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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커피프린스 1호점 (TV 드라마)

by 김곧글 Kim Godgul 2007. 9. 6.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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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6일에 썼던 글)


TV 드라마를 잘 안 보는 편이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이해한다.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거. 너무 대중적이라서. 질질 끌어서. 캐릭터, 주제, 내용이 뻔해서. 영상미, 함축성, 간결성이 영화에 훨씬 부족해서, 반복되는 상황, 회상 장면을 자꾸 봐야하는게 지루해서...

전부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 요즘은 시청률 경쟁이 심해서 방송국에서도 노력을 많이 한다. 거의 일본드라마와 맞먹는 수준까지 왔다. 아직 미드(미국 드라마)까지는 투자되는 자본부터 훨씬 못 미치니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커피프린스 1호점를 3일 동안 해치웠다. 하루에 다 볼 수 있다면 그렇게 했겠지만 인터넷으로 다운로드 받는 시간, 중간에 쉬면서 봐야 음미도 되고 소화도 되기때문이다. TV로는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솔직히 그렇고 그런 드라마겠거니 치부했다.

윤은혜, 다시 봤다. 가수 출신 배우가 기획사의 재량으로 좋은 떡을 물었구나, 라고 생각했었다. 몇년 전 쇼프로에서 윤은혜가  알게 모르게 좋게 느껴졌던 기억이 있어 한번 봤다. 마침 인터넷 기사로 '커피프린스 후유증' 어쩌구 저쩌구 하는 기사도 나의 호기심을 부추겼다.

첫회만 봐보자. 요즘 기분도 울적한데. 뻔할거야. 전형적인 TV 드라마들. 신데렐라 한단계 변형, 두단계 변형, 세단계 변형...

어!? 좀 다르다. 가장 눈에 띈 것은 윤은혜 캐릭터와 그녀의 연기력이다. 꽤 현실적이다. 화면 앞에 붙잡는다. 흡수된다. 목소리부터 발끝까지. 윤은혜 캐릭터가 봄날의 개구리처럼 팔딱팔딱 뛰어다닌다.

남자같은 여자는 현실속에서는 별루다. 아마도 90% 남자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털털하고 수수한 성격의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는 많아도 정말 남자 같은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는 드물 것이다. 드라마, 소설에서는 미화되기 마련이다. 17회 이후 메이킹 후기에서 어떤 스텝이 말했듯이 커프는 동화틱하고 순정만화적인 캐릭터와 스토리다. 그걸 알면서도 빨려든다. 현실적으로 찾아보기 힘든 캐릭터란 걸 알면서도 바란다. "은찬이라면 죙일 깨물어 줄텐데"

빠져들었던, 좋았던 영화, 드라마, 소설, 만화, 게임은 나에게 이런 신호를 던져주고 가버린다. '저 속에서 살고 싶다. 그 속에서 현실속으로 나오고 싶지 않다' 그러나 여지없이 현실로 돌아오고 텅 빈 공허감을 진하게 느낀다. 후유증이다. 저 속에서 더 살고 싶은데, 좀 더 보여줘. 그럴 수 없어 너무 공허하다.

그런 영화를 종종 만난다. 이니셜 D, 무간도, 태양의 노래, 이터널 선샤인 오브 스팟리스 마인드, 반지의 제왕(소설, 영화), 어스시의 마법사(소설), 노르웨이 숲(소설)... 당장 떠오른 작품들이다. 할 수만 있다면 그 속에서 살고 싶다. 현실로 돌아오는게 괴롭다.

'커피프린스 1호점'을 허겁지겁 보고나서 비슷한 느낌이 받았다. 나와는 상관없지만 그 속에서 계속 머물고 싶다. 커피점 어딘가 죽치고 하루종일 책을 읽던지 노트북으로 게임을 하던지. 출연진들이 실제로 서빙을 하고 있다. 말도 안되는 가상세계다. 미래에는 영화 '오픈 유어 아이즈(Open Your Eyes)'에서처럼 비용을 지불한 소비자가 원하는 세상에서 살도록 해주는 기억여행기업이 실제로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소재로 이야기 하나 써볼까?

조연들도 매력적이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실존인물처럼 느껴졌다. 한성(이선균 분)과 유주(채정안 분)을 남산을 걷다가 우연히 지나칠 것 같다. 깔끔한 스토리 전개도 좋다. 마지막 편에 커프 종업원들의 개인사를 여운으로 남기는 것으로 봐서 시즌2가 나올 것도 같은 느낌도 든다. 아직 윤은혜와 공유가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으니 그것만으로 몇 회는 더 우려먹을 수 있다. 아마 내년 여름일지도.

몇 가지 불만도 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듯이 흠 없는 예술품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안 좋아한다는 얘기도 아니다. 단점이 보이더라도 장점을 좋아한다. 누군가를 사랑해서 결혼까지 하는 이유는 장점이 단점을 덮어주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죽을 때까지 천직으로 전념하는 이유는 단점을 장점이 앞도하기 때문이다.

남자가 보기에 지나치게 섬세하다. 저렇게까지 숨막히게... 너무 깝깝해. 특히 한성, 유주의 사랑 이야기는 내 시점으로 깝깝하다. 특히 한성의 사고와 행동이 나와는 다르고 이질적이다. 대다수 여자들이 한성 캐릭터 스타일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친구는 별로다. 깝깝하고 답답하다. 그렇지만 이해는 간다. 실제로 세상엔 그런 맥락 인간은 많다. 그런 사랑도 있겠지. 게다가 이건 드라마이고 순정만화, 동화틱하게 포장된 이야기니까.

에피소드, 장면, 스토리가 일본적이다. 자주 일본드라마적이라고 느꼈다. 어쩌다 본 일본 순정 영화, TV드라마, 여성독자용 일본만화 느낌 났다. TV 드라마 작가, 여자 연출자의 필수 코스, 마르고달토록 보고 또 보고 연구하는 영상물, 일본 드라마다. 문화적으로 비슷하니 이해한다. 만화가들도 일본 만화의 영향이 없다고 볼 수 없다. 영화는 헐리우드의 영향이 없다면 사기다. 이처럼 일본틱한 멜로드라마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일 것이다.

저렇게까지 섬세한 인간들, 사건이 한국 현실적으로 있을 법한 일인가? 그랬기때문에 기존에 뻔한 한국적인 사건이 아니라 더 순수하고 예뻐보였는지도 모른다. 다행스럽게도 이질감과 비현실감을 중화 시킨 것은 두 가지 요소가 결정적이었다. 이것때문에 커피프린스가 한국적인 냄새가 났다.

첫번째는 캐릭터 성격이다. 살면서 비슷한 인물을 만났을 법 하다. 캐릭터와 중견 연기자들의 연기가 좋았다. 두번째는 캐릭터들의 대사가 한국적이고 생생하게 톡톡튀며 진국이다. 가끔 비현실적이고 작위적인 도치법 문장, 순정만화적인 문장이 거슬리긴 했지만 본래 드라마 성격이 동화적인 순정만화이니 충분히 흡수되고 남는다. 일본식당 가서 얼큰한 김치끼게를 곁들여 먹는 느낌이다.

메이킹을 보면 마지막 회식을 한다. 메이킹을 찍기 위해서인지 주요 배우들만 한 테이블에 모아놓았다. 어느 순간 윤은헤가 눈물을 글썽인다. 메이킹 코멘트 김창환씨 목소리는 "넉 달 동안  온통 은찬에게 빠져있던 그녀는 자신의 분신을 떠나기가 힘겹기만 합니다" 라고 더빙한다. 물론 메이킹 작가의 글이다. 내 생각을 부연설명하고 싶다. 윤은혜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윤은혜가 우는 진짜 이유는 다시 태어나는 듯한 은찬 캐릭터와 함께한 커피프린스 배우, 스텝, 그 세계관과 헤어진다는 것 때문이다. 자신의 분신 은찬 때문만은 아니다.

윤은혜의 감정을 백번 이해하고도 남는다. 그런 점에서 실제 윤은혜의 감수성을 엿볼 수 있다. 극중 은찬은 연기였겠지만 어떤 연기자의 초기작은 대개 연기자 본성이 어느 정도 베어있기 마련이다. 특히 커프처럼 장르가 드라마인 경우엔 더 그렇다. 예측컨데, 윤은혜의 감수성은 본래 예민하지만 아직 굳은살이 베기지 않았다. 공유, 이선균, 채정안은 이미 여러 번 작품을 겪었기 때문에 감정을 추수릴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마음엔 굳은 살이 베겨있다. 또는 나이가 있으니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윤은혜보다 현실적이고 명암이 분명한 짙은 색상일 것이다. 내 착각일 수도 있다. 어쩌면 실제 윤은혜가 버르장머리 없는 악녀일지도 모른다. 쫑파티에서 우는 모습이 연기의 확장일지도 모른다. 고도의 인기전략인지도 모른다.

나는 안티가 아니다. 그냥 좋게 상상하고 싶다. 그렇게 보였으니까. 윤은혜는 나와 같은 종족이라고 생각한다. 스미골 종족이란 얘기가 아니다. 같은 감수성 심장을 가진 종족이란 얘기다. 윤은혜 배우가 커프의 은찬과 많이 닮았다면, 그녀가 좋다.

현실로 돌아왔다. 감정은 잔잔하게 물결친다. 바보같이. 이래서 섬세한 드라마가 싫다. 일부러 안 본다. 차라리 액션, 전쟁, 스릴러를 본다. 현실로 돌아왔을 때 기분이 좋기 때문이다. 영화 속은 악몽, 현실은 안식처. 그런데 커피프린스, 태양의 노래, 영화 이니셜D 같은 영상 속 세계는 에덴동산같은 현실, 현실로 돌아오면 액땜이 필요한 회색 빛깔 현실.

얼마 전에 다시 봤던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을 다시 봐야겠다. 우아하고 근사한 호러성 스릴러 고전이다. 보고나면 커피프린스 후유증을 어느 정도 중화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현실에서 너무 달콤해지는 것은 내 인생과는 거리가 멀다. 아내와 아들이 숨어있는 화장실 문짝을 광끼에 미쳐버린 잭 니콜슨이 도끼로 깨부수는 장면. 이 영화의 백미이기도 하고 영화사의 명장면이다. 큐브릭 감독은 이 장면에 딱 한번만 그런 카메라 워크를 사용한다. 백문이 불여일견. 직접 보면 안다. (참고로 영화 '레옹'의 끝장면에서 레옹이 마틸다가 탈출할 수 있도록 환풍기를 도끼로 부수는 장면에서 이것과 동일한 카메라 워크를 사용했다. 방향만 서로 반대다. 일종의 오마주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관객의 두려움은 무의식적으로 증폭된다. 샤이닝 영화가 끝나면 현실이 에덴동산이다.


2007 09 06 김곧글 Kim Godg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