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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칼럼, 단편

[시] 한여름의 축배 (A Toast In The Middle Of Summer)

by 김곧글 Kim Godgul 2018. 8. 16. 00:47




한여름의 축배

(A Toast In The Middle Of Summer)



쩌렁쩌렁하게 녹음(綠陰)을 파헤치며 몰려오는
    매미 울음의 격렬한 파도가
휘몰아치고 가라앉는 한여름의
    오케스트라 서라운드로 파열되는 곳에서
아직 이른 새벽의 축축한 습기가
    생기발랄하게 꿈틀거려 이슬을 들어 올리는데
눈곱이 남아있어 쨍쨍하게 바라보지 못하는
    저 높은 햇살의 자외선이
수풀 속으로 다이빙하여 익숙하거나 낯설게
    지저귀는 다종 새들의 쾌활한 읊조림을
온통 휘저어서 포말을 반죽하여
    맛있는 시상(詩想)을 만드는구나!



창백한 거인의 시선이 망라하는 지천을 휘청거리며
    내달리는 아지랑이의 진한 취기는
까칠한 미소를 무분별하게 방사하는
    꽃향기를 목마 태워 냅다 질주하더니
목젖 뒤에 숨은 요사스런 사이렌의 노래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적막하고 습한 심연에 수면 중인 심장의 영혼에게 다가가
손아귀에 내려앉을 듯 날아갈 듯 근거리 원거리에 떠다니는
    공허함이여, 지루함이여, 무념무상이여, 옹기종기 집회시켜
안절부절 못하는 안락한 부동의 구름 위에 탑승하여
    이리 휘청 저리 휘청 표류하는 초승달과 축배를 나눈다.



어둠을 관통하여 밝음으로 날아 들어온 딱정벌레가
    천장에 매달려 부여잡은 반짝거리는 별이 야광 스티커임을 깨닫고
밝음에서 어둠으로 퇴거하는 중에 모기와 맞닥뜨려 말했다
    “이 집구석에는 눈부시게 달콤한 로맨스가 없다네.”
모기는 감속하지 않고 뒤돌아보며 기다란 주둥이를 오물거려서
    “나하곤 전혀 상관없는 일이거든.”
라고 말하고 천장의 야광 스티커에 달라붙어 강렬하게 빛나기를 기다리는데
    느닷없이 스프레이가 뿌려져 의식을 잃고 추락해버린다
다음날 새벽에 딱정벌레가 모기를 발견하여 측은하게 저승길을 배웅하는데
    모기의 기다란 주둥이가 마지막으로 꿈틀거렸다.
    “자네 말마따나 달콤한 로맨스는 없더군.”



2018년 8월 16일 김곧글(Kim Godg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