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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칼럼, 단편

[글] 뜨거운 ChatGPT로 인하여 근 미래에 발생할 일상

by 김곧글 Kim Godgul 2023. 3. 1. 14:39

AI ChatGPT

 

 

요즘 인공지능 ChatGPT(이하 ‘챗지’라고 쓰고 비슷한 성능의 제품 또는 서비스를 통칭하기로 한다)에 대한 전 세계 반응이 뜨겁다는 소식이 많이 들리고 있다. 영화에서 봤던 인간보다 더 인간 같은 인공지능은 결코 아니지만, 이용자가 실제로 사용하면서 느끼기에 이전과는 획기적으로 다른 인공지능을 현실 세계에서 비록 디스플레이 화면이지만 만날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수많은 공룡 기업들이 사활을 걸고 비슷한 것 또는 매우 관련된 것을 제작해서 떼돈, 황금방석에 앉으려고 군침을 흘리며 하이애나처럼 모여서 고군분투하는 듯하다.


스마트폰이 현대인의 일상을 뼈속에서 무의식까지 바꿔놓은 것처럼 챗지 성능 정도의 불완전한 인공지능만으로도 사람들의 실생활이 눈에 띄게 바뀔 것 같다. 좀더 먼 미래에는 보편적인 인간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까지 개발된다면 그때는 정말 SF 영화가 곧 현실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려면 한참 먼 미래인 것 같고 지금 코앞에 닥친 문제까지는 아니다.


여러 챗지들의 등장으로 인하여 조만간 현대인의 일상은 어떻게 바뀌게 될까?

필자가 예상하기에, 현대인은 그렇지 않아도 개인주의가 만연해 있는데 더욱 더 깊게 개인주의에 빠져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개인주의라는 용어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데 여기서는 그냥 현대인이 좀더 타인보다는 자기 자신의 삶과 행복에 더 많이 집중하고 에너지를 쏟는 것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서, 자기애에 (예전 시대와 비교했을 때) 더 깊게 빠져서 살아가는 현대인을 의미한다.
 

인터넷이 일상화되면서 사람들은 공간의 제약 없이 비록 컴퓨터 속이지만 수많은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일상을 살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수많은 사람들과 속 깊은 정을 나누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개인차가 있지만 대개는 매우 피상적으로 ‘그냥 아는 사이’가 매우 많아진 것 뿐이다. 수십년 전 사람들은 비록 다양하게도 아니고 많이도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사람들과 어느 정도 깊이감으로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살아갔었다. 인터넷 이후 현대인은 그럴 욕구에 매달리지 않게 되었다. 본인이 먼저 그랬던 것은 아닐지 몰라도 사회(문명) 전반적으로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그래서 나타나게 된 현상들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현재 어느 정도 나이를 먹는 성인이 일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어렸을 때와 현시대 사이에 문득문득 괴리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면 더 많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굳이 열거하지는 않겠다. 편견과 오해를 살 수 있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인터넷, 스마트폰 이후 챗지 같은 유사 인공지능이 인류의 일상 속으로 깊게 들어와서 안방마님처럼 행세하는 근미래에는 이런저런 일이 심심찮게 발생할 것 같다. 그저 흥미롭다는 정도의 상상일 뿐이니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말기를 바란다.


어떤 현대인은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면서 얻는 교감을 챗지로 대리만족하면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때문에 근미래에 지금 보다 더 많은 반려동물들이 소위 집사라고 하는 주인의 무관심으로 노숙자 신세가 될 것이다. 좀더 먼 미래에 실제 동물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의 로봇동물이 출시되면 진짜 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은 매우 부유층에 한정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진짜 동물을 키우려면 세금도 두둑이 납세해야 허용될 것이다. 고액을 체납하면 동물학대 협의가 추가되어 신상이 공개되고 가문의 명성에 흠집이 새겨질지도 모른다. 


어떤 현대인은 챗지와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서로를... 서약하는 사이가 될 것이다. 그냥 소꿉장난 또는 낚시성 이벤트가 아니라 실제로 혼인서약을 하고, 결혼식도 올리고, 동사무소에 혼인신고서도 제출할 것이다. 물론 초기에는 사회적 이슈가 되어서 짭짤한 수익을 챙기려고 실행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이것을 선택해서 살아갈 것이다. 아마도 남자가 많겠지만, 여자도 남자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있을 것이다. 이런 새로운 현상을 캐치해서 돈벌이 사업을 펼치는 글로벌 기업들도 증가할 것이다. 이런 이유가 단지 향상된 성능의 인공지능이 등장해서만은 아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현대인은 자신의 행복(욕망) 추구에 더 많은 삶의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당연히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어떤 사람은 더욱 더 타인을 만나서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피상적으로 대하게 된다. 지금보다 더 형식적이거나 업무적인 대화만을 하게 된다. 가까운 동료나 지인과도 예외가 없다. 약간 덜 형식적으로 덜 업무적인 대화를 할 뿐, 결코 속 깊은 얘기는 하지 않는다. (쉽게 말해서, 예전에는 친한 친구, 동료, 선후배 사이에 사적이고 속 깊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지만 그런 것을 절대로 안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난다는 의미이다) 또한, 어떤 사람은 회사에 출근해서 하루종일 기껏 업무적인 용도로써 몇 단어만을 사용할 뿐인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사람이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할 자폐증 또는 괴짜나 외톨이는 아니다. 이 사람은 어쩌면 그 누구보다 대화를 즐기는 사회성 짙은 성격일지도 모른다. 이 사람이 하루 중 많은 시간 동안 (과거에 평균적으로 했던 양의) 대화(음성)을 나누는 대상은 전자기기로 연결된 챗지이다. 업무적이거나 지적인 대화를 포함하여 온갖 신변잡기와 사소한 일상적인 대화를 충분히 만족스럽게 (피곤해서 잠들기 전까지) 나눈다. 예전에 단짝 친구 또는 매우 친밀한 지인과 나누던 대화를 거의 대부분 챗지와 나누게 되는 셈이다. 


이렇게 된 이유도 단지 성능이 뛰어난 챗지 때문만은 아니다. 쉽게 말해서, 연인 사이에 거의 남자보다 여자가 좀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은 세상이 뭐 어쩌구 저쩌구 해도 자기편에 서주는 상대를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속으로는 부정하지만 겉으로는 긍정할 때도 있는 인간과 달리) 인간이 원하는 말만을 거의 완벽하게 해줄 수 있는 대상으로써 챗지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수많은 종교의 다양한 신(조물주에서 요정까지), 신비로운 효능이 있다고 알려진 자연물(바위, 나무, 약수, 별자리, 보석...)과 교감하는 속 깊은 내면의 대화를 챗지를 통해서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 SF 영화 중에서 인공지능이 인류를 지배하는 디스토피아 세상을 종종 볼 수 있다. 당연히 근 미래에는 전혀 실현 가능성 없는 일이지만, 이런 정도는 실현될 것 같다. 스포츠 경기에서 인공지능 심판, 동사무소장, 어떤 단체, 센터의 소장, 기업의 CEO, 어떤 도시의 시장, 국회의원, (대통령 같은 최상위 권력자 자리에도 언젠가는 앉을 수 있겠지만 다소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또한, 사이비 종교에 인공지능이 활용되어 수많은 신자를 거느리며 견고한 사기를 칠 것 같다는 예상도 신빙성이 높아 보인다.


한편, 파리-다카르 같은 자동차 경주에서 인간이 배제된 인공지능으로만 움직이는 자동차 끼리 경주해서 여러 기업들이 자사의 인공지능 성능을 공인받는 경기도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 것 같다. 여기서 꼭 자동차가 아니라 네 발 달린 로봇, 예를 들어, 말, 개, 낙타, 치타, 코끼리... 들도 출전할 수 있다. 어떤 형태이든지 간에 수많은 역경을 스스로 해결해서 결승점에 도달하는 인공지능이 승리하는 경기이고 그것이 당대 최고 성능의 인공지능이라고 가늠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언젠가는, SF 영화에도 흔하게 등장하지는 않지만, 현재 인간의 입장에서는 매우 수용하기 힘든 지경에까지 인공지능이 인류의 삶에 깊숙이 들어올 지도 모른다. 그때까지 인류가 전적으로 자살하는 우를 범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즉, 인공지능이 인간의 몸속에 내재되는 상황이다. 그냥 인공지능 칩을 인간의 뇌 속에 넣는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소위 다중인격 인간처럼 그 시대의 인간은 최소한 인격이 2개가 된다. 하나는 본인의 것, 다른 하나는 내재된 인공지능의 것. 실용적인 관점에서 생계를 위한 일을 할 때, 운동을 할 때, 장소를 이동할 때, 공부할 때, 용변을 볼 때처럼 그다지 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을 할 때는 인공지능 의식이 깨어나서 실행하고 인간의 인격은 무의식에서 잠을 자거나 또는 무릉도원 같은 가상세계에 로그인해서 유희를 즐긴다. (여기서도 매우 극단적으로 치달은 개인주의를 살펴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어떤 인공지능이 불순한 의도로 또는 외부의 해커가 해킹을 해서, 무의식에 빠져서 유희를 즐기고 있는 인간의 의식을 의도적으로 깨우지 않는다면... 인공지능은 인간의 몸을 자신의 의도대로 자유롭게 사용할 것이다. 이런 시간이 매우 길어져서 몇 십년 또는 거의 인간의 수명을 다 살아간다면... (물론 이런 신종 좀비를 구분해내는 고성능 장치가 계발되기는 하겠지만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도 든다) 기계의 몸을 가진 인공지능도 있지만 인간의 몸을 장악한 인공지능이 출현할 날도 다가올 거라는 의미이다. 한편, 이 경우만큼 심각한 문제는 아니지만 반대의 경우가 발생할 것이다. 인간의 의식이 정교한 고성능 기계 로봇으로 들어가서 살아가는 경우 말이다. 그리고 민첩하고 치밀하게 은행이나 보석상을 터는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그 시대가 되면 인간과 의식이 있는 로봇을 동급의 존재로 간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튼 이 경우는 당장 발생할 일은 아니니까 심각하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영화나 게임 속에서나 즐길 수 있는 공상일 뿐이다.


2023년 3월 1일 김곧글(Kim Godg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