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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감상글] 더 랍스터(The Lobster, 2015) (두 번째 감상글)

by 김곧글 Kim Godgul 2021. 6. 15. 16:54

 

 


예전에도 한 번 이상 감상했었는데 뜬금없이 어제 다시 감상하게 되었다. 무슨 이유로 감상하게 되었는지 이유가 있었지만 특별한 것은 아니라서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이런 경우 대개는 처음에 조금 보다가 마는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았고 한 번에 몰입해서 감상했다. 아! 지금 떠올랐다.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된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최근에 영화 ‘보이저스(Voyagers, 2021)’를 감상했는데, ‘콜린 파렐’이 조연으로 출연했고, "'콜린 파렐'의 제2의 전성기 또는 제2의 절정의 연기는 ‘더 랍스터’에서였다."라고 생각했던 예전의 기억이 떠올라 이 영화를 다시 감상하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영화 자체가 인상적으로 좋았었다는 것이 전재로 깔렸다는 것은 두 말하면 잔소리다.

 


대개 예전에 봤던 영화를 다시 보면 큰 프레임의 줄거리는 기억나지만 세부적인 것까지는 아니다. 세부일지라도 일부 인상적인 것은 기억나지만 대부분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감상하면서 ‘아! 그랬었지.’라고 빨리 공감하게 된다. 확실히 기억의 저편 후미진 구석에서 먼지를 털며 떠오르는 기억 조각이다. 예전에 필자가 적었던 나름 상세한 감상글은 아래 링크에서 읽어볼 수 있다.

 


  참고글(필자의 예전 감상글): 더 랍스터 (The Lobster, 2015)

 


예전에는 생각지 못했는데 어제 다시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 데이비드(콜린 파렐 분)이 어수룩해 보이고 우유부단한 성격에 운동신경도 부족해 보이는 캐릭터로 보였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 순간에 걸쳐 이야기의 방향 전환 또는 추진을 발생시키는 결단 있는 행동을 많이 하는 여느 장르 영화의 주인공과 다름없었다. 흔한 이야기에서는 이런 부류의 주인공은 외부의 영향을 많이 받아 휘둘리면서 이득 또는 손해를 보는 편인데 데이비드는 겉보기와는 달리 여러 가지를 결단력 있게 행동하는 인물이었다. 이런 점이 흔한 이야기와 차별된다고 생각되었다.

 


이번 글에서는 데이비드(이하 ‘그’)의 행적에 관해서 적어본다. 이것만을 따져보면 결코 어리숙하거나 우유부단하게 행동하는 소시민적인 현대인의 전형은 아니었다. 그는 댄스파티에서 댄스홀을 묵묵히 가로질러 맞은편에 앉아 있던 젊은 여자(코피 많이 흘리는 특징)에게 댄스 파트너 신청을 한다. (참고로 이날 이 여자와 춤은 같이 췄지만 결국 이 여자는 다른 젊은 남자와 부부가 된다). 관객이 보기에 그와 비슷한 느낌의 여자(과자를 좋아하는 여자)가 그에게 여러 번 데이트 신청을 했지만 그는 번번이 나름 적절하게 거부의사를 표현한다. 그러나 그는 (관객이 보기에 그에게 과분한) 풍성한 금발이 아름다운 젊은 여자에게 추파를 던져봤지만 딱지 맞는다. (참고로 이 젊은 여자는 풍성한 갈기가 인상적인 조랑말로 변신하게 된다) 커플이 되어야 하는 유효기간이 코앞에 닥친 그는 어쩔 수 없이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표정 변화도 없을 거 같은’ 사이코패스 여자와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하기로 결단을 내린다. 그의 연기는 나름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결혼생활이란 함께 있는 시간도 많고 잠자리를 같이 하기 때문에 미세한 것까지 상대방에게 포착되기 마련이다. 가면 쓴 거짓 마음은 들통나기 마련이다. 결국 그는 사이코패스에게 들통나서 랍스터로 변신당하기 일보직전에 결단 있고 과감하게 행동하고 지혜도 발휘해서 그 우화적인 호텔을 탈출한다.

 


데이비드는 독신들이 살아가는 숲속의 사회에 편입되어 속편하게 독신의 삶을 살아간다. 어느날 이 사회에서 마음이 통하는 여자(레이첼 와이즈 분)를 만나서 불법이며 엄벌이 뒤따르는 ‘사랑’을 몰래 한다. (여담이지만 이 숲속 독신 사회에서 웃겼던 것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을 하는 것이 금지되었으니까 일렉트릭 댄스 음악을 각자의 이어폰으로 들으면서 춤출 수 있도록 허용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의 비밀 연애는 두목에게 들통나고, 두목은 그를 생매장시키는 시늉만하고 살려준다. 그 대신 그가 사랑한 여자(레이첼 와이즈 분)의 눈을 멀게 만드는 처벌을 한다. 그는 그녀와 함께 도시로 도망쳐서 비록 불법이지만 몰래 함께 살기로 계획을 세웠었는데 완전히 물거품이 된 셈이다. 이 부분에서도 그는 겉보기와 달리 결단 있게 행동한다. 자신의 꿈을 산산이 짓밟은 두목에게 복수를 한다. 어떻게 보면 자신을 살려준 은인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연인의 눈을 멀게 만들어서 자신의 행복을 송두리째 망가뜨린 자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두목을 완전히 파멸시킨 것은 아니고 두목이 비록 공포심은 느꼈겠지만 두목 정도의 능력자이면 충분히 빠져나올 수 있을 정도의 여지를 남겨주었다. 두목이 그에게 잘 해준 부분도 감안한 셈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중대한 결단을 내린다. 비록 눈 먼 연인과 함께 도시로 도망치는 데는 성공했지만 결국 그는 대부분의 문학 작품 속의 영웅스러운 행동을 하지는 않은 것으로 추측된다. 소위 열린 결말이라 확실하지는 않지만, 영화 내내 그의 결단과 행적으로 추론했을 때 거의 그래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필자의 추측이고 작가(또는 감독)이 열린 결말로 해놓았으므로 관객 각자가 알아서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 생각이 현대 문명 사회 또는 현대인 또는 사랑에 관해서 생각하는 관점일 것이다.

 


한편으론 너무 이렇게 현실(문명 사회, 인간이라는 존재)를 냉철히 직시하는 것이 불편하기도 하다. 현실과 인간의 어두운 측면에만 집중하면 현대인은 완전히 각자 따로따로 살아가야 정상이다. 그러나 수많은 인간들이 그렇게 살지 않는다. 무지개빛의 행복한 꿈을 꾸고 싶은 욕망이 회색빛의 현실 자체만을 직시하는 욕망보다 훨씬 강한 것이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른다. 결국 그런 면에서 이 영화의 주제 의식 또는 존재 이유는 ‘눈을 똑바로 뜨고 회색빛의 현실을 직시하자’는 메시지가 아니고 ‘무지개빛의 꿈을 더 잘 꾸고 일궈내기 위해서 잠깐 회색빛을 살펴보는 일탈을 한번쯤 간접체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일 것이다.

 


명작 장편을 꾸준히 내놓았던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 최근에는 코로나 때문인지 신작 소식이 뜸했는데 IMDB에 가보니 ‘Poor Things’라는 장편을 만들고 있는 듯하다. 올해도 아니고 내년이지만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다.

 


2021년 6월 15일 김곧글(Kim Godg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