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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해결사, 내 깡패 같은 애인, 시라노 연애조작단,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골든 슬럼버

by 김곧글 Kim Godgul 2010. 11. 26. 12:58
골든 슬럼버

골든 슬럼버



해결사(2010)

시원스럽고 속도감있고 치밀하고 담백하고 쿨한 액션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리 좋지도 않았다. 전형적인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패턴이 진하게 느껴졌다. 초반에는 흡인력 있게 관심이 끌렸다. 그러나 어느 순간, 대략 중반부터 치밀함의 맥이 풀렸다. 재미도 약해졌다. 종반에는 많이 봤던 패턴으로 쉽게 마무리를 짓는 것 같아 아쉬웠다.

어쩌면 편집된 장면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주인공 강태식(설경구 분)이 자기 집에서 죽을 운명에 처했을 때 선한 형사들이 특수부대원처럼 로프를 타고 내려와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장면(전혀 그럴만한 캐릭터들로 보이지 않았기에 더욱 더)... 마치 그리스 연극에서 절체절명에 빠진 주인공에게 불쑥 전능한 신이 나타나 해결해주고 결말 짓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처럼 느껴져서 살짝 실소가 터져나왔다. 또한 자동차 추격 장면에서 강태식이 너무나 쉽고 자연스럽게 해결사(이정진 분)의 차를 찾아내서 추격한다. 추격 장면도 좀더 정교하게 묘사했어야 현대 관객들이 감동했을 것이다.

한편, 좁은 화장실 한 칸에서 싸움 좀 하는 두 남자가 치열하게 싸우는 장면은 '본 시리즈 3편'에서 너무나 걸출하게 영화사에 남을 명장면을 남겼다. 때문에 웬만큼 새로울 게 없다면 다른 장소에서 결투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예를 들면, 전등이 나간 칠흑같은 화장실에서 두 남자가 생사를 걸고 싸우는데 간간히 총질의 화염만으로 관객에게 두 인물의 치열한 격투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는 효과음으로 격투를 묘사하는 장면 말이다. (이것도 식상할지 모르겠다)

긴장감 있고 빠른 한국형 액션 영화를 만들려는 의욕이 곳곳에 엿보였고, 여러 부분에서 보통 이상이 된 적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수많은 현대 관객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수준의 완성도에 이르지는 못 한 것 같다.



내 깡패 같은 애인(2010)

현역에서 퇴물이 되가는 깡패와 상경한 순수한 시골 처녀와의 사랑이야기. 두 남녀가 주인공이지만, 나레이션을 하는 등 영화의 표면적인 주인공은 여자인 것 같은데, 실제로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바탕 정서는 남자의 것에 가깝게 느껴졌다.

나는 괜찮은 느낌으로 감상했지만 웬지 빠르고 산뜻하고 쿨하고 담백한 쪽을 바라보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평범한 현대 관객들이 감상하기에 진부하고 신파적으로 감상될 수 있겠다고 느꼈다. 그런 표면적인 단점을 겉어내고 감상한다면, 즉, 배경에 깔려서 은유하고 유추하는 콘크리트 벽면같은 세상의 현실 속에서 피어나는 이끼나 잡초같은 남녀간의 사랑을 공감하며 감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좀더 대중적인 기호에 맞게 캐릭터와 이야기를 변주했더라면, 즉, 깡패는 좀더 현대적인 분위기의 어떤 깡패, 여주인공도 내면은 순수하고 청순가련형이지만, 도시 출신 또는 금줄 학벌에 지지 않으려고 영리한 여우 행동도 서슴지 않는 등 좀더 다이나믹하고 도시적인
(도시적인 여자보다 훨씬 더 도시적이게 변해버린) 캐릭터, 이 두 남녀가 티격태격 밀고 당기고 상승하는 사랑 이야기라면 어땠을까? (어쩌면 이런 이야기가 더 식상한지도 모르겠다)

깡패들의 세계를 영화에서 보는 이유는 그 세계를 강건너 불구경하는 재미를 느끼고 싶어서가 아니라, 현대 사회 어느 조직, 대기업, 중소기업, 프리랜서, IT 분야, 예술 분야, 자영업... 어느 분야던지 정도의 차이와 색깔이 조금 다르다 뿐이지 공통적으로 일맥상통하는 원초적이고 야생적인 암흑이 있기 마련인데 그것을 은유적으로 보며 현실의 통찰을 깨닫는 것이리라. 그리고 어떤 분야던지 어떤 계층이던지 좋은놈, 나쁜놈, 비상한놈, 야비한놈, 순수한놈, 똑똑한놈... 등등이 비슷한 비율로 있기 마련이다. 사실 이솝 우화는 어린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당시 권력층을 은유적으로 비판하는 이야기였다. 이솝 우화에서 현대의 어떤 분야든지 엿볼 수도 있다.(이 영화하고는 별로 상관없는 얘기로 흐르는군. --;)

공통점은 거의 없지만 비슷한 날짜에 봤기 때문이기도 하고, 로맨틱이 중요한 소재로 들어있다는 것만을 놓고 이 영화와 '시라노 연애조작단'을 단순히 비교한다면, 내면의 감정적인 측면에서 이 영화가 훨씬 좋았다. 그러나 겉으로는 '시라노'가 훨씬 재밌었다. 물론 두 영화가 던져주는 재미의 종류가 서로 다르지만 말이다.



시라노 연애조작단(2010)

짜임새 있고 담백하고 신선한 내용과 영상이 인상적이었다. 기존의 한국 영화와 차별화가 크다. 단지 프랑스 유학 시절 회상과 프랑스 소설이 주요한 소품으로 등장해서만은 아니다. 내용적으로 정서적으로 분위기상 유럽 영화의 정서와 느낌이 강하게 풍겼다. 쉽게 말해서 정서적으로 된장국, 김치찌개, 삽겹살 숯불구이 그런 느낌은 매우 적고, 와인, 마요네즈, 초콜릿, 스테이크 그런 느낌이 매우 강했다. 만약 뉴욕이나 파리를 배경으로 외국 배우들이 연기했어도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스토리와 캐릭터일거라 생각했다.

분명이 처음부터 끝까지 재밌게 봤다. 신선한 로맨틱 코메디였다. 영상미, 연출, 연기, 미술, 음악... 모두 수준급이었고 참신하고 좋았다. 그러나 마음 속의 무엇이 매료된 것은 아니다. 좋았던 로맨틱 코메디를 보고 났을 때 느낄 수 있는 그 어떤 흡족함 또는 어루만져주는 감정 그런 것은 없었다. 왜 그런지 글로 표현하기 참 어렵다. 재밌었지만 마음 속에 무엇이 움직이지 않았다는 그것은 무엇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분명하게 잡히지 않지만 그렇다고 부재하는 것도 아니다.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2010)

개인적으로 뽑은 올해의 한국 영화라고 할 만하다. 물론 올해 나온 한국 영화를 다 본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앞에서 말했지만 영화에서 어두운 지하 세계를 엿보는 것처럼 비이성적이고 야만적인 어떤 세계를 엿보는 것는 그런 요소가 현대 사회 어느 분야에든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티라노씨가 주인공인 공룡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보는 이유도 비슷한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큰 프레임은 방관자로 성장한 현대인을 비판하는 것이지만, 그 속에 들어있는 진짜 프레임은 무자비한 권력자, 그리고 권력자와 모종의 상생 관계를 유지하는 측근들이 연합하여, 약하고 무지하고 순박한 개인을 무자비하게 억압하는데,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에게 달려든다는 속설처럼(영화 속 여주인공의 경우와는 다소 다르지만), 실질적인 여주인공 김복남이 낫을 치켜들어 마치 좀비 영화와 호러 영화를 보는 것처럼 학살을 하는데, 소시민적인 관객에게 은근히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그 전까지는 드라마 또는 리얼리즘 범죄영화처럼 느껴졌는데 김복남이 낫을 드는 순간부터 좀비 또는 호러 장르의 클리세로 영상을 가득 채운다. 실재로 좀비들은 등장하지 않지만 어찌보면 김복남을 제외한 섬 사회의 주민들을 좀비와 비교해서 생각해볼만 하다.

서울에서 내려간 관찰자적 입장의 주인공을 통해서 이 영화가 현대 도시에 사는 뭇 사람들과 그 야만적인 섬 사회가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작가 또는 감독이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서울에 사는 여주인공을 등장시킬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겉으로 보여지는 것은 방관자에 대한 경종이지만, 그 속에는 무자비한 권력자와 그에게 빌붙은 측근들에게 억압당하던 약자가 삶에 의미까지 빼앗기게 된 순간에 용트림처럼 폭발하는 이야기다.




골든 슬럼버(2010, 일본)

반정권 일본 학생 운동에 관련되어 간접적으로 한번 여과해서 다소 낭만적으로 우회적으로 표현한 일본 영화나 소설을 가끔 볼 수 있다. 이 영화도 그런 종류다. 그 시대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보통 현대인이 관람하는 것에도 배려를 했다. 뭇 세상이 자신을 옭아매도 자신의 진실을 알아봐주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케네디 암살범 오스왈드, 연쇄 살인범, 일본 수상 암살, 음모론,... 굉장히 굵직하고 자극적인 소재인데 실재 이야기는 주인공이 자신의 과거 연인과 학창시절 절친들과 부모님의 사랑과 우정과 신뢰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드라마다. 영화에서 마치 감독이 주인공의 대사를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단어가 '신뢰'였던 것 같다. 딱히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한국에서는 '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처럼, 일본에서는 '신뢰'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어떤 일본 문화 안내책에서 읽은 것 같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재밌었다. 지루하지 않을까, 너무 일본적인 색채가 강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렇지는 않고 재밌게 봤다.


2010년 11월 26일 김곧글



PS: 올해도 한달 밖에 안 남았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