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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Music)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 뮤비(MV)에서 영상의 심도(depth)

by 김곧글 Kim Godgul 2014. 8. 2. 20:50



사실적인 시각성이 중요한 영화와는 달리 뮤직비디오(이하 뮤비)에서는 '영상의 심도(depth)'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다고 볼 수 있다. 딱 봐도, 영화보다 뮤비가 표현력이 훨씬 다양하고 자유롭다는 것만 봐도 익히 가늠할 수 있다.


그렇긴 하지만, 워낙에 음악시장의 경쟁이 치열한데 차별화된 세련미를 뮤비에 가미하고 싶을 때 심도를 정교하고 풍부하게 다루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전략 중에 하나일 것이다. 어쩌면 뮤비의 영상미에서 세련미의 기본 전략이라고 볼 수도 있다.



다만, 미국의 뮤비는 영화라는 영상 산업의 역사도 길고 서양화의 구도에서 역사 깊게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영상 산업의 역사가 짧고 동양화에 익숙한 아시아 관객에게 느껴지는 뮤비를 절대적인 잣대로 작품성의 우열을 가릴 수는 없을 것이다.



즉, 현재 한국에서 제작되는 대다수 뮤비는 아마도 열악한 제작 기간, 작은 제작비로 인하여 영상의 심도에까지 정교하게 신경쓰지 못하고 제작되는 것 같은데, 달리 생각하면 여백과 평면성을 받아들이는 동양화에 익숙한 아시아 관객이 부담없이 받아들이는 것 같으니까 큰 문제까지는 아닐 것이다. 뮤비에서 영상의 심도를 다루는 문제는 서양 쪽에서 동양 쪽보다 더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요즘처럼 인터넷으로 지구촌이 좁아진 시대에 사람들의 눈은 점점 높아지고 뮤비를 만들 때 영상의 심도를 좀더 신경써서 정교하게 만드는 것은 의상이나 인테리어를 제작할 때 하나라도 좀더 세심하게 신경써서 마무리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래는 미국의 컨츄리 팝 여가수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의 뮤비에서 영상의 심도를 잘 다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캡쳐한 것이다. 이렇게 제작하려면 제작비가 많이 들기는 하겠지만 아무튼 영상의 심도가 어떻게 잘 만들어졌는지 가벼운 마음으로 살펴보면 좋을 것 같다.  

  

  

아래 설명에 들어가기에 앞서, 영상의 심도에서 '레이어(layer)' 개념이 있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을 공부한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겠지만, 마치 투명한 평면(예를 들어, 얇은 유리판)을 여러 장 겹쳐서 사용하는 것 같은 개념이다. 영상의 심도를 논할 때 레이어 단위로 따져볼 수 있다. 보통 레이어가 많을 수록 영상의 심도가 깊고 풍부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중심인물이나 카메라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심도에 영향을 끼치고, 배경이나 벽은 레이어 1개지만 그 자체의 특징으로 심도가 깊을 수도 얕을 수도 있다. 


한편, 현재 한국의 대다수 뮤비는 배경 레이어 1장, 전방에 인물 레이어 1장 (또는 2장)이 일반적이다. 보통 레이어를 2장~3장 쓴다는 얘기다. 그런데 아래 소개된 뮤비를 보면 보통 3장~4장을 쓰고 그 이상도 많다. 게다가 배경 레이어만을 따져봤을 때 한국 뮤비의 배경은 평면적인 경우가 많은데 아래 뮤비의 경우에는 입체적인 경우가 많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굳이 저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뮤비가 전달하려는 내용은 충분히 전달된다." 백번 옳은 말이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것은 영상의 심도와 세련미에 관한 내용이다. 뮤비를 좀더 풍부하고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영상미적인 전략의 일환일 뿐이지 반드시 영상의 심도를 매우 신경써서 제작해야만 완성도 높은 작품이 만들어진다는 뜻은 아니다.



아래 캡처된 부분만 심도가 깊은 것은 아니다. 심도를 생각하면서 뮤비를 살펴보면 다른 부분도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Taylor Swift - We Are Never Ever Getting Back Together




Layer 1: 테일러 스위프트

Layer 2: 문짝

Layer 3: 남자
Layer 4: 복도 벽

심도를 깊게 하는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Layer 1: 여자 (프레임 아래에 있다가 점프한다)

Layer 2: 테일러 스위프트가 포함된 줄 (기타 든 남자, 고양이 탈 쓴 여자)

Layer 3: 그 뒤 남자들 줄
Layer 4: 벽(액자로 장식했다)

점프하는 여자를 배치하여 심도를 재미있게 표현하며 깊게 만들었다.


아래에 계속 공통되는 내용인데 군중으로 모여서 춤추는 장면에서는 좁은 실내인데도 불구하고 거의 대부분 3줄, 4줄 정도 된다(또한 화면의 구석구석을 인물들로 꽉 채운다). 이런 경우에 한국의 뮤비에서는 대개 2줄이 일반적이고 좌우 구석 여백을 비워둔다.


Layer 1: 오른쪽 남자

Layer 2: 바로 뒤에 키 큰 남자 줄

Layer 3: 그 뒤에 손 든 남자들 줄
Layer 4: 벽(네온이 있다)



이 경우에는 레이어가 많은 것이 아니라 배경의 심도가 매우 깊은 경우이다. 영상의 저쪽으로 인물과 카메라 시점이 이동해 가는데, 소실점 쪽에 여자 몇 명이 단지 배경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 심도의 깊이를 의도적으로 잘 표현한 것이다. 뒤쪽에 여자들은 카메라가 이동해 들어가도 자세히 보여지지 않는 배경의 역할만을 한다. 비록 스크린이긴 하지만 작은 부분에도 세심하게 신경썼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



군중 댄싱 씬인데 무려 4줄이다. 이런 경우에 국내 뮤비는 거의 2줄 많아야 3줄인 경우가 일반적이다. 게다가 좁은 실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얼마나 심도에 신경을 썼는지 가늠할 수 있다.



건물들을 판대기에 그려서 세웠는데 정확하지는 않지만 3줄로 정렬했고 그것이 잘 보이도록 조명을 적절하게 쏘았다. 달랑 벽에다 그림을 그려놓은 것보다 뭔가 더 심도와 비현실적인 재미가 느껴진다.




Taylor Swift - 22




Layer 1: 케익, 음식

Layer 2: 테일러 스위프트

Layer 3: 여자친구들
Layer 4: 창문

여자친구들이 테일러의 좌우에 마치 의도적이지 않은 듯이 (그러나 뮤비 감독이 의도적으로) 빼곡하게 배치하여 화면이 꽉 차 보이도록 만들었다.



인물들을 각각 레이어에 배치해서 3개 레이어를 사용했다.



약간 사선이기는 하지만 넓은 씬이므로 레이어 1번은 네 명의 여자라고 했을 때,

건물과 뒷동산이 심도 있는 배경 레이어이고 그 앞에 탁구 치는 여자 두 명 레이어가 있는데,

이 장면에서 절묘하게 좋았던 것은 수영장에 발을 담그고 있는 두 여자와 풍선이다. 이들로 인하여 심도가 훨씬 깊어졌고 풍부해졌다고 볼 수 있다.



앞에서 설명했지만, 좁은 실내의 군중 씬에서 인물들의 줄을 여러 개 사용했다. 맨 뒤에 머리를 빼꼼히 치켜든 여자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좀더 앞 줄에 와야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감독이 저렇게 배치한 이유는 심도를 깊게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화이트 벽 뒤로 언덕이 보이는 것, 바닥에 반짝이들과 장식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심도를 깊게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여자들을 2 줄로 정렬했다.



이 장면도 심도를 생각해서 인물들을 배치했다.



좁은 실내의 군중 댄스 씬에서 인물들을 4줄로 배치했고 테일러를 중심으로 화면 좌우 구석을 빼곡히 채웠다.

  

  

Taylor Swift - Begin Again




레이어로만 따지면 인물과 배경 뿐이지만 배경이 워낙에 심도가 깊기 때문에 영상미가 풍부하다.



캡처만으로는 잘 모르겠지만 영상으로 보면 여러 나무들의 줄이 서로 다르다.

전체적으로 레이어 4개 이상은 될 것이다. 아무튼 심도가 깊고 풍부하고 역동적으로 보여진다.



역시 인물과 배경 뿐이지만 배경 자체의 심도가 매우 깊고 아름답다.



등을 보이는 남자를 배치해서 레이어를 추가한 것도 좋았고

오른쪽 뒤편에 커피잔을 움직이는 여자를 배치해서 심도를 하나 더 깊게 만들었다.



심도를 깊게 하기 위해서 테일러의 앞쪽으로 세 명의 인물 (결과적으로 레이어 3개) 유리잔을 배치했다. 추가로 창밖에 정차된 승용차도 심도를 깊게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테일러의 뒤에 있는 인물도 심도를 깊게 표현하기 위해서 배치했다.



여담이지만, 개인적으로 'Begin Again' 뮤비를 보면서 아련함이나 먹먹함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마치 오래 전 컴퓨터와 인터넷이 일상화되지 않던 시절, 고급 노트 표지나 고급 사진 엽서에서 봤음직한 유럽 분위기의 사진을 감미로운 노래를 들으면서 영상으로 생생하게 보니까 느낌이 짠하게 온 것 같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22', 'Begin Again' 을 같은 뮤비 감독이 만든 것 같다. 영상의 속도감은 다르지만 색감이 비슷하고 표현된 정서가 닮은 점이 있다.



2014년 8월 2일 김곧글(Kim Godg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