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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제로 다크 서티(2012)

by 김곧글 Kim Godgul 2013. 3. 15. 15:48

  

  

10년간 오사마 빈 라덴의 행방을 추적한 CIA 여성 요원 마야(제시카 차스테인 분)의 고군분투를 사실적으로 (실제로 얼마나 사실적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아무튼 그렇게 보였음) 흥미진진하게 그렸다. 처음에 이런 이야기라는 힌트를 얻었을 때는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그냥 잘 해봐야 중간 정도의 재미를 느낄 수 있겠거니 했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 영화를 만든 캐스린 비글로우 감독의 훌륭한 전작 '허트 로커(Hurt Locker, 2008)'를 생각하면 기대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결론적으로, '허트 로커' 이상으로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캐스린 감독은 여자인데도 어떻게 남자들이 가볍지 않게 그렇다고 마냥 무겁지도 않게 그 어느 지점에서 감동하며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는 전쟁영화를 잘 만들 수 있는지 미스테리다. 한편으론, 여자 관객을 특별히 잘 감동시키는 남자 감독, 예를 들면 이와이 순지 감독이 있는 것처럼, 남자 관객을 잘 감동시키는 여자 감독이 없으란 법도 없다. 다만, 영화판의 직업적 고단함의 현실상, 여자 감독이 남자들이 득실대는 전쟁 영화를 잘 만들기는 여간 쉽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캐스린 감독은 현존하는 전 세계 여자 감독 중에서 남자들의 전쟁영화를 작품성과 흥행성 둘 다 만족시켜주는 유일무이한 여자 감독일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대단하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허트 로커가 중동의 색다른 전쟁 현실을 흥미진진하게 표현했다면 이 영화는 좀더 이야기에 집중해 있다. 미국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외로운 영웅의 고진감래 끝에 업적을 이루는 이야기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CIA 요원 '마야'는 풋내기 젊은 여성이지만 인내와 끈기와 집요함으로 결국 목표를 성취한다.

  

영화 초반에 인권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고문 장면이 보통 관객이 보기에 껄끄럽고 불편하겠지만 그런 것도 덤덤하게 이겨내는 마야, 그녀의 캐릭터를 설명하기에 필요충분했을 것이다. 즉, 마야가 부여받은 임무가 그런 테러리스트를 조사해서 오사마 빈 라덴의 행방 또는 거처를 찾는 일이란 것을 인상적으로 알려주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고문하는 장면에서 실제로는 더 심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영화니까 그리고 미국 사람이 만들었고 미국의 보통 시민이 주 관객층이니까 여과를 많이 했을 것이다.

  

범죄 수사 또는 첩보 영화 같은 이야기 전개가 흥미롭게 이어진다. 그렇게 굉장한 것은 아니지만 지루할 듯 하면 어떤 사건이 터지고 해서 관객이 중간에 영화 감상을 멈출 정도는 아니다. 게다가 마야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상승하니까 관객은 어느 순간 마야와 일심동체가 되어 그녀의 행적을 따라가게 된다. 정말 화려한 액션이 없는데도 마야를 따라 흥미롭게 이야기에 몰입되었다. 그만큼 캐스린 감독이 영화를 잘 만들었다는 얘기도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놀랐던 점은 이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엘리베이터를 탄 것처럼 고조되어 빠져들게 되었는데 오사마 빈 라덴의 측근이자 정보원의 핸드폰을 추적하는 장면부터다. 성공할 듯 실패할 듯 빠져들어서 볼 수 있었다. 가까스로 마침내 빈 라덴의 거처로 매우 의심되는 저택을 알아낸다. 그러나 여기서 고조된 이야기를 바로 터뜨리지 않는다. 갈수록 태산, CIA 상부의 결단을 기다리는 마야의 행동에도 관객은 일심동체가 된다. 그리고 정말 우여곡절 끝에 출격 명령이 떨어진다.   

  

그리고 정말 이 영화에서 놀랐던 점은 또는 뛰어난 점 또는 독창적인 실험성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거의 이야기의 결말에 도달했다고 느껴지는 순간에 화려하고 진지하고 현실적인 현대의 비밀 전투작전을 사실적으로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보여준다는 점이다. 오사마 빈 라덴의 저택을 습격하는 장면을 정말 리얼하게 거의 실시간 느낌으로 보여준다. 어떤 면에서 영화 두 편을 연달아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1편은 첩보 영화, 2편은 네이비 씰 같은 비밀 작전 영화, 비록 짧긴 하지만 말이다. 이 영화의 백미이며 어쩌면 중동을 배경으로 하는 수많은 지금까지의 현대전 영화 중에서 가장 훌륭했다고 생각된다. 화려한 액션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새롭고 신선하고 리얼한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런 장면을 여자 감독이 만들어냈다는 것이 앞에서도 말했지만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리고 결말 부분에서 거의 핵심만을 간결하게 여운있게 몇 장면으로 보여주는데 그 어떤 감동이 밀려왔다. 사실적인 전쟁에 관한 것 때문이 아니라 마야라는 인물의 길고도 외롭고 고단한 여정을 지켜본 관객이 그녀와 동화되어 느끼는 일종의 해산의 감동일 것이다.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에도 그것은 멍하니 지속되게 말들었다. 여운의 메아리가 지속되었다.

  

여담이지만, 만약 오사마 빈 라덴이 살아있고 이 영화를 봤다면 비록 심기는 불편하겠지만 마야 같은 인물을 자신의 조직의 고위직으로 등용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2013년 3월 14일 김곧글(Kim Godg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