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의 인간이라는 신화적 소재를 SF 장르에 잘 활용한 사례일 것이다. 이야기와 캐릭터 설정은 매우 신선하고 시의적절하고 창의적이었다. 문제는, 그러니까 영화가 그다지 흥미진진하지 못했던 이유는 이야기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너무 거창할 필요는 없지만 흥미로운 사건이 좀더 터쳤어야 했다.


우연히 일생을 홀로 우주선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게 돼 버린 남자, 마치 에덴동산에 홀로 태어난 아담 같다. 신이 남자의 갈비뼈를 떼어내 여자를 만들었듯이 남자 주인공은 잘 동면하고 있던 어떤 여자를 깨운다(남자의 어떤 영향으로 여자가 태어났다는 것을 의미). 단지 자신이 미치도록 외롭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다시 동면할 수 있는 기계장치가 우주선 내에는 없으므로 두 남녀는 죽을 때까지 우주선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여자는 자신에게 호의적인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남자의 입장에서 외롭게 홀로 죽을 줄 알았던 인생이 그나마 개선된 것이어서 마냥 행복하다. 여자는 이민 우주선에 탑승한 애초의 목표를 이룰 수 없어 실망이지만 그럭저럭 현실을 수용하고 살아가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에덴동산에서 뱀이 이브를 유혹한 것 같은 사건이 터진다. 결과적으로 그랬다는 얘기다. 남자가 영원히 간직하려던 비밀을 인공지능 안드로이드 바텐더가 여자에게 실토한다. 남자의 사소한 말을 오해해서 해석했기 때문이지 흔한 SF 작품에 등장하는 자의식을 깨달은 인공지능이 이기적으로 행동한 것은 아니다. 결과적으로 안드로이드 바텐더가 뱀의 역할을 한 셈이다.


여자는 남자를 증오하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동면해 있고 유일하게 깨어나 움직이고 있는 두 남녀가 동석하기도 싫은 남남이 된다. 남자는 달래보려고 노력하지만 여자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이민 우주선은 두 남녀에게 개념적으로 에덴동산에서 황무지가 된 것이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된 사건과 닮았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괜찮은 편이었는데 그 이후에 이민 우주선을 구하는, 즉, 일종의 인류를 구원하는 컨셉의 이야기로 전환되는데 그 자체가 나쁘다고 볼 수는 없지만 너무 큰 비중을 두어서 현대 관객이 즐길 수 있는 이야기로서 흥미롭지 않았다. 너무 비약이어서 인위적으로 조작한 이야기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 자연스럽게 몰입해서 즐길 수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두 사람에게 벌어지는 좀더 일상적이고 이색적인 사건들이 펼쳐졌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영화 ‘그라비티’에서 절체정명의 여주인공이 후반에 가서 초인적인 외계인이나 천사에 의해서 구출된다면 뭔가 부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드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캐릭터 설정과 아이디어는 매우 좋았지만 이야기를 잘 풀어내지 못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영화의 비주얼은 괜찮았기에 감상하는 동안 시각적인 재미는 느낄 수 있었다.


2017년 3월 9일 김곧글(Kim Godg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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