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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아리랑(2012, 김기덕 감독 이야기)

by 김곧글 Kim Godgul 2012. 9. 18. 17:29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전부 본 것은 아니지만 작년에 나온 '아리랑'을 포함해서 한두 편을 빼고 다 봤다. 요 며칠 사이에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으로 유교적인 관념이 깊게 베어있는 수많은 보수적인 한국사람들의 급호감을 받으며 제작된 TV 교양물도 챙겨서 보고 글을 적어본다. 

  

영화 '아리랑(자신이 자신을 찍은 모노드라마 형식)'은 김기덕 감독 개인 자체에 대해서 어느 정도 가늠해볼 수 있는 자리라고 볼 수 있다. 그를 좀더 이해할 수 있는 영화였다. 오두막 같은 곳에서 살아가는 (그렇지만 100미터 전방에 작은 마을이 있기 때문에 완전히 사회와 담을 쌓고 격리되어 사는 것은 아니고) 기인이라는 꼬리표의 관점이 아니라, 과연 저렇게 사는 사람이니까 그렇게 '날고기 같은' 영화를 만들 수 있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참고로 오두막에는 애플 컴퓨터도 있고(아마도 파이널 컷으로 자신의 영화를 편집하는 듯) 인터넷도 하는 것 같다)

  

한편, 필자같은 사람이 그렇게 살 수 있느냐하면 솔직히 자신 없다. 비록 스마트폰도 카카오톡도 사용하지 않지만 그렇게 오두막에서 혼자 살아갈 자신은 없다. 게다가 그곳에는 화장실이 숲속에 들판이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김기덕 감독이 돈이 없어서 그렇게 사는 것은 아니다. 죽을 때까지 아무런 생업을 하지않아도 도스토예프스키나 뭉크처럼 도박으로 낭비하지 않는다면 넉넉히 배부르게 먹고살 수 있는 돈이 있는 것으로 안다.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지금까지 그가 만든 영화는 한국 영화 중에서 해외에 가장 많이 팔렸기 때문이다(이것의 기준은 한 감독이 자신이 만든 모든 영화의 전체 관람수이다). 또한 한국 영화 중에서 가장 많은 국가에서 상영된 것도 기록일 것이다. 

  

  

그가 만든 영화는 서구인, 특히 미국보다 유럽에서 전폭적인 사랑을 받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반드시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대개 보면, 유럽은 미국보다 좀더 예술의 순수성을 생각하는 분위기가 남아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미국에서는 예술의 순수성을 생각하는 사람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좀더 유럽이 그런 측면이 엿보인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영화, 만화, 애니를 살펴보면 바로 고개가 끄덕일 것이다. 비록 보통 한국사람에게는 이질감이 강하게 드는 유럽의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이지만 그것이 미국의 상업적인 성격과는 달리 예술적이라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이다. 향간에 영화를 고를 때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유럽 영화제에서 상 탄 영화는 재미 없고 고리타분해서 보기 싫다." 쉽게 말해서, 헐리우드 영화와 유럽 영화가 다소 다른 느낌인데 그것은 또한 전반적으로 예술을 대하는 보편적인 시선인 것 같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유럽은 미국의 핵심 문화의 조상들의 유적들이 곳곳에 널려있다. 반면 미국 문화의 유적은 기껏해야 300년이면 감지덕지하다. (비록 본래 미국땅의 주인 인디안들의 유적은 매우 오래되었지만 현대 미국의 주류 문화는 유럽의 문화와 형제나 다름없으므로 인디안 문화는 제외하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유럽인들은 현대를 살아도 수많은 고대와 동떨어지지 않은 것 같다. 수많은 세월을 거친 유적들은 예술을 대하는 보편적인 시선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잠시, 영화를 커피라고 생각해 보자. 미국의 커피는 자판기 또는 인스턴트 커피 느낌이 난다면, 유럽의 커피는 커피 기계로 직접 뽑은 커피 느낌이 난다. 지금은 어느 것이 우수한지를 따져보는 토론의 장은 아니므로 - 각각의 커피는 장단점이 있다는 상투적인 결론으로 마무리하고 - 각자 알아서 생각하기로 한다.

  

대부분의 한국 영화 감독들의 영화는 (서구인들의 관점에서) 그들의 커피 기계를 분해해서 자신의 스타일로 조립해서 다른 느낌의 커피를 만든다고 볼 수 있다면, 김기덕 감독의 영화들은 그들의 커피 기계를 분해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고물상, 폐차장, 창고, 쓰레기장을 뒤져서 쇳파이프, 놋쇠, 펌프, 수도꼭지 등을 선별해서 자신만의 커피기계를 조립하고 커피를 만들어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또한 커피를 만드는 물도 대다수 한국 감독들이 사용하는 생수나 수돗물이 아니라, 고물상 주변의 개구리와 들쥐가 숨박꼭질하고 있을 법한 개천에서 떠온 물이다.


이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김기덕표 커피를 싫어하는 것 같고, 다른 감독들의 미끈한 영화에는 매료될 준비를 하고 대하는 것 같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자신들의 커피 기계를 분해해서 재조립한 영화는 그 변형의 한계가 분명히 있고 그들의 영화 역사 110년 이상 동안 비슷한 것을 경험하기도 했기 때문에 칭찬하고 박수칠 지언정 충격의 감탄사를 내뱉지는 않는다.(부연 설명하자면, 이 부류에서 군계일학처럼 독창적인 재능을 인정받는 한국 감독도 있는데, 잘 알다시피, 박찬욱 감독, 봉준호 감독이다.) 그렇지만 김기덕표 커피는 확 깰 정도로 다른 맛을 내는 커피였다고 그들은 생각하는 것 같다.

  

  

그건 그렇고, 영화 장르의 개척자가 꼭 김기덕 감독 영화처럼 찍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돌이켜보면 김기덕 느낌 나게 만든 단편, 장편 영화가 그동안 다른 국내 감독이 만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100이면 100 모두 한 두편으로 끝났다. 즉, 김기덕 감독이 높게 떠받들여지는 이유 중에 중요한 또 다른 하나는 그가 자신의 스타일을 유지하며 여러 편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무릇 화가가 자신의 명성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가 자신만의 스타일을 유지하며 다작을 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일단 예술가에게 많은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다작을 했다는 것도 그가 유럽에서 나날이 높게 평가받는 이유 중에 하나일 것이다.

  

무릇 예술가들은 일단 다작하는 게 좋은 것 같다. 설싸 군중들의 비난을 받더라도 (어떤 현대 예술가가 김기덕 감독만큼 대중들의 시선의 천국과 지옥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겠는가?) 감내하고 계속 작품을 만드는 것 자체를 즐기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생각해보면 어떤 분야든지 노가다(노동)적인 요소들이 반드시 어느 정도 지배하고 있다. 예술도 마찮가지다. 창의력과 재능만으로 작품을 만들 수는 없다. 자신만의 특징적인 무언가를 바탕으로 노가다(돌맹이를 끌며 등산하는 것처럼)를 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좋은 작품을 만드는, 그런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다면, 그것 또한 특별한 행복 중에 행복이고, 늙어서 충분히 가치 있는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다.

  

  

전에도 썼지만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는 기독교적 코드가 은은하게 들어있다. 이점도 유럽인이 그의 영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를 믿어야한다는 뜻이 아니라, 서구인들의 보편적인 의식을 이해하는데 기독교는 중요한 요소라는 뜻이다. 마치 한국 밥상에 김치와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이번에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피에타'에도 여지없이 기독교적 코드가 들어있다.


그렇다고 그의 영화가 기업화된 현대 기독교를 옹호하는 내용은 아니다. 기독교의 근본적이고 원론적인 (자본주의에 녹아있지 않은) 순수한 교리(이것은 전 세계의 유명한 다른 종교와도 일맥상통한다)라는 점이다. 예를 들면, 구원, 자비, 무자비한 폭력(때때로 신은 인간을 무자비하게 대한다), 사랑 ...

  

누군가는 이렇게 의문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불교를 다뤘잖은가?


깊게 들어가고 들어가면 기독교나 불교나 근본적으로는 한 곳을 가리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해하기 불가능한 인간의 수없이 다양한 삶을 위로해주고 감내하도록 도와주는 측면에서 말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 젊은 중(김기덕 분)이 돌멩이를 끌고 높은 산에 올라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영화 미션(Mission, 1986)에서 로버트 드 니로가 시기와 질투로 인해 살인이라는 죄를 짓게 만든 칼과 철갑옷을 끌고 가파른 산을 오르는 장면은 다소 다른 의미가 담겨있긴 하지만, 종교의 근본적인 것을 생각하면, 전능한 존재에게 구원, 자비, 사랑을 기원하는 인간적인 욕망의 표현이며 고통을 감내하며 기도(여러 종교의 넓은 의미로서의 기도를 말함)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불교가 유럽인과 미국인에게 그리 낯선 종교는 아니다. 수많은 서구인들이 불교에 관심이 많다. 불교를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다룬 유럽과 미국의 영화가 적지 않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오히려, 중국, 한국, 일본에 짙게 깔려있는 유교는 상대적으로 그들에게 덜 익숙한 편이다. 똑같지는 않지만 '기사도' 같은 비슷한 것이 서구문명에도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국 영화 중에 미국에서 가장 많은 관객을 모은 영화는 다름 아닌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다. 그 영화가 소규모 극장들에서 장기상영될 수 있었던 요인 중에 하나는 당시에 미국에서 (지금도 그렇지만) 요가 열풍이 불고 있었다. 불교와 관련이 깊은 요가에 빠져든 미국의 중산층에게 태평양을 건너 온 이색적이고 신선하고 생고기 같은 불교 영화는 매력적이고 의미심장에게 감상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당시에 비슷한 느낌의 개봉작이 없었다.

  

결론적으로,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 깔려있는 기독교, 불교는 서구인들에게 매우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는 얘기다.   

  

  

김기덕 감독이 오두막 심지어는 움막 같은 곳에서 자연인처럼 기거하고 공식 석상에 양복 또는 세련된 캐주얼을 입지 않고 누더기 패션(미국으로 치면 그런지)을 입는 것도 서구인들의 시선에는 흥미롭고 매력적이게 비춰질 수 있다. (국내에서는 이런 느낌이 통하지 않는 편이다) 

  

그 이유는 서구인들의 조상들은 동양인들의 조상보다 더 오래동안 사냥을 했고 육식을 했고 이 땅 저 땅을 옮겨다녔다. 그들에게 숲에서 문명의 이기를 떠나 살아보는 소위 야영(주차장도 있고 전기도 들어오는 갖춰진 캠핑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정글의 법칙 같은 스타일)은 우리 쪽과 비교하자면 마치 도시의 어린 학생들이 농촌체험 또는 청학동 같은 곳에서 지내는 것처럼 많이 행해지는 편이다. 그리고 두 차례의 큰 전쟁을 치른 유럽 현대인의 내면심리에는 언제 어떤 불상사가 닥쳐왔을 때 당황하지 말고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을 미리 체험해보는 것도 있다.


아무튼 이러한 서구인들의 관점에서 김기덕 감독이 움막에서 지내고 꼬지지한 의상과 신발을 착용하고 지내는 모습은 지금까지 그가 만든 수많은 영화의 스타일과 일맥상통하는 요소도 있고 매력적으로 비춰진다고 볼 수 있다.

  

  

영화인이 김기덕 감독 스타일을 따라가야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것은 그냥 그의 삶이고 그의 인생관이고 그의 날 것이다. 칭찬받을만한 것은 그런 그것이 그러는 척 하는 게 아니라 생생하고 파릇파릇한 날 것 그대로라는 점이다. 누군가 어떤 예술가도 생생한 자신만의 무엇을 표현할 수 있다면 그 뜻은 여러 사람과 통할 수 있을 것이다. 쉽게 말해서, 패리스 힐튼, 레이디 가가도 자신만의 생생한 날 것 같은 것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자신의 본래 모습과는 정반대 스타일이 대중과 잘 통할 수도 있다. 그런 것을 보면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인생이 그렇듯 자신의 이미지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앞으로는 김기덕 감독의 이전 작품처럼 강렬한 것은 없을 수도 있다. 세월도 흘렀고 다소 매끄럽게 표현하는 작품이 나올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상할 것은 없다. 현재 그의 삶이 세상과 어느 정도 소통하고, 누군가에게 예술적 재능에 대한 열등감을 상기시켜주는 원인제공자가 될 수는 있어도 본인 스스로 자괴감에 빠져들었던 학벌, 불우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열등감은 어느 덧 아련한 추억담으로 여길 수 있을 만큼 그의 삶과 명성이 풍족하고 넉넉해졌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의 과거 영화 같은 전율적으로 칙칙하고 강렬한 스타일은 다른 후배 감독들이 만들지도 모른다.  



2012년 9월 18일 김곧글(Kim Godgul)

  

  

여담이지만, 최근에 필자의 마음 속에 어떤 진동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앞 글에 적었던 싸이의 큰 흥행 때문이 아니라(개인적으로 노래 잘 하는 여가수를 훨씬 더 좋아한다), 김기덕 감독의 재발견 때문이다. 그의 셀프영화 '아리랑', 그의 개인적인 생활을 조망하는 최근의 교양프로들이 나에게 어떤 진동을 주었다(물론, 이전부터 그의 영화에 대한 어떤 느낌이 잠들어 있었다). 오래 전에 시도했다가 멈췄던 영화를 만드는 것을 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를 멈췄기때문에 이 블로그에 올린 곧글, 톨글을 만들 수 있었다) 상업영화가 아니라 단편영화부터 찍어야겠다. 아무래도 내 취향이 베어있을수밖에 없을텐데, 그 중에 하나가 섹시하고 매혹적인 여성일 것이다. 몇 년이 걸릴 수도 있겠지만 만들고 싶다는 욕망이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