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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무릎과 무릎 사이(1984),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1987)

by 김곧글 Kim Godgul 2013. 3. 14. 15:02

  


무릎과 무릎 사이(1984)


음대 여대생 자영(이보희 분)은 스스로 자제하거나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억압된 성적욕망으로 인해 불안한 심리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서서히 우려한 일은 터지고, 관객이 원하는 사건과 장면들이 보여지는데..., 단순히 이것만이 영화의 전부라면 시대를 넘나들며 회자되지는 않았을 터, 자영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로써 어두운 배경들이 하나씩 들춰진다.


어렸을 때 백인 음악 과외선생한테 성폭력을 당할뻔한 일, 평범하지 않은 할머니의 결혼으로 인해 태어난 어머니가 자신의 딸 자영만은 자신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는 바램이 지나친 나머지 과도하게 통제하고 간섭하는 숨막히는 가정 환경, 그리고 자영과 이복자매인 보령(이혜영 분)의 출생 관련 고뇌도 서브시퀀스로 중요하게 연결이 되는데, 자영의 아버지(김인문 분)는 소위 사회 지도층인데 늦은밤 집앞에서 낯선 벙어리 남자한테 살해위협을 당하기까지 하고, 그 이유는 자영의 아버지가 오래전이지만 유부남이었을 때 고아원을 방문한 일이 있는데 그때 17살 여자와 사랑을 하게 되었고, 현재 보령의 어머니인 그 여자를 사모했던 고아원의 벙어리 남자가 자영의 아버지에게 복수를 시도했던 것이다.


즉, 이 영화는 겉으로는 여대생이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성적욕망으로 인해 상처의 업보를 쌓게 되고 결국 극단적인 상황에까지 이르는 과정을 관객에게 성적 에로티시즘의 관음증을 넣어 드라마틱하게 제공해주는데, 그 이면에는 그 시대에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사회 지도층(상위 몇 퍼센트 일부 권력자)의 문어발식 가족사를 비판하는 내용이 넣어져 있어서 단순히 야한 영화의 범주를 넘어 시대성의 한 측면을 상징하는 영화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아마도 이것과 비슷한 가족사 이야기는 그 시대에 널리 읽힌 대중잡지의 통속소설 또는 성인만화에서 흔히 볼 수 있었고, 요즘에는 간간히 드라마의 배경 소재가 되기도 한다. 한국에서 사대부, 양반, 유교주의 영향이 핸드폰과 두뇌를 연결해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현대 한국인에게도 여전히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 패턴은 여전히 재생산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건 그렇고,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 조빈(안성기 분)은 이야기적으로 존재감이 약한 편이다. 자영의 불운한 성장기의 고통을 유일하게 보살펴주고, 이해해주고, 부성애 또는 연민 또는 사랑의 끈을 놓지 않는 부처같은 오빠로 등장하여 아주 착하고 성실한 이미지의 캐릭터인 것은 분명하지만 자영의 파란만장하고 동시에 피폐한 삶의 질풍노드에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다지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다. 어떤 측면에서 무심한 관찰자이지 남자 주인공은 아니라고 보여진다. 끝장면에서 고행을 겪고난 후의 자영을 변함없이 사랑하는 유일한 남자다, 라는 느낌을 주면서 영화는 끝난다. 조빈이 자영의 고행에 좀더 적극적으로 개입했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인상적인 국내영화일 것이다. 그때나 요즘이나 여자들은 남자들의 동물적인 수컷성을 조심해야한다는 점에는 그때와 비교해서 전화기를 들고 다닐 뿐만 아니라 컴퓨터 대용으로 쓸 수 있게 된 대격변 만큼의 백만분의 일도 변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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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1987)  


관객수는 요즘과 비교하면 보잘 것 없지만 그 당시에는 거의 센세이션을 일으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금은 기울었고 안 좋은 소식만 들리지만 그 당시에는 신시대적인 젊은 감각의 지식인 이미지로 통했던 이규형 감독이 동명 소설도 직접 쓰고 영화도 직접 감독까지 하고 게다가 크게 히트까지 쳤다. 물론 전문화되고 분업화된 현대의 영화 시스템과 그때를 단순히 비교할 수 없지만 재능과 사업적 수완이 뛰어났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아마도 동명 소설은 베스트셀러에도 올랐었던 것으로 안다. 그렇지만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나 소설이 작품성으로 따져보면 그저 그런 수준이기 때문이다. 유일한 장점이라면 침울하고 칙칙한 것이 대세였던 국내영화 판도에 파릇파릇하고 상쾌한 신선함의 분위기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일 것이다.

  

요즘 젊은세대들이 이 영화를 보면 매우 유치하고 지루하고 따분할 것이다. 필자도 이 영화를 한 번에 못 보고 중간 중간에 쉬었다 딴짓하다가 봤다. 초반에는 매우 유쾌하게 시작해서 후반에는 눈물샘을 자극하는 장면을 넣은 아주 흔한 이야기 패턴이다. 그러나 특별히 이야기랄 것도 없다. 제목에서도 느껴질 수 있듯이 스케치라고 말할 수 있다. 젊은 대학생의 그렇고 그런 에피소드의 나열인데 그것들이 나름 유쾌하고 재밌게 관객을 만족시켜서 그 당시에 크게 히트를 쳤던 것이다. 그 에피소드들이 강력하게 응집된 것도 아니다. 남녀 주인공이 사랑을 완성하는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스케치다. 또는 크로키다. 한국 영화에서 또는 드라마에서 많이 나오는 소재가 여기에도 나온다. 불치병, 남자 조연 보물섬(김세준 분)이 그렇다. 끝부분에는 매우 감상적인 장면의 시퀀스로 끝난다. 지금 젊은 세대가 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는 끝부분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고 들었던 것 같다.

  

언젠가 보기는 봤었는데 기억은 잘 안 나고 최근에 다시 봤는데, 지금은 영화를 어느 정도 분석적으로 볼 수 있는 눈으로 보는데, 이야기적으로는 마치 포스터모던적인 느낌으로 파편적이고 (기승전결 그런 이야기가 아님) 영상미적으로 일부 세련미가 들어있기도 하다. 옛날 프랑스의 누벨바그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신선한 기교들을 볼 수 있다. 다만, 기교를 기교로써 듬성듬성 사용했을 뿐, 영화 전체적으로 통일되거나 응집되지 못한 점이 현대인이 즐기기엔 지루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흥행적으로 매우 잘 통했다는 점이 이채롭다. 그런 점에서 영화의 완성도는 그저 그렇지만 영화가 대중과 시대를 향한 영향력면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되는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이 영화로 배우 박중훈이 엄청 떴었고, 지금은 연기자를 은퇴한 김세준도 제2의 안성기라는 별칭을 들으며 인기를 끌었었다.   

  

  

2013년 3월 14일 김곧글(Kim Godg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