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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칼럼, 단편

[SF단편] 무중력 아기 (Zero Gravity Baby)

by 김곧글 Kim Godgul 2021. 7. 17. 17:01

 

 


필자가 어렸을 때는 서기 2000년이 되면 달에 있는 호텔에 수학여행을 갈 수 있을 거라고 예견했었다. 서기 2021년 현재 아직도 이것이 실현되려면 한참 기다려야 할 듯하다. 아마도 22세기(2100년대)가 되어야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특수한 일부 사람들은 21세기에 달에 들락거릴 수 있을 테지만 수많은 일반인이 그저 관광 차원으로 달에 가려면 22세기나 되어야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명한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제작될 당시(1968년)에는 서기 2001년에 어느 정도 실현될 가능성이 있는 미래를 예견했는데 실제로 이뤄진 것은 일상용 전자제품 같은 것 뿐이다. 아마도 22세기가 되어야 영화의 전반적인 것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예를 들어 달에 장기적으로 거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목성으로 유인 우주선이 발진하는 등등...

 


아무튼, 최근에 초거대 기업체에서 마침내 민간우주여행 시대를 현실화하고 있다. 수년 후에는 적어도 지구 대기권에서 무중력을 경험하는 정도의 우주여행을 수많은 일반인이 체험할 수 있는 시대가 될 것이다. 정말 돈이 많아서 쓸 데가 없는 사람일수록 빨리 체험할 것이다. 지금은 소수인원만 우주여행을 할 수 있지만 머지않아 여러 승객이 탑승하는 여객기 수준의 우주선을 타고 우주여행을 떠날 것이다. 이렇게 우주여행을 해보는 일반인이 들어나기 시작하는 그 시기에 어떤 특이한 사건이 발생했다.

 


어떤 젊은 여인이 자신의 몸 상태를 교묘히 속이고 승선해서 무중력 상태에 도달했을 때 아기를 낳은 것이다. 승무원들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일단 아기를 건강히 낳는 것을 도왔다. 무중력 상태에서 낳은 아기와 젊은 여인은 짧은 우주여행을 마치고 무사히 지구로 귀환했다. 얼마 후 젊은 여인은 어마어마한 벌금을 물게 되었지만, 익명의 기부자들의 도움으로 해결되었다.

 


어떻게 그런 일을 저지르게 되었냐는 미디어 기자의 질문에 무중력 상태에서 아기를 낳은 젊은 여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어느 날 꿈에서 천사가 나타나 아기를 줄 테니 반드시 무중력 상태에서 낳아야 한다고 말했어요. 저는 풀이 죽어 한숨을 내쉬었지요. '저는 임시 계약직을 하고 있고 월세 내기도 빠듯하게 살아가고 있고 보시다시피 못 생긴 축에 들어서 남자 친구도 없는 하찮은 독신 처녀인데 무슨 수로 우주여행 티켓을 구입하겠습니까?' 라고 말했더니 천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알겠다. 조치를 취해줄테니 너는 내가 지시한 대로 실행하기만 하거라’라고 말하고 커다란 하얀 날개를 퍼득이며 구름을 뚫고 내려온 빛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구입했던 로또 복권이 1등으로 당첨되어서 천사의 지시가 거짓이 아니란 것을 확신했습니다. 며칠 후 여러 메이커의 임신테스트기로 테스트해봤더니 모두 양성이 나왔구요. 그래서 천사의 지시를 따랐습니다.” 이를 들은 수많은 사람들은 그녀가 두뇌에 문제가 생겨서 정신착란에 빠져있다고 생각하며 더 심한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하루속히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도록 해야 한다고 토로했다.

 


다행히 아기는 건강하게 성장했다. 사람들은 인류 최초로 무중력 상태에서 태어난 아기를 ‘무중력 아기’라고 불렀다. 저명한 과학자들은 미디어에 출연해 소견을 내놓았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무중력 상태에 있었고 곧바로 지상으로 내려왔기 때문에 아기의 건강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얼마 후 건강히 잘 자라던 무중력 아기에게 사소한 특이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보통 인간보다 신체 성장 속도가 느렸다. 동년의 아기들이 5살이 되었을 때 무중력 아기는 1살로밖에 성장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전 세계의 수많은 1살 아기의 평균 신체와 대동소이했기 때문이다.

 


어떤 과학자는 이것이 단지 희귀 유전병의 변형이라고 주장했다. 처음에 사람들은 그 과학자의 말을 신뢰했다. 그런데 무중력 아기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여느 유전병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매우 건강한 신체를 지녔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순전히 나이를 늦게 먹는다는 점만 달랐을 뿐 보통 인간과 완전히 똑같았다. 지금까지 알려진 유전병이 아니었다.

 


무중력 아기는 해를 거듭할수록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수많은 일반 우주여행객들이 자신도 무중력 체험을 하면서 아기를 낳겠다고 온갖 시도를 했지만 이미 경비가 삼엄하게 강화되어 더 이상 아무도 무중력 상태에서 아기를 낳을 수 없었다. 현시점에서 유일한 무중력 아기가 성장하면서 어떻게 될지 좀더 지켜보고 나서 허용하겠다는 발표만을 내놓을 뿐이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무중력 상태에서 태어난 아기는 어느 덧 10살이 되었다. 같은 날 태어난 동년배들은 50살이 된 셈이다. 50살이라고 해도 부유한 자들은 첨단 과학의 혜택으로 비교적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무중력 아기의 10살 신체만큼 생생하고 팔팔하지는 않았다.

 


어떤 과학자는 무중력 아기를 연구하면 인간의 수명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신약을 개발할 수 있을 거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무중력 아기는 자신이 연구 대상이 되는 것을 거부했다. 대중들의 관심이 부담스러웠던 것일까? 무중력 아기는 홀연히 대중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수많은 소문이 떠돌았지만 정말로 무중력 아기를 만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떤 과학자는 무중력 아기가 마침내 특이한 질환이 나타나서 머지않아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서 (조용히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려고)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주장은 5년 후에 거짓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누군가 따로 밝혀낸 것이 아니다. 무중력 아기가 다시 미디어의 레이더에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인간 세계에서는 5년이 흐른 시점이었고 그의 신체 나이는 11살이었다. 아주 건강했다. 아니 지나치게 건강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미스터리한 사건이 발생한 것은 아니다. 다만 전 세계가 주목할 만한 특이한 사건을 저질렀다.

 


어느 날 무중력 아기는 우주여행을 떠나는 여객기가 출발하기 직전에 하이잭킹(Hijacking)을 했다. 그는 여러 명의 부유층 또는 졸부 승객의 몸값으로 특별한 것을 요구했다. 달러나 금괴나 암호화폐를 요구한 것이 아니다. 단지 그가 동행한 임신한 여인이 무중력 상태에서 아기를 낳을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뿐이었다. 오로지 그뿐이었다. 우주여행업체의 사설경비업체에서는 어쩔 수 없이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다소 부정한 방법이지만 무중력 상태에서 두 번째 아기가 태어난 것이다. 우주여행을 마친 우주선 여객기는 무사히 착륙했다. 11살 무중력 아기는 또 한 명의 무중력 아기를 가슴에 끌어안고 기뻐하는 표정을 지으며 당당히 경찰의 체포를 받아들였다. 그때 찍힌 사진은 그해 타임즈(Times) 최고의 표지 사진이 되었다. 어떤 미디어 기자가 11살 무중력 아기와 짧은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이를 지켜본 사람들은 경악과 실소를 동시에 내뱉었다. 그가 기이한 말을 했기 때문이다.

 


11살 무중력 아기는 새로 태어난 무중력 아기를 끌어안고 키스하며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여러 분과 다른 종족의 인류입니다. 마치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이 다른 것처럼 말이죠. 저는 이 지구에 출연한 새로운 인류의 '아담'입니다. (안고 있는 무중력 아기를 가리키며) 이 아이는 '이브'입니다. 이제 저는 신인류인 저의 종족을 지구상에 널리 전파하라는 신의 뜻을 실행하려 합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에 의하면 11살 무중력 아기는 자신의 신체의 일부를 사용하여 대리모를 통해서 자신의 복제인간(성별만 여자)를 낳은 것이다. 즉 임신했던 여자는 그의 정부인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실소를 하며 말했다. “11살 무중력 아기를 낳은 여자도 현생 인류이고, 어린 무중력 아기를 낳은 여자도 현생 인류인데 뭐가 신 인류라는 거야? 이 무슨 개소리지? 정신이 어떻게 된 거 아냐?”

 


이에 대해 11살 무중력 아기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마도 어떤 능력 있는 조직이 그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썰이 신빙성이 있다는 듯이, 우주여행 여객기를 하이잭킹한 혐의로 감옥에 구금되어 있던 11살 무중력 아기는 대리모를 통해서 낳은 자신의 여자 복제인간 무중력 아기와 함께 합법적으로 석방되었다. 그리고 미디어의 레이더에서 사라졌다. 이번에는 정말로 더 이상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모습을 들어내지 않았다. 정말 그의 주장대로 지구상에 새로운 인류가 그렇게 시작되는 것일까?

 


과학적으로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며 미디어에서도 한동안 떠들썩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대중들의 관심에서도 잊혀졌다. 단지, 무중력 아기와 그의 후손을 찾아 전 세계를 게임하듯이 탐사하는 골수 매니아들이 몇몇 있을 뿐이었다. 그들 중에 일부는 무중력 아기가 사실은 외계인과 인간 사이에 태어난 이종교배 자식이라고 주장했지만 이것에 진심으로 관심 갖는 사람은 그들의 커뮤니티에서도 소수 인원에 불과했다. 이들 커뮤니티와는 별개로 사이비 종교가 등장하기도 했다. 무중력 아기가 '메시아', '재림한 예수'라고 믿는 사이비 종교가 전 세계에 걸쳐 교세를 확장해 나갔다. 그러나 실제로 무중력 아기는 그 어느 곳에서도 모습을 들어내지 않았다.

 


2021년 7월 17일 김곧글(Kim Godg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