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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워(D-War) LA 촬영 탐방기

'디워(D-War)' LA 촬영 탐방기 17 (쫑파티, 달리맨) (끝)

by 김곧글 Kim Godgul 2021. 8. 23. 13:01

2007년에 만든 이미지
왼쪽이 카메라 달리맨 '피터'

 

 

(2007년 9월 28일에 적었던 글을 약간 수정해서 재업)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분량이다. 재밌었다면 다행이고 지루했다면 본래 내용이 지루했거나 필자의 글발이 재미라는 맛을 곁들이지 못 했기 때문이다. 디워가 미국에서 대박까지는 아니더라도 소정의 성과를 얻은 것 같다. 첫술에 배부르면 술판을 끝내고 산으로 잠적할지도 모른다. 1위를 너무 빨리 해버리면 2위, 3위 맛을 못 보는 단점도 있다. 차근차근 쌓아올린 피라밋은 오랫동안 영광이 지속된다.

 


현재 남아 있는 디워 메이킹 관련 기억들이 파편적이고 가물가물해서 주마간산으로 훑는다. 늘어지는 것보다 깔끔하게 아쉬운 듯 끝내는 것도 좋다. 그래야 여운도 남고 상상의 여지를 던지고 다시 만났을 때 좀더 반갑다. 몇 달 후 디워 DVD가 나오면 각 장면을 체크하며 기억나는 새로운 내용을 적을지도 모르겠다. 이번 시리즈는 이 글로 끝.

 


LA 중심가에서 꽤 북쪽이었다. 주택지역을 여러 개 지나 사막 비슷한 공터가 촬영지다. 엄청 많은 먼지로 간 맞춘 점심을 먹었다. 촬영은 주행하는 장면이라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주행하는 차에 승차한 사람들의 노고야 필수지만 나머지는 촬영장에서 농담 까먹으며 기다렸다. 필자도 동승했으면 좋았겠지만 자리가 없어 그러지는 못 했다.

 


오후 늦게 주행하던 승용차가 뒤집히는 특수촬영을 했다. 옛날 뻥튀기 장사 같은 느낌의 특수촬영기사 활약이 기대되는 순간이었다. 결과는? 아니나 다를까 심각독은 불만을 토로했다. 한국말로 한국 스탭들 사이로 정신건강을 위해 불만의 독소를 입 밖으로 쏟아냈다. 특수촬영기사 실력이 하루아침에 일취월장 할 리는 만무하다. 그러나 전에도 말했지만 제대로 하기는 했다. 심감독 입술 양쪽 끝이 귓구멍을 막을 정도가 아니라 그렇지.

 


이곳에 심감독 형님들도 방문했다. 해가 넘어가는 시간에 방문했기 때문에 자세히 볼 수는 없었다. 모든 형제가 닮지는 않을 것이다. 필자의 경우에도 형들과 많이 다르다. 설마 같은 형제일까 싶을 정도로 외모나 성격이 꽤 다르다. 그러나 심감독은 형님들과 꽤 닮았다. 덩치나 얼굴 윤곽이 비슷하다. 나이 차이가 좀 나선지 또는 워낙에 연예인 생활을 하다보니 안면 근육이 밝고 화사한 심감독이 실제 나이보다 어려 보여서인지 나이 차이가 커보였다.

 


어쩌면 형님들의 자본 투자 지원도 있었을지 모른다. 정확히는 모른다. 얼핏 누군가에게 들었고,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세상에 형제, 자매, 남매가 있다는 건 남다른 의미가 있다. 특히 동양에선 더욱 그렇다. 산아제한하는 중국이 아니고서야 최소한 둘 이상은 낳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세상에 달랑 혼자 남겨지면 외로울 것 같다. 물론 외아들의 경우 자신만의 극복 노하우를 개발할테지만 말이다.

 


세상에 아무리 인맥이 많아도 아는 사람이 많아도 친구가 많아도 남은 남이다. 서로 간에 이성적인 문명인으로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윈윈하는 인생 풍요 프로젝트 일환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 각박해!" 이렇게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삶이 매주 5시 공영방송에서 꾸준히 방송되는, 전원일기보다 더 장수프로그램인, '동물의 왕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더 더욱 이 세상에 같은 핏줄이 있다는 건 큰 위안이 된다. 세상에 같은 부족, 민족, 종족이 있다는 사실이 알게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위안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종종 원수인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없는 것보다 있는 편이 나은 형제 자매 남매다. 그런 점에서 심감독처럼 돈키호테 동생을 둔 형들의 지원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그렇게 해주지 않는 형제라고 해서 존경할 가치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선천적으로 누군가 든든한 담벼락이 되어 바람을 막아준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돈키호테에겐 산초가 있었고, 프로도에겐 샘이 있었고, 심감독에게는 든든한 형님들이 있었다. 물론 심감독 주위엔 형님들 말고도 샘같은 분이 있겠지만 거기까지 자세히는 모른다.

 


촬영 매일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끔 연출부 스탭 막내 '아더'가 주도해서 이런 재미를 주기도 했다. 스탭 각자 1달러를 꺼낸다. 자신의 이름을 적는다. 박카스 박스 크기에 넣는다. 기본이 1달러고 더 넣어도 상관없다. 더 넣으면 확률이 높아지는 거다. 촬영 종료 후 심감독이 박스를 휘졌고나서 지폐 한 장만을 꺼냈다. 적힌 이름을 읽었다. 그 스탭이 모아진 돈을 전부 가졌다. 누군가는 1달러 이상 넣고 심감독처럼 높은 위치는 체면상 100달러 또는 그 이상을 넣었기 때문에 모아지는 금액이 300달러~500달러는 될 것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느꼈다. 이런 유에 운이 없는 사람이 있다. 필자를 말하는 것이다. 한 번도 당첨된 적이 없다.

 


디워 촬영 동안 개인적으로 '괜찮은 사람이다'라고 느꼈던 사람은 앞에서 말한 스턴트우먼, 흑인 배우 ‘크레이그 로빈슨’, 운전기사 '조엘', 또 한 사람은 ‘피터’이다(상단에 사진). 이름이 가물가물한데 그 전문직종이 유일하므로 지칭하면 누군지 명백하다. 달리맨이다. 카메라가 부드럽게 무빙하는 길(트랙)을 설치하고 부드럽게 움직여주는 전문 기술자이다. 퍼스트 카메라는 앉아서 카메라만을 조작하고 그 외의 것을 담당하는 일이 피터의 전문기술이다. 얼핏 보기에 카메라기사보다 못 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절대로 아니다. 누가 더 중요하다고 서열을 매길 수 없지만 각자 전문적이고 고난도의 숙련이 필요한 기술이다. 한두 해 쌓은 실력으론 명함도 못 내민다.

 


어떤 조직이던지 전면에 나서서 대표하는 캐릭터가 있다. 축구에선 스트라이커, 미식축구에선 쿼터백, 야구에선 투수, 4번타자, 영화에선 주인공, 조연, 스탭 중에선 감독, 촬영감독. 미국에선 조감독도 포함. 반면에 어떤 인물은 처음에 눈에 띄지 않았는데 중반 후반으로 진행되면서 그 훌륭한 인격이 들어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인격이 훌륭하다'는 표현은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다. 그걸 감안하더라도 피터를 좋게 평가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피터는 40대 초반, 주로 청바지, '세탁을 마르고 달토록 많이 했다구' 라고 써진 듯한 남방, 한국으로 치면 수수한 아저씨 용모이다. 언젠가 필자는 피터에게 말했다. "CSI:뉴욕 반장 닮았네요." 정말 닮아보였다. 피터는 성실히 일했다. 누구에게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과묵하거나 근엄하거나 침울하거나 묵묵하지도 않았다. 튈려고 인정받으려고 노력하는 기색도 없었다. 인간 관계도 좋은 편이다. 적당히 농담하고 놀 때도 잘 논다. 진흙 속에 파묻혀 알아볼 수 없었던 진주였다.

 


"디워 스탭 중 당신에게 큰 바위 얼굴은 누구죠?" 여기서 큰 바위 얼굴은 머리가 크다는 의미가 아니라 '주홍글씨' 작가 '나다니엘 호손'의 단편 소설 '큰 바위 얼굴'을 말한다. 심감독, 조나단 조감독, 휴버트 촬영감독, 프로듀서 아무개, 배우 아무개 등 훌륭한 분들이 많다. 그러나 순전히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라면 단연코 피터이다. 오랫동안 친구로 지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우러나왔다. 전에 말했던 디워 임시사무실 운전수 ‘조엘(Joel)’도 비슷한 맥락이다. 둘 사이에 차이라면 ‘조엘’은 정말 다정하고 푸근한 친구, 피터는 사람 좋고 필자를 인격적으로 업그레이드 시켜 줄 친구. 그리고 필자는 주로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셔틀승합차 운전기사인 조엘을 많이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피터는 매일 봤었기에 피터에 대해 좀더 자세히 판단할 수 있었다.

 


반드시 해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관례이고 에티켓이었다. 라 브레아(La Brea), 윌셔(Wilshire) 교차로에서 서쪽으로 도보 5분 거리다. 디워 LA 촬영 쫑파티는 화려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훌륭했고 상큼했다.

 


홍대 어디선가 볼 수 있을 것 같은 클럽, 딱 그랬다. 지하는 없고 1층은 칵테일 바, 2층이 클럽인데 천장이 꽤 높은 편이었다. 때문에 스테이지에 오르면 전부 내려다볼 수 있었다. 가끔 미국 록밴드 뮤직비디오를 보면 멤버가 공연 중 관객속으로 다이빙한다. 그러기 좋은 구조다. 큰 스테이지와 작은 스테이지 총 2개가 있었다. 디워 쫑파티는 큰 쪽을 대여해서 8시부터 11시까지 사용했다. 그 이후는 각자 맘대로다. 작은 스테이지는 일반 젊은이들이 힙합, 일렉트로닉 댄스를 췄다. 디워 쫑파티 스테이지는 천장이 높아서 슬라이더로 디워 촬영장 스틸 컷을 벽에 쐈다. 퍼스트 카메라 아이켄이 촬영 내내 틈틈이 찍은 작품이었다. 촬영전문가답게 스틸 카메라의 렌즈 길이는 조류 생태계를 찍는 것도 아닌데 아이들 팔뚝만큼 길었다. 화질도 좋고 솜씨도 훌륭하고 프레임 자른 것도 뛰어났다. 사람들은 와인잔, 맥주잔을 들고 서서 한 명씩 마주보고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지 계속 얘기했다. ^^;

 


필자는 일찍 방문했다. 숙소에서 불과 10분 거리 밖에 안 되었다. 필자가 도착했을 때 디워 스탭은 10명도 채 안 됐다. 한국에서 원정근무 왔던 CG직원들은 모두 어제 귀국 항공기에 탑승했다고 한다. 그들에겐 쫑파티가 아니라서인지도 모른다. 한국에 아내, 자녀, 애인이 그립다며 하루라도 빨리 귀국하고 싶다고 했다. 소원대로 이뤄진 셈이다. 심감독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통역 직원 남녀 두 명, 재미교포 프로듀서 대니스, 필자가 악수하고 인사를 나눈 사람들이다. 심감독은 언제나 한결같다. 필자같이 존재감 미약한 스탭도 먼저 알아보고 반갑다고 악수를 청하고 인사해줬다. 필자가 한국인이어서만은 아니었다. 이후에 입장한 다른 보통 스탭들과도 허물없이 친절하게 대했으니 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필자도 좀더 괜찮은 옷을 입고 오는 건데. 이럴 줄 몰랐다. 그저 한국처럼 깔끔하고 편안하고 약간 세련된 복장이면 되는 줄 알았다. 왠걸? 촬영 내내 후쭈그레하게 빈티지하게 입었던 스텝들 죄다 깔끔한 양복 차림이었다. 이런?! 모르고 갔던 필자만 에티켓 없는 촌놈이 된 셈이다. 미국은 파티 문화가 발전한 사회라고 수없이 들었지만 실제로 보니 화려하지는 않지만 자연스러움, 이런 파티를 많이 경험한 사람들의 행동양식을 보여줬다. 연출부 관련 스탭들 중 20대 후반 서너 명 중 아버지도 같은 일을 했다던 잘 생기지는 않았지만 인상 좋고 수수한 생김새의 젊은이가 동행한 여자친구는 그에겐 과분하다 싶을 정도로 빼어나게 아름다웠다. 배우처럼 섹시한 이미지가 아니라 결혼상대자로 좋은 이미지였다. 필자와는 많은 대화가 없었던 그였지만 서로 얼굴을 알기에 필자에게도 자신의 애인을 인사시켜줬다. 사람 좋아 보였다. 물론 자신의 예쁜 여자친구를 자랑하고 싶은 욕망도 한몫 했을 것이다. 그 시절 필자에게 그렇게 예쁜 여자친구가 있었다면 필자도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충분히 자랑할 만했다.

 


베이스캠프와 촬영장을 왕복하는 셔틀 버스 운전기사는 꾸준히 두 명이 일했다. 간혹 엑스트라가 엄청 많을 경우엔 일시적으로 한두 명 추가했을 때는 제외한다. 두 기사는 성격이 꽤 달랐다. 그래서 한 쪽 분과 친해지게 된 건 아니고 어쩌다 보니 그 기사의 친절, 배려, 인내에 고마움을 느꼈다. 귀찮았을 법한 왕복에도 표정 변화 없이 차분하게 필자를 촬영장에서 베이스캠프 사이를 왕복시켜줬던 일이 고마웠다. 물론 그 일이 그의 업무이긴 하다. 그래도 쉬고 있을 한가한 시간에 필자의 용무 때문에 필자 한 명만을 태우고 10분 정도 운전을 해야 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거대한 코끼리가 공중에서 떨어지는 장면을 찍었던 날이다. 밤늦게 촬영을 종료했다. 새벽 2시 정도였다. 본의아니게 필자 혼자 셔틀버스에 탔다. 촬영장에서 베이스캠프 주차장까지는 꼬불꼬불 산길을 지나 꽤 먼 거리였다. 거리에 안개가 짙게 베었다. 3미터 이상 전방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필자는 조수석에 앉았고 셔틀 버스 운전사와 가벼운 대화를 나눴다. 꼬불꼬불 산길을 내려가는 그때 느닷없이 뭔가가 찻길을 가로막았다. 짙은 안개 때문에 잘 보이지도 않아서 하마터면 충돌할 뻔했다. 바로 코앞에 서서 우리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관심 없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 걸어가버린 동물. 나무 가지 모양의 커다란 뿔을 뽐내는 순록 또는 사슴이었다. 놀랬기도 했지만 환상적인 신비로움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런 특이한 사건을 함께 겪어선지 왠지 그 운전기사와 친한 친구가 된 느낌이 들었다.

 


쫑파티에 참여한 이들은 모두 깔끔한 고급 양복을 입은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매너가 없다고 치부할 정도로 평상복도 아니었다. 미국이니 모든 사람이 한결같지는 않다. 필자가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던 피터와 조엘은 어땠을까? 둘 다 캐주얼 차림이었다. 조엘은 캐주얼 정장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명품 스타일 정장은 아니고 전원일기에서 청년회의 누군가 입었을 스타일이었다. 좋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수수하고 괜찮았다. 피터는 촬영 때처럼 청바지에 남방이었다. 다만 촬영 때 입었던 옷은 여러 번 세탁한 흔적이 남은 반면, 쫑파티 옷은 세탁 흔적이 많지 않은 거의 새 옷이었다. 피터는 양복보다 청바지 남방이 잘 어울렸다. 피터는 필자에게 와인 한 잔을 사줬다. 별거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가 유일했고 고마웠다. 그 일만으로 피터를 좋게 평가한 건 아니다. 스탭들 대부분이 피터를 좋아했지만 필자의 경우 한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마지막 촬영지는 교량 도로였다. 새벽에 촬영했는데 실제 기온은 영상 5도 정도였다. 그러나 낮에는 반팔을 입어야 할 정도로 더운 반면 밤에는 가죽 점퍼, 오리털 파커가 필요할 정도로 추웠다. 일교차가 엄청 컸고 작은 개천 위 큰 교량이어서 찬바람도 세게 불었기 때문에 엄청 추웠다. 심감독 모니터 앞에 이동식 까스 난로 2 개와 제트 엔진 형태의 난로를 배치했을 정도로 추웠다. 자기 업무를 마친 스탭은 무의식적으로 난로에 모여 꽁꽁 언 몸을 녹이는 상황이다. 11월 LA 날씨에 익숙하지 못 했던 필자는 파커나 점버를 미쳐 준비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디워 촬영 중 그 날 밤 날씨가 가장 추웠고 체감온도는 극도로 낮았다.

 


그렇다고 메이킹 촬영자가 마냥 심감독 주변 난로에 죽치고 있을 수도 없었다. 일당 값은 찌러야 한다. 필자는 난로를 떠났다. 바들바달 떨면서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장면을 메이킹 카메라에 담았다. 필자도 무의식적으로 얼음짱 같은 바람과의 싸움에 져서 난로를 향해 걷는다. 그세 다른 스탭들이 명당자리를 차지했다. 비집고 낄 공간조차 없다. 아쉽지만 그들 바로 등뒤에서 손만을 뻗었다. ^^; 손만이라도 따뜻하면 좀 낫다. 그때 난로 앞에 앉아있던 메이크업 담당 여자 스탭이 놀랍다는 감탄사와 함께 말했다. "손 정말 크다." 필자는 이렇게 대답해주고 싶었다. "제 뼈가 보통사람보다 굵고 큰 편이에요. 소위 용가리 통뼈라고. 용가리는 디워 이무기와도 관련 있는데..." 입술과 혀가 얼어서 말하지는 못했다. 그 메이크업 스탭은 키 155 정도 몸집이니 그녀의 손에 비하면 필자의 손이 엄청 크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디워 촬영 내내 총 세 명의 메이크업이 출근했는데 이 메이크업 스탭만 쫑파티에 왔던 것 같다. 어쩌면 다른 메이크업도 왔었는데 필자가 못 봤거나 기억에 없는지도 모른다. 셋 다 필자가 관심 있는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았다. 이 메이크업은 그나마 좀 나은 편이고 헤어가 화이트 금발이기에 눈에 띄었을 뿐이다. 쫑파티에 메이크업 직업에 걸맞게 패셔너블하게 입고 왔다. 모피가 섞여있는 외투를 남자 스탭이 벗겨주자 하얀 피부를 대거 들어내는 하얀 원피스.

 


무릇 파티의 꽃은 여자이다. 남자들이야 단색 위주의 양복이거나 수수한 캐주얼복장이다. 디워 쫑파티에 마이클잭슨 복장으로 온 사람은 없었다. 여자들은 달랐다. 화려하다. 눈부시다. 개과천선이다. 평소에는 평범한 돌멩이지만 파티에선 보석이다. 그만큼 디워 스탭들 배우들 중 여성들은 개성있게 화려하게 입고 왔다는 뜻이다. 쉽게 말하면 여배우들이 할리우드 행사장에 입고 오는 그런 드레스를 입고 왔다는 뜻이다. 꼭 여배우가 아니고 대다수 젊은 여성은 거의 그랬다. 행여 보통 스탭이라고 하더라도 예외는 거의 없었다. 이런 것을 볼 때 필자가 있는 곳이 확실히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메이크업 스탭만 화려하게 입고 온 것은 아니라, 한국 통역 여직원도 화려했고, 디워 임시사무실에서 일했던 한국인 교포 여직원도 섹시한 블랙드레스를 입고 왔다. 등 뒤에 천조각을 발견할 수 없는 최근에 유행하는 드레스였다. 그 외 여성 스탭들도 거의 비슷하게 화려하고 섹시한 드레스를 입었다. 피터나 조엘처럼 수수한 차림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찬밥이지만 남자는 그나마 괜찮지만 여자들 생각은 많이 다른가보다.

 


짧은 무대 행사가 진행되었고 심감독은 아주 짧은 소감을 말하고 다들 수고했다고 말했다. 모두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쳤다. 생각했던 것보다 심감독은 엄청 자연스러웠다. 무대 체질이다. 무대 위에서 영구 연기도 짧게 했던 것 같다. 관객의 요구에 응해서 말이다. 미국인들은 심감독처럼 형식 따지지 않고 수수하고 털털하면서 유머 감각이 많은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다. 유머 감각 많은 성룡이 남성미가 물씬 넘치는 주윤발보다 미국에서 인기가 더 높은 이유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 예상해본다.

 


디워 마지막 촬영장 다리 위는 살인추위였다. 심리적으로도 그랬다. 그렇다고 무슨 큰 일이 있었던 건 아니다. 엄청 추울 뿐이었다. 촬영 준비 시간이 더욱 길게 느껴졌다. 피터는 자신의 일이 아닌데도 거대한 조명 기계를 밀고 조작하고 전선을 매만지고 자신의 하급 동료에게 어떻게 하라고 지휘도 했다. 얼핏 들은 얘기로 피터는 마이클 베이 감독 작품 '아마게돈'에서도 같은 일을 했다고 들었다. 그의 실력이 대충 짐작 가는 부분이다.

 


계속 난로를 쬘 수도 없고 계속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에 멀뚱멀뚱 서있기도 뭐했다. 미국 교량은 중간 쯤에 탑 같은 곳이 있는데 바람을 막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짱박히기 좋았다. 그다지 깨끗하지는 않았다. 관광 비추천이다. 그냥 서 있는 것보다 낫지만 많은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심리적인 위안일 뿐이다. 조엘과 한국인 사무 여직원이 잠깐 방문하고 갔다. 조엘과 영화 얘기 약간을 하고 사무실 여직원과도 인사를 나눴다.

 


젓가락처럼 날씬하고 키도 큰 한국여자는 본래 연기 지망이지만 잠깐 알바식으로 (영화 관계자들과 인맥도 넓힐 겸) 디워 임시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 같았다. 그 한국여자도 고등학교때부터 미국에서 살았고 당시 서른 초반이었다. 얼굴이 빼어나게 예쁘지는 않지만 조막만하고 개성이 뚜렸한 용모였다. 젓가락 몸매는 무릇 여자들이 부러워할 정도고 키도 168 정도였다. 확인해보진 못 했지만 필자 생각에 카메라발이 실물발보다 더 좋았을 용모였다. 그녀는 교포 프로듀서 제임스 소개로 들어와 일하는 것 같았다. 왜 그렇게 생각했냐면 어쩌다 한 번씩 촬영장에 어떤 물건을(대개 필름 관련) 운반하려고 방문할 때마다 제임스가 있으면 포옹(허그)하며 인사를 나눴기 때문이다. 처음엔 '제네들 사귀나? 애인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제임스는 신혼 중이고 아내는 임신 몇 개월이라고 들었다. 그냥 선후배 사이일 뿐이었다. 포옹 인사는 필자 같은 한국 토박이에게만 낯설게 보일 뿐, 그네들 사회에서는 좀더 친절한 인사일 뿐이다.

 


앞에서 스턴트우먼 얘기 때 언급했지만 젓가락 미녀는 필자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다(물론 나이를 먹어가면서 취향은 변하기도 한다). 약간 볼륨 있는 여자가 좋다. 이것은 필자의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충동이다. 인간은 자신과 비슷한 인간에게 본능적으로 더 끌린다고 한다. 반드시 그렇다고 볼 순 없지만 주변을 돌아보면, 특히 요즘 젊은 연인, 부부일수록 닮은 사람들이 오래도록 사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언젠가 책에서 읽은 지식, 무릇 인간은 자신과 많이 닮고 약간만 다른 이성에게 끌린다. 닮은 인간을 찾는 이유는 종족 보존과 관련되고 스트레스를 덜 받겠다는 무의식의 욕망이고(이는 현대처럼 복잡한 사회일수록 더욱 강조되는 경향이다), 약간 다른 것을 찾는 이유는 후대에 유전적으로 해로운 근친교배를 멀리하려는 것과 자신에게 부족한 뭔가를 매꿀려는 무의식의 표현이라고 한다. 혹시 연인을 만들지 못 해 고민하는 분은 자신과 비슷한 기질, 성향, 사고체계 연인에게 집중하라고 저자는 권한다. 그래야 성공확률이 높고 사귀고 나서도 깨질 확률도 낫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치다. 단순히 외형적인 것도 포함하고 더불어 생각하는 방식, 습성, 기질, 성향, 무의식적인 행동 등을 말한다. 어떤 연인이 "우리는 서로가 쪼개졌던 반쪽이었다는 것을 즉시 알아봤고 다툼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몇 십 년 동안 잘 지내고 있어요" 이렇게 말하는 것이 그저 듣기 좋으라는 닭살 표현만은 아니다. 인간 종족 보존 관련 뿌리 깊은 본능이다.

 


그래서 젓가락 교포 한국여자가 디워 쫑파티에 등짝에 천조각 조차 없는 검은 드레스를 입고 왔더라도 그다지 매력적으로 끌리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전부는 아니지만 행사가 끝나고, 개별적인 대화들도 끝나고, 무대 바로 아래에서 일렉트로닉 음악에 몸을 실어 춤추기 시작했다. 휴버트, 아더, 조엘, 조나단, 한국 여직원 모두 참여했다. 앞에서 언급했던 조명과 기계 설치를 담당하는 마리오 몸매의 남미 아저씨는 자신의 애인을 데려와 흥겹게 춤을 췄다. 물론 필자도 기웃거리다 얼떨결에 참여했다. 그러나 필자는 몸치다. 몸치라서 춤을 못 춘다. 단지 호기심이고 이런 조명발 분위기를 싫어하지 않는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외형의 남자가 춤을 잘 추는 경우도 있다. 촬영감독 휴버트는 의외로 춤도 잘 추고 잘 놀았다. 어찌보면 변태같이 보이기도 하는데 휴버트는 여자들과 잘 어울렸다. 전 처와 이혼했고 당시 솔로라고 했는데 지금도 솔로인지 아닌지는 모른다. 연출부 막내 아더는 예상했던 바다. 꽃미남이라고 할 수 있는 아더를 위한 자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모든 여자들과 두루 춤췄다. 모든 참석자들이 서로 파트너를 교체하면서 춤췄다. 이 광경을 보면서 필자가 느낀 것은 "참 자연스럽다." 필자는 적당한 시기에 강강수월래 같은 무리에서 한 발짝 물러나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음악은 좋았다. 일렉트로닉, 레이브, 힙합이 요란하고 흥겹게 흐르고 조명은 화려하고 디워 쫑파티는 여러 사람들의 댄스로 꽃을 피웠다.

 


메이킹 글에선 묘사된 적이 없지만 여주인공 사라가 병원에 누워있는 장면이 있다. 그때 여간호사가 단역으로 출연했는데 처음에 외모만을 봐서 태국, 베트남, 필리핀 출신인줄 알았다. 예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예뻤지만 어딘지 한국여자 같지 않은 느낌이 들었었다. 한국말도 거의 못했다. 알고보니 재미교포 2세였다. 이무기가 올라간 초고층 빌딩 촬영 때도 잠깐 들렀다. 그 여자는 메이크업과 복장에 따라 천지차이다. 긴가민가 해서 물었다. "혹시 며칠 전 간호사 역할을 하지 않았나요?" 그녀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 짧은 순간 자세히 보니 간호사 복장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동양적이면서 세련되게 서구화된 미녀였다. 그러나 그 이상의 대화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헬기장에서 한국 스텝들과 기념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한국 스탭에게 인기 최고였다. 간호사 역 미녀는 이전 글에서 언급했던 심감독 대학 동창 딸이었다. 헬기장에서는 몰랐는데 쫑파티에서 알았다. 필자가 앉아있던 테이블에서 좀 떨어진 곳에 심감독 대학 동창 아줌마와 간호사역 미녀가 마주 앉았는데 영락없이 어머니와 딸의 행동이었다. 그러고보니 서로 닮았다. 간호사 역 교포미녀는 20대 초반, 차분하고 온순한 성격에 이국적인 분위기까지 풍기지만 어딘지 모르게 이질감이 느껴졌다. 여자 당구 또는 골프 슈퍼스타 재미교포 미녀에게서 느낄 수 있는 친근감과 이질감의 혼합, 그런 느낌 말이다.

 


교량이 있는 위치는 LA 고층빌딩 중심가에서 동쪽이다. 젓가락 미녀 교포 여직원과 인사하고 멀리 서쪽을 바라봤다. 교량 중간의 탑으로 바람을 막았는데도 추웠다. 남자 체면에 여자들이 춥다고 둘러앉은 이동식 난로에 비집고 있는 것도 할 짓이 못됐었다. 촬영은 준비해야할 장비가 많아서 계속 늘어진다. 그때다. 프로듀서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덕행일까? 테이크아웃 커피 소형 트럭이 교량 도로 한 켠에 정차했다. 커피 트럭이 먼저 정차했고 프로듀서가 얘기한 것인지, 프로듀서가 주문해서 커피 트럭이 통째로 촬영장에 방문한 것인지 정확히는 모른다. 그런 것을 궁금해하던 필자의 뇌세포가 추위에 꽁꽁 얼어버려서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스텝들이 주문하면 만들어줬다. 필자는 카푸치노를 주문해 마셨다. 그 커피 트럭 주인의 실제 솜씨가 어떤지는 확신할 수 없다. 필자의 입맛이 민감하지 않지만 전혀 무디지는 않다. 커피 맛은 최고였다. 실제 커피맛인지 살인 추위 탓인지는 모른다.

 


일시적이나마 달콤한 커피를 마시며 교량 멀리 바라봤다. 어렸을 때 본 만화 애꾸눈 하록 선장이 전망대에서 망망 우주를 내다보는 모습이 떠올랐다. 은하철도 999 철이가 차창 밖을 내다보는 장면보다 하록 선장 쪽이 더 근사하다. 서쪽으론 LA 도심지 고층 빌딩 야경이, 동쪽으론 운행하는지 의심스러운 기차 레일이 즐비했다. 아름다운 경치는 아니지만 이국적인 정취다. 새로운 느낌은 일단 소중하다. 지루한 건 딱 질색이다. 졸리고 하품 나고 콧물까지 흐르게 만들기 때문이다. 카푸치노와 필자는 물아일체가 되었다. 그러나 커피 온기는 오래 가지 못했다. 몇 분 후, 좀 전보다 더 살을 애는 강추위에 떨어야 했다. 빨리 촬영이 끝나면 살겠는데...--;

 


누군가 필자를 불렀다. 교량 도로 쪽을 돌아봤더니, 거대한 조명 설치로 땀을 삘삘 흘리는 피터였다. 정말 필자를 부르는 것인지 긴가민가했다. 어느 순간부터 피터가 성실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딱히 그와 대화할 껀덕지가 없어선지 대화한 적은 몇 번 없었다. 조명 설치는 피터의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자발적으로 일했다. 개인주의가 일반화된 미국에서 거의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피터가 자신의 업무 외에 남의 일을 손수 돕는 일은 여러 번 있었다. 어쩌면 우리네 문화에선 미국과 달리 종종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세상이 각박해져도 말이다. 아무튼 피터는 거의 유일했다. 자신의 일도 끝내주게 제대로 해치우면서 동시에 남의 일도 상대가 자존심 상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도와줬다.

 


필자는 물끄러미 피터에게 향했다. 필자를 부르는 게 맞기 때문이다. 피터는 조명 설치 스탭과 함께 지름 1.5미터도 넘는 큰 조명을 여기저기 배치했다. 심감독을 비롯 나머지 스탭들은 설치완료되길 기다리면서 난로에 모여 대화의 꽃을 피웠다. 심감독은 특유의 유머콩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모두 감탄하며 껄껄 웃었다. 피터는 필자에게 어디를 가리키며 거기 서 있으라고 했다. 필자는 영문을 몰랐지만 여기까지 걸어왔는데 거부하고 좀 전까지 있던 자리로 되돌아가기도 껄끄러웠다. 필자는 그냥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피터가 뭔가를 만지작거렸다. 스위치다.

 


그때 1.5미터도 넘는 거대한 조명 서너 개가 환하게 켜졌다. 조명 설치가 어느 정도 되자 시범적으로 켜 놓은 셈이다. 조명은 필자의 머리 위를 강렬하게 내리쬈다. 필자는 몇 초 후에 느꼈다. 굉장히 따뜻했다. 강렬한 조명 빛은 따뜻한 온기를 내뿜었다. 어떤 이유인지 정확히 모르지만, 아마도 단순 배려겠지만, 엄청 고마웠다. 혹시 이전에 필자가 피터에게 'CSI 뉴욕의 반장과 닮았네요'라고 말했던 것이 마음에 들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교량 도로 한가운데서 조명을 받으며 몸을 녹이는 모습이 황당하고 다른 스탭들이 흘끔 쳐다보는 게 쪽팔렸지만 전신이 따뜻해져서 조명이 내리쬐는 영역 밖으로 나가려는 의지는 묵살 당했다. 몇 분인가 몸을 녹였다. 온몸이 따뜻해졌다. 계속 머물고 싶었지만 다리 위 도로 한가운데서 조명 받으며 서 있는 모습이 지속될 수는 없었다. 슬슬 촬영을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피터의 서프라이즈 친절이 인상적이었고 매우 매우 고마웠다.

 

 

그런 일 이후 쫑파티에서 피터는 필자에게 와인 한잔도 사주었다. 정확히는 조명 난로 친절도 고마웠고 해서 쫑파티에서 필자가 먼저 피터를 보자마자 매우 반갑게 인사를 건냈더니 뭐 좀 마시겠냐고 물었고 필자는 병맥주를 거의 마신 상태였는데 와인 한잔 괜찮다고 말했다. 대략 10달러 정도 가격이었지만 그 친절은 필자로 하여금 차갑고 냉정하고 개인주의적인 미국인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피터, 조엘, 셔틀버스기사에게선 한국의 전통적인 또는 토속적인 (옛날 국내 영화에 등장할 법한) 사람 냄새를 느낄 수 있었다. 평소 알고 있던 쿨하고 냉정하고 산뜻하고 깔끔한 미국인 이미지와는 많이 다른 미국인. 하긴 한국인이라고해서 다 정(情)이 많고 따뜻한 것은 아닌 것처럼 미국인이라고해서 죄다 차갑고 계산적인 개인주의자는 아닐 것이다. 전반적인 특징도 있지만 개인적인 차이도 무시 못할 것이다.

 

 

(2021년에 추가: 참고로 그 교량 촬영 장소는 LA에서는 나름 유명한 명소이고 현지인들은 잘 알 것이다. 필자는 얼마 전에 팝가수 'Weeknd'의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 (2020 American Music Awards)'에서 소개된 뮤직비디오(아래 동영상)을 보자마자 배경 장소가 그 교량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심감독은 대략 10시 정도에 파티 클럽을 떠났다. 심감독에게는 귀국해서 진행해야할 촬영분도 남아있고 진정한 의미의 쫑파티는 없는 셈이다. 마음을 비우고 속 편히 즐길 수 없는 감독의 비애일 것이다. 나이 50이 다된 남자가 전자음악을 들으며 댄스 취고 놀 기분이 나겠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것도 문화차이인지 모른다. 나이 많은 휴버트, 조나단은 나이에 상관하지 않고 즐겼다. 다들 충분히 놀았는지 11시를 넘기자 무대 앞은 널널했다. 일반인 출입이 가능한 아담한 작은 스테이지에는 주말이라 즐기러 온 디워와는 무관한 손님들이 어느덧 운집해서 춤을 췄다. 디워 스탭 몇 명은 거기에 합류해서 춤추기도 했다. 디워 춤 파티는 끝난 셈이기 때문이다. 등짝에 한 올의 천조각도 없는 검정 드레스를 섹시하게 입은 젓가락 임시사무실 여직원도 그쪽에서 2차 댄스를 이어갔다. 술에 취해 보였지만 정신이 혼미할 정도는 아니었다. 멀쩡했다. 필자도 알아보고 주변 사람도 알아봤다. 남주인공 제이슨 베어와 여주인공 아만다도 비교적 늦은 시간까지 클럽에 있었지만 댄스를 취지는 않았다. 아만다는 의외로 순진한 건지 아니면 2차로 자주 가는 클럽에 가서 광적으로 미친듯이 놀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쫑파티 클럽에선 소다수나 맥주만을 깔짝대고 바에 앉아 다가오는 여러 사람과 대화만 하는 것 같았다. 필자도 아만다와 대화해보고 싶었고 못 할 것도 없었지만 실행하지는 않았다.

 


현지인 스탭 열 명 가까이 한쪽에 모여 있었다. 그 가운데 있던 조나단이 뭐라고 말했다. 잘 들을 수 없었지만 나름 진지한 표정들인 것으로 봐서 다음에 참여할 작품에 대한 내용을 듣는 것 같았다. 12시가 넘으니까 클럽은 거의 비었다. 한국 스탭 한두 명, 피터, 조나단과 연출부 스탭, 젓가락 한국여자, 미술을 담당했던 젊은 금발 스탭 정도 보였다. 각자 술 마시며 대화했다. 그 중 몇몇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필자는 클럽을 나와서 집으로 향했다. 쫑파티에서 인상적인 무엇은 없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매우 좋았다. 그런 분위기 자체가 좋았다. 디워 쫑파티는 적어도 필자의 기억 속에서는 아련하고 좋았다.

 


그동안 ‘디워 LA 촬영 탐방기’를 읽어주신 분께 감사드립니다.

 


2007년 9월 28일 (초안)
2021년 8월 23일 (약간 수정) 김곧글(Kim Godg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