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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칼럼, 단편

[단편] 변신(Transformation or Metamorphosis)

by 김곧글 Kim Godgul 2020. 2. 10. 21:31

TRANSFORMATION

 

변신(Transformation or Metamorphosis)

 

 

 

어느 날 문뜩 깨어나 보니 자신이 한 남자가 되어 있는 것을 깨달았다. 몇 달간의 풍요로운 포식 생활을 마친 바퀴벌레는 꽤 오랫동안 잠들었다가 방금 전 깨어나 보니 자신이 인간이 되어 있던 것이다.

 

 

음침하고 칙칙하고 구수한 곰팡이 냄새가 은은하게 풍겨오는 이 아파트로 원정을 와서 정착한 것은 6개월 전이었다. 바퀴벌레는 이곳에 미리 머물고 있던 몸집이 작은 동족을 몰아내고 더불어 개미녀석들, 쥐며느리, 설레벌이도 쫓아냈다. 마침내 이 넓은 에덴의 땅을 홀로 차지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번식을 하고 자손을 널리 번창하겠다고 마음먹었었다.

 

 

나름대로 차근차근 인생 목표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아파트의 집주인이 어느 날 이상한 알약을 한가득 입속에 쳐놓고 잠자더니 침대에 벌러덩 자빠져서 며칠이 지나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바퀴벌레는 가끔 그 남자의 머리카락을 톡톡 건드려 봤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 그의 몸에서는 아주 구수한 썩는 냄새가 풍겼다. 바퀴벌레는 하늘에서 떨어뜨려준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며 하루하루 야금야금 먹었다.

 

 

바퀴벌레는 마냥 맛있게 먹다가 자다가 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몰랐다. 그런데 오늘 잠에서 깨어나서 머리가 어지러워 어두운 구석으로 들어가서 좀 더 쉬려고 몸을 움직이려는데 왜 그렇게 몸이 무거운지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눈을 비비고 자신의 몸둥이를 돌아봤는데... 이런! 자신이 평소 그렇게도 경멸했던 더러운 인간이 되어있던 것이었다.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정신을 차리려고 천장으로 올라가려고 시도했다가 방바닥에 머리를 부딪쳐 고통을 느끼기만 했다. 이 정도의 충격에 고통을 느끼는 것을 보니 확실히 자신이 인간이 되었다고 느끼자 슬퍼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일단 두고보자고 생각했다. 어쩌면 일시적인 환상일 수도 있었다. 자신이 너무도 맛있게 썩은 인간의 육체를 오랫동안 먹다보니 잠시 환상을 느끼는 거라고 위로했다.

 

 

바퀴벌레는 잠시 인간으로 생활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에 대해서 알아두면 그들의 화생방공격을 재빨리 피할 수도 있고 별 희한한 지뢰들을 미리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주변을 돌아봤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이 집의 주인은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인 것 같았다. 방안에 온통 책꽂이 책들이 가득했다. 책을 꺼내서 펼쳤다. 한 두 글자를 읽는데 쑥쑥 들어왔다. 아마도 이 집의 주인의 몸이 되어서 별 무리 없이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읽다보니 재미도 있었다. 그렇지 않고 마땅히 다른 할 일도 없었다. 책이나 읽었다.

 

 

가끔 배가 고파서 냉장고를 열어봤더니 냉동식품들이 조금 있었다. 일단 녹여서 먹으려고 했는데 예전에 바퀴벌레였을 때는 좋아했을 구수한 썩은 냄새가 지금은 너무 역겨웠다. 그냥 관두고 다시 책을 읽었다. 은근히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읽다보니 인간이란 놈들은 정말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기적이고, 오만하고, 야비하고 잔인하기까지 했다. 그들이 적어 놓은 책은 온갖 그런 것들을 이용하여 교묘하게 같은 인간을 속이는 방법들이 줄기차게 써져있었다. 대부분이 그런 책이었다. 나도 전에 바퀴벌레였을 때 나보다 약한 놈들을 무력으로 제압했지만, 그들은 옆집이나 더 좋은 다른 곳에서 잘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들은 다른 인간을 자신들의 밑에 놓고 그들에게 행복하다 행복하다 쇠뇌를 시키고 순응시킨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상위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엄청난 호강을 하면서 즐기며 산다.

 

 

인간이 쓴 책에 다 그런 내용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단지 이 방에 있는 책들은 대부분 그런 내용이었다. 간혹 좋은 말들이 적혀 있는 책들이 몇 권 있기는 한데 구석에 쳐박혀 있고 한번도 건드린 흔적도 없는 새 책이었다.

 

 

바퀴벌레는 다시 바퀴벌레로 돌아가기만을 고대했다. 그렇지 않아도 역겨운 인간의 역겨운 생각들을 알게 되고 보니 다시 바퀴벌레로 돌아간다면 그냥 쓰레기장을 찾아가서 그곳에서 살겠다고 다짐했다. 인간의 집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바퀴벌레는 우연히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봤다. 머리는 헝클어져 있고 얼굴은 생기가 없고 창백했으며, 눈빛은 푸르댕댕했고, 수염이 지저분하게 삐죽삐죽 나 있었고, 목에는 때가 더덕더덕 붙어 있었다. 그리고 진짜 금으로 된 목걸이를 차고 있었다. 몸뚱아리는 드럼통보다는 낫지만 언젠가 TV에서 봤던 사람들보다는 월등히 보기 흉했다. 나이는 좀 들어 보였지만 얼굴과 몸뚱아리의 나이가 일치하지 않아서 바퀴벌레로서는 확실히 가늠할 수 없었다.

 

 

인간이 된 바퀴벌레는 심심해서 TV를 켰다. 마침 뉴스가 나왔다. 예전에는 그림만을 봤었고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는데 지금은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아들을 수 있게 됐다.

 

 

TV에서는 전부 거짓말만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여러 곳을 돌아다녀 봤지만 TV에서 봤던 그런 것들은 별로 없었다고 생각했다. 마침 뉴스 시간이 되었는지 뉴스가 나왔다. 그리고 어떤 유명한 누군가 실종이 됐다며 사진을 보여줬다. 바퀴벌레가 자세히 살펴봤더니 현재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았다.

 

 

 

 

2004년 (초고)

2020년 2월 10일 (2고)

김곧글(Kim Godgul)

 

 

 

PS: 왠만한 사람은 예상했듯이 '카프카(Kafka)'의

'변신(Die Verwandlung)'을 읽고 2004년 경에 써본 습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