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감상글(Movie)

본 레거시 (The Bourne Legacy, 2012)

by 김곧글 Kim Godgul 2012. 12. 8. 09:27


  


국가를 위한 비밀조직들이 몇몇 있다. 이들 중 어떤 리더, 책임자들의 사소할 수도 있는 개인적인 잘못이 유튜브에 공개되는데, 이것이 빌미가 되어 적대국에 비밀조직의 정체가 노출되고 언론과 대중들의 입방아에 오를 것을 우려하여 그 책임자와 관련된 몇몇 조직 자체를 아애 폐쇄시키기로 결정한다. 여기서 '폐쇄'란 '해고'를 의미하는게 아니라 '제거'를 의미한다. 이런 위협에 자신만의 능력을 백분 발휘하여 고군분투로 살아남는 황야의 외로운 늑대같은 영웅이 이 영화의 주인공 '제임스 본(James Bourne)' 또는 '5호(Five)'이다. 본명은 '애런(Aaron)'이다.

  

넓은 의미로서의 내용은 간단 명료하다. 조직의 쓴맛을 보란듯이 물리치고 살아남는 영웅 플롯이다. 세부적으로 차별성과 세련미는 작금의 현대문명을 직시하고 관통한다. 영화에서는 비록 미국의 경우지만, 전 세계 어느 국가에서나 충분히 있음직한 개연성이 있는 비밀조직들, 자신들은 철저히 애국자라고 자부하지만 - 실제로 그런 업적이 없다고 볼 수는 없지만 - 본(Bourne) 시리즈에서 다루는 촛점이기도 하고 본 시리즈가 여타 특수비밀요원 영웅담과 다른 점은 '어떤 롤러코스터 특수임무를 완료하여 관객을 매혹시키느냐'가 아니라 '당연히 선하다고 여겨져왔던 아군측 비밀조직이 자신들의 실리에 따라 자식같은 요원들을 가을에 청소원이 가로수의 낙엽을 떨어뜨리듯이 제거하는 위기일발, 즉, 적군이 아니라 아군에게 생명의 위협을 당하는 외로운 영웅이 사면초과의 위기를 극복하는 이야기의 매력'이다.  

  

전자의 대표적인 케이스가 '미션 임파서블'이고, 후자의 대표적인 케이스가 '본 시리즈'일 것이다. 톰 크루즈의 '이든' 요원은 적군, 아군 양측으로부터의 공격을 받지만 결론은 익히 알려진 질서로 복귀하면서 전형적인 해피 엔딩을 맞는다. 즉, 외부의 적도 섬멸하고, 국가의 비밀조직도 내부의 암덩어리를 제거하여 본래의 선한 얼굴을 되찾고, 이든 요원도 더욱 인정받는 엘리트 요원으로 자신의 위치에 복귀한다.


그러나 본 시리즈는 그렇지 않다. 외부의 적은 없거나 매우 미비하고 실질적인 적은 자신이 속했던 국가의 비밀조직이거나 그 비밀조직과 관련된 다른 비밀조직이다. 결말에서도 신파적인 질서는 회복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인간적인 정체성을 되찾을 뿐이고, 자신의 생명을 비록 일시적이지만 연장해서 멀리 도주할 뿐이고, 이런 와중에 애국자를 자처하는 국가의 비밀조직의 비리가 대중들에게(관객들에게) 폭로되는 재미를 선사한다. 관객의 입장에서 국가의 어떤 비밀조직에 대해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본'의 행동을 응원하게 된다.     

  

  

그렇다면, 왜 수많은 현대 관객들은 본 시리즈를 좋아하는 것일까? 물론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서부 영화 장르처럼 한물 간 스파이 영화 장르에서 본 시리즈의 괄목할만한 성공은 가히 부활, 재림이라고 볼 수 있다. 마치 홍콩 느와르가 녹슬어 먼지처럼 사라질 쯤에 '무간도'가 나온 것과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다. 수많은 현대인이 본 시리즈에 매료된 이유는 원작자 로버트 러들럼의 문학관이기도 하지만, 본의 이야기는 수많은 현대문학에서 비중있게 다뤄지고 있는 '현대인의 고독'과 깊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현대인 관객의 입장에서 자신의 처지와 본의 처지가 너무 닮았고 본의 영웅적인 행적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다. (참고, '본 레거시' 소설은 '로버트 러들럼'이 직접 쓴 소설은 아니고 그의 본 시리즈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에릭 반 러스트베이더'라는 작가가 쓴 소설이다.)


현대인은 대부분 어떤 회사에 소속되어 있다. 최근에는 자영업자도 많지만 피고용인이 훨씬 많은 것은 인류의 문명사에서 변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요즘같은 시대에 평생직장 개념을 생각하며 회사에 다니면 '선사시대인' 취급을 받을 것이다. (물론 어떤 회사는 고용주와 피고용인이 일심동체로 뭉쳐 가족같은 분위기로 행복하게 잘 사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통상적으로 대부분 그렇지 않다는 것은 수많은 사회지표들이 말해주고 있다) 현대의 회사는 자신의 실리에 따라 피고용인을 정리해고할 수 있고, 계약직으로 비용을 절감할 수도 있다. 회사가 어려울 때 큰 공헌을 했던 엘리트라도 어느 순간에 정리해고될 수도 있다.


즉, 본 시리즈에서 국가의 비밀조직의 모습은 현대인이 순수한 마음으로 취직했던 현대문명의 수많은 회사의 실제적인 모습과 많이 다르지 않다. 현대인이 실직과 취업을 대하는 심리적인 측면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일 것이다.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살아가는데 많은 돈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실직했어도 숨을 고를 여유는 있었다. 그러나 현시대에는 매달 정기적으로 나가는 돈이 엄청나기 때문에 '실직'이란 영화에서의 '제거', 즉, 현대사회에서 문명인으로 인식되는 콜로세움에서 추방됨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본이 아군으로부터의 위협을 물리치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며 고군분투해가는 영웅담은 피고용인으로서의 현대인이 취업과 실직과의 전장에서 생존하는 것과 정확히 일맥상통한다. 그래서 수많은 관객들이 본 시리즈에 매료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본이 국가에 애국한다고 자부하는 비밀조직의 제거 위협에서 생존해내는 모험은 현대인이 국가와 사회에 공헌한다고 자부하는 기업들의 실리라는 위협에서 살아남아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려는 의지의 모습과 매우 닮았다.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이번 본 레거시에서도 수많은 액션 장면이 명불허전이라고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일등급이다. 엄청난 감동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감상하는 시간이 아깝지 않은 영화였다. 오락적인 측면에서 만족을 주고 속에 들어있는 의미도 만족을 주는 영화라고 생각된다.

  

  

 2012년 12월 8일 김곧글(Kim Godg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