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으로 시각적인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세계에서는 그것을 쟁취하려는 온갖 수단과 방법이 통속적인 수준이나 인륜의 경계를 뛰어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름다움이라는 왕관를 쓴 자에게 고속도로 같은 신분상승의 루트와 0.1 퍼센트 상류층에 속할 수 있는 부와 명예가 주어질 수도 있다면 소위 무슨 짓을 저지르고서라도 쟁취하려 들 것이다. 이것은 인간 문명에서 왕의 권력을 쟁취하고 유지하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피를 제물로 바치고 획득했는지를 상기하게 만든다. 같은 맥락일 것이다. 현대인들이 다이어트를 하고 복근을 만들고 몸짱이 되는 것에 과열하는 이유는, 비록 이 영화 속 패션업계처럼 극단적이기까지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것이 현대 사회에서 부 또는 권력을 어느 정도 가져다주는 일이 비일비재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쉽게 말해서, 어떤 사람이 사회통념상 괜찮은 회사에 취업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자신의 인격이 어두웠든지 밝았든지 속에 무슨 꿍꿍이 있든지 전혀 중요치 않고 면접을 위시한 취업 관문을 통과하는 일련의 과정 내내 깨끗한 피부와 산뜻하고 화사한 인상과 활기차고 다정한 표정과 활동적이고 늠름하고 열정적인 신체와 동작과 말솜씨는 (모두 대도시에 있는 영리학원에서 몇 달 내로 습득되거나 수정될 수 있는 기교이다) 취업의 당락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어떤 면접관은 실제로는 그렇지 않고 단시일에 만들어진 기교인지 구분해낼 수 있다고 장담하지만 그런 것도 영리학원에서 돈을 더 내고 수강하면 충분히 교정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즉 기교적인 겉모습이 거의 전부라고 볼 수 있는 현대 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영화에는 비록 패션업계에 국한한 이야기지만 넓게 확장하면 현대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비판의식이 깔려있다.
 

이 영화는 이러한 메시지를 현대적이고 신선한 영상미로 담아낸 수작이다. 그러나 요즘의 흔한 영화는 현실성과 사실성에 기반을 둔 작품이 대세를 이루는데 반하여 이 영화는 비주얼과 영상미는 비현실적이고 이야기는 비사실적이고 극단적이며 심지어 결말은 매우 비극적이기까지 하다. 그래서 관객의 선호도에 따라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라질 여지가 큰 편이다. 영화를 감상할 때 스토리와 대화에 집중해서 감상하는 관객은 그다지 흥미로운 재미를 느낄 수 없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심플한 이야기, 시선을 사로잡는 영상미, 인물의 특징적인 분위기를 잘 표현한 영화를 선호하는 관객은 매우 흥미진진하게 감상할 것이다.

이 영화의 장점과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비주얼과 영상미와 인물들의 분위기이다. 현란한 CG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창의성이 가미된 신선한 비주얼의 영상미가 인상적이었다. 어떤 장면만을 골라내서 살펴보면 패션잡지, CF, 뮤직비디오 등에서 가끔 볼 수도 있는 비주얼이지만 그것을 영화 전체적으로 잘 녹여놓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단순히 최신 기교를 가져와 뽐내는 차원을 뛰어넘는다. 유화의 기초적인 도구인 붓과 물감에 대응하는 영화의 기초적인 도구인 카메라 렌즈와 조명이라는 광학적인 특징을 활용한 현대적인 비주얼을 만들어냈다는 점이 중요한다. 이것이 이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장점이고 매력이다. 그리고 이런 장점이 실제적으로 표출되는 것은 인물들일 것이다. 그 인물들의 분위기 연출력이 뛰어나서 감상하는 재미가 충분히 있다.

저예산이라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초반의 클럽 파티 장면은 비록 극단적으로 심플하지만 강렬한 느낌을 주는 영상미에 취하지 않을 수 없다. 중반에 패션쇼 장면도 같은 맥락이지만 어떤 영화에서도 클럽 파티나 패션쇼 장면을 이런 형식미의 비주얼로 표현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영화 ‘도그빌’의 영화적인 미니멀리즘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지만, 차이점은 조명과 광학적인 기교를 창의적으로 사용했다는 점이다. 수많은 엑스트라 또는 CG를 활용해서 사실적인 장면으로 표현하는 일반적인 영화에 전혀 뒤지지 않는, 오히려 이색적인 분위기와 매력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추가로, 포토그래퍼가 새하얀 배경의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이야기의 결말은 매우 엽기적인 살인 사건을 뛰어넘는다. 한편으론 요즘 한국 사회에서 이에 준하는 엽기적인 살인사건들이 가끔씩 발생하고 있어서 그렇게 놀랍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만큼 현대 사회가 전 세계 어디를 가든지 흉흉한 범죄를 간헐적으로 표출하고 있는 것은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나타난 어두운 측면일 것이다. 이 영화에서는 처음부터 간간히 주인공 제시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을 것이고 그 범인은 누구일거라고 힌트를 던져준다. 두 번째 감상할 때는 그런 단서들을 알아보는 재미도 솔솔할 것이다.


패션쇼 장면에서와 제시의 무의식 장면에서 피라밋이라는 기하학적 형태가 나오는데 이것은 아마도 패션업계에서 미인의 권력을 상징한 것이다. 그 미인의 권력 구조는 피라밋 형태이다. 가장 높은 곳에 극소수의 몇 명만 존립할 수 있다. 또한 이집트 피라밋에 묻힌 왕들처럼 절대권력에 준하는 아름다움의 영예를 거머쥐게 된다. 영화 속 패션 디자이너의 말을 인용하자면 아름다움은 전부가 아니라 유일한 것이다 (Beauty isn't everything. It's the only thing.).

주인공 제시(엘르 패닝 분)는 그런 유일함을 별다른 노력 없이 단지 우연이나 세상의 선택에 의해 갖게 된 경우이다. 이 경우에 기존 세력의 거센 공격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제시는 나이도 한참 어리고 부모도 없고 아직 도시생활과 패션업계에 적응하지 못한 풋내기이기에 야생동물 세계로 치자면 맹수의 눈에 쉽게 띄는 연약한 사냥감일 뿐이다. 아직 휘두를 권력을 거머쥐지 못했지만 누가 봐도 그럴 가능성이 농후한 특별한 올챙이를 황금연못의 개구리 왕으로 성장하기 이전에 말끔히 해치우고 그 특별한 기운을 흡수하려는 욕망을 가진 흔하지 않은 여자들이 루비, 사라, 지지이고 이들은 영화 ‘나를 찾아줘(Gone Girl)’의 에이미를 떠올리게 하는 현대여성일 것이다.

영화의 무거움을 떠나서 다소 가볍게 얘기하면 패션업계 분야 및 현대사회가 그만큼 알게 모르게 경쟁과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 것을 신경 쓰든지 말든지 누구는 희소한 가치의 명예를 갖게 되고 대다수의 누구는 갖지 않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것은 본인의 노력과 절대적으로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현실은 그 어떤 것에도 치우쳐지지 않았다. 불확정적인 확률에 따른다고 볼 수 있을 정도일 뿐이다. 이러한 세계의 불편한 실체의 위협으로부터 위로받기 위하여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일은 요긴한 덕목 중에 하나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관객은 행복하고 즐거운 예술작품을 보기를 원한다. 전부는 아니지만 대개가 그렇다. 그리고 그런 예술작품은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예술작품이 그래야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비극적이고 거칠고 따가운 예술작품이 더 큰 울림이 있는 경우를 가끔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러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잘못 만들면 그냥 쉽고 가볍고 즐거운 만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이 영화는 어두운 측면을 비극적으로 강렬하게 다뤘지만 결과적으로 완성도가 높다. 관객에게 예술적인 감동을 주는 충분한 매력이 있다. 이런 느낌을 주는 영화를 잘 만들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 감독이 있다. 김기덕 감독이다. 이 영화의 내용만을 따진다면 김기덕 감독의 스타일과 매우 닮았다. 다만 영상미가 세련되고 도시적이고 고급적인 것이 차이일 뿐이다.


추가로 이 영화의 사이버틱한 사운드 트랙이 일품이다. 어떤 음악들은 고전 명작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의 음악이 떠오를 정도로 괜찮다. 흥겨운 맛도 있고, 신비스럽고 오묘한 맛이 있다.


엘르 패닝 여배우의 장점은 전원적인 것과 도시적인 것을 모두 갖췄다는 점이다. 단지 외모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도 그렇지만 대사의 표현력도 그렇다. 요즘 유명한 대부분의 헐리우드 여배우가 도시적인 이미지가 강한 것과 대조된다. 다음 작품도 기대된다.


2016년 9월 7일 김곧글(Kim Godg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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