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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칼럼, 단편

(시) 모기의 명상

by 김곧글 Kim Godgul 2010. 7. 9.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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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의 명상


아무도 반기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않는다
한 여름이 일생이라고 불평하지 않는다
왜 하필 흡혈 식성이어야 했냐고 불평하지 않는다
잠자리와 나비처럼 사랑 받지 못한다고 불평하지 않는다
그런 생각 따위 귀신 씨나락 까먹는 생각이라 여기고
에엥 하는 날개짓으로 위풍당당하게
모기의 존재감을 세상에 공표하며
오늘도 어김 없이 어느 창문으로 향한다

살아야 하기 때문에
산다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에
이미 모기로 태어난 이상
모기답게 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에...

모기로서의 충실한 삶을
전능하신 신께서 내게 원했다
별도 달도 해도, 산도 바다도 짐승도 그리고 인간도
다 그런 맥락으로 살고 있다

내가 모기여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모기가 나여서 행복한 것이다
신이 나를 모기로 만들어서 불만인 것이 아니라
모기로서도 신을 섬길 수 있게 해주신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다음 세상에는 어떤 존재로 다시 태어나게 해주실까?
신과 소통할 수 있는 존재라면
어떤 미물이라도 상관없다
이 또한 신의 섭리리라

오늘 밤도 모기의 숙명을 따라 어느 창문을 넘는다



2010년 7월 9일 김곧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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