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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방자전, 파괴된 사나이, 하비의 마지막 로맨스, 워킹 데드...

by 김곧글 Kim Godgul 2010. 11. 9.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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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를 보았다(2010, 국내)

새로운 이야기를 시도했다는 것에 만족해야할 것 같다. 고어 장르를 무난하게 관람할 수 있는 관객에게는 그럭저럭 괜찮게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재미를 느끼지 못 했다. 사실 너무 잔혹한 장면들은 건너 뛰면서 그리고 중간 쯤에 계속 감상하는 것이 내키지 않아서 그만 봤기 때문에 정확히 이 영화에 대한 평가는 아니긴 하다.

김지운 감독도 이 영화에서 연출, 촬영, 편집을 기존의 자기 것과 다르게 시도해보려고 했던 것 같다. 시도 자체는 좋았지만 이야기와 캐릭터는 둘째 치고 매력적인 영상미를 만들지 못 한 것 같다. 보는 중에 심지어는 '이거 정말 김지운 감독의 영상 맞아?'라는 생각도 들었었다.

내 생각에 김지운 감독의 영상미가 가장 좋았던 작품은 '달콤한 인생'이었던 것 같다. 웬만한 감독이 흉내낼 수 없는 그 감각적인 영상의 지연(interval)이 '장화 홍련'에서는 과하고 거칠고 실험적으로 사용했다면 '달콤한 인생'에서는 고급스럽게 우아하게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억눌린 주인공의 감정을 화끈하게 풀어주는 클라이막스의 높이가 관객의 기대치보다 낮았던 점이 아쉬었지만 세월이 지나고 다시 봤을 때가 처음 봤을 때보다 더 괜찮게 느껴졌던 영화였다.

좀비를 고어틱하게 죽이는 영상은 거부감 없이 볼 수 있다. 좀비는 이미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고 좀비를 죽이는 것은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고 걸어다니는 좀비를 위한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좀비는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공상과학, 판타지적인 세계관으로 감상하게 되기 때문에 잔혹한 장면이 그렇게 잔혹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악마를 보았다'처럼 현실적인 이야기에서 잔혹한 장면은 다소 거북스럽다. '저건 영화일 뿐이야. 저건 소품이고, 특수촬영이고, 연기에 몰입하는 중이고, 저렇게 잔혹한 장면을 찍자마자 배우 스텝들 모두 해냈다는 뿌듯한 감정에 휩싸이고 그 날 밤도 술한잔 걸쳤을 거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관람하면 잔혹한 장면이 그냥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럴꺼면 영화를 보는 의미가 사라진다.

솔직히 이 영화를 잘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영화가 아니었다.


파괴된 사나이(2010)

이야기의 큰 줄기는 헐리우드 장르의 패턴과 공식을 따른 듯 느껴지지만 어떤 터닝 포인트는 참신하고 신선한 느낌을 줘서 괜찮았다. 유괴범 캐릭터는 꽤 현대적이고 도시적이고 현실적으로 보였다. 정말 섬뜩한 것은 악마가 악마짓을 할 때가 아니라, 처키처럼 평범한 인형이 악마짓을 할 때이다.

어떤 면에서 이야기 패턴과 캐릭터들만을 봤을 때
헐리우드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세븐 데이즈'를 봤을 때와 비슷한 정서적인 느낌 말이다. 전체적으로 짜임새 있고 긴장감을 놓치지 않았기에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어떤 깊이감이 부족했던 것 같은 느낌이 남는다. (물론 이런 장르에서 반드시 깊이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방자전(2010)

흥미롭게 재밌게 봤다. 잘 짜여인 이야기 구성과 신선한 캐릭터들이 좋았다. 영화 '색계'에서 볼 수 있는 파격적이거나 거칠거나 매혹적이거나 그런 느낌은 없지만, 한국적이고 구수한 느낌도 나고 안전빵으로 소문과 기대에 실망하지 않을 만큼 재밌게 봤다.

한편, 이 영화의 감각은 요즘 10대나 20대의 정서와는 달라보인다. 30대 이상이 느낄 수 있는 정서인 것 같다. 그래도 같은 연령대라도 모두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으니까, 요즘은 그런 경향이 더 짙어지는 것 같다.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어떤이는 이 영화가 답답하고 밋밋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아무튼 개인적으로는 재밌게 봤다. 정말 변학도 캐릭터는 신선했다. 지금까지 한국 영화에서 빛나는 조연으로 대부분 구수한, 토속적인, 원초적인 똘끼였다면, 이 영화에서의 변학도는 도시적인, 엘리트 계층의, 권력층의 똘끼를 대변하는 것 같다.


시(2010, 국내)

손자의 범죄에 관한 내용을 좀더 줄이고 주인공 할머니의 인생에 대한 내용을 늘렸다면 관객은 좀더 줄었을지 모르지만 영화는 좀더 훌륭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같은 사람이 쉽게 이해하기에는 좀 어렵고 복잡한 주제의식이라고 느꼈다. 세대를 초월해서 공감할 수 있는 이 시대의 사회적 의미를 영화에 담으면서 주인공의 황혼의 삶을 이야기하려는 의도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왠지... 사공이 두 명이여서 배가 바다로 가는데 고생 좀 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주요 내용이 두 개처럼 보였다는 의미) 그래도 이런 종류의 한국 영화를 볼 수 있는 것만해도 얼마나 다행인가. 가끔은 이렇게 자아성찰에 도움이 되는 영화를 봐줘야 정신 건강도 좋아지는 것 같다.


하비의 마지막 로맨스(Last Chance Harvey 2008)

기대하지 않고 봤는데 어떤 여운이 남는 감동을 느꼈다. 후반 부의 뻔한 로맨틱 장르 패턴이 엿보였던 것이 아쉬웠지만, 남녀 주인공의 연기도 좋았고 감독의 캐릭터 묘사도 좋았다.

정말 이 영화의 남녀 주인공 같이 정상적인 도시인인데 여느 보통 사람들 틈에 끼여서 잘 어울리지 못 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고 사회적이지 못 한 그 성격이 너무 두드러져서 문제가 될 정도도 아닌... 약간의 그런 정도의 성격을 가진 두 남녀 주인공을 감독이 시나리오로도 잘 묘사하고 연출도 잘 한 것 같다. 나도 처음 접하는 어떤 사회나 모임에 빨리 친화력을 발휘하고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스마트한 사람들이 아닌 종족에 속한다. 그래서 더더욱 이 영화에 감정이입이 됐는지도 모른다. 정말 어떤 장면에서 내 마음 속 깊은 곳이 잔잔하게 진동하기도 했었다. 감상 후 멍해지거나 아련해지지는 않았지만 느낌이 좋은... 어떤 면에서 일본 영화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느낌의 영국 영화였다.


워킹 데드(Walking Dead, 2010, 미드, 최근에 시작)

오늘 1편을 봤는데 재미가 솔솔하다. 좀비를 소재로한 미드다. 이런 느낌의 영화를 재밌게 보는 편이다. 어딘지 만화적인 느낌도 든다. 대니 보일 감독의 '28일후'의 느낌도 있고, '더 로드'의 느낌도 있고, 주인공도 초능력자도 아니고, 뛰어난 재능 또는 운명을 타고난 자도 아니고 비교적 평범한 남자(지방 보안관)라서 더더욱 감정이입이 된다. 잔혹한 장면이 나와도 그냥 판타지적인 좀비가 죽는 것일 뿐이고, 좀비는 알레고리적으로 나를 괴롭히는 어떤 무엇들이라고 생각하면 카타르시스도 느껴지고, 너무 과하지도 너무 식상하지도 않은 신선한 영상미도 좋았다. 최근에 미드를 본 적이 거의 없는데 이것은 꾸준히 볼 것 같다.


2010년 11월 9일 김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