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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칼럼, 단편

[시] 태풍 2 (Typhoon 2)

by 김곧글 Kim Godgul 2022. 9. 12. 09:16

 

 

 

태풍 2


라면 한 박스가 바닥을 드러낼 때가 되니
찜통 여름이 기약 없이 떠나며
툭 하고 내던지고 간 허물일까?
그렇다고 보기엔 너무나 본체의 일환 같은
무지막지한 폭풍의 전사를 거느린 진격의 태풍.


가시도친 눈물의 폭풍이 날카롭게 흩날리고
무쇠보다 강한 삼지창의 파도가 
안개 낀 규모의 폭포처럼 연안을 박살낸다
개, 고양이, 소, 돼지, 말, 닭, 오리, 나무, 꽃, 풀...
눈에 띄는 미물은 죄다 전율하며
이리 휘청 저리 휘청
만물의 영장 인간도 예외일 리 없다.


까마득한 옛날에,
산등성이 같은 공룡들을 피해 꼭꼭 숨어 살았던
인류와 닮지 않은 인류의 조상처럼
인류는 대자연의 무지성의 변동성에 공포와 경외심을 품고
필연과 우연 사이를 갈팡질팡하는 운명을 
해독하려고 발버둥 치며 처세술을 발동하여 
순간의 무한 동안 위안 속으로 쪼그라든다.


수억 살 지구의 입장에선 한낱 
콧방귀, 트림에 지나지 않는 태풍의 위협을
지구에 얹혀사는 주제의 수많은 생명들은(인류도 포함)
지구와 우주의 창조주에게 자비와 은총을 애걸해보건만...
지구에겐 어마어마하게 짧은 시간 동안의
가려움 같은 태풍 따위는 그저
흔하디흔한 우주의 순리일 뿐이라고 치부하며
무관심을 일관한다.


인류는, 지구가 아직은 완전히 만물의 영장을
져버린 것은 아니라고,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수많은 형태의 태풍 같은 것들에 대비하고 극복하고 연명한다.
그리고 인지하고 깨닫는다.


인류와 지구 중에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를
뼈저리게 이해하고 되새김하고 계승한다.
앞으로 인류의 문명이 지향할 방향을.
더불어, 인류는 고양이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것에 대해서도 
집사의 직함이라는 상식도 함께.


2022년 9월 12일 김곧글(Kim Godgul)


 

PS: 며칠 전 태풍 '힌남노'가 다가올 때 문득 필자가 예전에 포스팅했던 시 '태풍'을 읽고 한 편을 더 쓰게 되었다.

 

        관련글: [시] 태풍 (Typhoon, Hurrica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