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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물의 가족 (소설 감상글)

by 김곧글 Kim Godgul 2014. 1. 30. 16:12


  

한 달 전에 온라인으로 구입해서 읽었는데 작정하고 구입했던 책은 아니다. 본래 읽으려고 구입한 책을 구입하면서 다른 책들도 '기왕이면' 라고 생각하면서 구입했는데 그때 이 책도 포함되어 있었다. 온라인으로 책을 구입할 때 쇼핑 중독까지는 아니지만 기분이 좋으면 10권 이상 한꺼번에 주문을 하는데 (배송 받을 때 왠지 뿌듯하다) 구입해서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을 목록에 저장해두었다가 한꺼번에 주문하는데 껄끄러운 점은 택배 아저씨가 마치 감귤 한 박스를 어깨에서 내리듯이 숨을 헐떡이며 전달해주면서 좋은 표정을 짓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이 소설은 빨리 읽고 싶은 중요도로 따지면 하위에 속하지만 문뜩 읽고나니 잘 읽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이 소설의 작가 '마루야마 겐지'에 대해서는 이전까지 전혀 아는 바가 없었는데 이 책을 구입하게된 결정적인 이유는 홍보문구 '마루야마 겐지만이 쓸 수 있는 강렬하고, 한없이 정교하고, 또 아름다운 문장' 때문이다. 글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좋은 문장에 내한 갈증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좀더 알아보니까 다작을 하지는 않지만 순수문학을 매우 진지하게 파고드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점이 다소 거리감이 느껴지지만 아름다운 문장력의 유혹에 이끌려 다른 작품도 읽어볼 계획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작가 본인인 것처럼 느껴지는데 그렇다고 논리적으로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5년 만에 귀향한 주인공은 소설 초반에 외롭게 죽고 그의 영혼이 마치 부감하는 카메라의 시점으로 고향과 가족을 살펴보며 감상하고 회한하는 내용이다. 이 부분이 알려졌다고 해서 이 소설의 재미가 반감하는 것은 아니다. 스릴러, 미스터리, 탐정 소설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 작가의 상상이고 어디까지 허구인지 작가가 살아있다는 것을 제외하고서라도 확연히 구분할 수 없지만 고향 어촌 마을 '쿠사바'와 그 주변을 표현한 수위만을 봐서는 단지 상상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경지라는 생각이 든다. '쿠사바' 어촌 마을은 작가 마루야마 겐지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거나 또는 일정 기간 동안 거주했던 경험이 있는 마을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각적으로 풍부하고 아름답고 정교하게 표현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소설이 놀랍고 매혹적인 이유는 문장력 때문이다. 솔직히 이런 문장으로 쓰여진 소설을 처음 읽어본다. 그렇다고 낯설거나 파격인 형식미를 추구한 작품은 아니고, 또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처럼 어려운 문장까지도 아니고, 마치 시각적인 표현 위주의 자유시로 잔잔하게 쓴 수필 형식 소설 느낌이다. 전원적인 풍경을 시각적으로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물론 필자가 아직 못 읽어봤지만 더 훌륭한 작품이 어딘가에 있을 가능성도 없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독자가 제한될 수밖에 없는 것도 아쉬운 현실이다. 현대 대중소설 독자가 대부분 좋아하는 사실적이거나 토속적인 대사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소설의 거의 전부를 주인공의 관찰과 생각을 서술로 표현했다. 게다가 휘황찬란하거나 다이나믹하거나 달콤하거나 매혹적인 대도시가 배경도 아니고 1980년대 후반 일본의 어촌에 어떤 가족의 이야기가 전부이다. 이런 형식과 내용에 익숙치 않은 독자는 매우 지루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문장력에 매혹되었고 내용 또한 그렇게 재밌지는 않았지만 읽기 싫을 정도로 지루하지도 않았다.


이 소설이 일본에서 발표된 해가 1989년이니까 그 시대에는 이런 성격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나 영화가 일본 뿐만아니라 한국에서도 종종 있었던 것 같다(그 시대에 어렸기 때문에 정확히는 모른다). 또한 지금은 단막극 형태로 바뀌었지만 90년대까지 KBS의 'TV 문학관' 또는 MBC의 '베스트셀러 극장'에서 가끔 다뤄졌을 법한 어떤 가족사의 이야기일 수 있을 정도로 낯설지 않다.

  

온라인 서점 홍보문구 중에 '근친상간이라는 파격적인 주제...' 라고 써있는데 그런 사건이 짧게 나오지만 남자들이 일본의 성인 영상물을 생각하며 상상하는 야릇한 내용은 전혀 없으니 기대하고 읽는다면 실망할 것이다. 주인공은 서른살에 외롭게 죽는데 이것과 관련하여 인과응보라고 생각한다. 이 홍보문구야 말로 소설이 안 팔리는 세상에 조금이라도 더 팔기위한 카피문구일 뿐이다.  

  

어쩌면 이 소설은 일반 대중을 위한 소설이라기 보다는 소설가를 위한 소설이라는 생각도 든다. 주인공이 작가 지망생이고 시각적인 표현력이 뛰어난 매혹적인 서술로 꽉 채운 것이 특징이지만, 일반 독자가 읽기에는 최불암이 나오지 않는 어촌편 전원일기 같은 내용이고, 맛깔스럽거나 정겨운 대화는 전혀 없는 거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번 쯤 푸른 자연이 그리운 향수에 빠져 잔잔하고 아름다운 전원적인 풍경을 느껴보고 싶은 독자라면 만족할 것 같다. 

  

만약 이 소설을 서양화에 비교한다면 '빈센트 반 고호(Vincent Van Gogh)' 쪽이라기 보다는 '밀레(Jean François Millet)'의 '만종(l'Angélus)' 같은 느낌이다. 농부가 아니라 어부라는 점이 다를 뿐, 분위기도 그렇고 문장의 표현력도 그렇다. 

  

  

2014년 1월 30일 김곧글(Kim Godg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