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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스토커 (Stoker, 2013)

by 김곧글 Kim Godgul 2013. 8. 2. 13:33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 지난 박찬욱 감독의 작품에서 유추할 수 있는 영상미가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속에 박찬욱 감독의 작품에서는 매우 생소한 (비록 초반에 국한되기는 하지만) 소녀의 서정적인 감수정이 배어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내용인지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주인공들이 멀리서도 남의 얘기를 들을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라는 정도만을 알고 봤는데, 초반의 분위기와는 달리 언젠가 인간의 잔혹성이 표출될 거라고 예상은 했었지만 - 그럭저럭 박찬욱 감독 세계관스럽게 진행되었고 - 다소 당황스러웠던 것은 결말이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주인공 인디아와 찰리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의 살인마와도 친척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실행력이야 그보다 못하겠지만 정신세계만큼은 같은 종족일 것이다. 

  

개인적인 감상소감으로 내용만을 따지자면 솔직히 멘붕이 올 지경이다. 영화를 다 보고 '이건 뭐지? 그래서 어쩌라구.' 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박찬욱 감독의 전작 '박쥐(Thirst, 2009)'의 사촌뻘 되는 작품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현실이 아니고 픽션이며 예술이다. 주인공들은 일종의 어떤 특정한 인간의 심층적인 욕망일 뿐이지 보편적으로 이성적인 모습의 인간을 표현한 것은 아니다. 천연덕스럽게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인간을 죽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타고난 인물들이 영화의 핵심인 주인공이다. 그 자체로만 보면 보편적인 예술성과는 동떨어졌지만 한번 더 깊이 들어가서 생각해보면 이들은 역사에 이름을 남긴 권력자, 정치가, 왕, 장군, 조폭 두목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납득이 간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거기까지 깊게는 생각되지 않고 나중에 생각이 들었고 이것이 정답이란 얘기는 아니다. 다만, 이렇게 생각하면 이 영화의 불편한 내용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대중영화가 아닌 내용에 관해서는 이정도만 쓰기로 한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 영화의 매력은, 내용만을 생각하면 감상글을 쓰지 않았을테지만, 독특하고 수려한 영상미다. 아마도 박찬욱 감독 작품 중에 이만큼 아름답고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영상미는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나오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예상하는 이유는 그의 작품들에 일맥상통하는 세계관, 인간의 어두운 심층과 권력에 대한 욕망과 그것의 다형성을 파헤치는 인물들의 활약인데 이것과 서정성은 다소 동떨어져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인디아라는 소녀의 의식의 흐름을 기존의 다른 영화들과는 다른 영상미로, 예를 들어, 테렌스 맬릭 감독의 전매특허 같은 느낌과는 조금 다른 의식의 흐름 영상미의 매력으로 그려냈다는 점이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이라고 생각된다. 

  

'의식의 흐름', 영화보다는 소설의 역사에서 아주 높게 쳐주는 중요한 기법이다. 특히 이야기 자체를 중요시하는 한국, 일본 보다는 서구문화권에서 더욱 높게 치켜준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의식의 흐름 기법을 많이 사용해야만 좋은 작품이 된다는 뜻은 아니다. 이것에 대한 선지자적 태동과 발전은 이미 100년 정도 전에 이뤄졌고 현재는 대다수의 좋은 작품에서 알게모르게 보일듯말듯 사용되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들도 말랑말랑하고 소소한 느낌의 의식의 흐름 기법이 주요하게 사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스토커, 이 영화에서 사용된 의식의 흐름과 서정적인 감수성의 영상미는 다른 감독이 말랑말랑한 러브 스토리 장르의 영화를 만드는데 참고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이런 영상미의 국내 로맨스 영화는 없었던 것 같다.

  

한편, 많이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그 분위기나 뉘앙스를 느낄 수 있었던 영상을 최근에 볼 수 있었다. 아이돌 가수 'f(x)'의 새 앨범을 홍보하는 아트적인 영상이 그것이다.

 

http://youtu.be/r4u3BzM0rqo

  

이 영상에서 크리스탈이 영상의 흐름에 어우러져 나레이션을 속삭이는데 이 느낌은 영화 스토커의 초반에 인디아가 나레이션을 하는 것과 느낌이 닮아있다. 보통 영화는 이 영상처럼 빠르게 컷전환되지 않고 좀더 인터벌(interval)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이 영상의 영상미와 영화 스토커의 의식의 흐름 영상미 사이의 그 어떤 지점에서 서정적이고 감수성이 있는 로맨틱한 영화에 사용될 수 있는 새로운 영상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스토커를 다시 감상하게 된다면 그 이유는 내용 때문이 아니라 영상미 때문이다. 초반에 의식의 흐름을 표현한 서정적인 영상미도 좋았고, 전체적으로 흔하지 않은 독특한 느낌의 드라마적인 영상미가 좋았기 때문이다. 

  

  

2013년 8월 2일 김곧글(Kim Godg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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