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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상글(Movie)

위대한 개츠비 (2013)

by 김곧글 Kim Godgul 2013. 8. 27. 15:39



최신 기술을 적용한 화사한 색감의 영상미는 지금까지 영화들과 은은하게 차별화 되었다. CF, 뮤비에서나 사용할 법한 화사함이 오히려 진중한 맛을 기대했을지도 모를 국내 30, 40대 관객에게 떨떠름함을 제공했을지도 모른다. (여담이지만 10, 20대가 이 영화를 재밌게 봤다면 또래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거나 매우 독특한 성격일 가능성이 높다) 다양한 CG를 적용하여 1920년대를 21세기 뉴욕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보는 듯이 화려하게 표현한 것에 거부감이 없다면 이 영화는 그럭저럭 좋게 감상될 수 있다. 다만, 이야기가 창작된 시기도 그때쯤이었기 때문에 비록 시대를 넘나드는 고전이라고 하더라도 미국의 보수적인 이념의 색채가 짙게 깔려있어서 현대 주류 국내관객(젊은층)이 즐기기에는 다소 버거울 것이다.  

  

필자가 '위대한 개츠비'라는 소설을 알게 된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에서 종종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매우 높게 추켜세운 소설이었다. 얼마나 좋았으면 젊은 시절 그가 직접 번역해서 출판한 적도 있다. 어떤 면에서는 하루키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정서와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없지 않다. 개인적인 생각에 '위대한 개츠비'라는 소설은 세계 문학의 고전으로서의 가치 보다는 미국 문학에서 문학성 자체가 아니라 미국인이 지향하고 권장하는 보편적인 가치관, 인생관에 대한 가치를 대중소설로 잘 융화해서 인정받는 작품인 것 같다.     

  

수년 전에 소설을 읽었었는데, 특별히 놀라운 문체로 써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시대 다른 명작 소설들에 비하면 가볍게 물흐르듯이 썼다. 쥐어짜지 않은 문체라는 뜻이다. 수필체로 써진 소설이라고 구분할 수도 있다. 그때는 정말 지루하게 읽었다. 1인칭 관찰자 시점이지만 그 1인칭의 의식이 하루키의 소설처럼 독자를 매료시키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개츠비의 이야기이고,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진실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서의 역할이 1인칭 관찰자이다. 개츠비의 진실성을 소설의 화자만이 알아주는데 그렇다면 그 진실성은 무엇일까? 이 소설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그 진실성이 핵심이다. 

  

세부적으로 얼마나 다른지 잘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영화는 소설의 이야기를 충실히 표현했다. 소설을 읽었을 때는 어떤 이야기라는 것만 알았고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느낌이 안 왔었다. "도대체 왜 이 소설이 그렇게 유명한 작품이고, 수많은 작가들이 칭찬하고, 하루키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최근에 이 영화를 보고 이야기라는 나무에 메달린 열매 즉 메시지 또는 주제를 감지할 수 있었고 "그런 뜻이었구나. 과연 미국인이 좋아할 만하군."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익히 알다시피, 영어에서 'great'이라는 단어는 매우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 제목이 'The Great Gatsby'인데 great 이라는 단어의 뜻이 전반과 끝부분에서 다르게 해석될 수 있고 이것은 전달하는 주제의 핵심이기도 하다. 전반에는 '(재산이) 굉장한, 크게 성공한, 억세게 운 좋은'이라는 뜻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개츠비를 피상적으로 언론을 통해서 소문으로 알고 있는 great이다. 그러나 끝부분에는 '(인품이) 훌륭한, 숭고한, 고매한' 의 뜻으로 재해석된다. 즉, 1인칭 주인공이 주장하기를, 대중들은 개츠비를 '대부호', '행운아' 정도로만 생각하지만, 자신이 목격한 바로는 진정한 '인격의 군계일학'이다. 그리고 인격의 초점이 사랑을 향하고 있어서 출판 당시에 연애소설로서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는데도 일조했다. 일종의 고상한 품격 있는 연애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야기는 '사랑과 전쟁'에 나올 번한 불륜을 소재로 다룬 연애소설이지만 저변에 깔려있는 정서는 한 인간의 성실한 열정, 일관성, 지속성, 현실성, 사회성 등등일 것이다. 막말로 조선시대 훌륭한 인격의 사대부 누구의 인격을 갖다붙여도 어울릴 것이다. 만약 어떤 작가가 이 소설 또는 영화를 조선시대 버전으로 각색해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 면에서 세계적인 보편성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다만, 고리타분할 수 있는 고전적 이야기를 어떻게 표현해서 억척스럽게 맵고 짜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대다수 한국관객을 만족시켜주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개츠비라는 인물은 관객이 평소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소지가 있다. 생각해보면 어떤 작품의 인물이든지 그렇기는 하다. 누군가는 개츠비를 법망을 슬쩍 피해가면서 엄청난 부를 쌓았다는 측면에서 그것을 트집 잡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법이 미국의 금주법과 관련이 있고 현대에는 불법이 아니라는 관점에서 그렇게 악행을 했다고 볼 수도 없다.

  

개츠비가 돈을 낭비하지 않고 열심히 성실히 번 이유는 5년 전에 만난 적이 있는 한 여자, 데이지와 사랑을 평생토록 지속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그 사이에 데이지는 다른 남자의 부인이 되었다. 그렇더라도 개츠비는 매너있게 정정당당하게 사랑을 자치하고 싶어한다. 의사들은 이 부분을 유아적인 애정관이고 반사회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일단 이것은 극단적인 사랑을 하더라도 봐줄 수 있는 연애소설이라는 구장이기 때문에 그렇게 불가능한 인물은 아니다. 다만, 이젠 다른 남자의 부인이 된 옛 연인을 차지하기 위해서 개츠비가 얼마나 성실히 열정과 공을 들여서 오래동안 계획을 실행했는지를 알고보면 과도한 편집증과 집착이 생각날 정도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른 남자의 부인'이라는 것은 표면적인 것일 뿐이고 실제로 이것은 '매우 성취하기 힘든 어떤 높은 목표 또는 이상'을 상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오랜 세월 동안 성실하게 신실하게 고매하게 꾸준히 열심히 노력하는 인격,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한 기본 바탕으로서의 인간상, 그것을 위대하게 생각한다는 메시지이다. 더불어, 행여나 대중들의 오해와 질타를 받더라도, 누군가 자신을 거짓비방하더라도, 심지어 목표 자체가 자신이 생각한 높은 것과는 달리 저급한 수준일지라도 또한 목표를 성취하지 못 하더라도, 그런 것 따위를 상관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의 성실성, 진실성, 고매함에 일체의 흔들림없이 유지하고 지속한다는 관점에서 개츠비는 진정으로 위대한 인격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개츠비와 비교되는 인물로 데이지와 그의 남편 톰 뷰캐년이 있는데 그들은 악인이라기 보다는 그저 흔한 보통 사람일 뿐이다. (이들이 한국 영화에 등장한다면 영화의 끝에 가서 이런 대사를 읊었을 것이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 즉, 이 이야기의 메시지는 선인은 악인보다 위대하다라는 관점이 아니라, 대중들이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높은 세계 사람들은 대중과 크게 다르지 않은 보통 인격인 경우가 일반적인데, 그들 중에 알려지지 않은 또는 잘못 알려졌지만 진정으로 위대한 인격의 소유자도 있다, 정도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시간이었다. 하루키가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던 작품이 무엇을 전달하는지 그동안 몰랐었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파악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이 풀어 쓴 해설을 읽지 않고 작품을 보면서 발견하는 짜릿함은 마치 어려운 수학문제를 해법을 보지 않고 몇 시간 고생해서 마침내 풀어냈을 때의 느낌과 일맥상통한다.

  

  

2013년 8월 27일 김곧글(Kim Godg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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