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리으리한 마천루의 뉴욕, 콘크리트와 철근으로 지어진 다리를 건너면 허름하고 서민적인 브루클린 동네가 나온다. 이곳에 사는 청춘, 19살 ‘토니 마네로’(존 트라볼타 분)은 페인트 가게 점원이다. 그의 활기차고 친절한 성격은 손님들도 인정한다. 사장 입장에서 쓸 만한 직원이다. 그렇다고 그가 이 업계에서 장래에 크게 성공할지도 모를 전도유망한 떡잎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는 아직 경제관념조차 무심한 편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겠다거나 장래에 어떤 분야를 주로 파고들겠다거나 하는 구체적인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 도대체 그게 뭐가 중요해? 그의 방에는 알 파치노, 이소령, 실베스터 스탤론 같은 당대 유명한 액션 스타의 사진들이 즐비하게 붙어있다. 매주 토요일 밤마다 동네 친구들과 함께 나이트클럽에 출몰하여 신나고 즐겁게 춤추는 것이 현재 그의 최대 관심사이고 유일한 낙이다.



(거리는 오가는 사람들로 붐빈다. 토니는 서둘러 걷는다) 거대한 뉴욕은 다리를 사이로 한쪽은 높고 한쪽은 낮다. 단지 건물의 층수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 의류, 임대료, 술값, 커피값, 피자값, 문화수준... 등등 죄다 그렇다. 저쪽이 높고 이쪽이 낮다. 내 손에 들려 있는 거 보이지? 아니. 싼 게 비지떡인 ‘레니 피자’ 말고. 다른 손에 페인트통. 얼른 가서 손님한테 팔아야 돼. 마침 재고가 떨어져서 다른 상점에서 구해오는 길이거든. 그래. 나는 낮은 쪽에 살아. 그러니까 이 시간에 이런 일을 열심히 하지 않겠어? 내 이름은 ‘토니 마네로’. 19살이야. (양장점 쇼윈도에 발걸음을 멈춘다. 대뜸 문을 열고 들어가 주인에게 5 달러를 준다) “저 파란 와이셔츠 예약할게요. 딴 사람한테 팔면 안 돼요!” (그는 갈 길을 재촉한다)

(늘씬한 여자가 맞은편에서 걸어온다. 맵시 있는 워킹이다. 토니의 옆을 지나간다. 그의 시선이 그녀에게 고정된다) “이봐요......” (두 사람은 반대방향으로 멀어져간다) 나도 바쁘거든. 지금은 때가 안 좋았어. 대낮이고, 길거리이고, 이 옷은 그냥 외출복이잖아, 구두는 괜찮네. 내가 누군지 몰라서 그랬을 거야. 토요일밤 나이트클럽에서 근사하게 차려 입고 현란하게 춤추는 나를 단 한번이라도 봤다면 저렇게 뭐 안 좋은 거라도 씹은 표정을 지을 리 없지. 단지 내가 남동생처럼 보여서 그런 건 아닐 거야. 요즘이 어떤 시댄데 남녀 간에 나이를 따져.

페인트 가게 주인은 토니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 손님이 30분 째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토니는 7 달러에 구입한 금색 페인트를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하다며 1 달러 깎아 주는 거라고 인심 쓰는 척 말하고 10 달러에 판매한다. 얼마에 구입했는지 전혀 모르는 손님은 만족할 수밖에 없다. 영업시간이 끝나자 토니는 사장한테 가불을 부탁한다. 사장만의 방침이 있는데 주말에 흥청망청 낭비하는 직원을 보호해준답시고 주급을 다음 주 월요일에 지급해준다. 빠릿빠릿하게 일 잘하는 토니라고해서 예외가 적용되지는 않는다. 젠장! 사장은 너무 이기적이야. 내가 일한 것을 조금 일찍 달라는 건데 그걸 안 해주냐. 오늘밤 나이트클럽에서 푸른색 와이셔츠를 입고 춤추려고 했는데 완전히 글렀네.

토니는 집으로 달려간다. 부모님은 아들이 지금 시간에 퇴근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맨날 저녁시간에 늦는다며 짜증을 내기 일쑤다. 오늘은 혹시 안 그러려나? 기대했던 내가 바보지. 계단에서 토니의 귀여운 여동생이 활짝 웃으며 종이를 보여준다. 자신이 그린 그림이라며 자랑한다. 이 집안에서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이는 너밖에 없구나. 할머니도 친절하시지만 워낙에 조용한 성격이고 손주보다는 교회에 푹 빠져 사시는 분이시라 소통은 없는 편이다.

토니는 몸을 씻고 헤어를 올백으로 넘기고 쇠사슬 금목걸이를 착용하고 평상시에는 옷장에 고이 모셔두었던 최고급 셔츠를 꺼내 입는다. 나이트클럽에서 춤출 생각을 하니까 벌써부터 흥이 절로 난다. 아버지가 토니의 방문을 열고 저녁을 먹으라고 한다. 토니는 음식물이 옷에 튀기기라고 할까봐 안 먹으려고 했지만 가족의 저녁식사니까 참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여동생, 토니, 행복해야할 저녁식사. 오늘도 어김없이 토니의 형을 칭찬하며 치켜세우고 토니는 찬밥이나 쭉쟁이 취급을 당한다. 젠장! 나도 나름대로 열심히 직장 다니고 있다고요. 부모님은 신부가 되려고 신학교에서 기숙생활을 하고 있는 토니의 형을 끔찍이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아마도 현재 유일한 삶의 낙이다. 나도 신부가 되었다면 취업 걱정도 안 하고 좋았을 거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의중에는 혹시 안정적인 취업 그리고 동네에 자랑하기 위해서 형과 나를 모두 신부로 만들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형은 몰라도 나는 전혀 그런 쪽이 아닌데. 신부가 되려면 나이트클럽에서 춤출 수도 없잖아. 나한텐 얼토당토 않은 일이지.

25년간 공사판에서 막일을 하며 생활비를 벌어온 아버지가 휴직을 한 지 6개월이 지났다. 그래서 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요즘 부쩍 부부싸움이 잦다. 오늘은 조용히 넘어가나 했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사랑해주겠다던 서약은 까맣게 잊은 듯이 서로의 몸을 툭! 툭! 치면서 단점을 들춰내고 험담을 쏟아낸다. 토니는 아버지한테 뒤통수를 맞는다. 공들여 손질했던 헤어스타일이 망가져 기분이 아주 엉망이다. 이건 정상적인 가족의 저녁식사일리 없어. 적어도 장남이 차기 신부라면 이래선 안 되는 거 아냐? 자식이 신부가 된다고 부모의 교양이 고층빌딩처럼 상승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집구석이라고 정이 안 간다. 어머니는 며칠 째 형한테서 전화연락이 없다며 걱정한다. 거의 매일 안부 연락을 했었나보다. 그 일로 기도하러 교회에 가시겠다는 어머니는 아마도, 하느님. 저의 큰 아들이 집에 전화를 꼬박꼬박 잘 하게 해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시나? 단순한 내 머리로는 공감할 수 없는 기도다. 오늘은 토요일. 신나게 춤추는 날. 안 좋은 생각들, 골치 아픈 일들, 나이트클럽에서 다 털어버리자.




토니에겐 잘 어울려 다니는 네 명의 친구들이 있다. 오늘처럼 토요일 밤에 나이트클럽에 갈 때는 얄짤없이 어울린다. 그 친구들 중에 ‘바비’란 녀석이 있다. 그는 토니를 포함한 나머지 네 명의 친구들과 많이 다르다. 나머지 녀석들이 폭행 사건이나 마약류 소지로 경찰에 붙잡혀 가지 않은 것이 용할 정도인데, 바비는 체구도 작고 성격도 소심해서 그런 위험을 감수할 성격이 아니다. 최근에는 얼마 전에 잠자리를 가졌던 여자가 임신하는 바람에 어떻게 해야 할지 전전긍긍하며 고민에 빠져있다. 그 여자는 오래 전부터 사귄 사이가 아니라 얼마 전에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여자들 중에 한 명이다. 만약 나머지 녀석들에게 이런 일이 생긴다면 낄낄거리며 바로 낙태시키고 며칠 후에는 무슨 일 있었어? 라며 평소와 다름없이 잘 지낼 것이다. 그건 그렇고 바비가 전혀 다른 부류의 친구들과 지속적으로 어울릴 수 있던 이유는 뭘까? 십중팔구 자동차 때문이다. 네 바퀴가 제대로 굴러간다는 이유로 자동차라고 불릴 수 있다면 그만이 유일하게 자동차를 가지고 있다. 바비의 차는 그들이 이동하는 데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나이트클럽에서 사귄 여자와 짧고 강렬한 잠자리를 갖는 장소이기도 하다. 잠깐. 여기서 잠자리는 여름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곤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동차 뒷좌석에서 잠자리와 무슨 할 일이 있겠는가? ‘섹스’, ‘성관계’를 글의 분위기상 ‘잠자리’로 표현하기로 한다. 오늘밤도 다섯 명의 청춘들은 바비의 차를 타고 ‘2001 오디세이’ 나이트클럽으로 향한다.

토니로 말할 것 같으면, 바비를 제외한 나머지 친구들에 비하면 비교적 정상에 가깝다. 그렇다고 그가 모범생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거다. 담배를 피지만 술은 안 마시고 각성제나 마약류는 절대로 손대지 않는다. 춤추면 즐겁고 행복한데 그런걸 뭐 하러 먹어? 옆에서 친구들이 권해도 토니는 자신의 원칙을 고수하며 ‘세븐&세븐’ 음료수만을 마신다. 토니가 좋은 의미로 중독되어 있는 것은 오로지 춤 자체이다. 때로는 너무 춤에만 몰두하고 있어서 작지만 중요한 일을 놓칠 때도 있다. 아직 순진한 구석이 남아있고 또래들에 비해 독립적인 자아가 아직 미성숙하다고 볼 수 있는 친구 바비를 좀 더 애정과 우정으로 살펴봐주지 못 한 것이 후회스럽다. 필요할 때 차도 빌려줘서 요긴하게 사용했었는데 보답해주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나중에 다시 말하겠지만, 바비는 토니가 무분별하고 덧없는 청춘의 꿈에서 깨어나 현실과 미래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성숙한 어른으로 변모하게 하는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한다.


목성으로 여행가서 아기가 되는 유명한 영화와 아무 상관없는 ‘2001 오디세이’ 나이트클럽에서는 올해도 어김없이 댄스경연대회가 열린다. 1등 그랑프리에게는 500 달러의 상금이 수여된다. 지난해에는 250 달러였는데 그 상금을 토니가 거머쥐었고, 올해도 그의 목표인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렇다고 그가 순위에 집착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나중에 보면 알 것이다. 토니 일행은 정문으로 마치 전쟁에 승리한 전사들처럼 위풍당당하게 입장한다. 토니가 선두를 이끈다. 그가 나이트클럽에 들어서면 마치 모세가 홍해를 가르듯이 인파가 갈라진다. 화려한 조명은 색종이를 대신하며 이 순간을 빛내준다. 여러 사람들이 그와 아는 척을 한다. 그도 기꺼이 가벼운 안부를 나눈다. 춤추는 것이 핵심인 장소에서 댄스왕인 토니와 알고지내는 사이라는 것은 성대한 파티가 열리는 궁전에서 유명한 저명인사와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여러 사람에게 보여지는 효과와 비슷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와 아는 척을 하는 지도 모른다. 또는 그가 이곳의 죽돌이이기 때문에 말 그대로 안면이 있기 때문에 그냥 아는 척 하는 것이다.

토니는 테이블을 잡자마자 본능적으로 무대로 나가서 춤춘다. 여러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춤 솜씨를 뽐내는 것을 굳이 마다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랑스러운데. 아... 신나게 춤추니까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아! 한편, 토니의 친구들이 이곳에 오는 이유는 토니처럼 춤 자체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괜찮은 여자를 꼬셔서 짜릿한 잠자리를 갖고 싶어서다. 세상은 아이러니컬 하다지. 토니의 입장에서는 친구들이 비정상적이고 안쓰럽게 생각되고, 친구들의 입장에서는 토니가 비정상적이고 안쓰럽게 생각된다.

토니가 춤 자체를 좋아한다지만 그렇다고 그가 수도승의 정신을 갖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럴 리가 있겠어? 여자에게 전혀 관심이 없지는 않다. 오히려 비록 나이트클럽이라는 한계는 있지만 수많은 여자를 만나봤기 때문에 자신만의 취향이 좁혀지고 상향되어서 다가오는 모든 여자에게 호의적이거나 춤을 추거나 연애를 하는 것은 아니다. 가볍게 이 남자 저 남자를 유혹하며 즐길 것 같은 여자에게는 대수롭지 않게 그 만큼 맞춰주면 된다. 그렇다고 오로지 토니에게 저돌적으로 집착하고 소유하려는 ‘아넷’ 같은 여자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참고로 아넷은 나이트클럽 죽순이. 업주 관점에서 말하면 단골이다. 토니처럼 춤 자체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춤을 잘 추는 것도 아니고 외모가 굉장히 뛰어나서 또는 의사소통 능력이 탁월해서 무릇 남자들이 침을 흘리며 호시탐탐 유혹의 기회를 엿보게 만드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여자이다. 따분하고 지루하고 촌스럽다는 얘기다. 아넷과는 지난 해 댄스경연대회에 파트너로 출전했었다. 함께 연습한 시간이 많았지만 댄스 파트너 이상 발전되지는 않았고 지금까지 그 생각이 변한 적은 없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올해는 다른 파트너를 찾아서 댄스경연대회에 출전해야겠다고 토니는 생각하며 새로운 파트너를 물색 중이다.

이제 좀 즐기려 했더니... 음악이 왜 이래? 토니는 DJ에게 따지러 갔더니 오히려 핀잔을 듣는다. “음악이 어때서. 저기 봐. 잘 추잖아.” 음악은 남미풍이고 무대에서 어떤 두 남녀가 신선한 댄스를 추고 있다. 토니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못 본 춤이라는 것을 알아보고 시선이 고정된다. 특별히 처음 보는 춤 잘 추는 여자에게 강한 끌림을 느낀다.




토니의 춤 솜씨는 이미 이 지역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이고 단지 여자를 꼬실 목적으로 춤을 추지는 않는다고 했는데 처음부터 그런 성격이었는지 이미 충분히 연애를 해봐서 질렸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사례를 통해 미약하나마 예상해 볼 수 있다. 수강생을 데려오는 것에 대한 보상으로 무료로 댄스 연습실을 사용할 수 있는 댄스교습소의 강사에게 안부인사로 “요즘 실적이 어때요?”라고 묻고 강사는 “65%를 유지하고 있지(수강생과 잠자리를 갖는 비율).”라고 대답하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가는 장면을 통해 그도 한때는 춤으로 여자 꼬시는 일에 몰두했었을 수도 있겠다고 예상해 볼 수 있다. 만약 그가 여자에 관하여 금욕주의자였다면 아애 이런 질문조차 입 밖에 내놓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현재는 오로지 어떻게 하면 춤을 더 잘 출까? 최고가 될까? 에 관심이 쏠려있다. 평일에는 페인트 점원 일을 성실히 하는 것도 소홀이 하지 않고.


페인트를 구입하던 공사판 사람이 일 잘하는 토니에게 다소 몸이 힘들겠지만 봉급을 2배로 줄 수 있다고 유혹하지만 토니는 현재 직장에 만족한다.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된 페인트 가게 사장이 주당 4 달러를 인상해주자 토니는 하늘로 날아갈 듯이 기뻐한다. 저녁식사 후에 아버지는 토니의 주급이 인상되었다는 자랑을 듣지만 코웃음으로 과소평가한다. 세금 빼면 3 달러인데 그까짓 거 세발의 피라고 하면서. 그러나 토니의 생각은 아버지와 다르다. 사장에게 인정받았다는 사실 자체를 가치 있게 평가한다. 오히려 늘 자신이 하는 일을 못마땅해 하고 실업수당으로 생활비를 연명하는 아버지를 비난한다. 지금까지 자신의 실력이 인정받은 것은 딱 두 번이었는데, 클럽에서 춤을 잘 출 때와 오늘 페인트 가게 사장한테 인정받은 것이라고 열변한다. 아버지는 토니를 아직 세상물정을 제대로 모르는 풋내기로 생각하며 콧방귀를 뀔 뿐이다.

기분이 안 좋은 토니는 댄스경연대회를 준비하러 댄스교습소에 간다. 그곳에서 엊그제 남미풍의 음악에 맞춰 춤을 잘 췄던 여자를 발견한다. 가뭄에 단비를 만난 느낌이랄까.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였던 아넷과의 파트너 계획을 취소해야겠다. 토니는 자신감 있고 우아하게 남미풍 음악에 맞춰 춤을 잘 췄던 여자에게 말을 건다. 그러나 완전히 한 방 먹고 멘붕이 되어 넉다운 된다. 이제껏 클럽에서 자신에게 다정다감하고 숭배자스러웠던 수많은 여자들처럼 쉽게 생각했다가 허를 찔린 것이리라. 굳이 그렇게 까칠할 것 까진 없잖아? 대화조차 거절당한 토니는 그냥 나와 버린다.




씁쓸한 마음으로 토니는 집에 들어온다. 그러나 집안 분위기는 한술 더 떠서 지붕이라도 꺼진 듯이 훨씬 더 침울하게 가라앉아있다. 거실에 부모님과 할머니는 좀비처럼 앉아있을 뿐, 토니에게 밤늦도록 뭐 하다 이제 들어오냐고 꾸짖지도 않는다. 토니 때문이 아니었다. 집안의 유일한 자랑이고 희망이었던 토니의 형이 신부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신학교를 완전히 나와서 집에 와 있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사태가 아닐 수 없다. 토니의 형은 신학교에서 금욕서약을 어기거나 문제를 일으켜서 쫓겨난 것이 아니고 단지 스스로의 의지로 신부가 될 것을 그만 둔 것이다. 원래 장남으로서 스스로의 선택이 아닌 부모님의 희망에 맞춰서 선택했지만 도저히 그 길을 평생 지속해나갈 엄두가 나지 않은 것이다.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다음날 토니는 댄스교습소에서 어제 보기 좋게 퇴짜를 맞은 여자에게 다시 대화를 시도한다. 이미 원장을 통해 그녀의 이름이 ‘스테파니 만가노’라는 것을 알고 있고 언제 댄스교습소에 오는지도 숙지하고 있다. 콧대가 높은 스테파니는 토니를 여자에게 집적대는 것을 즐기는 그저 그런 남자애들 정도로 생각할 뿐이다. 한층 여유로워진 태도를 앞세운 토니는 스테파니의 호감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하고 함께 커피를 마시러 간다.

스테파니는 지금 걷고 있는 ‘브루클린 베이 리지’를 보잘 것 없는 후진 동네로 치부한다. 다리 건너 맨해튼 같은 곳과 수준차이가 많이 난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그녀가 처음부터 다리 건너 수준으로 세련되게 태어난 금수저는 아니다. 주경야독하며 열심히 노력해서 차근차근 성장해서 이제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그녀는 다리 건너 세계의 장점을 토니에게 자랑스럽게 늘어놓는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온통 그런 생각뿐이다. 게다가 그녀가 빠져있는 문화와 토니가 빠져있는 문화는 많은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그녀는 회사의 업무와 관련하여 ‘에릭 클랩튼’과 ‘로렌스 올리비에’를 만나서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며 자랑하지만, 토니는 그들이 누군지 전혀 모른다. 알 파치노, 이소령, 실베스터 스탤론보다 더 유명한가? 어쩌면 그녀가 그런 식으로 상대해주면 토니는 자신이 오를 나무가 아니라고 지레 포기하고 나가떨어질 줄 예상했는지도 모른다. 비슷한 경험이 과거에 좀 있었을 것이다.

토니는 당연히 그런 스테파니가 가식적이고 밥맛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자신을 꿈도 희망도 없는 애송이로 본 것은 그의 마음속에 알게 모르게 비수가 되어 꽂힌다. 그렇다고 스테파니를 단지 댄스 파트너로만 생각하고 그 이상을 넘보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든 것은 결코 아니다. 그는 스테파니에게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무언가를 느꼈기 때문이다. 설령 오해나 선입관에 기인한 것일 지라도 그냥 지나쳐버릴 수 없는 무엇이다. 비록 나이차이도 한참 위이지만 앞에서 잠깐 밝혔듯이 그는 태생적으로 연상에게 끌리는 편이다. 그가 처음부터 원한 것은 아니겠지만 스테파니를 통해 다리 건너 세상에 대해서 좀 더 알게 되고 자신의 꿈과 희망을 현실적으로 성장시키는데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스테파니는 아직 미성숙한 그가 성장하는데 일종의 조력자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 영화 이후의 이야기로서 충분히 예상되는 내용일 뿐이다.

스테파니는 토니가 바래다주겠다는 것을 한사코 마다한다. 토니는 그녀와 헤어진 후 친구들이 기다리는 장소로 향한다. 그런데 ‘거스’라는 친구가 어떤 히스패닉 일당들, 아마도 ‘바라쿠다스 클럽’에 출몰하는 녀석들에게 폭행을 당해서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토니와 친구 세 명은 복수하기 위해 바비의 차를 몰고 ‘바라쿠다스 클럽’을 찾아간다. 그러나 영업이 끝났는지 인적은 없고 문은 잠겨있다. 한두 블록을 돌아다녀보지만 그 일당과 맞닥뜨리지는 못 한다.


다음날 토니는 댄스교습소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넷에게 더 늦기 전에 솔직히 파트너를 바꾸기로 마음을 굳혔다고 말한다. 어제까지 좋아했다가 오늘 슬퍼하는 아넷을 뒤에 남겨두고 토니는 스테파니를 만나 본격적으로 춤 연습을 한다. 마치 오래전부터 파트너였던 것처럼 호흡이 척척 맞는다. 연습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토니는 스테파니에게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고, 그녀는 흥미롭다고 볼 수 있지만 지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아마도 아직 잘 알지 못 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둘러댄다. 두 사람은 서로 많이 다르지만 오히려 그런 낯설음에 끌려서인지 어느 덧 친숙한 사이로 발전하고 있는 듯하다.




토니는 형을 데리고 나이트클럽에 온다. 토니의 형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신세계 또는 별천지인 양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토니는 형이 보는 앞이라 더욱 신났는지 무대에서 열정적이게 화려하게 춤을 춘다. 가히 이 구역 춤의 왕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토니의 형은 동생이 이렇게 춤을 잘 추는지 전혀 몰랐다며 연거푸 감탄사를 쏟아낸다. 그냥 보는 사람이 절로 흥이 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형은 잘 구경했다며 일찍 나이트클럽을 나온다. 비록 신부 생활을 그만두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유흥가에 미친 듯이 빠져들 정도의 성격은 아닌 것 같다. 단지 나이트클럽이란 곳은 자신이 오래 있을 곳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느꼈기 때문에 일찍 갔을 것이다.

더 이상 토니의 댄스경연대회 파트너가 아닌 아넷은 토니를 찾아와 공적인 관계가 정리됐으니 기꺼이 잠자리를 가져주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토니는 김칫국부터 마시지 말라는 투로 전혀 그럴 마음이 없다고 거부의사를 표현한다. 토니가 자신을 거부하자 아넷은 토니의 친구들 중 아무하고나 잠자리를 갖겠다며 지 딴에는 질투심을 유발하는 작전을 쓴다. 토니는 바보 같은 짓 하지 말라며 화낸다. 아넷은 토니가 흥분하면서 화를 내는 것이 자신에게 애정이 남아있고 소위 질투심을 불러일으키는데 성공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토니는 질투해서 화를 낸 것이 아니다. 토니의 친구들이 아넷을 그저 잠자리 파트너로 즐길 뿐이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아넷이 큰 상처를 받게 될 것이 뻔히 예상되고 걱정되기 때문이다. 아넷이 그저 클럽에서 오다가다 인사하는 정도의 여자라면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작년에는 댄스경연대회 파트너였고 최근에는 자신에게 집착하면서 연인이 되고 싶어 했고 어제는 토니가 아넷에게 올해 댄스경연대회 파트너는 다른 사람으로 결정했다고 통보한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있기 때문에 아넷이 안 좋은 방향으로 타락하는 것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수는 없었다. 토니는 썩 내키지 않지만 아넷이 원하는 것을 들어준다. 바비의 차로 아넷을 데려가서 잠자리를 시도하는데... 아넷은 이런 경험도 없고 피임 준비도 안 했고 이 시간 이후에 토니와 연인이 된다고 착각하고 있다. 마침 친구들이 몰려와서 토니는 아싸리 잘됐다 싶어 잠자리를 물리친다.

아넷과 토니와 친구들은 바비의 차를 타고 밤공기를 마시며 드라이브를 한다. 모두 기분이 업 된 상태에서 다리에 올라가서 위험한 장난을 치며 자신의 배짱과 깡다구를 온 세상에 자랑이라도 하듯이 뽐내며 포효한다. 그러다 한 친구가 실수로 다리에서 떨어진다. 다른 친구와 토니도 덩달아 어처구니없이 떨어진다. 차안에서 보고 있던 아넷이 놀라서 까무러치듯이 비명을 지르다. 차에서 내려서 달려가 보니, 토니와 친구들이 다리 아래 안전지대에서 쭈그리고 앉아 아넷을 올려다보며 낄낄거리며 웃고 있다. 장난이었다. 아넷은 두 눈을 부릅뜨고 쌍욕을 퍼붓는다. 그러나 이런 무모한 장난은 영화의 끝부분에 가서 실제로 참사를 불러일으킨다. 미리 어떤 것이라고 소개한 것이다. 이번 장난에는 참여하지 않고 차안에서 운전대만을 잡고 있던 바비가 여러 가지 복잡한 내면의 갈등을 극복하지 못 하고 무모한 장난을 치다가 돌이킬 수 없는 참변을 당하게 되고 이것은 토니가 이런 진저리나는 동네 양아치 생활을 청산하고 강 건너 스테파니가 사는 지역으로 가서 새 삶을 꿈꾸겠다는 결단을 내리게 되는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한다.






다음날 아침, 토니의 형은 사회복지관에 머물면서 자신의 일을 찾겠다며 집을 떠난다. 토니가 배웅해준다. 형은 토니에게 부모님이나 외부의 지시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스스로 찾아서 결정하고 열심히 살라고 진심어린 당부를 한다. 형의 말은 당시에는 그냥 흘려들었는데 토니의 깊은 곳에 잠들어 있다가 그가 집과 동네를 떠나야겠다고 결단을 내릴 때 수면으로 떠올라 추진력을 더한다. 차를 타고 떠나려는 순간 형이 토니에게 방에 뭔가를 남겨두었다고 말해서 토니는 혹시 돈이 아닐까 좋아했지만 신부 옷이었다. 토니는 그 옷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목을 조르는 시늉을 한다. 가볍게 스쳐지나가는 이 장면은 그의 앞날에 어떤 불길한 사태가 닥칠 것을 미리 암시한다. 그러나 그 불운의 화살은 토니의 주변의 누군가로 향한다. 그의 희생으로 토니는 삶에 관한 깨달음을 얻는다. 마치 먼 옛날에 인간 대신 동물을 제물로 바치고 신께 기원하여 은총을 받는 것과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토니와 스테파니가 댄스교습소에서 춤 연습을 마치고 나오는데 토니의 친구들이 와 있다. 그들은 함께 햄버거를 먹으러 간다. 스테파니는 토니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수준 차이가 나는 가식적인 얘기를 줄줄이 늘어놓는다. 토니의 친구들은 예의상 약간 관심을 보이다가 토니를 상대로 장난을 치고 햄버거 가게를 쫓겨나다시피 나온다. 바비는 스테파니를 좋게 봤는지, 자신의 여자친구의 아이를 낳게 할지 낙태시킬지에 관하여 솔직한 의견을 물어본다. 스테파니는 누구의 아이냐고 묻고 바비가 자신의 아이라고 대답하자 스테파니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낙태시키겠다고 명료하게 대답하고 서둘러 집으로 향한다. 스테파니는 바비의 어수룩하고 남자답지 못한 모습에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제 역할을 못할 것처럼 보여서 솔직하게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바비는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다음날, 토니는 페인트 가게 사장한테 조퇴 좀 해도 되겠냐고 물으니까 사장은 일손이 부족해서 절대로 안 된다고 한다. 그는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조퇴해야겠다고 하니까 사장은 조퇴하는 순간 해고되는 줄 알라고 협박한다. 그는 이번에는 물러서거나 참지 않는다. 사장한테 소리 지르고 문을 박차고 나간다. 밖에는 바비가 차를 정차시키고 그를 기다리고 있다. 바비는 임신한 여자친구와 결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고 그에게 상담해보지만 그는 그럴 기분이 아니다. 늦기 전에 가야할 곳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바비의 고민을 듣는 둥 마는 둥 나중에 전화해서 들어주겠다고 하고서 (그러나 나중에 전화를 하지 않고 바비는 마음에 응어리로 남겨둔다) 바비의 차를 빌려서 스테파니가 사는 곳으로 간다. 그녀가 다리 건너 동네의 거주지로 이삿짐을 나르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서다.

스테파니가 다리 건너 동네에 거주하는 주택에는 어떤 남자도 머물고 있다. 토니는 뾰로통해지는 감정을 숨기지 못한다. 스테파니는 토니에게 그는 단지 회사 동료이고 그의 개인적인 가정사의 문제로 잠시 머물고 있을 뿐이라고 설명해준다. 토니는, “됐고!”, 단도직입적으로 스테파니와 그 남자가 무슨 관계인지 묻는다. 스테파니는 과거에 그를 잠깐 사귀기는 했지만 이미 좋게 정리되었고 현재는 좋은 직장동료이자 친구사이일 뿐이라고, 자신이 이곳 사회에 정착하는데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준 사람일 뿐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그녀가 세련되고 분위기 있게 보였던 것은 그 남자의 여러 가지 조언과 도움으로 인한 변화와 성장이었던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토니는 스테파니의 여러 가지 조언과 현실적인 도움을 받아 이곳 사회에 적응하고 성장하고 정착하게 될 거라는 미래를 예상할 수 있다. 물론 영화는 그 전에 여운을 남기며 끝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토니는 스테파니의 슬퍼하는 마음을 달래주려고 다리가 훤히 보이는 전망 좋은 강변공원의 벤치에 나란히 앉아 기분전환을 한다. 토니는 다리를 바라보며 다리에 관한 상세한 해부학적 지식을 줄줄이 쏟아낸다. 그의 한밤중 놀이터이기 때문에 남다른 애정이 있었기에 기억하게 된 정보일 것이다. 심지어 한창 건설 중일 때 어떤 인부가 시멘트에 묻혀서 생매장 되었다는 소문까지 얘기해준다. 다리에서 누군가 죽었다는 과거 이야기는 며칠 후에 누군가 실제로 죽게 되는 중요한 사건이 관객의 무의식에서 연결되고 감정이 깊이감 있게 울리도록 하는 역할도 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순간의 분위기 때문일까? 오늘 이삿짐을 도와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한 것일까? 마음속의 솔직한 감정일까? 스테파니는 토니의 볼에 지긋이 키스를 해준다.





다음날, 토니는 자신의 짐을 챙겨오려고 페인트 가게에 간다. 뜻밖에도 사장은 그를 미소로 반갑게 맞으며, 일하다보면 얼굴을 붉힐 때도 있지, 하고 말하고 해고한 것을 없었던 일로 하겠다고 한다. 다른 직원들 중에는 15년 넘게 잘 지내는 사람도 있다며 자신과 그들을 자랑스럽게 말하며 토니에게도 오래도록 함께 일하자며 기운을 북돋아준다. 그때 토니의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맴돈다. 자신이 이곳에서 열심히 일하고 벌어서 집에도 얼마 가져다주고 옷도 사고 매주 토요일에 나이트클럽에도 가고 비교적 만족하며 살고 있지만, 이 일을 15년 넘게 일한다는 것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렇게 오랫동안 일한 다른 점원 아저씨들을 보면... 왠지 자신과는 많이 달라 보인다. 이질감이 느껴진다. 이 일을 계속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한다면 언제까지 할 것인가?

그날 저녁, 토니는 댄스교습소에 갔는데 수강생과 잠자기로 유명한 강사가 스테파니와 춤추고 있는 모습을 목격한다. 토니는 두 사람에게 화를 낸다. 스테파니는 단지 춤만 췄을 뿐이라며 진정시킨다. 토니는 스테파니에게 댄스 파트너 이상의 감정으로 빠져들게 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토니가 홀로 댄스교습소를 나올 때 아넷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갈망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핸드백에서 뭔가를 꺼내서 보여준다. 그것은 여러 개의 콘돔이었다. 토니는 아넷에게 진저리를 치고 홀로 가버린다.


토니와 친구들은 거스를 폭행했다고 알고 있는 바라쿠다스 클럽을 찾아가 처절하게 복수를 한다. 그들은 히스패닉 사람들이다. 상대의 수가 더 많아서 토니와 친구들도 적잖은 상처를 입는다. 소심한 바비는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건물의 주변을 맴돌며 싸움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토니와 친구들을 태우고 달아난다. 토니와 친구들은 곧바로 병원에 입원해 있는 거스에게 달려가 화끈하게 복수해줬다며 시원스럽게 자랑하는데... 거스는 전혀 뜻밖의 말을 한다. 자신을 폭행한 일당들이 바라쿠다스 클럽 애들인지 정확하지 않다고 그냥 그럴 지도 모른다고. 토니와 친구들은 어처구니없고 어이없고 황당해한다. 바비도 덩달아 벽을 치며 분노한다. 그런데 옆에 있던 친구가 바비에게, 너는 구경만 하고 실제로 싸우지도 않았잖아, 하고 비꼬며 비난한다. 바비는 현재 고민하고 있는 일도 있고 친구의 뼈있는 비난의 화살이 마음 속 깊이 박힌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지만 자신의 삶이 왜 이렇게 한심한지 부끄럽고 혼란스럽다. 자신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다고 외치고 싶었다.




토니 일행은 거스가 입원해 있는 병원을 나오자마자 ‘2001 오디세이’ 나이트클럽으로 서둘러 이동한다. 오늘밤에 댄스경연대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정문에서 스테파니를 만나서 함께 입장한다. 참가자들 중에는 멀리서 온 경우도 있다. 때문에 다양한 인종들이 자신만의 장점을 살린 다양한 춤 솜씨를 보여준다. 어떤 면에서는 인종 간의 보이지 않는 편견과 경쟁이 있고 순수한 춤 실력과는 무관하게 자신이 속한 종족을 무조건 응원하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그러나 토니는 그렇지 않다. 편견 없이 춤 자체만을 보려고 노력한다. 다른 참가자들의 춤 실력을 집중해서 감상하고 진심어린 박수를 쳐준다.

토니와 스테파니의 차례가 온다. 두 사람은 ‘More Than A Woman’ 배경음악에 맞춰 아름답고 우아하게, 사랑하는 연인의 감정이 샘솟는 것처럼 춤춘다. 한편, 두 사람을 보면서 아넷은 자신을 파멸시키는 짓을 하고 만다. 토니의 친구에게 각성제를 달라고 해서 먹는다. 아마도 처음 먹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수렁으로 빠져들기 시작한다.





토니와 스테파니의 춤이 끝나고 이어서 푸에르토리코 출신의 댄스팀이 출전한다. 토니는 그들의 춤 실력에 감탄한다. 친구들이나 다른 사람들과 달리 토니는 그들이 자신들보다 훨씬 더 잘 했다고 솔직하게 평가한다. 곧이어 시상식이 거행된다. 대부분의 예상대로, 주최 측의 텃세가 작용한 것도 있고 토니와 스테파니 팀이 1등을 차지한다. 푸에르토리코 출신은 2등을 한다. 토니의 마음은 혼란스럽고 복잡해진다. 결과에 만족하자니 양심의 가책이 느껴진다. 그냥 그러려니 받아들이면 자신을 기만하는 것이다. 저들은 히스패닉이고 자신은 백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우승하게 되는 것은 엄연히 옳지 못한 처사이다. 이것은 공정한 승부가 아니다. 자신은 정당한 1등 수상자가 될 수 없다.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이런 세상이 역겹다. 환멸스럽고 가증스럽다. 토니는 자신이 받은 상패와 상금 500 달러를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춤을 보여준 푸에르토리코 출신 댄스팀에게 건네준다. 그리고 스테파니의 손을 움켜잡고 밖으로 나간다.

친구 거스를 폭행하지도 않은 엉뚱한 바라쿠다스 클럽의 히스패닉 사람들을 폭행한 것도 부끄럽고 자신의 춤 실력을 제대로 평가해주는 사람도 없고 출신 지역과 인종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더러운 세상, 마음이 혼란스런 토니는 스테파니를 바비의 차 뒷좌석에 몰아넣고 키스하려고 한다. 스테파니는 뿌리치며 토니의 자존심을 건드릴 만한 말을 골라서 줄줄이 내뱉는다. 토니는 화가 치밀어 강제적으로 잠자리를 시도하는데, 스테파니는 토니를 슬기롭게 떨쳐내고 서둘러 그곳을 떠난다.

홀로 남겨진 토니에게 친구들과 아넷이 휘청거리며 걸어온다. 술과 각성제에 취해서 제정신이 아닌 아넷은 일행들 모두와 잠자리를 갖겠다고 호언한다. 토니는 화를 내며 아넷만을 집으로 돌려보내려고 하는데, 오히려 친구들이 토니를 강압적으로 막는다. 그들은 모두 바비의 차에 오른다. 빼곡히 들어찬 차는 도시의 야경을 휘저으며 질주하고, 뒷좌석에서 아넷은 토니의 친구와 잠자리를 갖는다. 그러나 본래 이런 경험이 없던 아넷이 제 정신을 차리고 비참한 실체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래도 토니와 바비는 아넷과 잠자리를 갖지 않는다. 어느덧 바비의 차는 다리 한복판에 이르러 정차한다. 친구들은 종종 그랬던 것처럼 까딱 실수하면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장난을 치기 시작한다.

혼란스럽고 슬픈 감정이 아직 진정되지 않은 아넷은 토니의 빈정거리는 말 한마디에 추가로 상처를 받고 차에서 뛰쳐나가 다리를 따라 달려간다. 걱정이 된 토니는 아넷을 되쫓아 가서 끌어안고 사과하며 달래고 진정시킨다. 그 사이 바비가 차에서 내려 다리의 위험한 곳으로 가서 자신도 담력과 깡다구와 용기를 보여주겠다는 듯이 위험한 장난을 친다. 간만에 만취한 바비도 그동안 쌓이고 쌓인 복잡한 감정이 곯아서 마침내 활화산처럼 폭발한 것이다. 자신의 소심함과 비겁함과 무능력함을 조금이라도 용서받기 위한 가학적인 몸부림일까? 토니와 친구들이 바비의 행동이 심상치않음을 알아보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이제껏 한 번도 이런 적이 없는 친구였기 때문이다. 토니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바비가 위험한 장난을 멈추도록 침착하게 회유한다. 다른 친구들도 위험한 장난을 멈추고 바비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한다. 토니조차 아래를 내려다보면 고소공포증이 느껴질 정도로 아찔하고 위험한 장소에서 바비가 비틀비틀 몸부림의 장난을 친다. 토니는 천천히 접근해서 바비를 붙잡으려 했지만 바비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중심을 잃고 다리 밑으로 추락해서 강물에 빠진다. 얼마 후 경찰이 도착해서 바비의 변사체를 수색한다.




토니는 바비의 죽음으로 이제껏 살면서 느껴보지 못한 커다란 충격을 받는다. 지금까지 마음속에 장전되어 있던 무게감 있는 탄환들이 일제히 그의 정신세계를 강타한다. 토니는 친구들과 아넷을 뒤에 남겨두고 홀로 어두운 밤거리를 걷는다. 지하철을 탄다. 늦은 밤이라 인적이 없고 텅 빈 공동묘지 같다. 지하철을 타고 정처 없이 이동한다. 정신적으로 매우 복잡하고 혼란스럽다. “How Deep Is Your Love” 노래가 들려온다. 마음속이 촉촉하게 젖는다. 감미로운 멜로디가 황무지 같은 마음에 단비를 내린 것이다. 사슴이 사냥꾼을 목격했을 때처럼 지난 시절이 기억의 숲속을 빠르게 스쳐지나간다. 어떤 큰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란 이런 느낌일까? 혹시 신부가 되는 것을 그만 둔 형이 지금 내 기분과 똑같지 않았을까? 토니는 밤새도록 도시의 여기저기를 걸어 다니며 알 수 없는 자신의 삶에 대해서 고민한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까? 내 삶이 가는 길.


어느덧 새벽이 깨어나 도시를 환하게 비춘다. 토니는 다리 건너 익숙한 듯 낯선 거리를 걷고 있다. 그곳은 스테파니의 집이 있는 거리이다. 토니는 그녀에게 지난밤의 일을 진심으로 사과한다. 스테파니는 그를 집안으로 들인다. 두 사람은 거리가 내다보이는 창가에 앉아 마주본다. 그는 이제 자신의 동네로 되돌아가지 않고 이 지역에서 새 삶을 살아가겠다는 결심을 털어놓는다. 그녀도 지난밤에 그의 자존심을 깔아뭉갰던 말들은 진심이 아니었다고 사과하고 그와 만나는 동안 행복했고 즐거웠다고 말한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리라고 마음먹는다. 스테파니는 친구 이상으로 넘보지 않을 자신이 있냐고 묻고, 노력은 해보겠지만 장담할 수는 없어, 라고 토니는 대답한다. 그녀의 입가에서 안개 같은 미소가 맴돈다. 조용히 일어나 그에게 다가가 포근히 끌어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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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어렸을 때 극장에서 본 적은 없다. 동네 담벼락에 포스터를 본 적은 있는 것 같다. 세월이 흘러 비디오테이프로 DVD로 블루레이로 볼 수도 있었겠지만 실제로 처음부터 끝까지 감상한 것은 몇 년 전이다. 그리고 이번에 글을 쓰기 위해서 다시 감상했다. 볼 때마다 마치 오리지널 부대찌개를 먹는 느낌이랄까. 먼 이국땅의 서민적이고 이질적인 문화의 껍질 속에서 꺼낸 알맹이가 진실 되고 시큰하고 달짝지근하다.

몇 년 전에도 느꼈지만 단지 ‘나이트클럽에서 춤 잘 추는 주인공을 즐겁게 감상하세요’라는 정도의 평가만으로는 만족스럽지 않다고 생각되는 영화다. 개봉 당시에는 익히 알려진 대로 대중적으로 대박이었을 테고 세월이 흘렀어도 관객의 심금을 울리는 그 어떤 매력과 깊은 맛이 느껴진다. 현대에 감상해도 느껴지는 생각해볼만한 무엇이 발견된다. 그런 것을 너무 어렵지 않게 가식적이지 않게 담백하게 표현했다. 나이트클럽에서 여자를 유혹하기 위한 춤이 소재인 것은 맞지만 영화의 이야기와 메시지는 청춘물이라는 범주에 국한한다면 거의 명작의 반열에 오를 만할 정도로 진하고 깊은 맛이 들어있다. 여기서 춤은 그냥 춤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좋아하고 몰입하는 자신만의 뛰어난 재능의 구체적인 예일 뿐이다. 플롯과 메시지는 청춘물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꿈과 미래를 위해 희로애락의 집과 마을을 떠나기로 결단하는 용맹한 소년의 성장기’라고 볼 수 있다.


필자는 춤을 아애 못 춘다. 예전의 나이트클럽, 현대적 의미의 클럽을 모두 합쳐서 10번 내외로 가봤을 것이다. 그러나 화려한 조명과 신나는 음악과 아름다운 여성들(조명발이고 화장발인 경우가 많지만)을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갈 수 있다면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조용히 여가를 보내는 것이 더 편하다고 느끼는 나이에 접어들었기에 저 세계에 동경이나 향수는 그다지 없다. 그렇다고 반감까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순진한 젊은 여자들이 어떤 환상을 품고 클럽에 간다면 말리고 싶고 기어코 가야겠다면 남자친구가 있을 때 동행하고 여러 지인들과 함께 가서 즐기는 것은 그나마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오래전에 제작된 이 영화에도 일부 표현되어 있고 현시대라고 해서 많이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겉모습 정도만 변했을까.


애초에 영화 ‘더티 댄싱 (Dirty Dancing)’을 이런 식으로 적을까 생각했었는데 어쩌다보니 이 영화를 먼저 쓰게 되었다. ‘더티 댄싱’도 이 영화에 비견될 만큼 그냥 흥겨운 영화를 넘어서 좋은 영화라고 생각된다. 최근에 다시 감상했는데 오래 전에 봤을 때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이제는 보여서 다소 놀랐었다. 화면에 숨어서 까꿍! 하는 귀신을 봤다는 얘기가 아니라 보일 듯 말 듯 이야기 속에 담겨진 사회적인 메시지들이 빛나고 있었다. 다음에 글을 쓸지도 모르겠지만 장담하지는 못한다.


2016년 8월 8일 김곧글(Kim Godg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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