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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책] 칸딘스키와 클레 (추상미술의 선구자들) 감상글

by 김곧글 Kim Godgul 2016. 6. 19. 01:04



미국의 대표적인 추상미술 화가 ‘폴락(Pollock)’이 ‘피카소(Picasso)’에 관하여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제기랄, 그가 다 했어!” 소위 현대미술(21세기 현대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모던아트)의 알짜배기를 피카소가 다 성취하고 부와 명성을 동시에 거머쥔 생존 화가였기에 강한 부러움에 한 말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질투 섞인 말의 진위는 사실과 다소 차이가 있다.

현대미술에서 가장 새롭게 태동된 (그 이전까지는 없었던) 이론적 기틀이라고 볼 수 있는 추상미술의 이론과 체계와 교육과 작품을 전 생애에 걸쳐 꾸준히 공적을 남긴 화가는 러시아 출신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이다. 그와 더불어 조금은 다르지만 비슷한 영향력으로 추상미술 작품을 일평생 그린 화가로서 독일 출신 ‘파울 클레(Paul Klee)’가 있다. 둘은 전설적인 미술학교 ‘바우하우스(Bauhaus)’의 교수로 오랫동안 재직하기도 했다. 물론 화가로서도 작품을 엄청나게 많이 그려냈다.


‘피카소가 다 했어!‘ 라고 말하는 것은 언론 매체에서 독자의 관심을 휘어잡으려고 자극적으로 사용할 법한 표제 정도에 가깝다. 마치 “제기랄, 현대 물리학은 아인슈타인이 다 했어!” 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뉴튼의 고전 물리학의 기반을 흔들어서 현대 물리학의 관문을 연 것은 아인슈타인의 업적이 크지만, 현대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장르는 뭐니뭐니해도 '양자역학'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동네에서는 아인슈타인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지는 않았다.

즉, 말하자면, 피카소와 추상미술의 관계는 아인슈타인과 양자역학의 관계와 같다고 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양자역학에 지대한 공을 세운 물리학자는 누구였나? 다소 의견이 분분한 편이고 교양과학책을 펼치면 두리뭉실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러면 추상미술에 지대한 공을 세운 화가는 누구였나? 거의 명확히 말할 수 있다. 칸딘스키이다. 비록 그가 최초로 순수한 추상화를 그렸느냐 말았느냐에 관해서는 고증과 관련해서 견해차이가 있지만 그가 추상미술을 초기 형성하고 발전시키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는 점에는 자타가 공인하는 부분이다.


뭐 이런 얘기가 이 책에 나오는 것은 아니다. 책을 다 읽고 필자의 생각을 적어 본 것이니 100% 정확한 것은 아니다. 이 책에는 화가 칸딘스키와 클레의 삶을 그들의 수많은 미술 작품 위주로 거의 연대기 순서로 적어놓았다. 마치 영화에서 서로 다른 두 이야기를 교차편집을 하듯이 두 인물의 삶을 연대기로 교차하며 풀어놓았다.

두 화가가 워낙에 많은 작품을 그렸고 (그림 스타일 자체가 빨리 그려질 수 있는 타입이다) 책의 지면은 한정되어 있고 그림도 많이 실어야겠고, 때문에 다소 주마간산으로 훑어보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그림마다 짧지만 임팩트가 있는 큐레이팅을 제공하는 유익한 내용이 괜찮았다. 다만, 종이의 질감도 좋고 그림의 색감 인쇄도 국내책 치고는 좋았는데, 책의 크기가 보통 소설책 정도의 크기여서 그림을 좀더 크게 감상할 수 없었던 아쉬움이 없지 않다.


먼 옛날 기억도 잘 안 나는 곳에서 칸딘스키 그림에 대한 강의를 들었던 기억이 가물가물 난다, 어쩌면 동영상강의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선은 뭐를 상징하고 이 원은 뭐고 이 점은 뭐고 이 삼각형은 뭐고 하는데 하나도 마음으로 느낄 수 없었고 재미도 없어서 졸음을 몰아내느라 힘겨웠던 기억이 난다. 현대미술을 잘 몰랐지만 그래도 칸딘스키의 그림은 마치 그 당시 오락실의 게임 같은 단순한 이미지를 고급화 세련화시킨 예술? 같은 느낌도 있어서 그럭저럭 호기심을 품고 있었지만 막상 설명을 들을 때는 정말 재미나 감동은 없었다.

나이를 먹고 젊었을 때처럼 열정적으로 돌아다니지 않는 생활을 살아서 그런지 몰라도 책으로 읽는 칸딘스키와 클레의 작품에 대한 설명과 그들의 삶에 대한 주마간산에 잔잔한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고 장르소설이나 만화처럼 재밌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솔직히 어느 부분에서는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하품을 세안으로 몰아내며 읽기도 했다.)

미술을 전공한 사람들에겐 아주 기초적인 내용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일반인의 입장에서 현대미술에 대해서 유용한 내용을 알고 싶은 지식욕이 있다면 이 책이 괜찮은 책이 될 것이다. 국내 작가가 쓴 책인데 대개 감상적으로 치우쳐도 그러려니하고 많은 그림을 볼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했는데 마치 외국 작가가 쓴 것을 번역한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내용 위주로 꽉꽉 채워져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러웠는데, 만약 수필, 자서전 같은 감상적인 포인트에 기대를 걸고 책을 펼친다면 다소 지루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확실히 요즘 시대는 미술의 시대, 특히 평면 그림 미술의 시대는 아니다. 인간이 문자는 고사하고 언어를 제대로 사용하기도 전에 동굴 벽에 그림을 그렸지만 그러한 원초적인 욕망이나 향유를 현대에는 다양한 대체물로 얼마든지 습득할 수 있다. 사진, 영화, 만화, 컴퓨터 게임, 화보, 피큐어, 자동차,...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평면 그림(소위 액자에 넣어서 벽에 걸 수 있는 그림)이 명맥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없지 않다. 대개 나이를 먹어가면서 좀더 그런 경향이 나타나는 것 같다. 즉, 과속도로 즉각적인 만족을 제공하는 수많은 매체물에서 어느 순간부터 점점 시시해지고 식상하거나 얕은 감동을 받기 때문에 좀더 깊은 감정의 요동을 느껴보고 싶은 열망에 대한 탐색 중에 약간 어려운 고전 소설, 옛날 영화, 자연물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고 추상적으로 표현한 다소 이상한 현대미술을 감상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어느 정도 제대로 된 길을 걷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쉽게 말해서, 나이가 들면서 젊었을 때는 꺼렸던 고리타분한 것, 고전, 먼지 쌓이고 낡은 것, 원시적인 것, 수많은 옛 사람들이 좋아했던 무엇에도 관심이 가는 부분이 없지 않다. 물론, 현시대와 연결된 고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관심을 내려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끝으로 개인적인 여담인데 최근에 컴퓨터 모니터를 새로 장만했다. 무려 48인치이다. 거실에 놓는 TV 라면 그렇게 크지 않지만, 컴퓨터 책상 위에 놓고 쓰기에는 엄청난 크기다. 바로 전에는 27인치를 사용하고 있었고 5년 전인가 처음 구입했을 때 ‘완전히 신세계를 보는 것 같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던 추억이 있다. 솔직히 인터넷 서핑하고 글을 쓰고 가끔 블로그에 올릴 사진 편집 프로그램 정도를 사용한다면 27인치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런데 왜 무려 48인치를 구입하는 강행을 했을까? 영화 감상? 컴퓨터 게임? TV 영상물 감상? 아마도 대다수는 십중팔구 이것 중에 하나가 목적일 것이다. 몇 년 전이라면 필자도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48인치 모니터를 구입하게 된 가장 큰 1순위 목적은 ‘그림을 크게 보기 위해서’이다. 수많은 미술작품을 가능한 한 크게 감상하며 즐기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나름 만족하고 있다. 더불어 베이비들 사진도 크게 볼 수 있어서 좋다. 상반신 위주의 베이비 사진을 48인치 전체화면으로 물끄러미 보고 있으면 마치 내 앞에 실재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고 말하면 약간 과장이겠지만 그만큼 느낌이 남다르다.

  

2016년 6월 19일 김곧글(Kim Godg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