날, 종이박스 속에서 폴이 출간한 ‘아홉 인생’ 책이 12권 들어있고 그녀는 책표지에 적힌 작가 이름 ‘폴 바잭’을 소리 내어 읽는데 이것은 영화에서 처음으로 남주인공의 이름을 관객에게 알려주는 장면이다(주인공 본인의 입으로 내 이름은 아무개라고 말하는 것보다 세련미가 있는 방법이다). 홀리는 타자기에 먹끈이 없다는 것을 알아보고 이후에 먹끈을 선물해주고, 이후에 폴은 먹끈을 타자기에 장착하고 그녀에 관한 문장을 쓰고 있는데 아래층에서 홀리의 그 유명한 ‘문 리버(Moon River)’ 노래가 들려오고, 이후에 폴은 타파니 보석 상점에 갔을 때 먹끈에 대한 답례로 선물을 사주겠다고 한다. 이처럼 폴의 어떤 소지품이 이후 장면으로 줄줄이 연결되는 디테일이 들어있기도 하다.




이어서 홀리는 새벽 4시 30분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친구사이임을 강조하며 폴의 맨살 가슴에 뺨을 기대고 누워 선잠을 잔다. 아무리 자유분방한 가치관의 뉴요커라지만 일반적인 상황은 아닐 것이다. 여기에도 이후의 어떤 사건에 연결되는 것이 있다. 그녀는 눈을 붙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잠꼬대를 한다. “(평소 그녀의 목소리로) 어디 있니, 프레드? (남자 목소리로 또는 굵은 톤으로) 너무 추워. 바람에 눈이 날려. (흐느끼며 슬퍼한다)” 매우 추운 어떤 곳에 있는 남동생 프레드를 보고 몹시 슬퍼하는 꿈을 꾼 듯하다. 이 꿈은 며칠 후 프레드가 군대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전보를 받는 일로 연결되는 안개 같은 복선일 것이다. 이것 또한 디테일이 아닐 수 없다. 영화를 다 감상하고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녀가 이 꿈을 꾼 시점이 실제로 남동생 프레드가 사망한 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홀리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파티를 연다. 여기서 ‘오제이 버먼’ 에이전트가 등장하여 그의 사교적 능력을 관객에게 보여준다. 홀리가 샤워하는 동안 그는 방문하는 손님들을 일일이 반갑게 맞이해주는 것으로 그가 홀리와 가까운 사이임을 알 수 있다. 관객은 그의 대사를 통해서 홀리의 최근 과거에 대해서 단편적으로 들어보게 된다. 파티는 흥청망청 무르익고 줄거리와는 그다지 상관없는 코믹스런 장면들이 나열되어서 관객에게 긴장완화의 시간을 주는 듯하다. 파티에서 홀리는 영화 후반부에 결혼하려고 하는 브라질 출신 대부호를 만나서 형식적인 인사를 나눈다. 이날 홀리는 다른 대부호에게 관심을 주고 있었다. 세상사에 비일비재한 것으로 처음에는 관심 밖이었던 무엇이 시간이 흐른 후에 매우 중요한 존재가 되는 요지경적인 일이 있다. 그런 경우이다.

오제이 버먼과 관련하여 덧붙이자면, 이 영화를 끝까지 감상한 적은 없더라도 창문에 앉아서 기타를 치며 ‘문 리버(Moon River)’를 노래하는 오드리 헵번의 전설적인 장면은 누구나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설정 상으로 시골 출신이고 가방끈도 짧은 홀리가 어떻게 그렇게 매력적이고 감각적으로 대화를 나누며 수많은 남자들과 염문을 뿌리고 기타를 잘 치면서 아름답게 노래할 수 있게 되었는지에 관하여 설명되지는 않지만 넌지시 던져주는 정보만으로 추측해보면 홀리를 헐리우드 여배우로 키우려고 했던 인맥이 넓고 실력 있는 오제이 버먼 에이전트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프랑스어를 배우게 했더니 촌스런 억양이 사라지고 세련된 느낌의 영어 발음을 하게되었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그는 영화 후반부에 그녀가 큰 수렁에 빠졌을 때 실질적으로 큰 도움을 준다. 그의 외양은 전혀 로맨틱과는 거리가 멀지만 이런 장르에서 간간히 볼 수 있는 소위 ‘키다리 아저씨’ 역할을 톡톡히 한다(복선을 품고 있는 인물로 볼 수 있다). 더불어, 시골에서 도시로 상경한 그녀가 어떤 우여곡절을 겪고 고난을 극복하고 성장해서 현재의 우아하고 사랑스럽고 세련된 뉴요커로 환골탈태 했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일 것이다.




며칠 후 폴의 연인 ‘2-E’가 그의 아파트로 들어오자마자 어떤 수상한 남자가 자신을 염탐하고 있는데 혹시 남편이 고용한 사람은 아닐까 걱정한다. 도둑이 제 발 저린 형국이다. 폴은 아파트 앞에 서있던 그를 공원으로 유인하여 대화를 나누는데 전혀 예상 밖의 사실을 알게 된다. 폴이나 관객의 입장에서 그야 말로 ‘아닌 밤중에 홍두깨’이다. 수상한 남자는 가족사진을 보여주며 홀리의 남편임을 확인시켜준다. 홀리가 오제이 버먼을 만나기 전, 그러니까 대도시로 상경하기 전에 텍사스의 수의사 겸 농부와 결혼했던 이력이 있었던 것이다. ‘홀리 고라이틀리’의 ‘고라이틀리’는 이 남자한테서 가져온 성이다. 본래 그녀의 이름은 ‘룰라메이 반즈’라고 했다. 수의사는 폴에게 홀리가 겁먹거나 놀라지 않게 하면서 자신의 집으로 데려갈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부탁하고 폴은 멍한 마음(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게 된 마음)이 들지만 (착한 영화니까) 기꺼이 그렇게 해준다. 폴과 수의사가 공원에서 대화하는 이 장면에서 다소 이색적인 소재가 후반부로 연결되는데 그것은 수의사가 먹다가 폴에게 건네준 과자상자 속에 반지가 동봉되어 있었고 폴은 반지를 아무 생각 없이 가지고 있다가 홀리와 같이 티파니 보석 상점에 갔을 때 등장하고 거의 끝장면에 가서 홀리가 폴의 진실 된 사랑을 받아주기로 했다는 상징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반지가 하필 전남편 수의사가 건네 준 과자봉지에서 나오게 설정한 것도 우연은 아니다. 이것은 법적으로는 전혀 의미가 없지만 상징적으로 전남편 수의사가 자신의 결혼반지를 폴에게 건네주어서 홀리의 남편이 되도록 만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좀 더 복잡하고 세련된 복선일 것이다. (수의사가 자신의 반지를 몰래 과자봉지에 넣은 것은 아니다. 화면사진을 보면 과자봉지를 건네줄 때 결혼반지를 끼고 있었다)




전남편 수의사는 홀리를 주저 없이 ‘룰라메이’라고만 부른다. 여기서 룰라메이는 그녀의 과거 이름이기도 하지만 그녀가 지금처럼 사교계의 여왕이 되기 전의 순수했던 시골뜨기 소녀를 상징한다. 그녀는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수의사를 홀로 돌려보내면서 자신은 더 이상 룰라메이가 아니라고 거듭 강조하며 그를 상냥하게 위로해준다. 그녀는 더 이상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순수한 시골소녀가 아니라는 뜻이다. 결국 착한 영화답게 수의사는 그녀를 남겨두고 홀로 되돌아간다. 이 고속버스터미널 장면은 그렇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영화의 명장면 중에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대화 내용도 뼈와 살이 있고 그녀의 대화술과 행동이 어떻게 또한 얼마나 사랑스럽게 전남편의 심경을 헤아리면서 홀로 되돌아가게 만드는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홀리와 폴은 고급 주점에서 술한잔을 하고 집에 돌아와 대화를 나누던 중 갈등을 겪는다. 그녀는 수의사로부터 남동생 프레드가 4개월 후에 제대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같이 살기 위해서 하루빨리 대부호와 결혼을 해야겠다고 작심한 것이다. 폴은 그런 그녀의 모습이 탐탁치 못했지만 그 자신도 아직까지 ‘2-E’의 재정적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처지였기에 그녀를 탓할 입장이 못 되었다.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다음날 그는 우편으로 원고료 50달러를 배달받는다. 폴과 홀리는 화해도 할 겸 축하도 할 겸 밖으로 나간다. 홀리는 지금까지 해보고 싶었지만 못 해본 뭔가를 해보자고 소위 로맨틱 모험을 제안한다. 그가 먼저 하고 그녀는 나중에 하겠다며 자신의 것은 이미 생각할 필요도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녀의 1순위는 티파니 보석 상점에 가는 것이다.

홀리와 폴은 티파니 보석 상점에 들어간다. 그녀에겐 독특한 가치관이 있었다. 나이 마흔 전에 다이아몬드를 지니는 것은 경박한 처사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또한 그가 원고료 50달러와 추가로 10달러가 있으니 그녀에게 타자기 먹끈에 대한 답례로 선물을 사주겠다고 하자 그녀는 원고료는 그대로 놔두고 10달러 내에서 구입한 선물이라면 받아주겠다고 말한다. 여기서 그녀가 비록 보석 상점에 광적으로 빠져있지만 맹목적으로 보석에 집착하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고, 티파니 보석 상점은 위에서 언급한 대로 그녀가 꿈꾸는 이상적인 것을 상징한다는 것을 재확인할 수 있다. 두 사람은 10달러로 흥정하다가 마음에 드는 제품이 없어서 포기하고 대신 엊그제 폴이 수의사에게서 건네받은 과자상자에서 획득한 반지를 주면서 이름을 새겨줄 수 있냐고 문의하자 점원은 기꺼이 들어준다. 홀리는 찬연하게 웃으며 폴에게 말한다. “거봐요. 얼마나 사랑스러운 곳인지 이젠 알겠죠!”  

두 사람은 공공도서관에 들어간다. 홀리는 생애 처음으로 가보는 곳이다. 그녀는 폴이 출간한 ‘아홉 인생’ 책을 사서로부터 받아들면서 옆에 있는 남자가 바로 그 책의 작가라고 알려주지만 사서는 들은 채 만 채 하고 정숙해달라고 할 뿐이다. 폴이 자신의 책에 서명과 문구를 적는 것을 보고 사서는 기겁을 하면서 공공기물을 파손하고 있다고 신경질을 부리자 홀리는 “여긴 티파니의 절반만큼도 못 한 곳이군요.”라고 내뱉는다. 그녀에게 티파니 보석 상점은 어떤 것을 생각하는데 있어서 표준적인 잣대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홀리는 장난감 가게에 들어가서 어렸을 때처럼 무언가를 훔쳐보고 싶다고 한다. 이 영화의 장르는 착한 로맨틱이므로 무기를 들고 편의점이나 은행을 터는 모습을 떠올린다면 오산이다. 홀리와 폴은 점원들의 눈치만을 보며 미수에 그치다가 기껏 성공적으로 훔치는 것은 아이들이 쓰는 플라스틱 가면이었다. 이 장면에서 홀리의 순수한 면을 살펴볼 수 있다. 가면도 단순히 스쳐지나가는 소품만은 아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아파트 공동 출입구에서 뽀시시한 클로즈업 얼굴 화면으로 가면을 벗으면서 눈빛을 교환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감정에 빠져들어 진하게 첫키스를 한다. 여기서 가면은 일종의 사회적인 가식적인 껍데기를 상징하고 그것을 벗어버리고 각자 본연의 순수한 마음으로 키스를 한다는 의미이다. 홀리와 폴은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진실된 사랑의 마음으로 키스를 했다고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두 사람의 진한 첫키스는 절친관계가 끝나고 사랑의 새싹이 피어오르게 했다. 그날 저녁 폴은 ‘2-E’에게 이별을 통보한다. 이 장면에서 플라스틱 가면은 한 번 더 사용된다. ‘2-E’가 폴의 아파트에 방문했을 때 폴은 얼떨결에 가면을 모자처럼 쓰고 있었고 여자 고양이 캐릭터 가면(홀리가 썼던 가면)이 동상 위에 걸려있는 것을 보고 직감적으로 폴에게 여자가 생긴 것은 아닐까 예감할 수 있게 된다. 두 가면은 잠시 후 폴의 결별 통보가 ‘2-E’의 감정에 가하는 갑작스런 충격을 완화시켜준 완충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다음날 아침 폴은 티파니 보석 상점에서 이름을 새긴 반지를 찾아 홀리에게 전화를 하지만 부재중이다. 우연히 공공도서관에 갔더니 뜻밖에도 그녀가 책을 읽고 있었다. 그는 달려가 마치 연인처럼 그녀에게 키스로 인사한다. 그러나 그녀는 석상처럼 냉랭하게 열독을 지속할 뿐이다. 그는 어제 첫키스 이후로 연인이 된 것으로 생각했지만 (두 사람의 가면이 폴의 방에 함께 걸려있는 것으로 봐서 밤늦게까지 술한잔을 하며 알콩달콩하게 얘기를 나눴을 가능성이 높다. 폴이 이러는 것은 단순히 로맨틱한 첫키스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녀는 폴의 생각과 같지 않았다.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의 메인 색도 그렇다고 말하고 있다(홀리가 입는 옷의 색깔에 대해서 아래에 다시 언급됨). 그녀가 평소 하지 않던 독서를 하게 된 것은 파티에서 만난 브라질 출신 대부호와 결혼할 예정이고 남미 문화에 대해 미리 학습하는 것이다.

그날 저녁 마치 홀리의 전남편이 나타났던 것처럼 전혀 예상치 못한 청천벽력 같은 사건이 그녀에게 발생한다. 전보를 받았는데 4개월 후에 제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던 남동생 프레드가 군대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내용이었다. 남동생이 죽는 것은 완전히 생뚱맞은 일은 아니고 앞에서 말했듯이 복선을 깔아놓았었다. 홀리는 모든 것을 잃은 듯이 온몸을 내던지며 통곡한다.

며칠 후 홀리는 원기를 회복했고 오히려 평소보다 밝고 활기차게 생활한다. 브라질 출신 대부호 ‘호세’와 결혼하는 일이 잘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폴을 집으로 불러서 기분 좋게 작별의 식사를 나누려고 한다. 압력솥에 직접 요리한 음식을 데우고 있었는데 갑자기 터져버린다. 두 사람이 다칠 정도의 위력은 아니지만 (고양이도 놀라지 않는다) 이것은 그녀에게 불길한 일이 닥친다는 것을 암시한 것이다. 일종의 폭풍이 몰아치기 전의 매서운 바람이다.




홀리와 폴은 밖에서 작별의 식사를 하고 귀가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아파트에서 잠복하고 있던 경찰에게 수갑이 채워지고 경찰서로 압송된다. 그녀가 매주 목요일마다 싱싱 교도소로 면회 갔던 샐리 토마토란 마피아가 그녀를 마약범죄에 이용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신문지상에 대문짝만하게 대서특필된다. 천만 다행스럽게도 그녀의 키다리 아저씨 ‘오제이 버먼’이 엄청난 금액의 보석금을 지불해줘서 풀려나게 된다. 그녀는 폴이 잡은 택시에 타서 공항으로 가자고 한다. 곧바로 결혼할 ‘호세’가 있는 브라질로 날아가기 위해서이다. 그때 폴이 그녀에게 편지를 전달해준다. 호세의 사촌이 폴을 찾아와서 홀리에게 전달해달라고 부탁했던 편지였다. 호세가 홀리에게 정중히 결별을 알리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홀리가 경찰서에서 풀려나서 폴이 잡은 택시를 타는 장면에서도 디테일을 알아볼 수 있다. 아래 화면사진을 보면 정차한 택시 뒷면으로 엑스트라가 화면의 우측에서 좌측으로 걸어가는데 그의 왼손(화면에 보여지도록)에 우산이 들려져 있다. 지금은 비가 안 내리지만 잠시 후 비가 내릴 것을 미리 알려주기 위한 것이다. 다음 컷은 홀리와 폴이 택시 뒷좌석에 앉아서 거리를 달리는 장면인데 뒷창문에 빗방울이 수북이 맺혀있다. 거리에 비가 내리고 있다는 설정이다. 엑스트라가 우산을 들고 걸어가도록 한 것은 감독의 디테일한 연출력이다.





홀리는 다른 대부호를 찾겠다고 계획하는데 폴은 그녀의 어리석음과 사랑과 삶의 진실을 깨우쳐주려는 내용의 일장 연설을 한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택시를 일시정지시키고 애지중지 키우던 고양이를 비 내리는 거리에 내버리기까지 한다. 얼마 안 가서 폴도 택시에서 내린다. 티파니 보석 상점에서 두 사람의 이니셜이 새겨진 반지를 더 이상 필요없다는 듯이 그녀에게 던져주면서.

홀리가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는 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반지를 왼손 약지에 끼고 택시에서 내려서 주룩주룩 퍼붓는 장대비를 가르며 고양이를 내버린 곳으로 달려간다. 그곳에서 고양이를 찾고 있던 폴과 마주친다. 그녀는 그를 만나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한다. “고양이는 어디 있나요?” 이 부분에서 고양이는 홀리의 자존심을 지켜준 역할도 한 셈이다. 고양이가 아니었으면 방금 안 좋게 헤어진 폴 앞에 달려가 매달린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다. 그녀는 장대비가 퍼붓는 골목에서 고양이를 찾아 헤맨다. 마치 잃어버린 자식을 찾는 것 같다. 폴은 그녀의 행동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는 왜 고양이를 찾는 시늉이라도 하지 않았을까? 고양이를 애타게 찾는 그녀의 행동이 가식적이라고 생각해서일까? 단지 그녀와 공통적인 행동을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실망했기 때문일까?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마침내 홀리는 고양이를 찾아내고 기쁨과 안도의 눈물을 흘리며 물에 빠진 생쥐 같은 고양이를 온몸으로 끌어안아준다. 여기서는 그녀의 모성애를 엿볼 수 있다. 그녀는 고양이를 마치 아기를 대하듯이 외투로 감싸 안고 폴에게 다가간다. 장대비가 흥건히 쏟아지는 거리에서 그들은 격정적으로 키스를 한다. 홀리와 폴, 그들이 공통적으로 진실 된 사랑을 만들어갈 연인임을 깨닫게 되는 시점에 영화는 엔딩을 맞이한다.   




......


끝장면에서 홀리는 하얀색 계통(밝은 회색 또는 아이보리) 외투를 입고 있다. 첫장면에서 검은색 원피스를 입었던 것과 정반대로 대비된다. 즉, 처음과 정반대 인물상으로 또는 가치관으로 바뀌었다고 표현한 것이다. 더불어 폴의 외투도 비슷한 색깔인데, 두 사람의 마음이 일치한다 또는 통한다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이 영화에서 홀리가 입는 의상들은 대충 15~20벌 정도인데 메인 색깔은 검은색 계통이거나 하얀색 계통 둘 중 어느 한 쪽이다. 예외적으로, 폴 또는 호세와 외출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는 붉은색 계통(오렌지, 핑크)이다. 이때는 단순히 그녀의 심리상태가 즐거움과 기쁨으로 업(up)된 것일 뿐 폴이나 호세와 직접적으로 관련성은 없어 보인다. 주로 검은색을 입을 때는 하얀색 아이템(스카프, 진주 목걸이, 검은 모자에 장식하는 천 또는 털뭉치 등)으로 첨부하고, 주로 하얀색을 입을 때는 검은색 아이템(쇄골 아래로 살짝 보이는 셔츠)를 첨부한다. 너무 한 가지 색으로만 치장해도 부자연스럽기 때문일 것이다. 구두 색은 메인 색깔을 따라간다. 살펴볼만한 것은 메인 색이 검은색일 때는 소위 도시적인 물질문명의 실리적인 사교성에 익숙한 정신상태 또는 폴의 생각이나 마음과 통하지 않는 감정상태를 표현하고, 하얀색일 때는 인간적으로 순수하고 진실성이 들어있는 솔직함 또는 폴의 생각이나 마음과 일치하거나 통하는 부분이 많은 (또는 어떤 장면의 끝에서 이런 쪽에 도달할 예정인) 마음상태를 표현한다.    

메인 색이 하얀색인 경우가 적기 때문에 살펴보자면, 처음으로 폴을 만났을 때, 어떤 남자가 집안에서 술주정을 부리고 있어서 창문 밖 계단을 올라가서 폴의 방으로 피신할 때, 파티 날 샤워를 마치고 오제이 버먼에게 폴을 칭찬하며 그가 유명해지도록 도와주라고 부탁하고 폴이 출간한 책을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이 볼 수 있게끔 간식거리 옆에 세워놓을 때 (잠시 후 실제로 파티에 빠져들어 여러 사람들과 어울릴 때는 검은색을 입고 있다), (앞의 예들은 주로 잠옷, 실내가운이고 일반적으로 흰색이 많으므로 이 내용의 예로써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그렇지 않다. 나중에 홀리는 술기운에 폴과 말다툼을 했고 다음 날 폴을 실내로 들이는 장면에서 그녀는 연한 오렌지색 실내가운을 걸치고 있다. 얼마든지 다른 색 실내가운을 입힐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이때는 그녀와 폴이 완전히 화해하지 않은 상태이고 그녀는 브라질 대부호 호세와 결혼하려고 작정하고 있던 상태이다.), 창가에 앉아 기타 치며 ‘문 리버(Moon River)’를 노래하는 유명한 장면, 전남편 수의사를 고속버스터미널까지 배웅하고 이별할 때, 곧 브라질로 날아갈 생각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폴과 작별의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눌 때 (상의만 밝은색), 이 옷으로 경찰에 체포되었다가 다음 날 풀려나와 폴과 택시를 탔는데 공항으로 향하면서 검은색 상의로 갈아입는데, 호세의 결별 통보 내용을 담은 편지를 폴이 읽어준 시점에서 하얀색 외투를 입는다. 이 외투를 입고 결말의 사랑과 애정이 담긴 키스를 한다. 이처럼 홀리의 의상 메인 색깔과 그녀의 정신, 감정, 심리 상태를 연결 지어 살펴보면 영화 전체적으로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담으로, 일본인 사진사는 그야말로 감초역할이다. 뜬금없는 몸짓 또는 말로서 개그를 한다. 처음 등장할 때는 영화 ‘총알 탄 사나이’가 생각날 정도이다. 시간경과를 표현할 때 요긴하게 사용된다. 홀리가 자주 공용 출입구를 열어달라고 벨을 눌러대지 않나, 낯선 남자가 홀리 집까지 쫓아와 시끄럽게 하지를 않나, 음악을 크게 틀거나 파티를 열어서 오래도록 시끄럽게 하지를 않나, 경찰을 부르겠다고 수없이 고함을 치며 협박한다. 그는 개그 외에 경찰과 관련이 깊다. 파티 때는 실제로 경찰에 신고해서 출동한 경찰이 파티를 쫑나게 만든다. 영화 후반부에 경찰이 조용히 홀리 아파트의 거실에 잠복하고 있다가 홀리와 폴이 들어오자마자 바로 수갑을 채울 수 있도록 하는데 일조한다. 즉, 경찰이 조용히 아파트 공용 출입구를 통과해서 홀리 아파트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일본인 사진사가 문을 열어줬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홀리와 폴이 경찰에 수갑이 채워질 때 홀리 아파트에 경찰들과 같이 잠복하고 있을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끝으로 고양이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동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동물의 연기가 이토록 인상적이었던 영화도 없을 것이다. 홀리가 강가에서 주워 와서 이름을 지어주지 않고 그냥 ‘고양이(cat)’라고 부르는 홀리의 반려묘의 연기는 이 영화를 확실히 풍요롭고 완성도 높게 만든다. 마치 사람이 들어가서 연기하는 것이 아닐까? (설마 그럴 리가... 사이즈가 다른데) 생각될 정도로 거의 완벽에 가깝게 연기한다. 감독도 고양이의 연기를 인정해서인지 오프닝의 출연진 크레딧에 조련사와 함께 적혀 있다. 이런 경우에 대개는 엔딩 크레딧에만 올라가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1961년에는 더욱 이례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고양이는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도 남는다는 생각이 든다. 열연한 홀리의 고양이는 단순히 시간경과, 분위기 전환, 인테리어로 사용된 것만은 아니다. 바로 홀리 자신을 상징하기도 한다. 홀리는 스쳐지나가듯 만나는 남자들을 쥐에 빗대어 말하기도 한다. 강가에서 주웠고 (대도시가 아닌 시골 출신으로 홀리와 비슷하다) 이름 없는 (홀리처럼 아직 누구의 소유도 아니고 동시에 누구를 소유하지 않고 있지만 이상적인 누군가에게 사랑받기를 갈망하는) 고양이다. 끝장면에서도 고양이는 열연을 놓치지 않았기에 관객의 기억에서 존재감이 메아리친다.




어렸을 때 TV에서 간간히 방영했을텐데 그때는 감상하지 못 했다. 엊그제까지 영화 ‘로마의 휴일’과 중첩되어서 기억되기도 했을 정도다. ‘로마의 휴일’도 이제서야 제대로 감상할 예정이다. 처음부터 바로 좋아한 것은 아니지만 한번 빠져들자 영화의 매력과 장점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소위 웰메이드 고전 명작이다. 언제 또 다시 안 볼 이유를 못 찾겠다.


2016년 7월 26일 김곧글(Kim Godg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