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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칼럼, 단편

[시] 조각배

by 김곧글 Kim Godgul 2019. 1. 1. 15:20



조각배


어두운 먼 과거에서 기나긴 여정을 거친 별빛처럼
차가운 기운을 안고 휘몰아치는 비바람을 타고
앙상한 나뭇가지로 엮어 만든 조각배가
무한한 대양을 항해한다.


푹신하고 반투명한 이불을 들락날락하는 달무리가
물고기를 유혹하여 조각배 주위로 몰려들게 해서
오랜 출렁임의 운항에 의한 두통과 복통으로 속이 비워진 조각배
그 속에 조용히 잠자는 소녀의 허기를 달래준다.


팔딱거리는 물고기를 꽉 움켜쥐며 움찔하는 소녀의 두 손
불안과 공허감이 혼재하는 웅덩이에 생기라는 동심원이 퍼지는 소녀의 두 눈
오랜 학식으로 채득한 지식의 눈이 감겨진 짧은 순간
원초적 본능의 눈이 총명하게 빛나는 찰나 동안


물고기의 육체는 소녀의 생명력으로,
시큼하고 짠 비린내는 달콤하고 고소한 감칠맛으로,
별빛과 달빛이 채색해준 물고기의 붉은 피는 성스런 포도주로,
승화된다. 아름답게 승화된다.


포만감에 벌러덩 드러누운 소녀.
은하수를 가로질러 새하얀 함박눈이 쏟아져 내린다.
눈송이는 소녀의 혓바닥에 내려앉아 승화된다. 아름답게 승화된다.
과즙의 맛으로, 생명력의 열매의 맛으로.
그리고 소녀는 은하수 저편에서 새로운 형상을 발견한다.
생명력의 나무
(훗날 사람들은 ‘생명력의 나무 별자리‘라고 부른다)


소녀는 무심결에 허공으로 손을 뻗었을 뿐인데
달콤한 촉감의 열매가 붙잡힌다.
그 열매는 물고기처럼 소녀의 생명력으로 승화된다. 아름답게 승화된다.


무한히 깊은 칠흑의 밤에 일말의 찬란한 생명력의 빛을 쬐며
소녀를 태운 조각배는 눈보라를 헤집고 유유히 항해한다.



2019년 1월 1일 김곧글(Kim Godgul)


ps. 이 시는 매우 즉흥적으로 쓴 시일 뿐입니다.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