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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영화 소셜 네트워크(Social Network, 2010)

by 김곧글 Kim Godgul 2010. 12. 12.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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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하다고 말할 수도 없고, 감명 깊게 감상하지도 않았고, 캐릭터에 감동한 것도 아니고, 게다가 차갑고 신경질적이고 철두철미한 천재 주인공을 보통 국내 관객들이 좋아하지 않을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추천했다가 비난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말을 아끼지만, 순전히 개인적으로는 매우 의미심장하게 본 영화다. 포장을 겉어낸 실제적인 영웅의 야누스적인 얼굴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거장 감독이 만들었고 미국에서 꽤 흥행했다는 것을 알고서 나름 기대감도 품고 감상했는데, 역시나, 한국에서도 꽤 많은 팬들을 거느리고 있는 핀처 감독이 만들었는데도 불구하고 흥행이 별로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런 컨셉의 영화에서 대다수의 보통 한국 관객이 갈망하는, 은연 중에 기대하는 스토리는 고진감래 끝에 찬란하고 드높게 빛나는 경지에 이른 영웅 이야기다. 레알 개천에 살던 주인공이 용으로 변신해서 승천하는 형설지공 영웅을 좋아한다. 감미료로 한국적인 정서의 유모는 필수다. 대표적인 예가 '국가대표'이다. TV 드라마에서는 장금이, 허준 등이 있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남자 신데렐라 같은 이야기다. 다만 왕자 같은 존재에게 간택되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자들의 지지를 얻던가 또한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갈채를 받으며 명성을 얻는다.

그러나 이 영화는 미국인 또는 서구 문화권에서 진정으로 좋아하는 영웅 이야기다. 어떤 면에서 정복자 영웅 패턴이다. 대부 2편에서 마이클 콜레오네(알 파치노 분) 또는 그의 아버지의 젊은 시절(로버트 드니로 분) 같은 영웅이다. 사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전 세계 정복자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고 지배 영역이 다를 뿐, 마이클 콜레오네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연동해서 국가 경제력 성장에 이바지하기도 하지만 다른 손으로는 중소기업이 어렵게 개척한 새로운 분야를 자본력으로 잡아먹기도 한다. 물론 모든 영웅이 콜레오네와 같지는 않지만 대개 정복자 스타일은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보통 한국 관객이 영화 티켓을 구입하며 기대한 IT 영웅상은 국내인 중에 고르자면 '안철수' 교수쯤 될 것이다. 어떤 면에서 삼국지의 유비를 닮은 인물상이다. 그러나 이 영화의 주인공은 '조조'같은 인물상에 더 가깝다. '조조', '마이클 꼴레오네'의 인격을 상속받은 자이다.(인격적으로 다소 과장이 있을 수 있지만 명성만은 그에 못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국내에서 흥행하지 못한 것 같다.

이 영화는 세련되고 절제된 영상미로 잘 만들어졌고, 좋은 작품이고, 별로 영화적이지 않은 소재를 영화적으로 근사하게 만들어낸 핀처 감독의 재능과 실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한적한 장소에 이국적인 인테리어의 레스토랑인데 그 분위기가 차갑고 사치스럽고 까칠하지만 조금 지나보니 그 느낌이 나쁘지 않다. 손님이 많지 않은 그곳에서 색다른 음식을 맛본 느낌이다.

어떤 사람이던지 평균치보다 뒤떨어지고 불완전한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그것을 어떻게 승화시키냐가 관건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의 태생적인 단점은 여자와 소통하는 방법에 있어서 평균 이하였다. 그런 자신의 단점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일에 미친듯이 몰두했다. 치졸한 행동도 서슴치 않았다. 불안한 인격이지만 어쨌든 자신의 일에 열정적으로 보통 이상으로 꾸준히 몰입하는 모습만은 인상적이었다.

2010년에 국내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CEO는 아마도 애플사의 '스티브 잡스'일 것이다. 그러나 다소 의외다. 왜냐하면 잡스는 보통 한국인이 좋아하는 유비라기 보다는 조조나 콜레오네에 가까운 인물상이기 때문이다. 몇번의 생과사를 넘나들고 얼굴에 주름살이 늘고 머리가 벗겨지자 많이 순화된 것이 현재 이 정도이니 한창 때는 어땠을지 가히 상상이 간다. 다소 괴팍하지만 정복자 스타일 영웅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순전히 영화적 미학으로 따졌을 때 이 영화는 그렇게 대단한 평가를 받을 수는 없어 보인다. 수많은 보통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는 스토리도 아니다. 그러나 어떤 일부 사람들에게는 매우 인상 깊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매력이 철철 넘치는 영화다. 영화 자체도 거장의 원숙미가 느껴질 정도로 출중하다.

페이스북 CEO인 실제 주인공은 개인적으로 아무리 둘러봐도 어떤 매력을 느낄 수 없다. 딱히 친구로 지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느껴질 뿐이다. 그런데 이 영화 속의 주인공은 매우 매력적으로 감상되었다. (실제 파리, 뉴욕는 그냥 그렇지만 어떤 영화 속의 파리, 뉴욕은 가슴 속이 뭉클할 정도로 매력적인 것과 비슷한 경우일 것이다) 감독이 영화를 잘 만들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한 주인공의 연기도 매우 훌륭했다.

개인적으로, 올해 봤던 영화 속 인물 중에 마음 속 깊이 인상적이었던 캐릭터는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삶에 있어서 어떤 영감을 주는 캐릭터였다.


2010년 12월 12일 김곧글



PS1 : 요즘은 인터넷이라는 것을 좀더 깊고 다양하게 탐험하고 있다. 톨글(Tolgul) 내용도 블로그에 정리해 놓아야 하는데 차일피일 미루게 된다. 영화, 애니도 구해놓고 감상을 지연하게 된다. 그래도 미드 '워킹 데드(좀비 드라마)'는 꼬박 꼬박 본다. 회를 거듭할수록 첫회보다 덜 인상적이지만 그렇다고 실망적이란 뜻은 아니다. 수준 이상으로 재밌게 보고 있다.


PS2 : 나무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데 창밖 가로등에서는 눈발이 흩날린다. 미니 전기장판을 깔고 자야 아침에 온몸이 개운하다. 달에 있는 나의 침대 위에선 토끼들이 둘러앉아 군밤으로 야식을 불태워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