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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버려진 청춘(1982)

by 김곧글 Kim Godgul 2013. 3. 20. 18:08

  

  

또 다른 제목을 붙인다면 '잃어버린 청춘' 쯤 될 것이다. 이 영화도 한국 사람에게 매우 익숙한 이야기와 주인공들이다. 텔레비전 드라마, 단막극에서 비슷한 내용을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아마도 이런 이야기와 인물을 한국 사람이 좋아하기 때문에 세월이 흘러도 재창작될 것이다.  


여주인공 명자(이기선 분)의 성격은 매우 활기차고 쾌활하고 거침이 없다. 어느 날 해변가에서 계획적으로 우연한 만남을 가장하여 재벌2세와 잠자리를 갖는다. 그리고 다음날 홀로 서울로 돌아와 그 재벌2세 아버지의 저택을 찾아간다. 그리고 태연하게 아들한테서 성폭력을 당했으니 500만원(현재와 화패 가치가 다름)을 내놓으라고 협박한다. 재벌 회장은 처음에는 250만원으로 합의하자고 했다가 어쩔 수 없이 돈을 내준다.


초반의 이 에피소드는 명자라는 인물의 현재 상태와 직업을 말해준다. 넓게 보면 한국형 팜므 파탈일 것이고 좁게 보면 어둠의 세계에서 활동하는 직업여성의 계보일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특징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마치 간단히 말해서 열정적인 캔디 또는 건강하고 오뚝이 같은 하니 같은 성격이라는 점이다. 

  

실질적인 이야기는 그 다음부터 시작된다. 명자는 소공동의 유명한 호텔 로비에서 다른 목표를 찾아보는데, 얼마 전의 그 재벌2세와 마주치게 된다. 가까스로 도망치는데 성공하는데 우연히 그것을 도와준 사람은 해외에 사업체를 운영하는 한사장(남궁원 분)이라는 부유한 중년남이다. 이 부분에서 현재의 한국형 드라마와 비교해본다면 그때의 부유하고 점잖은 중년남이 현재는 부유하지만 성격이 자기중심적이고 사회친화력은 부족하지만 순수한 소년같은 수컷적인 마음을 꼭꼭 숨기고 사는데 그럴만한 속사정은 나중에 밝혀지는 꽃미남이라는 점일 것이다.   

  

중년의 한사장은 이미 명자가 어떤 일을 하는지를 눈치채고 있다. 그만큼 세상의 산전수전을 다 겪고나서 현재처럼 성공한 여유로운 사업가 자리에 있다는 것을 관객은 알아볼 수 있다. 눈에 뻔히 보이는 명자의 유혹을 한사장은 허허 웃으며 여유롭게 피해간다. 그러던 중에 갑자기 명자가 기절을 한다. 마치 리버 피닉스라는 청춘배우가 걸린 병으로 유명한 기면증처럼 말이다.

  

아무튼 그 기절 때문에 명자는 한사장의 으리으리한 저택을 방문하게 되고, 두 남녀는 대화를 나누고, 한사장은 7년 전에 아내와 어린 아들을  비행기 사고로 잃었는데 그로인한 스스로의 죄책감이 심리적 원인이 되어 여자와 잠자리를 가질 수 없는 성적불구자가 되었고 결혼도 안 하고 있다고 한다.


그 이후에는 당연히 대개 이런 이야기에서 관객이 예상하는 사건이 펼쳐진다. 명자는 아름답고 매혹적인 젊은 여체로 한사장의 깊은 마음의 병을 몇 번의 실패를 극복하고 마침내 치료에 성공하고, 두 남녀는 아주 가까운 연인 사이가 된다. 한사장은 명자와 결혼을 계획하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이대로 행복하게 끝나면 아마도 관객이 더 화를 낼지도 모른다. 이렇게 소리 지르면서 말이다. "내가 이런 뻔한 3류 동화를 보러 비싼 돈 내고 극장에 온 줄 알아!" 당연히, 한국 사람이 좋아하는 눈물샘을 자극하는 이야기로 전환된다. 그래서 지금도 한국 관객의 추억에 살아있는 영화가 됐을 것이다.

  

앞에서 명자가 갑자기 기절한 것은 기면증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뇌종양에 걸렸기 때문이다. 한국 드라마에서 흔한 불치병이다. 병원에 갔더니 몇 달 밖에 살지 못 한다는 선고를 듣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명자는 임신까지 한 상태다. 한사장은 잠시 해외에 출장을 나가 있다. 간헐적으로 점점 두통이 심해지는 명자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마지막으로 고향을 방문해서 많은 현금다발을 어머니에게 건내준다. 어머니는 염전에서 소금을 힘겹게 만드는 노가다를 하고, 아버지는 이전에 딸이 보내 준 돈도 포함해서 노름을 하러 나갔기 때문에 비록 살아있지만 영화에는 등장하지는 않는다. 두 남동생 중에서 막내는 명자가 찾아와서 기뻐하며 반기지만 고등학생인 첫째 남동생은 명자가 서울에서 어떤 일을 하면서 사는지 동네 사람들이 다 알고 수근거린다며 발악을 하며 화딱지를 낸다. 명자는 결혼을 해서 해외로 이민가기 때문에 집에는 못 올 것 같다고 말하고 눈물을 머금고 상경하는 버스를 타는데, 첫째 남동생이 뛰어오면서 그리움과 안타까움과 만감이 교차하는 사무침의 목소리로 외친다. "누나! 누나!..." 명자는 창밖으로 몸을 내밀고 바라보며 눈물을 흘린다. 

  

출장 갔다가 돌아온 한사장은 명자의 불치병을 알게 되고 미국에서 저명한 의사까지 초빙해서 사력을 다하지만 결국에는 슬픈 비련의 여주인공의 운명을 바꾸지는 못 한다. 마침내 정말 익숙한 결말, 앞에서 '깊은 우리 젊은 날(1987)'과 동일하게 비련의 여주인공은 착한 남편을 남겨두고 자신을 빼닮은 예쁜 딸을 순산하고 돌아올 수 없는 저 세상으로 떠난다.


이 영화는 부모와 동생들을 위해 혈혈단신으로 상경해서 힘든 일, 고된 일 심지어는 욕먹을 일도 어쩔 수 없이 마다하지 않고 억척스럽게 살았건만, 꿈꿔온 행복한 미래를 이루지도 못 하고 제 명을 다 살지도 못 하고 죽은 명자(그 당시에 비슷한 처지의 수많은 젊은 여자들)의 한스런 삶을 위로하는 영화라고 볼 수 있다. 

  

  

2013년 3월 20일 김곧글(Kim Godg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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