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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어우동(1985)

by 김곧글 Kim Godgul 2013. 3. 19. 13:38


  

역시 어렸을 때 담벼락에 붙은 포스터가 어려풋이 기억의 저편에 아른거리는 영화다. 그때는 볼 수 없었고, 성인이 되어서는 사는 게 바빴거나 최근 상영작에만 관심있었기 때문에 아애 생각도 못 했고, 어제 처음으로 봤다. 

  

굉장히 야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그 당시에는 충분히 그랬겠지만 또는 내가 이런 것에 예민한 감정에 휩싸이는 나이대의 고개를 넘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현시대에는 미지근한 정도이다. 전체적으로 그 당시로서는 경향이었겠지만 한 가지 장르에 집중하지 못 한 아쉬움이 느껴진다. 정통역사극, 액션물, 성인물을 골고루 섞어놓았다. 때문에 진중한 맛이 있어서 사회적 체면을 중시하는 점잖은 관객도 즐길 수 있었겠지만, 현대적인 관점에서 한 장르의 심도 깊은 영화적 재미는 떨어지는 편이다. 한편으론 이렇게 장르를 혼합한 영화가 국내에서는 어느 정도 통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으므로 이 영화가 공전의 흥행을 한 것도 이상할 이유는 없다.

  

전체적으로 당시로서는 제작비를 충분히 들여서 만든 티가 난다. 이야기는 단순히 어우동이라는 기생의 파란만장한 삶에만 촛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의 비중이 넉넉하지 않다는 것이 아쉽고, 그녀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고위관직의 권력싸움 심지어는 주상전하까지 엮어놓았다. 다소 복잡하게까지 느껴진다. 원래 이야기는 영화 1편으로 완성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한 것 같고 요즘 시대에 케이블방송에서 미니시리즈로 만들면 충분히 괜찮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인지 영화 초반의 서서히 달아오르는 안정성에 비해서 후반과 결말에는 다소 급하게 마무리하는 느낌도 없지 않았다. 쉽게 말해서, 후반에는 영상의 정성 또는 집중도가 떨어져 보였다.

  


이장호 감독이 전작 '무릎과 무릎 사이(1984)'의 엄청난 흥행의 탄력을 이어받아 제작비를 두둑히 모아서 이 영화를 만들었을 것이다. 어우동 역의 이보희도 매혹적이고 과감한 에로티시즘 연기로 물이 오른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 그 시대가 이런 스타일의 영화를 갈망한 시대였다는 생각도 든다.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격이다.

  

이보희가 연기한 '무릎과 무릎 사이(1984)'의 자영은 자신의 삶에 영향을 끼친 주변환경에 의해 이리저리 휘둘리면서 고통받는 수동적인 인물이었다면, '어우동(1985)'의 어우동은 조선시대에 유교의 칠거지악이라는 사회적 위협으로 억압받은 대다수 여인의 삶에 반기를 들어 자신의 삶을 파란만장하게 살아간 자발적인 행동의 능동적인 인물이다. 비록 그녀가 선택한 직업이 기생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선택의 여지가 넓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흥미로운 점은 어우동이 단순히 겨우 겨우 목숨을 부지한 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당돌하게 두려움 없이 할말 다 하며 행동하는 성격이 인상적이었다. 당대 내놓으라 하는 사대부를 자신의 치마폭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드는 익숙하지만 매혹적인 기생 캐릭터다. 이런 여자 주인공의 인물상은 한편으론 깊은 속사정이 있지만 겉으로는 언제나 활기차게 생활하며 주변 사람에게 활력소를 주는, 한국 영화, 드라마에서 많이 등장하는 캔티형 여자 주인공의 사촌뻘 된다고 볼 수 있는 기가 세고 억척스럽고 당돌한 여자 인물의 계보이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십중팔구는 현시대에 인기있는 한국의 드라마, 영화 속의 인물은 과거에 인기있었던 어떤 영화, 드라마, 소설의 인물과 매우 일맥상통한 부분이 많다. 옛날 한국 영화를, 그래봐야 이십년 전 안팎에 불과하지만, 보면서 느끼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일맥상통하는 인물상이 눈에 띈다는 점이다. 한국 사람이 일반적으로 빠져드는 인물상이 있다. 시대에 따라 약간의 변형으로 세련화되었을 뿐이다. 즉, 겉옷은 바꿔입었지만 인체는 같은 인물이다. 작품성과 완성도와는 별개로, 과거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인기있었던 영화를 보다보면 '우와! 저 사람은 최근에 어떤 국내 영화, 드라마에서 인상적이었던 누구와 많이 닮았네' 라는 생각이 문뜩 든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어우동, 갈매(안성기 분), 천가(김명곤 분) 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조연 중에서도 최근의 국내 사극 영화의 어떤 인물과 일맥상통하는 요소가 눈에 들어온다는 점이 굳이 시간을 들여서 옛날 영화를 찾아보는 괜한 짓거리라는 돌덩이에 박혀있는 보석처럼 반짝이는 유익함이라는 생각이 든다. 

  

  

2013년 3월 19일 김곧글(Kim Godg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