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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칼럼, 단편

[시] 행운의 여신은 오리무중이다

by 김곧글 Kim Godgul 2021. 7. 29. 10:50

사모트라케의 니케(Nike of Samothrace)

 

 

제목: 행운의 여신은 오리무중이다

 

 


이번 도쿄 2020 올림픽 경기들을 보다가 문득 새삼스럽게 되뇌일 수 있었다. ‘행운의 여신은 오리무중이다’라는 것을. 여러 대륙의 다양한 국가에서 출전한 선수들은 지역 예선에서 나름 강자의 타이틀을 거머쥔 자들이다. 이들이 올림픽이라는 거대한 마당에 모여서 마침내 지구촌 현시대 종목별 최강자를 가리는 혈전을 벌인다.

 


부득이하게 누군가는 승자가 되고 누군가는 패자가 된다. 가장 강하기 때문에 최고의 승자가 되기도 하지만, 불운, 사소한 실수, 환경적 요인, 기타 등등의 원인으로 패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누가 얼마나 지독하고 혹독하게 노력을 했느냐는 일말의 가산점으로도 반영되지 않는다. 오직 본 게임에서 치러진 결과만으로 판가름난다.

 


어떤 게임이 있었다. 전적도 화려하고 가장 주목받는 우승후보자는 마치 예상이라도 한 듯이 36강부터 차례차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결승까지 오른다. 마침내 결승전에서 최고의 강자 타이틀에 해당하는 금메달을 따낸다. 이 자는 시종일관 너무도 담담했다. 마치 모든 게임이 자신이 예상한 대로 이뤄졌을 뿐이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2인자로 점쳐졌던 어떤 선수는 8강에서 복병을 만나서 패했다. 그 결과 패자부활전을 하게 되었고, 두 번의 게임에서 승리하고 마침내 동메달을 따냈다. 이 자는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거의 5년 동안 피와 땀이 섞인 고된 노력의 순간들이 빠르게 스쳐지나갔기 때문일 것이다.

 


2인자로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2인자만큼 잘 싸웠던 어떤 선수는 패자부활전에서 2인자에게 패했다. 그래서 아무 메달도 따지 못했다. 마지막 경기를 패하자마자 이 자는 깊고 진한 눈물을 흘렸다. 정확히 어떤 이유로 눈물을 흘렸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표정으로 봐서 통한의 눈물로 보였다. 이 자라고 해서 결코 메달리스트들보다 노력을 덜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거의 5년 동안 나름 피나는 노력을 했지만 아무런 메달도 거머쥐지 못한 것에 대한 허탈감, 허무함이 산사태처럼 몰려왔기에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허리를 절반으로 구부리고 농도 짙은 눈물을 쏟아냈다.

 


인간 세상에서 반드시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는다는 말이 어느 정도는 진실이지만 100%는 아니다. 그런 경우가 많지만 아닌 경우도 적지 않다. 행운의 여신이 빛나는 날개를 퍼득이며 반드시 내 품속으로 날아와야한다는 법칙은 없다. 상대편이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행운의 여신은 그 어느 누구에게나 빛나는 날개를 퍼득이며 날아갈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최근에 봤던 다큐멘터리의 장면이 떠올랐다. 뉴욕에서 성공한 그리스 출신 유명한 사진작가에 관한 다큐인데, 아직 성공하지 못했던 젊었을 때 영국 런던에 갔었던 얘기를 했다. 거리를 걷는데 갑자기 생면부지의 남자에게 아무런 이유도 없이 폭행을 당해서 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병실에서 황당한 기분으로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발생했지?”라고 투덜거렸는데, 마침 같은 병실에 입원해 있던 어떤 할머니가 이렇게 말해줬다고 한다. “왜 너는 아니어야 하다고 생각하는데? 누구에게나 불운이 닥칠 수 있지.” 그 이후에 이 사진작가는 힘든 일이 닥칠 때마다 그 할머니의 말을 떠올리며 극복했다고 한다.

 


세상 끝에 도달할만큼 열심히 연습을 했더라도 반드시 금, 은, 동 메달을 보장받는 것은 아니다. 노메달(no medal)의 선수가 하필 나라고 해서 기이한 미스테리 현상은 결코 아니다. 누구나 노메달 선수가 될 수 있다. 순간적으로 가슴이 쓰려서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이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의 실제 모습일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괜히 자신의 운명과 불운이 어쩌구 운운하며 자책의 수렁에 빠져들 필요는 없다.

 


아마도, 위에서 언급된 금메달리스트를 소재로 헐리우드 영화사 또는 대형영화사에서 블록버스터 영화로 제작할 수도 있다. 동메달리스트를 소재로 독립영화사에서 독립영화로 제작할 수도 있다. 노메달리스트를 소재로 무명 작가가 단편소설이나 시로 출간할 수도 있다.

 


블록버스터 영화는 나름 전 세계적으로 흥행해서 높은 수익성을 올렸을 것이다. 독립영화는 수년에 걸쳐서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만족할만한 수익을 올렸을 것이다. 단편소설이나 시는 읽은 독자들이 어느 정도 있었을 뿐이었다. 이 또한 세상의 실제 모습일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다만, 어떤 괴짜 과학자가 이들 세 명의 인물의 기나긴 일생을 추적해 본 먼 미래에 이런 결론을 내놓았다. 이들 각자의 기나긴 일생을 세부적으로 들어가서 면밀히 따져봤더니 결국 쌤쌤이더라. 게다가 비슷한 사례를 더 많이 살펴보면 살펴볼수록 결국, 누구 하나 세상으로부터 특별대우를 받는 자는 없었다. 그저 행운의 여신이 날아가는 곳은 오리무중일 뿐이더라.

 

 

물론, 이 괴짜 과학자의 논지에 귀기울이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인간은 본래 자신이 보고 싶은 것 위주로 보려는 성향이 강하니까.

 


2021년 7월 29일 김곧글(Kim Godg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