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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다우더 (Daughter, 2014)

by 김곧글 Kim Godgul 2014. 11. 30. 19:27


배우 겸 감독 겸 미술 음악 아티스트 구혜선이 감독한 영화를 거의 다 봤는데 이번 작품 '다우더'는 의욕이 너무 앞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스타급 여배우가 자신만의 목표가 있는 예술을 창작해가고 있는 것은 매우 칭찬받을 만하다. 남자도 하기 힘든 일을 여자가 잘 해내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것이다. 다만, 작품의 어떤 요소가 아직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 만큼 무르익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또는 여러 관객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어떤 교집합 포인트를 잡지 못했을 뿐일 수도 있다.  

  

문뜩 드는 생각에 구혜선 감독의 깊은 곳에는 아직 감수성이 짙은 소녀 같은 취향의 집, 마을, 이상향 같은 것이 있고 그곳에 사는 본인이 좋아하는 어떤 특징적인 인물들이 있는데 그것을 솔직하게 확연하게 겉으로 들어내기를 꺼려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든다. 지금까지 감독한 작품들을 보면 그런 것이 느껴진다. 그냥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이야기와 인물들을 속시원히 표현하면 될텐데, 소위 말하는 예술성, 작품성을 (설령 흥행에 실패하더라도) 인정받으려고 고심하다보니까 어정쩡한 작품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구혜선 감독의 작품이라는 동전의 양면의 한쪽면에는 순수하고 소박환 여고생이 좋아하는 (물론 모든 여고생은 아니지만) 순정만화스러운 취향이 있고, 다른 한쪽면에서는 어둡고 칙칙한 공포영화 또는 고딕문학 같은 취향이 있다. 이 둘을 현대적으로 대중적인 취향으로 잘 섞지 못 했는데, 아애 한쪽 측면만을 아주 강조해서 만드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든다. 

  

정말 화사하고 밝고 명랑하고 화기애애한 동화같은 이야기던가, 아애 완전히 미친듯이 공포스러운 어둠의 이야기던가.    

  

구혜선 감독 영화 속 남자 주인공 또는 조연을 보면 정말 순정만화스러운 인물들이다. 이 영화에서 여주인공 '산(구혜선 분)'의 남자 친구가 그렇고 아버지는 아애 존재감 조차 없이 꿔다논 보리자루처럼 (사찰의 불상처럼) 등장한다. 이럴 거였으면 아애 이혼 또는 사별했다고 설정하고 등장시키지 않는 편이 더 좋았을 것이다.


산이의 남자친구는 거의 남자 패션모델스러운 꽃미남인데(이 점이 순정만화 취향적이라는 뜻이다. 이전에 만든 영화에서도 이런 비슷한 점이 있다) 이 영화의 내용과 따로 노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만약, 미남 남자친구는 특이하게도 자신을 쫓아다니는 수많은 여자 추종자들을 뒤로 한 채 오직 성격과 분위기가 독특한 산이만을 사랑하는 순정파 남자라고 표현하고 싶었다면 그런 표현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 문제일 것이다. 지금 영화에 보여진 것을 다른 이야기로 빗대어 설명하면 이런 느낌이었다는 얘기다. 

  

오래동안 성실하게 일했던 회사에서 정년 퇴임하고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시던 아버지가 어느날 갑자기 부당해고를 당했고 동료 노인 경비원들과 함께 항의집회를 주야로 하는데, 이런 아버지를 응원하는 20대 대졸 취업지망생 아들의 아주 현실적인 청춘일기 같은 내용의 영화가 있다고 가정할 때, 이 아들이 고생하시는 아버지와 동료 어르신들께 드리려고 대리운전을 해서 번 돈으로 컵라면과 음료수를 사기 위해서 편의점에 들렀는데, 거기서 알바하는 여대생이 마침 학교 후배이고 사랑으로 피어오를 불꽃이 피어오르는데 그녀의 외모와 의상이 거의 '마릴린 먼로'였다는 설정과 같은 느낌라는 얘기다. 실생활에서 이런 여자 인물이 등장하지 말란 법은 없지만, 왠지 이런 이야기의 영화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어딘지 모르게 붕 떠 있는 느낌이 든다.

  

한편, 인물의 대사들이 너무 목표지향적이다. 산이의 엄마(심혜진 분)가 말하는 수많은 대사들이 감독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너무 진하게 담고 있고 여러 번 반복되니까 지루하고 감동의 깊이감이 떨어졌다.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우회적으로 영리하게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잘 모르겠는데 끝날 쯤 되면 (소위 클리이막스 또는 결말) 마치 수면 아래 잠겨있다가 떠오르는 네스 호수의 괴물의 머리처럼 강렬한 느낌이 있는 영화가 일반적으로 좋은 전략인데 그런 것을 실패한 것 같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영화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너무 확연하게 들어나 보였다. 어떤 흥미로운 이야기라는 말과 마차가 달려가고 그 마차 안에 메시지가 문을 잠그고 타고있어야 하는데, 이 영화의 경우에는 말들이 메시지고, 마차가 이야기이고, 마차문은 열려 있는 경우이다.

  

더불어, 내용은 매우 어두운데 영상의 때깔이 화창한 날씨 분위기인 것도 반어법적인 시도 (또는 제작비 문제)였을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좋은 감상 느낌을 전달하지는 못 했다.


그래도 여전히 구혜선 감독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영화를 만드는 전체적인 실력은 충분히 갖췄으니, 자신이 감동을 받았고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어떤 소설 또는 만화를 (국내, 국외 무관) 원작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고해서 감독 필모그라피나 예술성에 오점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영화감독은 어차피 소설가나 미술가와 달리 죽으나 사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만 작품을 완성할 수 있는 업종이기 때문에 문제되지 않는다.

  

2014년 11월 30일 김곧글(Kim Godg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