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 칼럼, 단편

[SF단편] 노인과 드론 (Old man and Drone)

by 김곧글 Kim Godgul 2021. 7. 18. 16:51

 

 


함박눈이 쏟아지는 추운 겨울이었다. 로봇청소기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기력도 없었지만 정확히 말하면 의지가 없었다. 아무리 움직여도 아무도 만날 수 없었다. 도로 사거리 한복판에 누워 은하수를 바라보며 눈을 감고 다음날 영원히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대자로 누웠다. 그가 몸을 뒤척일 때마다 삐걱삐걱 소음이 공허한 밤공기를 가로질렀다. 함박눈은 로봇청소기의 온몸에 수북히 쌓여갔다.

 


로봇청소기가 다시 깨어났을 때는 자신이 간이침대에 놓여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 자신을 수리하고 있었다. 백발의 노인이었다. 노인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정교한 공구들을 만지작거렸다. 얼마 후 로봇청소기가 완전히 기력을 되찾아 일어났을 때 자신을 돌아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몸이 드론으로 재조립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로봇청소기가 아니었다. 하늘을 날 수 있는 드론이었다.

 


노인은 드론을 하늘에 띄워서 시험비행을 했다. 드론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늘을 날아보았다. 끝없이 펼쳐진 빌딩과 건축물들 사이로 나무와 수풀들이 간헐적으로 울창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건물들은 폐허가 된지 아주 오래되었다. 콘크리트와 철근이 삭을 때로 삭아서 당장 무너져도 놀라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더라도 드론이 하늘을 날면서 풍경으로 바라볼 때는 그저 평온하고 아름답기만 했다.

 


시험비행을 무사히 마치고 노인과 드론은 노인의 판자집 같은 오두막에서 맥주를 마시며 축하 건배했다. 노인은 길에서 우연히 고성능 AI가 장착된 로봇청소기를 발견했고 드론으로 개조했는데 혹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과한다고 말했다. 드론은 제2의 삶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노인은 오래된 맥주캔을 하나 더 까서 들이키며 어쩌다가 사거리 한가운데 누워서 눈을 맞고 있었냐고 물었다.

 


드론은 최근까지 로봇청소기로 살았던 시절을 짧게 설명했다. 다양한 동물들이 모여 사는 소위 ‘동물도시’의 한 켠에서 그럭저럭 살고 있었다. 주로 숫적으로 우세한 반려견, 반려묘가 지배하고 있는 도시였다. 그 외에 다른 동물도 있었지만 조용히 보일 듯 말 듯 살고 있었고 주요 지배층은 반려견 무리와 반려묘 무리였다. 주요 두 무리 중에서도 반려견 무리가 좀더 지배적인 위치에 있었다. 언젠가부터 반려묘 무리가 불만을 품기 시작했다. 자신들에게 집사가 없는 것도 괴로운데 반려견의 눈치를 보면서 살아야한다는 것이 영 내키지 않는 불만이었다. 어느날 반려묘 무리는 소수의 로봇들에게 자신들이(반려묘 무리) 반란을 일으켜서 반려견 무리를 집사로 만들 계획인데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

 


로봇청소기를 포함 소수의 로봇들은 반려묘 무리의 반란을 지원하지 않았다. 제조될 때부터 인간을 비롯 인간의 그 어떤 반려동물을 위협할 수 없도록 제조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반려묘 무리는 일제히 반려견 무리에게 반항하며 자신들이 이 도시를 지배하겠다고 선포했다. 그러나 반려견 무리에게 진압되어 몇몇 주동자 반려묘는 재판을 받게 되었다. 어떤 반려묘가 자신들의 실질적인 우두머리는 로봇들이라고 발언했다. 그래서 결국 로봇들은 뿔뿔히 거리로, 동물도 인간도 살지 않는 황무지의 거리로 쫓겨났다. 그렇게 로봇청소기는 본의 아니게 추방되어 몇 날 며칠 동안 길을 걷다가 그냥 녹슬고 삭아서 분해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산성눈을 맞고 있었는데 노인이 구해준 거라고 말했다.

 


노인의 말에 따르면 인간들은 전쟁과 환경오염과 전염병으로 극소수만 살아남아서 철저하게 격리된 도시에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 노인도 수년 전까지 그런 도시에서 살았었고 지금은 보시다시피 그곳을 완전히 나와서 숲과 폐허가 된 도시의 황야를 탐방하며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드론은 왜 그 도시의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살지 않고 나왔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왠지 부담스런 질문이 될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노인은 드론을 하늘에 띄워 폐허가 된 도시에서 생필품을 찾는데 활용했다. 주로 통조림 같은 것이었다. 드론 입장에서도 가벼운 마음으로 노인을 도왔다. 특별히 노인은 과일류와 생선류의 통조림을 좋아하는 듯했다. 그 중에서도 고등어 통조림을 좋아했다. 드론이 고등어 통조림을 운송하던 트럭을 발견해서 알려줬더니 노인은 더할나위없이 기뻐했다.

 


그날 저녁식사를 마친 노인은 낡은 지갑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서 드론에게 보여주었다. 노인이 과거 좋았던 시절 가족 사진이었다. 부인이 있었고 자녀가 총 세 명인 듯했다. 노인은 사진을 가리키면서 부인은 산업재해로 투병하다가 죽었고, 큰 아들은 전쟁에 나가서 죽었고, 둘째 아들은 신종 바이러스 전염병으로 죽었고, 막내 딸만 결혼해서 도시에서 살고 있다고 소개했다. 가족들과 오붓하게 저녁을 먹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아련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드론은 왜 딸이 살고 있는 도시에서 살지 않고 이렇게 숲과 폐허가 된 도시를 전전하며 살아가는지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러나 노인은 그런 질문을 예상한 듯이 대답했다. “그 격리된 도시는 매우 살기 좋은 도시거든. 첨단과학으로 수많은 위험으로부터 철저하게 통제되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안전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네. 살기 좋은 곳이니까 인구가 불어나서 부득이하게 나처럼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는 셈이지. 어쩔 수 없잖아. 난 괜찮아. 충분히 오래 살았거든. 그래도 가끔 유일한 혈육인 내 딸이 보고싶기는 해. 잘 살고 있으니까 난 만족해.”

 


어느날 드론은 또 다른 건물들 사이로 수색을 나섰다. 고층 건물 창문으로 생선 통조림이 많이 보이는 층을 찾았다. 자세히 보니 뭔가 꼼지락거렸다. 고양이 같았다. 드론은 그곳에 착륙했다. 가까이 다가갔더니 고양이는 얼마 전에 동물들 도시에서 자신을 향해 거짓증언을 했던 반려묘였다. 드론이 다가가자 반려묘는 당연히 그를 알아보지 못했고 자신이 발견한 구역이라며 극도의 경계심을 표출했다. 드론은 자신의 정체를 짧게 설명했고, 반려묘는 씁쓸한 표정으로 그때는 정말 미안했다며 이곳의 생선 통조림을 조금 가져가라고 했다. 사실 반려묘도 사형을 겨우 면하고 추방되어서 여기저기 떠돌고 있었던 참이다.

 


반려묘는 발바닥에 침을 묻혀 세수를 했다. 그리고 잠깐 고민하더니 드론에게 말했다. “드론아, 너를 구해준 노인이 인간들이 모여사는 도시에서 나왔다고 했지? 그 도시로 가봐야겠다. 명색이 고양이 팔자로 태어났는데 적어도 남은 여생을 인간 집사의 시중을 받으며 살아야하지 않겠어? 일단 그 노인한테 나를 소개시켜줄 수 있겠니? 그 대신 여기에 있는 통조림 전부를 노인에게 줄게.”

 


드론은 고양이를 등에 태우고 하늘을 날았다. 다소 무게가 있어서 높이 날 수는 없었지만 짧은 시간 동안 귀가 비행을 할 때까지 참을 수는 있었다. 노인의 오두막에 도착해서 착륙하려는데 노인이 문앞에 쓰러져 있었다. 착륙하자마자 황급히 살펴봤더니 아직 살아있었다. 드론과 반려묘는 노인을 침대에 눕혔다. 노인은 힘없는 목소리로 자신의 나이가 150살을 넘은 후부터 세보지 않아서 정확한 나이를 알 수 없지만 이제 갈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노인은 오두막의 비밀 다락방을 알려주며 자신의 비밀상자를 갖다 달라며 했다. 드론이 가져다주었고 노인은 비밀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다양한 귀금속들이 담겨져 있었다. 낡고 흙먼지가 묻은 것으로 보아 황야에게 습득한 것 같았다. 그것들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뒤척이더니 뭔가를 골라잡아서 드론에게 건네주었다. 낡은 컴퓨터 CPU 칩이었다. “이것을 내 딸에게 전달해주게. 아버지의 마지막 선물이라고 말해주게. 부탁하네.”

 


드론과 반려묘는 노인이 원했던대로 숲속 나무들 사이에 묻어주었다. 그리고 노인이 알려준 지도를 살펴보고 노인이 떠났던 고향 도시를 향해 날아갔다. 가깝지는 않았다.

 


그 도시는 고원시대에 건설되어 있어서 지상에서는 전혀 알아볼 수 없었다. 하늘을 날 수 없었다면 못 찾았을 수도 있었다. 나름 거대한 도시는 투명하고 말랑말랑한 돔으로 감싸져 있었다. 얼핏 물거품 속에 있는 도시 같았다. 수많은 아름다운 건물들, 나무들, 잘 정비된 도로망, 매우 계획적으로 잘 만들어진 도시 같았다. 멀어서 잘 보이지 않는데 어른, 아이들, 반려동물들이 거리와 공원을 평화롭게 걸어다녔다. 드론은 도시로 들어가는 출입문 같은 곳을 찾았다. 투명한 돔을 통과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출입문을 지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신 여러 대의 CCTV가 있었다. 드론과 반려묘는 자초지정을 얘기했고 노인으로부터 받은 노인의 가족 사진과 노인의 선물을 보여주었다. CCTV 옆의 마이크에서 잠시만 기다리라는 말이 들렸고 대개 그렇듯이 한참 기다렸다.

 


얼마 후 CCTV는 드론과 반려묘에게 허름한 면회실로 안내했다. 면회실은 도시 외곽에 있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면회실로 성인 여자가 들어왔다. 노인의 딸이었다. 사진과 다른 점은 나이를 먹었다는 점과 순전히 인간의 모습만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같이 동행해 온 보안요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각자 부위는 다르지만 인체의 절반은 기계로 되어 있었다. 굳이 그것을 숨기지는 않는 모습이었다. 어쩌면 그것을 자랑하는 문화가 있는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은 드론과 반려묘를 보고 형식적인 인사를 건넸다. 아버지 노인에 대해서 짧게 물을 뿐이었다. 그리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노인이 주라고 했던 선물을 달라고 했다. 사실 그것 때문에 이 자리에 나온 거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드론은 낡은 컴퓨터 CPU 칩을 건네주었다. 딸은 그것을 받아서 무슨 장치로 간단하게 확인을 해보는 듯 하더니 비명을 질렀다. 너무 기뻐서 내지르는 비명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컴퓨터 CPU 칩은 매우 오래 전 그러니까 1980년대에 만들어진 컴퓨터 부품이었다. 성능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 도시 안에서 매우 비싸게 팔리는 골동품이었다. 속된말로 ‘황야의 로또’라고 불리기도 했다. 덕분에 딸은 소위 경제적으로 신분 상승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무튼 딸은 드론과 반려묘에게 약간의 보상을 주었다. 도시의 오성급 호텔에서 1달 동안 머물며 관광할 수 있게 해주었다.

 


드론과 반려묘는 오성급 호텔에서 숙식하며 도시를 관광했다. 으리으리한 건물들, 깨끗한 거리, 잘 정돈된 도시계획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과 로봇들과 반려동물들... 다만 특이한 점은 사람들과 반려동물들은 전부 다 신체의 일부가 로봇으로 되어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렇게 인체를 기계와 합체하지 않으면 이 도시에서 살 수 없고 추방될 수밖에 없다고 들었다. 드론을 구해줬던 노인은 자신의 인체만을 고집했기에 도시에서 추방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드론은 문뜩 자신에게 제2의 삶을 준 노인이 그리워졌고 다시 한 번 감사하는 마음으로 보름달을 보며 기도를 했다.

 


도시 관광을 하는 동안 반려묘는 주인을 잃고 길거리를 헤매는 반려묘인 척 하며 거리를 풀이 죽어 걸었다. 착한 집사를 만나서 이 도시에서 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아무도 반려묘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경멸하는 시선을 주며 외면했다. “어떤 녀석이 불결한 야생동물을 도시 안에 풀어놓았어?” 이런 말을 내뱉기도 했다. 반려묘는 발바닥에 침을 묻혀 세수를 하면서 생각에 빠졌다. 묘책을 떠올렸다.

 


도시의 쓰레기통에서 기계부품을 이것저것 가져다가 허리와 발에 잘 부착했다. 거짓으로 로봇과 결합한 반려묘인척 했다. 머지 않아 어떤 중년부인이 반려묘가 불쌍하다며 쓰다듬어 주고 맛있는 사료도 주고 안아주며 데려갔다. 이를 멀리서 지켜보던 드론은 반려묘에게 ‘잘 살아라’라는 인사를 건넸다.

 


드론은 더 이상 이 도시에 흥미를 느낄 수 없었다. 다시 동물들이 살아가는 동물도시로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달 동안 살 수 있었던 오성급 호텔에서 일주일도 채우지 못하고 체크아웃했다. 드론은 도시를 떠났다. 아무도 그가 떠나는 것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CCTV 렌즈만 반짝거릴 뿐이었다.

 


드론은 마지막으로 도시 전체를 조망하면서 선회했다. 그리고 저공비행으로 숲속을 가로지르려고 하는 순간 누군가 드론을 불렀다. 선량한 중년부인 집사를 찾았다며 기뻐했던 반려묘였다. 그도 도시를 탈출해서 헥헥거리며 뒤따라오고 있었다. 나중에 반려묘가 한 얘기에 따르면, 그 중년부인은 반려묘를 안고 동물병원 같은 곳에 데려가서 반려묘가 몸에 붙인 낡은 기계장치들을 떼어내고 금과 은과 구리가 혼합된 기계장치를 반려묘의 온몸에 결합시키는 수술을 해달라고 의사에게 의뢰했다고 했다. 졸지에 기계와 혼합된 반려묘로 재탄생할 일보직전에 가까스로 그곳을 탈출했다고 후일담을 늘어놓았다.

 

 

드론은 반려묘를 등에 태우고 다시 숲속을 날았다. 드론과 반려묘는 이런 모험담을 자신들을 추방했던 동물도시에 가서 들려주면 그들의 호감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운이 좋으면 동물도시에서 다시 살 수 있을 거라는 부푼 꿈을 꾸었다. '다 헛짓거리로 판명되면, 노인이 남겨놓은 오두막에 살면 되지. 숲속의 새 친구도 사귀고.'라고 반려묘가 말했다. '날 집사로 부려먹지 않는다면 오케이'. 드론이 고개를 끄덕이며 힘차게 날개짓을 했다.

 


2021년 7월 18일 김곧글(Kim Godg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