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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보통 관객이 즐기기에 빡세다 - 박쥐(2009)

by 김곧글 Kim Godgul 2009. 5. 2.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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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도 될 줄 예상했다. 분위기, 스타일은 '친절한 금자씨'의 연장선, 소위 박찬욱표 스타일이다. 영화를 수도없이 봐서 웬만한 영화는 시사하다고 느끼는 매니아들이 좋아할 법하다. 보통 관객이, 순전히 내 생각일 뿐, 영화감상 즐기기에 빡세다. 인간의 보편적 윤리와 질서를 어긴 자가 죄값을 치른다. 지옥으로 날아갈 수밖에 없는 절망스런 박쥐다. 도스토예프스키 스타일로 사실적인 박쥐를 드라마 '사랑과 전쟁'과 섞어 잔혹하게 서술하면 이 영화다.

아마도 박찬욱 감독의 목표는 흥행 대박이 아니라 영화사에 획을 긋는 (굵직한 흔적을 남기는) 명작이었던 것 같다. 여러 개의 잔혹한 영상은 영화매니아라면 모를까 보통 영화 관객이 즐기기에는 버거울 것 같다. 한국의 대다수 보통 관객은 아직까지는 잔혹한 장면을 극장에서 즐기고 싶어하지 않는 것 같다. 나도 그런 편인데 이 영화의 경우 잔혹한 장면에 어쩔 수 없이 감정이 끌려갈 때 '저건 CG야, 특수효과야, 연기일 뿐이지 실제가 아냐.'라고 생각해서 다소 누그러트린다. 어쨌튼 사실주의적 잔혹한 장면이 많은 박찬욱 영화는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잔혹한 장면이 많은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쨌거나 박쥐는 정갈하게 잘 만들어졌다. 어떤 관객은 '돈 아깝다'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다. 너무 매니악하게 전문적인 감각으로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에 보통 관객이 그 맛을 못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아마도 박찬욱 감독은 수많은 보통 관객을 적어도 자신의 예술세계를 일정 부분 이해할 수 있는 영화학도로 생각하고 그것을 전재로 영화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관객은 그냥 평범한 사람이다. 영화는 오락이고 여흥이다. 그들에겐 이런 스타일은 감정의 머리에 미분 적분 푸는 것과 비슷하다. 보통 관객을 박찬욱 영화에 열광하는 평론가와 매니아들보다 약간 아래 정도의 감상력을 지녔다고 생각하고 만들었을 것 같다. 그러나 보통 관객은 좀더 쉽게 직관적이고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사고를 한다.

감독의 이름값은 한다. '허우샤오시엔'의 롱테이크와 차별되는 박찬욱 감독만의 롱테이크를 독창적이게 시도한 영상미가 돋보인다. 영상의 색감은 '친절한 금자씨'가 떠오르지만 영상미, 촬영 기술은 박쥐만의 새로움이 있다. 다른 감독과 다르게 찍어내려고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 역력하다. '썩어도 준치'라고 흥행은 별로겠지만 그렇다고 영화 자체가 별로는 아니다. 그러나 많은 한국인은 이런 스타일의 영화를 결코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계속해서 영화평론가들과 매니아들은 박찬욱 감독을 좋아하겠지만 일반인들은 고개를 갸우뚱 할 것이다.

'영화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삶이란 무엇인가?' 라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이런 영화적 실험은 장기적으로 매우 영양가 높다. 첨단의 영역을 개발하는 모험가 정신이다. 새로운 산길을 찾는 산악인의 산행이다. 어떤 유명한 영화제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을지도 모른다. 어떤 감독이던지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이 있다. 박찬욱 감독의 경우에는 인간의 본능, 윤리, 신들의 잔혹한 파티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즉 인간의 근본적인 무엇과 관련 있고 현대문명의 은유이고 메타포겠지만 그렇게까지 고차원적으로 해석하며 즐기는 일반 관객은 거의 없다. 너무 고매해지려고 고차원적으로 영화를 만든 것 같다. 누군가는 그것을 좋아하겠지만 아마도 현대 한국에 대부분의 보통 사람은(한국은 꽤 미국적이고 미국은 서구문명에 속한다고 볼 때 전 세계 대부분의 보통 사람도 포함) 결코 이런 영화를 즐기러 상영관을 찾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평론가, 매니아들은 연구할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하며 좋아할 것이다. 어떤 면에서 새로운 자극이고 진보적인 실험이기 때문이다.

잔혹한 장면에 거부감이 있다면 안 보는 편이 좋다. 반드시 봐야할 명작 같지는 않다. 그래도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CG다 특수효과다' 생각하고 보면 되고, 그래도 힘든 장면에선 슬쩍 눈을 감으면 된다. 내 경우 딱 2번 그랬다. 올드보이에서와 달리 사운드적으로 잔혹한 장면은 없었다. 내용은 어렵지 않은데 내용으로 혼란스러워 하는 감상평을 보면 의외다라는 생각도 든다. 재미가 없을 뿐이지 스토리, 캐릭터, 내용, 전달하려는 의미 등이 전작 '사이보그라도 괜찮아'처럼 짙은 안개는 아니다. 오히려 심플한 편이다. 좀더 대중적으로 재밌게 에피소드를 풀어내지 못 한 면이 아쉬울 뿐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런 류의 영화를 꼭 좋아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게임, 소설, 스포츠처럼 개인적인 취향이 강하다. 엔터테인먼트는 멀다면 멀고 짧다면 짧은 인생의 고단함을 잠깐 쉬어가게 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존재 이유일 것이다. 누군가에게 그렇지 않은 엔터테인먼트는 반드시 흡수할 필요는 없다.

영화는 영화다. 신은 신이다. 윤리는 윤리다. 박쥐는 박쥐다. 인간은 죽을 때까지 수고가 많다.

2009년 5월 2일 김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