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감상글(Movie)

맨 프럼 어스(Man From Earth, 2007)

by 김곧글 Kim Godgul 2010. 10. 10. 10:10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연극적인 공간 배경에서, 달랑 오두막 하나, 연극적인 대사톤이 느껴지는 인물들이 대여섯명 등장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영화의 전부이다. 정말 재미 없게 보일 수도 있도 있지만, 인류학, 종교, 신화 이런 것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관객이라면 신선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 존은 스스로 10년 동안 재직했던 고고학 교수직을 사직하고 떠나려 한다. 동료들이 아쉬워 모여든다. 갑자기 떠나려는 이유도 궁금해서이다. 망설이다가 존은 자신이 '크로마뇽인'이고, 14,000년 동안 살았으며, 10년마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이 늙지 않는 불사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전에 미리 미리 떠나는 거라고 고백한다.

동료들은 대부분 관련 분야 교수들이다. 호기심이 강하고 일단 들어보는 캐릭터들이란 뜻이다.(그래야 이야기가 된다. 미친놈이라고 치부하고 자리를 떠나버릴만한 평범한 사람들이 등장하면 이야기를 끌고 갈 수 없다) 오두막 벽난로 앞에서 14,000년 동안 살아온 존의 추억담이 대화형식으로 진행된다. 먼 옛날 동굴에 황소 벽화를 그리던 동료 얘기,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에서 살던 얘기, 인도에 갔던 얘기...

이야기가 지루해질 쯤에 한번 더 놀라운 이야기를 한다. 망설이다가 존은 자신이 '예수'라고 말한다. 자신이 인도에 갔을 때 부처를 만났고 그에게 가르침과 요가를 수련해서 이스라엘 지역에 돌아와서 그의 가르침을 전파했는데 그런 행적이 과장되게 기록되고 꾸며져서 예수라는 성인이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듣고 있던 동료 중에 노부인은 눈물을 흘리며 매우 격한 감정에 쌓인다. 신성모독을 해도 유분수라는 것이다. (중간에 어떤 사건도 있는데 생략) 밤이 깊어 동료들이 떠나야할 시점에, 존은 자신이 쓰는 소설 이야기일 뿐이라고 털어놓고 동료들은 투덜투덜 귀가한다. 관객들도 존이 꾸며낸 이야기인지 아닌지 확실히 구분할 수 없다. 그러나 마지막 결말에 제시되는 하나의 단서가 존의 황당한 얘기를 증명한다. 그리고 영화는 끝난다.

매우 보기 드문 형태의 영화다. 연극적인 진행이지만 연극으로 만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안 볼 소재다. 감성적인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미니멀리즘 SF라고 말할 수도 있다.


2010년 10월 10일 김곧글


ps: 어떤 책이 베스트셀러이고 어떤 책이 강력추천이고 어떤 책이 명작인 것은 대충 알겠는데 그렇다고 모두 잘 읽혀지는 것은 아니다. 매번 일정하지도 않고 종종 바뀌기는 하지만 어느 분야에 지속적으로 관심이 쏠리는 쪽이 있다. 한번 놓쳤다가도 다시 찾게 되는 분야가 있다. 나에게 있어서 그것은 '신화'와 '우주' 이야기다. 인간, 신, 우주는 무엇이고 어떤 관련이 있는가? 오랜 친한 친구 말마따나, 이런 것을 몰라도 살아가는데는 아무 지장 없다. 우주의 종말까지는 무한에 가까운 시간이 남았다(내가 걱정할 필요 없다). 그러나 이런 것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나의 인생을 생각하면 왠지 통조림 속에서 부패하지 않고 언제나 맛있는 상태로 보존되는 참치가 된 기분이 든다.

ps: 최근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를 읽는데, 하루키 작품 중에 가장 내 취향이었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노르웨이 숲보다 이전에 씀)를 떠오르게 하는 소설이다. 게다가 이전 작품에 비해 좀더 이야기에 충실하고 원숙미와 노련미가 더해진 것 같다. 얼마 전 노벨문학상 어쩌구 할 때 무라카미 하루키가 받아도 좋다고 생각했다. 내게는 그만큼 어떤 굵직한 영향을 끼쳤으니까.

ps: 그러고 보니 오늘은 2010년 10월 10일이다. 그냥 숫자가 일치하는 것이 좋아 보인다. 경건한 마음으로 세상의 모든 신들께 소원을 빌어야 겠다. 내 소원은... 그것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