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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멀홀랜드 드라이브 (Mulholland Dr. 2001)

by 김곧글 Kim Godgul 2017. 8. 13. 21:08






대부분의 장르영화와 달리 감독이 의도한 스토리가 명확하게 형상화되어 있다고 볼 수 없는 작품일 것이다. 전체적으로 현실과 환상이 혼재하고 있는데 인과관계와 시간순서가 어느 정도 맞물려 있지만 반드시 정확하지는 않고 모호한 부분도 적지 않다. 그래서 특이하게도 감상하는 관객 나름대로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데이비드 린치 감독도 사전에 완전한 스토리를 기반으로 촬영을 해나간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멀리 떨어져서 숲을 바라보듯이 생각해봤을 때 흥미진진한 스릴러 장르영화의 틀을 갖추고 있어서 일반인들에게 난해한 순수예술영화와는 차별화된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듯이 상업장르영화와 순수예술영화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수많은 영화 평론가들이 명작 중에 명작으로 높이 추켜세우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영화를 최근에 2회 연속으로 봤다. 예전에 감상한 적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대충 보다가 말았을 것이다. 아무튼 눈빛을 초롱초롱하게 하고 차분하고 편한 마음으로 주의 깊게 감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 생각된다. 다음은 필자가 상상한 스토리이다. 줄거리의 전말이 이렇다고 볼 때 반드시 크고 작은 일체의 톱니바퀴가 촘촘히 맞물리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차피 만들어질 때부터 완벽한 하나의 스토리가 없었으니 이런 식으로 상상해본들 크게 잘못된 것도 아닐 것이다.



육감적인 몸매의 검은 머리 여인이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 암살을 당할 것 같은 일촉즉발의 위기에 빠졌는데, 때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광란의 폭주 오픈카와 충돌하는 바람에 홀로 생존하게 되고 주택가의 어떤 집으로 피신하게 된다. 마침 집주인은 일정기간 여행을 떠났기에 집은 비어버린 셈이다.


다음 날 오전, 금발의 여인이 LA공항을 나와 시내로 향하며 환희로 가득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그녀와 함께 담소를 나누며 공항을 빠져나온 노인부부는 가족은 아니고 어쩌면 여객기에서 만난 대화상대로 볼 수도 있지만 영화의 후반부에서 금발의 여인이 권총자살하기 직전에 환영같은 느낌으로 등장하는 것으로 봐서 필자는 일종의 저승사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여배우 스타를 꿈꾸고 LA를 방문한 금발의 여인(다이안 셀린, 나오미 와츠(Naomi Watts) 분)이 후반부에 나오는 장면, 실연과 살인교사의 범죄를 겪은 후 정신적 고통으로 인하여 권총자살을 하는데, 다소 기이한 표정으로 활짝 웃는 노인부부는 완전히 저승으로 떠나기 전의 다이안 셀린을 비록 유령으로서이지만 미련이 남아있는 주변사람들을 되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여행을 제공한 것이다(필자가 생각한 것). 쉽게 말해서, 영화 ‘식스센스’의 브루스 윌리스와 어느 정도 비슷하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다이안 셀린이 유령의 존재로 이승을 여행하는 것은 교통사고로 가까스로 암살의 위험에서 살아남아 일시적으로 기억을 상실한 검은 머리 여인 ‘리타(기억이 온전할 때의 본래 이름은 카밀라 로즈)’의 환상속에서 만이다. 이 점이 매우 특이하고 매혹적이라고 감탄할 만하다. 


또한, 다이안 셀린도 자살하기 전의 삶을 일부분만 기억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래야 앞뒤가 맞는다. 이렇게 보면 흔한 유령보다는 카밀라의 혼란스런 (비정상적인 뇌상태의) 상상력의 환상 속에 특별히 출연한 존재라고 봐야 정확할 것이다.
   
즉, 후반부에 알려준 과거의 내용처럼 검은 머리 카밀라가 헐리우드 스타 여배우가 되어 감독과 깊은 연인이 되기 이전에는 금발의 다이안과 깊은 연인이었다. 카밀라는 양성애자인데 다이안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다이안이 그랬던 것처럼 죽고못사는 끝없는 사랑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헐리우드 스타가 되기 전에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일시적인 연인 같은 동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카밀라는 잘 나가는 감독과 결혼을 발표하는 저녁파티에 초대하면서까지 다이안에게 정신적 고통을 안겨주며 나름대로의 희열을 느꼈고, 마침내 다이안은 살인자를 고용하여 카밀라를 살해해달라고 의뢰한다.



그래서 어느 날 검은 머리 카밀라는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 총을 든 암살자에게 살해될 뻔했는데 우연히 폭주족의 오픈카와 충돌하는 바람에 비록 일시적으로 모든 기억을 상실하기는 했지만 온전히 살아남는다.



기억을 상실한 카밀라가 어떤 빈집에 몰래 들어가서 몸을 추스르면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보는 과정이 영화의 전반부인데 이때 카밀라를 도와주는 금발의 다이안은 기억을 상실한 카밀라의 환상세계에 등장하는 유령이라는 것이다(필자의 상상). 후반부에 ‘실렌시오’ 클럽에 갔다가 파란색 상자를 집으로 가져와서 열쇠로 열어보는 즈음에 현실적으로 말도 안 되게 다이안이 연기처럼 사라진다. 카밀라는 파란색 상자를 열고 (그 속에 특별한 물체가 있는 것은 아니고) 이것은 카밀라의 기억이 온전하게 되돌아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카밀라의 기억 또는 뇌상태가 온전하게 정상적으로 작동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유령 다이안은 저승으로 이동한 것이다. (필자의 스토리에서 순전히 시간순서만을 따지자면 이 부분이 가장 나중이다. 즉, 사고 후의 카밀라의 기억이 온전히 되돌아온 것이 가장 나중의 일이다. 이 장면 이후에 나오는 영상은 일종의 내용 설명이고 시간적으로는 일부분을 제외하고 영화의 전반부보다 앞서 발생한 사건들이다.)



다이안이 유령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근거는 하나 더 있는데, 기억을 상실할 카밀라가 생각해낸 ‘다이안 셀린’이라는 이름을 전화번호책에서 주소를 찾아 방문했을 때, 서로 방을 바꿨다던 17호에 살았다가 12호로 이사한 여자가 다이안을 전혀 알아보지 못한 점이다. 그 여자가 카밀라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이치에 전혀 어긋나지 않지만 다이안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은 전혀 현실적이 않다. 따라서 영화 초반에서 중후반까지 카밀라가 다이안과 동행하는 모든 장면은 일종의 환상적인 것이고 실제로 따져보면 카밀라가 혼자 행동하는 것이다. 카밀라의 눈에만 또는 상상에만 친절한 다이안이 존재하는 셈이다. 



영화의 후반부에 보여진 것처럼 다이안은 카밀라를 살인해달라는 의뢰가 완수되었다는 (물론 카밀라는 교통사고 후에 실종된 것인데 살인자는 거짓으로 다이안에게 보고한 것이다) 표시 즉 파란색 열쇠를 보고 난 이후 불안한 심리상태에서 권총자살을 한다. 이것은 전반부 보다 앞서 발생한 일을 설명한 장면이다. (정교하게 따지면 카밀라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기억을 상실한 직후로 볼 수 있다)



위에 설명한 필자의 스토리는 기존에 많이 알려진 것과 다소 차이가 있을 것이다. 게다가 스토리에 맞지 않는 장면이나 소품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그런 것조차 좀더 상상력을 발휘하면 균열을 매꿀 수 있을 정도로 이 영화는 스토리에 유연성이 구조화되어 있다.



몇 년 전부터 해외에서 데이비드 린치 감독이 다시 재평가되고 재조명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때 거장이며 스타감독이었는데 언젠가부터 그의 작품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아마도 현시대가 사실적이고 구성이 정확하고 내용을 약간의 노력만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스토리를 기반으로 하는 상업영화가 환영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영화들이 수도 없이 나오다보니 다소 질리게 되었기에 뭔가 다른 형태의 영화에 대한 갈증이 생긴 것은 아닐까? 물론 장르영화의 매혹을 완전히 외면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이런 고상한 갈증을 해소해주기에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영화는 가뭄의 단비 같은 작품일 것이다.      



2017년 8월 13일 김곧글(Kim Godg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