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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오블리비언 (Oblivion, 2013)

by 김곧글 Kim Godgul 2013. 8. 9. 13:15



노장사상이 베어있는 디스토피아적인 SF 장르 중에서 지나치게 황당무계하지 않은 점도 좋았고, 유명한 '필립 K 딕' 작가가 자주 사용한 소재이기도 했던 인간의 정체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점도 좋았고, 현재 눈에 보이는 것만이 세상의 모든 진리가 아닐 수도 있다는 명제도 진부하지 않게 흥미롭게 표현해서 좋았다. 헐리우드 블록버스터급 영화 중에선 보기드물게 은은한 감동을 주는 수작이라고 생각된다. 영화에 몰입했다가 빠져나오니 마치 한 편의 일장춘몽을 꾼 것 같다.  

  

얼마 전 영화 홍보 장면만을 봤을 때는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흔한 외계인 퇴치 영화인줄 알았다. 킬링타임용으로 봐야지 했다가, 그런 영화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재미의 요소가 전혀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놀라운 신개념 액션이 나오는 것은 아니고, 익숙한 세속적인 관점에서 한발짝 물러나 세상과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도 있는 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단점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그런 단점을 앞도하는 전체적인 아름다움이 있었다. 치밀하지 않고 리얼리티도 떨어지는 액션, 때문에 지구 생존자들의 척박함과 절박함을 느낄 수 없었다는 점, 한 예로써 영화 터미네이터 1편에서 미래의 인간들을 잠깐 보여주는데 그 정도의 느낌까지 나왔더라면 훨씬 좋았을 것이다. '드론'이 치명적인 무기인 것은 맞지만 드론의 종류가 좀더 다양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기본적인 형태는 같지만 용도에 따라 크기와 형태가 조금 다르고 무기도 다르게 말이다. 아무튼 세부묘사적인 측면에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20년 전에 만든 '터미네이터', '에일리언2'보다 못 하다.


그러나 이 영화만의 장점이 있는데 그것은 서구적인 SF 장르에서는 흔하지 않다고 볼 수 있는 우아함과 적막함의 은은한 아름다움이다. 신사동 가로수길에 있는 고급스런 인테리어의 커피숍에서 느낄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고, 한강이나 석촌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카페에서 느낄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다. 바다의 갯벌이 대다보이고 주변은 그저 황량한 모래와 자갈과 바위 뿐이지만 왠지 모르게 그 적막한 분위기가 그저 좋기만 한 카페의 창문에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아있게 되는 느낌이 이 영화의 분위기였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이야기 자체는 매우 심각하고 거대하다. 외계인과의 전쟁으로 지구는 황폐화되었고 외계인의 핵심을 파괴하는 살신성인의 영웅이 그려진다. 그러나 그것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은 점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다. 남녀간에 사랑에 관한 이야기도 어떤 면에서는 동양적인 감수성으로 적잖게 표현되어 있다. 감독은 또는 작가는 사랑과 결혼의 애정이 육체와 같은 사물에 있지 않고 추억과 기억 처럼 물체가 아닌 것에 있다고 말하고 있는 듯 하다. 이 영화의 세계관과 비교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영화 '메트릭스'의 철학적인 물음을 던지는 세계관에 비하면 주인공 레오와 트리니티의 사랑이 얼마나 육체적이고 본능적이게 표현되어 있던가? 비록 운명이라는 설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것에 비하면 이 영화에서 사랑을 다루는 관점은 관객의 생활취향에 따라 다르게 보여질테지만 문학적이고 심층적인 느낌이 난다고 볼 수 있다.   

  


세부적인 설정과 묘사에서 다소 치밀함은 떨어지지만 이 영화의 뛰어난 점이라고 볼 수 있는 아련하고 공허하고 아득한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 이야기 자체도 개인적으로는 흥미롭게 감상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국내 관객에게 그다지 매력적으로 감상되지는 않는 편이다. 아무튼 언젠가 다시 감상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될 정도로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13년 8월 9일 김곧글(Kim Godg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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