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예상했던 대로 뭔가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진다.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흥행하지 못한 것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요즘 시대에는 10대, 20대 대중들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쉽게 알아먹을 수 있는 이야기로 풀어내서 내놓아야만 관객들이 몰려드는 편이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이런 것을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에 흥행하지 못한 것 같다. 그렇다고해서 이 영화가 그저그렇다고 주홍글씨로 낙인 찍는 사람들은 마치 ‘빈센트 반 고호’의 그림의 깊은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 그 시대의 대중들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솔직히 필자가 느끼기에도 흠뻑 빠져들어서 감상할 수 있을 만큼 쾌적한 상업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이야기에 담겨있는 메시지는 나름 의미심장하고 진중하고 문학적이라 좋았다. 영상미적으로 근미래의 세계를 매혹적이고 세련되고 우아하게 잘 표현했다. 어쩌면 미국의 대표적인 순수미술화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가 미래세계를 그렸다고 해도 믿었을 것이다. 특별히 초국가 레플리컨트(안드로이드, 인조인간) 제작사 월레스 기업의 건축물 내부 곳곳을 보여줄 때 감탄사가 절로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호퍼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그림자가 우아하게 움직인다. 게다가 물결 무늬 그림자는 신비로움을 배가한다.



1편 '블레이드 러너'에서처럼 이 영화에서도 전반적으로 '눈(eye)'이 특별하게 다뤄지며 추가로 '물(water)'이 특별하게 다뤄진다. 물은 인간의 먼 조상 생명체가 탄생한 곳이며 여전히 생명체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요소인데 뛰어난 레플리컨트를 제작하는 월레스 기업을 치켜세우는 상징으로 사용된다. 아마도 월레스 기업에서 제작한 레플리컨트가 인간을 대신하여 지구를 지배할 새로운 영장류가 된다면 월레스 기업은 그야말로 생명 탄생의 물에 비견되는 장소로 볼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또한, 끝부분에 '러브(Luv)'라는 강한 전투력의 레플리컨트와 주인공이 생사의 전투를 펼치는 장소는 깊은 바다에 접한 장소이다. 물이라는 생명 탄생의 장소에서 레플리컨트 종족 끼리 싸워서 승리하는 자가 향후 인간 종족과 대등한 또는 초월하는 존재가 될 거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러브가 케이를 칼로 찔러 이겼다고 생각하고 "I'm the best one. (내가 최고의 엔젤이다)" 라고 자축한다.) 이처럼 이 영화에서 물은 지구를 지배할 영장류가 탄생했던 또는 새로운 종족이 탄생할 성스러운 장소라는 상징으로 다뤄진다.



물과 관련해서는 의외의 장소에서도 표현되었는데, 초반에 주인공이 사퍼라는 레플리컨트를 처치하고 그의 눈알을 수돗물에 씻고 그 집 실내의 마지막 장면으로 가스레인지에서 팔팔 끓어오르는 냄비의 뚜껑을 열고 얼굴을 가까히 들이대고 안을 들여다보며 음미한다. 이것은 마치 먼 옛날 지구에 수온이 높은 바닷물에서 수많은 생명들이 자신의 생존과 유전을 위해 사투를 벌리는 전쟁에 (그런 것과 비슷한 맥락의 전쟁 즉 인간과 레플리컨트의 전쟁에) 주인공이 마침내 참전하게 되었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를 다 보면 알 수 있듯이 만약 이 영화가 시리즈로 계속 만들어진다면 십중팔구 혹성탈출 시리즈의 맥락으로 인간과 레플리컨트의 종족 전쟁으로 발전할 것이고 이 영화는 그런 종족 전쟁의 인트로에 해당하는 시점이라고 볼 수 있다. 주인공이 사퍼를 죽이는 초반의 사건은 주인공에게 있어서 그의 인생에 전환점을 가져오는 일생일대의 사건이다. 그는 수많은 블레이드러너 기계처럼 인간의 명령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소위 자아를 인식하고 깨닫고 자유의지를 발휘하여 자신의 종족을 위해 싸우는 영웅으로 탈바꿈하는 첫걸음을 내딛는 사건이다.



추가로, 꼭 그래서 그렇다고 볼 수는 없지만 전반적인 날씨가 그렇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큰 눈(snow)이 내리는 배경도 물의 연장이면서 동시에 빙하기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지구의 빙하기는 인간 뿐만 아니라 생명체에게 큰 변화를 거치도록 한 영향력이 큰 매개체였다. 즉, 영화에서 다루는 일련의 사건들이 레플리컨트와 인간에게 마치 빙하기가 닥친 것처럼 큰 변화를 줄 거라는 것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시원하거나 걸쭉한 액션의 부족으로 인한 아쉬움이 맴돌더라도 시각적으로 잘 표현된 미래세계를 관람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겠다. 요즘 같은 시대에 웬만한 사람들도 이 정도의 미래세계 아이디어는 약간의 노력을 기울여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을 어떻게 영화적으로 시각적으로 아름답고 우아하고 세련되게 표현했느냐에 감탄했다는 뜻이다.



메시지에서 좋았던 점은 소위 영웅의 태생적 비밀이 반전을 거듭하면서 주인공 K(라이언 고슬링 분)이 실제로는 특별하지 않은 보통 레플리컨트이지만 (즉, 선택된 자(the chosen one)이 아니었지만) 자신의 의지로 영웅적인 행동을 실천하고 그가 곧 영웅에 비견될 수 있는 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셈이다. 본래 태생적으로 초인적인 가계에서 또는 왕족 또는 특별한 귀족이기에 영웅이 되는 일반적인 영웅전설과 차별되는 특별한 영웅전설의 부류라고 볼 수 있다.



전편에서는 '만약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안드로이드가 존재한다면 인간은 그들 앞에서 어떤 존재가 되는 것일까?' 라는 정체성이 중요한 화두였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이것을 포함하며 게다가 '만약 자신이 선택된 영웅인줄 알았다가 아님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 자는 어떤 자유선택을 하는가?' 라는 타고난 특별한 존재와 보통 존재의 정체성에 관한 화두를 던져준 것이고, 결국 영웅이란 탄생보다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과 행동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걸작이다. 개인적으로, 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 2014)' 만큼의 존재감이 느껴진다. 종종 다시 감상할 영화 중 하나이다. 재미로만 따지자면 아니지만 (재미라는 잣대를 들이댈 작품의 범주를 넘어 저편에 있다) 이 영화가 필자 내면에 주는 가치 또는 영향력만을 따지자면 최근 수 년 동안 감상한 영화들 중 톱10에 자리할 것이다. 같은 감독에 의해 후속편이 만들어진다면 정말 좋겠는데, 흥행하지 않았으니 죽었다 깨어나도 그런 일은 없을 것처럼 보여 매우 큰 아쉬움이 맴돈다.



2017년 12월 27일 김곧글(Kim Godg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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