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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원 데이(One Day, 2011)

by 김곧글 Kim Godgul 2013. 3. 13. 21:14


  


영국판 순수한 첫사랑의 추억쯤 될 것이다. 한국과는 정서적으로 많이 차이가 나는데 요즘에 나오는 유럽 분위기의 영화치고는 꽤 동양적인(한국보다는 오히려 일본적인) 느낌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아련한 듯 허무함 마져 느껴지는 기나긴 사랑의 운명적인 매듭이라 볼 수 있다.


조금 몸집을 불린 앤 해서웨이의 여주인공 엠마는 평범한 여대생이고 졸업식 후에 감정에 이끌려 함께 잠을 자면서 기나긴 사랑의 매듭을 시작한 남주인공 덱스트(짐 스터게스)는 이런 류의 로맨틱에서 흔히 사용하는 패턴, '정말 허물없는 이성친구'로 우정을 쌓아간다. '남녀간에 정말 순수한 친구'가 존재할 수 있을까? 라는 너무 식상한 의문을 생각하게 하는 설정이다.     


앤 해서웨이가 인물에 몰입하여 조금 살을 불린 것은 정말 잘 한 것 같다. 엠마는 소위 남자들이 본능적으로 몰려드는 스타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앤 해서웨이가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처럼 늘씬했다면 엠마라는 인물에는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두 남녀 주인공 엠마와 덱스트는 고단한 사회생활을 살아가면서 서로에게 정말 친구 이상으로 정신적인 위로를 주게 된다. 때로는 연인 비슷하게 되기도 하지만 서로의 직업과 배경이 너무 달라 깊게 발전하지는 못 한다. 게다가 곱상하게 생긴 매력남 덱스트는 텔레비전 오락프로의 사회자로 크게 인기를 끌게 되면서 주변에 수많은 미녀들과의 연애가 끊이지 않았으니 평범한 엠마에게 강하게 끌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신적인 위로를 받는 사이였기 때문에 연락을 지속했다. 

  

이 영화에서 표현하는 기간이 로맨틱 영화 치고는 꽤 긴 편이다. 세월이 흘러 하늘을 찌르던 덱스트의 인기도 시들해지고 결국에는 방송시장에서 퇴출된다. 그때 쯤에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열심히 자신만의 꿈, 글을 썼던 엠마는 어느 정도 성공을 하게 된다. 누군가에게 세상일은 굴곡이 있기 마련. 이들의 연애에도 그런 일이 생긴 것이다. 덱스트는 점점 나약하고 평범한 중년남이 되어가고, 엠마는 여류 작가로써 인정을 받는다. 

  

각자 다른 상대를 만나 결혼을 했거나 결혼을 생각했지만 결국 정신적인 위로를 느끼는 끈질긴 인연, 친구같은 연인, 두 주인공은 마침내 사랑을 약속하지만 때마침 불행이 닥친다(어쩌면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모티브일지도). 이 부분에서 조금 당혹스럽다. 이럴거면 진작에 알려주던가... 익숙한 이야기 패턴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됨으로써 이 이야기만의 특별하고 심플하고 쿨한 여운을 전달한다. 영국판 순수한 사랑, 확실히 정서적으로 이질감이 느껴지지만 그런 것을 걸러낼 수 있는 능력은 있기 때문에 나름 괜찮게 감상할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서구권 로맨틱 또는 청춘 영화에서 흔히 나오는 장면이 있다. 그것은 실 한 올 걸치지 않고 수영하는 장면이다. 이 영화에서도 나온다. 아마도 자신들이 아담과 이브라고 상상하고 그러는지도 모른다.


오래 전에 공중파 교양 다큐에서 영국의 유명한 대안학교 '서머스쿨(Summer School)'을 인상적으로 본 적이 있다. 거의 20년 전일 것이다. 영국의 특별한 기숙사 학교인데 공부를 하고 싶을 때만 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된다. 하루 종일 놀아도 된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처음에는 정말 계속 신나게 논다. 그러나 나이가 어느 정도 들면 노는 것도 지겹고 스스로 알아서 공부를 시작한다. 그런 의지를 보이는 학생들에게 선생들은 실질적인 교과서 학업을 이끌어준다. 그들이 성인이 되어 졸업했을 때 사회생활을 스스로 주체성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잘 해나간다고 그랬던 것 같다. 아무튼 이 학교의 수영장에서도 남학생은 나체로 수영하고 여자는 원피스를 입고 수영했던 것 같다. 이 장면이 그 당시에는 시청자들을 조금 놀래켰던 것 같다. 언젠가 내가 자식을 낳으면 저런 학교에 보내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아직 결혼도 안한 입장에서 너무 앞서가며 생각하는 것은 아니냐는 생각이 들자 가벼운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다.

  

  

2013년 3월 13일 김곧글(Kim Godgu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