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감상글(Movie)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 (Star Wars The Force Awakens, 2015)

by 김곧글 Kim Godgul 2016. 7. 7. 22:51




혹시나 익숙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이지나 않을까 우려했지만 역시나 감독의 명성에 어울리게 흥미진진했다. 웬만한 헐리우드 스타 못지않게 대중적으로 유명한 감독 ‘J. J. 에이브럼스(Abrams)’의 재능과 실력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더불어 시종일관 흥미로웠지만 어딘지 모르게 인간미적인 깊은 맛은 잘 느껴지지 않는 특징도 여전했다. 무엇보다 이제 식상하고 저물어간다고 볼 수 있는 스타워즈 영화 시리즈에 생기발랄한 활력소를 충전한 공로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스타워즈가 절대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미국과 달리 국내에서 그다지 인기가 없는 이유는 아마도 SF 장르라는 이유도 있지만 극악무도한 악당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과 전투 신들이 현실감 있지도 치열하지도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같은 SF 장르지만 에일리언 시리즈,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국내에서 흥행에 성공한 것과 대비된다. 얼마나 많은 인간을 저 세상으로 보냈느냐로 따진다면 다스 베이더는 에일리언, 터미네이터, 그 어떤 악당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엄청나게 많다. 인간과 지적 생명체가 살아가는 슈퍼지구 행성들을 석류열매 부수듯이 파괴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에일리언과 터미네이터는 비록 몇 명의 인간을 죽일 뿐이지만 그때마다 냉혹하고 잔인하게 시뻘건 혈액을 스크린에 흥건히 흩뿌리며 죽이기 때문에 관객의 감정은 요동치고 영화에 몰입하게 된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스타워즈를 광적으로는 아니지만 보통 국내 관객들보다는 많이 좋아하는 편이다. 여담이지만, 어렸을 때 스타워즈와 관련된 아주 사소하고 개인적인 추억이 있다. 서울의 청량리역이 지금도 유명하지만 예전에는 훨씬 더 유명했다. 아마도 강남고속버스터미널처럼 고속버스이동이 지금처럼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절, 서울역 다음으로 청량리역은 수많은 사람들이 철도이동을 위해 인산인해를 이뤘던 서울의 중추였을 것이다. 그런 청량리역 바로 옆에 나름 유명한 백화점이 있었는데 이름은 ‘대왕코너’였다. 인터넷 검색해보면 알 수 있듯이 큰 화재사고가 발생한 곳이다. 아마도 그 이전과 이후에도 자잘한 화재가 몇 번 더 발생한 것 같다. 그래서 인지 언젠가부터 주인이 바뀌어 새로운 백화점이 들어섰다. 이름은 ‘맘모스 백화점’이었다. 이름과 달리 그다지 큰 규모의 백화점은 아니었다. (현재는 또 다른 백화점으로 바뀌었다)

필자가 아주 어렸을 때 주말이면 가끔 시내버스로 3, 4 정거장 거리를 걸어서 맘모스 백화점에 가곤 했다. 아마도 1층이었을 것이다. 조립용 플라스틱 장난감을 판매하는 작은 코너에 가기 위해서였다. 그 당시의 애들 오락거리 중에 플라스틱 장난감을 조립하는 문화가 있었다. 지금도 어느 정도 있지만 규모면으로 봤을 때 그때가 훨씬 활성화되어 있었다. ‘아카데미 과학‘이라는 제조사에서 조립용 장난감을 다양하게 판매하곤 했는데 아마도 그 제품은 수입된 제품이었기 때문에 여느 동네 문방구에서는 볼 수 없는 고급 제품이었다. 어렸기에 돈도 없던 필자가 버스로 3, 4 정거장 거리를 걸어서 청량리 맘모스 백화점의 장난감 코너에 가서 아이쇼핑(eye-shopping) 했던 그 제품은 ’아카데미 과학‘에서 미국판 또는 일본판을 수입해서 비치해놓은 스타워즈의 R2D2 조립용 장난감 이었다. C-3PO와 R2D2가 나란히 서 있는 나름 인상적인 커버 속의 내용물은 R2D2만 들어있고 작은 전기모터가 내장되었고 유선으로 연결된 작은 리모콘으로 전후좌우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 모터는 당시 흔했던 조립용 전차(tank)에 사용된 것과 같은 전기모터일 것이다. 지금도 스타워즈 시리즈를 감상할 때면 먼 옛날 청량리 맘모스 백화점에 가서 R2D2 조립용 장난감을 그저 아이쇼핑만 하고 집에 돌아온 추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또한 연탄재나 쓰레기가 쌓여있는 동네 어스륵한 담벼락에 붙어 있었던 스타워즈 1편 (현재의 에피소드 4) 그림 포스터도 함께. 잡지나 만화책으로도 스타워즈 관련 만화가 나왔었지만 그렇게 인기가 있는 편은 아니었다.  


다시 ‘깨어난 포스’로 돌아와서, 감독 에이브럼스는 독창성보다는 안전빵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옛날 스타워즈 시리즈(에피소드 4 ~ 6)에서 골고루 가져와서 나름대로 창의력을 가미했다. 일단 주요 배경을 살펴보면 우주 외에 4편은 사막, 5편은 설원, 6편은 삼림인데, 이 세 가지 배경이 ‘깨어난 포스’에 모조리 들어가 있다. 단순히 스쳐지나가는 장소의 기후가 아니라 이야기에서 중요한 장소가 등장하고 그곳의 기후가 사막, 설원, 삼림이다. 

인간과 유사하지도 않고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보잘 것 없는 로봇 따위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비밀의 열쇠를 갖고 있다는 점, 제국군의 수장이 반란군의 누구와 부자 관계라는 점, 제국군의 인공행성의 전략무기가 보통 행성을 파괴하고 다음 발사를 위해 에너지를 충전하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점, 그 틈에 반란군 비행 편대가 날아가 핵심시설을 파괴한다는 점... 그 외에도 차용해서 사용한 내용들을 스타워즈 팬이라면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이런 것이 최종적으로 영화가 재미없었다면 매우 큰 입방아거리로 지적되었을 테지만, 이 영화는 시종일관 매우 흥미롭고 재밌었다. 또한 남자들의 자잘한 로망 같은 것을 잘 건드려주는 맛도 있었다. 그래서 “에이브럼스, 에이브럼스” 하는 가 보다.    


얼마 전 국내뉴스를 보니까 요즘 LP 레코드가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대중화될 거라는 얘기는 아니고 CD와 MP3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현재 국내에는 LP를 제작하는 공장이 멸종되었다는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 LP의 시장성을 생각해보면 예상 밖으로 많은 사람들이 다시 LP를 구입하고 있고 심지어는 젊은 층도 있다고 한다. 스타워즈 시리즈에는 이런 맥락의 미국 대중 취향이 들어가 있다. 뭐냐하면 낡고 먼지가 쌓인 옛날 제품, 기계에 대한 향수와 애정이 담겨있다는 얘기다.

가장 대표적인 얘가 ‘밀레니엄 팔콘’이다. (예전에는 ‘천년매호’라고 번역되어 사용되곤 했다) 영화에서 낡은 고물 우주선으로 천시되는데 여러 대의 제국군 전투기와 싸워서 백전백승한다. 현실로 비유하자면 2차 대전에서 사용된 전투기와 현대의 전투기가 공중전을 벌리는데 매번 2차 대전 전투기가 이기는 것과 같다.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되지만, 영화이고 주인공과 일심동체인 사물이니까 살아남아야할 이유가 훨씬 많을 것이다.  

신상품을 많이 팔아야 하는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안 좋을 수 있지만 미국에서는 앤티크 중고 제품을 사고파는 문화가 한국보다 많이 활성화되어 있다. 앤티크하면 한국에서는 주로 도자기, 한국화, 자개, 조선시대 제품 등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미국에서는 불과 20, 30 년 정도 전의 중고 제품도 활발하게 거래된다. 컴퓨터 관련 제품이 대표적이다. 단적인 예로 얼마 전에 최초의 애플 컴퓨터가 경매로 나와서 수억원에 팔렸다. 성능으로 치면 지금의 것과 비교해서 형편없이 보잘 것 없지만 그 제품의 역사적 또는 향수적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한국이라면 볼 수 없는 이색적인 풍경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전 세계의 문화가 서로 많이 닮아질 거라는 생각도 든다)


또한, 이번 영화에서는 에피소드 1~3 과는 달리 소품의 디자인이 세련되지 못한 것을 의도적으로 활용했다. 한솔로와 츄바카가 타고 있던 공장 같은 우주선 내부가 그렇고, 여주인공 레이가 갖게 되는 전자총과 광선검의 디자인을 보면 옛날 SF 영화에 나올 법한 유치한 디자인이다. 그러나 그 낡은 파이프를 잘라 땜질한 것 같은 디자인의 광선검은 스타워즈에 나오는 그 어떤 무기보다 치명적이고 고차원적인 파괴력을 갖고 있다. 낡고 구리지만 세월 또는 역사의 의미가 들어간 제품에 대한 향수와 애정을 은유하는 듯하다. 그 외에도 반란군의 수송선, X-Wing 같은 전투기를 보면 군데군데 스크래치가 나 있고 페인트가 벗겨지고 낡았다. 심지어 전투기 조종사의 재킷과 헬멧도 낡은 느낌을 십분 살려놓았다. 이처럼 앤티크 제품을 여전히 사용하는 애정 의식이 이 영화에 깔려있는데 다음 작품에서도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한편, 두 번 보고나서 느낀 것은 한솔로를 연기한 ‘해리슨 포드’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지금보다는 뭔가 허전했을 것이다. 마치 축구에서 괜찮은 스트라이커는 있는데 게임메이커 역할을 하는 미드필더가 없는 경기 말이다. 생각해보면 해리슨 포드의 출세작이 ‘스타워즈 에피소드 4 (1977)‘였을 것이다. 한솔로라는 캐릭터 자체가 매우 미국적인 느낌의 캐릭터이기도 했지만 그의 연기가 뛰어났기 때문에 큰 성공의 발판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스타워즈의 엄청난 흥행성공에도 불구하고 스타워즈 출신 배우 중에 해리슨 포드만이 유일하게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스타급 배우로 존재감을 과시했을 것이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7 깨어난 포스, 그렇게 엄청나게 재밌는 정도는 아니지만 시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흥미롭게 감상했다. ‘에피소드 8’도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 

 

2016년 7월 7일 김곧글(Kim Godg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