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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워(D-War) LA 촬영 탐방기

'디워(D-War)' LA 촬영 탐방기 12 (LA 시가지 1)

by 김곧글 Kim Godgul 2021. 8. 22. 11:40

2007년에 만든 이미지

 

 

(2007년 9월 5일에 적었던 글을 약간 수정해서 재업)

 

 

토요일, 일요일에 찍었다. LA 시가지는 주말이면 현저하게 행인이 적다. 필자의 숙소에서 15분이면 베이스캠프 주차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일찍 가면 뭐 하나. 예상대로 금방 갔다. 그러나 문제는 주차였다. 서울로 치면 서대문로 근방 널찍한 실외 주차장을 통째로 대여한 셈이다. 서울에 비하면 넓은 편이었지만 LA 여느 주차장에 비하면 좁았다. 베이스캠프는 이미 수많은 디워 관련 인파로 붐볐다. 큰 일이라도 난 걸까? 엑스트라, 판타지 전사들이 북적거렸다. 주차안내요원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주차를 마쳤다.

 


많이 늦지는 않았지만 식당 주변에 심감독을 비롯 주요 스탭들은 보이지 않았다. 워낙에 중요한 장면을 찍는 날이다보니 아침도 거르고 현장에서 촬영 논의를 하고 있을 것이다. 사방을 빙 둘러보면서... 필자는 도너츠와 블랙커피를 천천히 먹었다. 배가 고파서는 아니었다. 맛있기도 했고 루틴이기도 했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 좀더 정확히 말해서 식당에는 엑스트라들이 많았는데 그중 젊은 여자들이, 필자의 눈이 삐었는지 몰라도, 하나 같이 예뻤다. 도너츠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콧구멍으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눈으로는 들어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수많은 예쁜 엑스트라들에게 시선이 고정되었기 때문이다. 분위기 좋다. 물 좋다. 오늘은 절로 힘이 난다.

 


셔틀버스(베이스캠프와 촬영장을 왕복하는 12인승 승합차)를 타고 촬영장소로 향했다. 벌써? 촬영장은 멀지 않았다. 베이스캠프에서 한두 블록 거리였다. 80년대 TV 인기 외화 ‘기동순찰대’를 상기시키는 경찰이 검은 썬글라스를 착용하고 차량 통행을  하려고 모터사이클을 교차로 한복판에 세워놓았다. 그 사이로 당당히 걸어 들어가는 필자, 메이킹용 소형 카메라를 어깨에 맸었기에 통과할 수 있었다.

 


LA에서 영화 촬영현장이 시가지일 경우에는 거의 반드시 모터사이클 경찰이 참석하는 듯했다. 교통을 통제해야 하는 일을 수행해야 할 때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더불어 주로 연출부 막내가 하는 일, 행인을 통제하는 일도 거들어주곤 했다.

 


디워에 참여하기 전 어느 날 필자는 베버리 힐즈 거리를 관광 갔었는데 영화촬영이 소규모로 진행되고 있었다. 단편영화나 CF일 것이다. 많지 않은 행인(아마도 관광객)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지켜봤다. 이탈리아풍 노천 카페에서 남녀배우가 티격태격 언쟁을 하다가 갑자기 키스를 했다. 그 이후 장면은 모른다. 모터사이클을 세워놓고 썬글라스를 낀 멋진 경찰이 유독 필자만을 지목하며 촬영장에 더 이상 접근하지 말라고 경고를 했다. 필자보다 훨씬 더 접근한 백인들도 수두룩했는데 말이다. 본보기였나 보다.

 


LA 시가지 디워 촬영장은 엄청 분주했다. 지금껏 디워 촬영장 중에서 가장 인파로 북적거렸다.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필자도 모르게 목과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우쭐했다. 이렇게 큰 규모의 영화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던 것 같다. 행인들과 엑스트라들이 심감독과 주요 스탭들 사이로 필자를 쳐다본다고 착각할 정도였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런 착각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그들의 머릿속을 열어보면 필자 같은 조무래기 스탭은 안중에도 없다. 그저 배경과 같았다. ‘무슨 영화야? 제목이 뭐래? 남자 주연이 누구야? 여자 주연이 누구야? 감독이 누구야? 저 카메라, 조명 장비 좀 봐! 엄청 비싸겠다!’ 이런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전쟁 났다. 갱스터들이 디워 촬영장에서 마약 살 돈 좀 보태달라고 깽판치러 왔다는 뜻이 아니다. 갱스터들이 아무리 총질을 해도 여러 대의 탱크가 LA 시내 한복판에 진입하는 일은 없다. 믿기 힘들었다. 엊그제 심감독이 필자에게 “LA 시내에 탱크를 데려올 테니까 메이킹 잘 찍어라.” 라고 말했다. 필자는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보냈다. “에이~” 솔직히 농담을 하는 줄 알았다. 설령 탱크가 진짜로 온다고 해도 영화촬영용으로 특수하게 제작된 (카메라에서는 진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잘 티나지 않게 가짜인 것이 분명한) 그럴듯한 탱크가 오겠거니 생각했다.

 


묵직했다. ‘아스팔트가 파헤쳐지지 않을까? 내 알 바 아니지. 내 일당이 까지는 것도 아닌데 뭐.’ 확실히 진짜 전차였다. 실물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내부는 어떨지 몰라도 겉모습만으로 봤을 때는 완전히 진짜 전차였다. 실제 전차를 영화촬영 전용으로 내부만을 개조한 것이 아닐까?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묵직한 강판의 강도가 느껴졌다.

 


쏟아냈다. 내리 쏟아 부었다. 엄청난 폭음과 함께 쏟아 부었다. 전차병이 기관포를 쏴댔다. 탄피를 쏟아냈다. 우산을 들고 탱크 옆에 있으면 재밌는 찰리 채플린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라고 생각했다. 탄티를 기념으로 가져올까라는 생각도 했었다. 줍지는 않았다. 여러 사람 보는데 메이킹 체면이 있지. 차마 탄피를 주워 주머니에 넣는 촌스런 행동을 할 수 없었다. 널부러진 탄피를 치우는 일은 연출부 막내 '아더'같은 스탭이 했다. '아더'는 신났다. 젊어서 그런지 이런 날을 매우 좋아했다. 나중에 안 일이다. 그는 대단히 깐깐한 스타일이었는지 모른다. 간접적으로 들었다.

 


앞에서 말한 독립영화 ‘라스트 이브’에 참여하면서 알게 된 친구가 어찌어찌해서 디워 엑스트라로 지원했었다고 했다. LA에서 활동하는 유학생 출신 한인감독의 에피소드 3개가 합친 중편영화였다. 그때 무보수 스탭으로 참여하면서 친해진 친구였다. 필자와는 달리 멋지고 쿨했다. 이름은 메이슨(Mason). 고등학교부터 미국생활을 했던 그가 엑스트라들이 대기하고 있던 곳에서 겪은 일에 대해서 필자에게 말해주었다. 새파랗게 젊은 녀석(아더를 말함)이 엑스트라들을 대하는 태도, 말투가 재수 없고 아니꼬아서... 참고로 아더는 25살 안팎으로 보였다. 그래서 그냥 돌아갔다고 했다. 아더의 또 다른 면이지만 아쉽게도 필자의 눈으로 직접 본 것은 아니었다. 간혹 길거리를 막으며 행인을 대하는 태도, 엑스트라를 통제하는 행동과 목소리가 절도 있고 힘이 넘쳤다. 어떤이에게는 그것이 과하고 지나치다고 느껴졌을 수도 있다. 아더는 몇 십 년 후 제 2의 조나단을 꿈꾸는 것이었을까? 조나단 조감독에 대한 글은 이전에 올린 글을 참고하면 될 것이다. 어쩌면 윗선에서는 아더를 일을 열정적으로 잘 한다는 관점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쾅! 쾅! 필자의 머리를 치는 소리가 아니다. 필자의 머리를 쳤다면 훨씬 부드러운 소리가 났을 거라고 믿는다. 전차의 대포에서 내뿜는 굉음이었다. 흰 연기와 함께 뿜어냈다. 전방에는 이무기, 괴물, 판타지 전사들이 있을 허공이었다.

 


전차와 장갑차 몇 대가 몰려와서 집중적으로 촬영했다. 누군가의 말대로 옥의 티가 있긴 했다. 바로 전차의 위장 페인트가 사막용이란 점이다. 이렇게 생각해주자. 이무기가 LA에 나타나자마자 급한 나머지 사막용 전차와 장갑차가 황급히 달려왔다고. 불가능한 논리도 아니다. 또는 아스팔트와 대비되는 색상을 선택했다고 볼 수도 있다.

 


며칠 후에 촬영 본을 봤다. 그날은 이미 LA 시내가 아니라 다른 촬영장소였다. 심감독의 현장 트레일러에 CG팀, 동시통역팀 모여서 주말에 LA 시가지에서 찍은 전차씬 촬영본을 봤다.


"우와! 잘 나왔지? 괜찮지? ..."


가장 크게 성대를 울리며 침방울을 분출하며 트레일러 내부를 자신의 바이러스로 채우는 사람은 다름 아닌 심감독이었다. 대개 심감독이 가장 많이 얘기하고 다른 직원은 듣는 편이었다. 하긴 어느 회사를 가도 최고책임자가 분위기를 리드하고 직원은 따라가는 편이긴 하다.

 


그다지 눈치가 없는 편인 필자는 한 마디 발언을 했다. 잘난척 한 번 해보고 튀고 싶은 욕망이 있었나보다. 지금 돌이켜보면 굳이 그럴 필요는 없었다는 생각도 든다. 나름 예리한 관찰력을 뽐내고 싶은 초등학생이 칭찬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다소 과한 발언을 해서 선생님을 당혹케하는 것과 비슷했다고 볼 수 있다.


"전차들이 대포와 기관포를 쏠 때 모두 정지해서 쐈네요. 이동하면서 쐈더라면 더 실감나고 좋았을 텐데요."


심감독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주변 직원들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아주 짧게 필자를 보는 시선이 날카로웠다. 싸늘한 공기... 몇 분 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다들 자신의 일을 찾아갔다.

 


후회했다. 그런 말을 해서 이득될 건 없었는데. 다시 촬영할 수도 없는데 굳이 그런 말을 할 필요가 뭐 있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말할 필요는 없었다. 지금은 필자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이렇게 생각한다. '누가 그런 시시콜콜한 일을 기억이나 하겠어? 아니 필자를 기억하는 사람조차 없을 거야.'

 


전차들, 장갑차들, 군인 복장의 스턴트맨들은 두세 시간 촬영하고 돌아갔다.

 


폭파장면을 찍는 씬이 있었다. 폭파 장면 전문가로 왠지 약장수 같은 인상과 차림새의 아저씨와 그의 조수 서너 명이 있었다. 솔직히 필자가 보기에도 좀 어설퍼 보였다. 참여했던 영화 경력이 화려하지만 할리우드라는 이름을 우러러봐서인지 기대에 못 미쳤다. 하물며 심감독이야 오죽 했을까? 종종 불만을 토로했다. 한국말로 한국 직원들에게 투덜댔다. 그러는 게 정신 건강에 좋았을 것이다. 마음에 꾹꾹 담고만 있었다가는 어느 순간 대폭발을 일으켰을 것이다. 좋은 행동이었다. 한국말로 그랬으니 LA 스텝은 전혀 못 알아 들었을 것이다. 혹시 어투나 표정으로 대충 감은 잡았을지는 모르지만 낸들 아나.

 


폭파 등 특수촬영 전문가 아저씨와 그의 조수(엄청 뚱뚱하고 느린 아저씨다)를 심감독이 썩 만족해하지 않았다. 국내 컴퓨터 기술을 믿기에 참았다. 부족한 부분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매꾸기로 작정하고 참았다. 어느 순간 조나단은 눈치를 까고 심감독에게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다른 스탭으로 바꾸고 싶으면 그렇게 조치를 취해주겠다고 했다. 이런 것도 조나단 조감독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심감독은 그냥 갔다. 이유는 잘 모른다. 뻥튀기 강냉이 굽는 아저씨처럼 생긴 특수촬영 아저씨가 농땡이 부리는 것 같지는 않았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일했다. 심감독이 불만을 토로하면 묵묵히 수용하며 다시 하겠다며 준비했다. 물론 시간이 늘어나면 엄청난 돈이 나가므로 심감독은 국내 CG 팀의 손을 믿기로 하고 넘어갔다. 여기서 심감독의 인간성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매정하지 않았다. 열심히 하는 사람을 실력이 좀 부족하다는 이유로 내팽개칠 정도로 매정하거나 냉혹한 철의 CEO는 아니었다. 이런 면도 LA 현지인 스탭들이 좋게 평가했을 것이다. 또한 수많은 한국 직원들이 심감독을 떠받들 듯이 따르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된다.

 


그렇다고 마냥 맹숭맹숭하고 우유부단한 성격도 아니었다. 자르고 바꿀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을 때는 그렇게 실행했다. 나중에 에피소드가 나온다. 역시 조감독 조나단과 협의해서 그렇게 했다. 조나단의 설명에 의하면, 그 세계에선 간간히 있는 일이고 잘린 스탭도 다른 영화판에 참여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으니 문제될 것은 없다고 했다. LA에는 유니온이라는 노동조합이 노동자 권익을 보호하고 지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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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아래 사진들은 필자가 찍은 사진은 아니다. 디워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은 것이다. 해상도가 좋은 것으로 봐서 필자가 사용했던 PD-150으로 찍은 동영상에서 뽑아낸 사진은 아닌 것 같다. 필자가 추측하기로는 그 당시에 한국인 CG팀 중에 스틸 카메라를 휴대하고 다녔던 직원이 있었는데 그가 찍은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여담이지만 언젠가 그가 필자에게 LA에서 카메라를 구입하기 좋은 곳을 추천해달라고 했었다. 필자는 LA 지리를 잘 몰랐었지만 마침 윗글에서 잠깐 등장했던 ‘메이슨’이라는 한국인 친구가 카메라를 살 건데 같이 가보자고 해서 동행했던 적이 있었다. 그 주변에는 카메라 상점들이 여러 곳 있었다. 필자는 그 CG팀원에게 그곳을 알려줬다. 며칠 후에 그는 그곳에 가서 원했던 카메라를 저렴하게 구입했다며 필자에게 고맙다고 했다. 국내에서보다 얼추 40만원 정도 저렴하게 샀다고 그랬던 것 같다.

 


계속...

 


2007년 9월 5일 (초안)
2021년 8월 22일 (약간 수정) 김곧글(Kim Godgul)

 

 

참고: 아래 사진들은 필자가 찍은 사진은 아닙니다. 인터넷에서 다운받은 사진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